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15 부촉품(附囑品) 2장
원기 이십 육년(1941) 일월에 대종사 게송(偈頌)을 내리시고 말씀하시기를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전법 게송을 전하였으나 나는 미리 그대들에게 이를 전하여 주며, 또는 몇 사람에게만 비밀히 전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고루 전하여 주노라. 그러나, 법을 오롯이 받고 못 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각기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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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偈頌]
[개요]
싼스끄리뜨 가타(gāthā)의 음사(音寫)인 게타(偈佗)의 게와 풍송(諷頌)의 송을 합하여 쓴 말. 가타(伽陀)ㆍ가타(伽他)라 음역하고, 풍송(諷誦)ㆍ조송(造頌)ㆍ게송(偈頌)ㆍ송(頌)ㆍ고기송(孤起頌)ㆍ부중송게(不重頌偈)라 번역한다. 일반적으로 운문체의 가요ㆍ성가ㆍ시귀ㆍ게문(偈文)ㆍ송문(頌文)을 뜻한다.
[형식과 내용]
게송의 전통과 형식은 2가지가 있다.
첫째, 불교전적에 가장 많이 나오는 16음절(8음절 1구를 2구 합친 것) 2행의 32음절로 이루어지는 수로가(首盧迦, śloka)를 말한다. 한역은 이 1게를 4자 또는 5자의 4구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다. 후에는 경론의 산문을 헤아리는 데에도 쓰인다. 좁은 의미로는 앞에 산문이 없이 운문만의 교설인 고기게(孤起偈, gāthā)와 산문의 교설에 이어서 거듭 운문으로 산문의 내용을 설하는 중게송(重偈頌, geya)이 있다. 한역의 게는 외형상 한시와 같지만 압운(押韻)하는 것이 적으며 중국 시의 체제를 이루고 있지 않다.
둘째, 깨달음(悟道)의 경지를 운문의 체재로 설한 것. 중국의 게는 압운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나 파격의 경우가 많다. 경ㆍ율ㆍ론 가운데 글귀로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교리를 요약해서 기록하며, 조사나 고승석덕들이 평생을 두고 터득한 깨달음을 요약 표현해서 후학들에게 법을 전한다는 전법게송(傳法偈頌)이라고 한다. 또한 열반에 이르러 생사에 관한 법문을 베푸는 것을 열반송(涅槃頌), 깊은 수행으로 깨침을 얻어서 진리의 세계를 읊은 것을 오도송(悟道頌) 등으로 부른다.
[원불교의 게송]
원불교의 게송에는 교조와 역대 종법사의 전법게송이 공전(公傳)으로 발표되어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1941년(원기26) 1월에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는 일원상 게송을 전법게송으로 내리고, 정산종사는 1962년(원기47) 1월 열반에 당하여 ‘동원도리(同源道理)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의 삼동윤리(三同倫理 )를, 대산종사는 1998년(원기83)에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라는 ‘하나의 세계’ 법문을 전법게송으로 내렸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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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보물을 똑같이 보여주시다.]
<강덕제 교무>
'게송'이란 성현들이 일생을 통해 깨쳐 얻은 진리의 소식을 몇 글자로 뭉치고 뭉쳐서 펴내신 마지막 보물이다.
이 보물은 형태가 있는 보물이 아니기 때문에 그 보물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과거에는 거의 모든 일들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또는 나에게 와서 어떻게 해서라도 그 일을 해 보려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공개 입찰을 통해서 가격이 저렴한 곳으로 또는 그 일을 제대로 해 줄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긴다.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다 밝히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가져간다. 종교에서도 과거 성현님들은 당신의 법을 임종 직전에 당신이 수계자를 정해서 한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이 보통의 일이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당신이 영겁을 통해 얻으신 여의보주를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하셨고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미리 그 보물을 내 보여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만 그 보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다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 받았다.
공전(公傳)의 의미란 이렇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기회를 주는 것.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가져 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가라고 하셨다. "받고 못 받고는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정진하여 후일에 후회가 없게 하라." 담아가는 그릇은 본인들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이 그 그릇을 만들지 못해 그 보물을 담아가지 못해서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그릇이 그 보물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보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보물인줄을 안다. 다이아몬드를 가지고도 한갓 돌로 본다면 다이아몬드는 없는 것이나 같다.
그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정진을 해야 하는데 후에 법문에 나오겠지만 신심과 공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법을 받아갈 수 있게 하셨다고 했다.
그 그릇은 신심과 공심에 바탕하여 정진할 때 바로 보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곧 나에게 신심이 있으면 공심이 있으면 대종사님의 법을 그대로 담아올 수 있는 것이다.
"후일에 유감없게 하라." 후일이 언제인가?
언제든지 내가 그릇을 갖추기만 하면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걱정이지 후일을 걱정할 일은 아니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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