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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15 부촉품(附囑品)

부촉품(附囑品) 04장

대종경(大宗經)

제15 부촉품(附囑品) 4장

대종사 열반을 몇 달 앞두시고 자주 대중과 개인에게 부촉하시기를 [내가 이제는 깊은 곳으로 수양을 가려 하노니, 만일 내가 없더라도 퇴굴심이 나지 않겠는가 스스로 반성하여 마음을 추어 잡으라. 지금은 정히 심판기라 믿음이 엷은 사람은 시들 것이요, 믿음이 굳은 사람은 좋은 결실을 보리라. 나의 법은 신성 있고 공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 가도록 전하였나니, 법을 받지 못하였다고 후일에 한탄하지 말고, 하루 속히 이 정법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그대들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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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信誠]

믿음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정성스럽게 믿는 마음.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에 대해 정성 다해 믿고 받드는 것. 신성은 ①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②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③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된다. 따라서 도가(道家)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만날 때, 그의 지식ㆍ문벌ㆍ재산ㆍ용모 같은 것보다는 신성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신성의 깊이와 굳건함은 각종법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신앙정서가 체험되고 법열의 감화가 지속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도가에서 공부인의 신성을 먼저 보는 것은 신(信)이 곧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모든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신이 없는 공부는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결과를 보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먼저 독실한 신을 세워야 자신을 제도하게 될 것이며, 남을 가르치는 데에도 신 없는 사람에게 신심 나게 하는 것이 첫째 가는 공덕이 되나니라”(《대종경》 신성품7)라고 했다.

또 “제자로서 스승에게 법을 구할 때에 제 마음을 다 바치지 아니하거나 정성에 끊임이 있으면 그 법을 오롯이 받지 못하나니라. 옛날에 구정(九鼎)선사는 처음 출가하여 몹시 추운 날 솥을 걸라는 스승의 명을 받고 밤새도록 아홉 번이나 솥을 고쳐 걸고도 마음에 추호의 불평이 없으므로 드디어 구정이라는 호를 받고 중이 되었는데, 그 후 별다른 법문을 듣는 일도 없이 여러 십년 동안 시봉만 하되 스승을 믿고 의지하는 정성이 조금도 쉬지 아니했고, 마침내 스승의 병이 중하매 더욱 정성을 다하여 간병에 전력하다가 홀연히 마음이 열려 자기가 스스로 깨치는 것이 곧 법을 받는 것임을 알았다 하니, 법을 구하는 사람이 이만한 신성이 있어야 그 법을 오롯이 받게 되나니라”(《대종경》 신성품10)라고 했으며, “스승이 제자를 만나매 먼저 그의 신성을 보나니 공부인이 독실한 신심이 있으면 그 법이 건네고 공을 이룰 것이요, 신심이 없으면 그 법이 건네지 못하고 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 그런 즉, 무엇을 일러 신심이라 하는가.

첫째는 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비록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로 그 스승을 비방할지라도 거기에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혹 직접 보는 바에 무슨 의혹되는 점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사량심(思量心)을 두지 않는 것이 신이요, 둘째는 스승의 모든 지도에 오직 순종할 따름이요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신이요, 셋째는 스승이 혹 과도한 엄교(嚴敎) 중책(重責)을 하며 혹 대중의 앞에 허물을 드러내며 혹 힘에 과한 고역을 시키는 등 어떠한 방법으로 대하더라도 다 달게 받고 조금도 불평이 없는 것이 신이요, 넷째는 스승의 앞에서는 자기의 허물을 도무지 숨기거나 속이지 아니하고 사실로 직고하는 것이 신이니, 이 네 가지가 구비하면 특별한 신심이라, 능히 불조(佛祖)의 법기(法器)를 이루게 되리라”(《대종경》 신성품1)고 했다.(원불교대사전)

공심[公心]

① 공정하고 편벽되지 않는 마음. 공익심의 준말. 원불교에서 신심과 아울러 가장 강조하는 마음.

② 자기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나 인류전체를 위하는 마음. 공심에는 부분공심과 전체공심이 있다.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도 자기가 속한 기관이나 단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부분적인 공심에 속한 것이며, 국한을 넓혀 사회전체를 생각하는 것을 전체공심이라 하는 것으로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진정한 공심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기를 본위로 생각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으로 자기를 놓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상 여러 종류의 차별과 분쟁 또는 더 나아가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수행을 통해 일원의 진리와 사은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공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으로 부처님이나 모든 성자들이 진리를 깨닫고 나서 일체중생을 위해 제도의 문을 열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공심은 진리를 깨닫고 수행을 할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능력으로 인생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예수께서 십자가의 형벌을 감수한 것이나 이차돈의 순교는 공심의 표본이 될 만하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 공도편4).(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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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과 공심이 법의 혜명]

<강덕제 교무>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전신전수(全信全受) 반신반수(半信半受) 무신무수(無信無受)' 너무나 당연한 법문들이다. 종교를 넘어서서 믿는 사람은 얻게 될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얻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저 밭에 보물을 묻어 두었으니 각자가 그 보물을 찾아 쓰라는 유언을 남기고 가셨다. 아들 셋의 반응이 다 달랐다.

"저 밭에 무슨 보물이 있어?" 믿지 않고 보물을 찾으려고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저 밭에 보물이 있다고? 한 번 찾아볼까?" 하다가 "없잖아." 하면서 찾기를 멈춘다.

"저 밭에 보물이 있다고 했어. 찾아야 돼." 끝까지 찾는다. 결국 아버지의 유언이 무엇인지를 알아낸다.

간단한 이야기지만 믿음에 따라 결과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현실 생활에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이치다. 스위치를 누르면 불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에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지 믿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것을 누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이라는 것은 따라서 해볼 때 확신이 되는 것이다. 특별한 근기 특별한 신심이 아닌 이상 내가 자꾸만 하면서 증명해 낼 때 더 큰 믿음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신성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공심 있는 사람이 가져갈 수 있다고 하셨을까? 공심과 당신의 법 전수에 무슨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

공심이라는 것은 전체 마음을 뜻한다. 국집된 마음이 아니라 전체와 하나가 된 큰 마음이다. 대종사님의 법을 온전히 받으려면 전체공심이 되어야 대종사님의 온전한 뜻을 알고 대종사님의 큰 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대종사님의 법은 모든 교법을 통합하여 한 덩어리 한 집안을 만들어 서로 넘나들고 화하게 하는 법이고 모든 생령을 이롭게 하고 전 세계를 평등세계 만드는 법이다. 대종사님이 하시고자 했던 일이 바로 전체를 살리는 일이다.

교단품에서 공중의 살림과 사업은 오직 공변된 정신으로 공변된 활동을 하는 공변된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우리의 모든 시설과 모든 법도와 모든 명예가 다 공변된 사람들의 소유요 그 사람들이 주관할 바라 하시고 우리의 회상은 세계의 공물이니 공도의 주인이 되기에 힘쓰라 하셨다. 우리회상은 세계의 공물이라고 천명하셨다. 그리고 공변된 사람들이 그 주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공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법을 받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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