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대종경》의 일곱 번째 품으로 모두 31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리에 대한 근본 뜻과 성리의 문답 형식을 지닌 법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불교의 화두나 공안과 같은 것으로 우주의 원리와 성품의 이치에 대한 본질적 깨달음을 인도하고 있다. 또한 격외의 표현 형식을 빌린 법설이 다수 발견된다. 성리 연마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각적 성찰도 요구되고 있다. 성리품은 소태산대종사 깨달음의 내용과 그 심경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를테면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 (《대종경》 성리품1)이라는 한시가 그것이다. 그리고 원불교의 성품관에 대한 언급에 있어 능선능악과 무선무악이 거론되고 있으며, 통만법명일심, 성품의 체용 양면, 견성과 성불 및 솔성, 만법귀일(萬法歸一),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 (《대종경》 성리품10) 등의 성리 법설이 실려 있다. 소태산은 성리를 밝히지 않으면 사도(邪道)라고 하여, 성리는 정법대도의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설임을 강조했다.(원불교대사전)
★★★★★★★★★★
성리[性理]
(性 : 성품 성, 理 : 다스릴 리(이))
[개요]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와 인간의 자성원리를 궁구하는 공부법으로 사리연구의 한 과목이다. 성리란 성리학의 성(性)과 이(理)에서 나온 말로, 성즉리(性卽理)라고 한다. 인성과 천리를 하나로 보아 마음의 성(性)과 심(心), 우주의 이(理)와 기(氣)를 논한다. 불교에는 마음의 근본을 불성(佛性) 또는 자성(自性)이라 하는데, 이를 선종에서는 화두를 간(看)하여 견성을 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자성을 적묵영조(寂黙靈照)하여 적적성성(寂寂惺惺)한 경지에 이르게 하는 묵조선(黙照禪)이 발달했다. 원불교의 성리는 성리학과 선종의 가르침을 다 포함한다.
[성리의 중요성]
《정전》 ‘정기훈련법’에서는 “성리란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의 자성원리를 해결하여 알자 함이라”고 정의한다. 이의 중요성이 《대종경》에 성리품을 둔 데서도 나타나는데, 소태산대종사는 “종교의 문에 성리를 밝힌 바가 없으면 이는 원만한 도가 아니니 성리는 모든 법의 조종(祖宗)이 되고 모든 이치의 바탕이 되는 까닭이니라”(《대종경》 성리품9)고 하여, 모든 법의 근본과 모든 이치의 바탕이 성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결국 근원적인 이치, 곧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서 활용해 가는 것이 성리를 궁구하는 목적이다. 소태산은 지금까지의 모든 종교 교리체계가 성리에 근거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성리에 근거한 경우에도 성품을 깨치는데 중심을 두고 성품을 활용하는 면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보았다. 불교는 성리의 혜(慧)에 근거를 했고, 성리학은 성리의 체(體)에 근거를 두었는데, 소태산은 이를 한 면에 치우친 것이라 보았다. 성리가 모든 법의 조종이라는 것은 모든 법의 근본이라는 뜻이므로, 기존의 장엄종교가 성리에 바탕한 절대적 진리의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원불교의 성리]
소태산은 “근래에 왕왕이 성리를 다루는 사람들이 말 없는 것으로만 해결을 지으려고 하는 수가 많으나 그 것이 큰 병이라 참으로 아는 사람은 그 자리가 원래 두미(頭尾)가 없는 자리이지마는 두미를 분명하게 갈라 낼 줄도 알고 언어도(言語道)가 끊어진 자리지마는 능히 언어로 형언할 줄도 아나니”(《대종경》 성리품25)라고 했다. 성품은 원래 언어의 도가 끊어진 자리이지마는 분명하게 드러낼 줄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성리가 주로 성품의 체를 밝힌 것이라면 소태산은 묘유의 용까지 밝혔다. 진공의 체와 묘유의 용을 하나로 밝힌 것이다.
공(空)의 체를 철저히 깨쳐 체험했을 때, 묘유의 용은 철저한 진공의 체험에서 나타나므로 성품의 체를 밝히는 데 머물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 묘유로 용을 삼으면 진공이 바로 묘유가 된다. 일원상의 진리를 언어도단의 입정처로 철저히 깨쳐서 유무초월의 생사문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소태산은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대종경》 성리품2)고 했다. 불교에서는 성품을 선과 악이라 하지 않고 미(迷)와 오(悟)로 밝힌다. 미는 중생의 상태이며, 오는 부처의 상태이다. 성리학에서는 인성의 문제를 선악론으로 다루는데, 소태산이 성품을 지극히 고요하다고 한 것은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말한 것이며, 그러므로 선도 없고 악도 없다는 것이다.
이를 성론으로 표현하면 무선무악(無善無惡)이다. ‘성품이 정한즉, 동한즉’이란 성품을 ‘정한 면으로 보면, 동한 면으로 보면’이라는 의미이다. 성품을 체와 용으로 분리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체와 용은 성품을 이해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기 때문이다. ‘능선능악(能善能惡)’은 선과 악으로 나타나게 하는 성품의 작용을 말한다. 능선능악은 업력으로 지은 선과 악을 나타나게 하는 능동적인 작용이다. 성리학에서는 선과 악으로 나타난 상태를 유선유악(有善有惡)이라고 한다. 이(理)에서 받은 것은 순선무악(純善無惡)하지만 기(氣)의 청탁으로 나타난 것이 유선유악이다. 그러므로 원불교에서는 성리학의 순선무악ㆍ유선유악과 불교의 무선무악을 넘어선 능선능악을 말한다. 성품은 정한 면으로 보면 무선무악이며 동한 면으로 보면 능선능악인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성즉리[性卽理]
인간의 본성(本性)은 곧 천리(天理)라는 말로 성리학(性理學)의 근본 명제(命題). 인간은 나면서부터 하늘의 이치(理致)를 성품으로 부여받았음을 말한다. ‘성즉리’와 맥락을 같이 하는 사상들은 이미 고대로부터 유가(儒家)의 여러 경전에 나타나 있었지만 ‘성즉리’라고 밝힌 것은 송대(宋代)의 정이(程頤)이다. 성리학자들은 이 명제를 인간 본성의 보편성과 순선(純善)의 근거로 삼았다. 주자(朱子)는 정이의 ‘성즉리’를 계승하고 이를 이기론적 체계에 의하여 보완 발전시킴으로써 인성에 대한 종합적 탐구의 길을 열었다. 그는 “성은 즉 이이다. 마음에 있으면 성이라 하고 사물에 있으면 이라 한다”(《性理大全》)고 했다.
성이란 인간의 마음에 내재하는 이치를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천명(天命)과 인성(人性)은 그 본질이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즉리라고 할 때는 이미 하늘과 인간이 만날 수 있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보편적 진리의 내재성에 대한 확인이다. 이것은 송ㆍ명(宋ㆍ明) 이래로 근세 유학사상의 중심 명제가 되었다. ‘성즉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에 있어서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의 차이가 있고, 바로 이러한 견해의 차이가 한국 성리학의 양대논쟁(兩大論爭)인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 또는 湖洛論爭)의 연원이 되었다.(원불교대사전)
화두[話頭]
(1) 이야기의 실마리. 화제(話題).
(2) 선종의 고칙(古則)이나 공안(公案) 등의 1절 또는 1칙을 이르는 말. 스승이 제자에게 지혜를 연마하여 깨치도록 하는 의문의 조목. 임제종에서는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을 주장한다. 원불교에서는 의두(疑頭)라 한다. 화두를 궁구하는 실천적 지표를 집중적으로 제시한 문헌으로는 대혜종고의 《서장(書狀)》과 고봉원묘의 《선요(禪要)》가 있다. “만약 진정으로 의지를 확고히 하여 마음을 밝히고자 하면 우선 평소에 마음속에 받았던 모든 선악의 대상을 그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막고 터럭만치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고요히 앉아 바른 생각을 견고하게 모으고 향상(向上)의 현묘한 기틀을 세밀하게 궁구하며 선종의 비밀스런 취지를 탐구하여 맛보며 화두를 절실하게 놓치지 말고 삼가고 두려워하여 약간이라도 틈이 없게 들어야 한다. 움직이나 고요하나 어그러지지 않아야 점차 깊고 은밀하며 지극히 미세한 경계에 이를 것이다”(《서장》).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단지 한 가지 의심에 불과하다. 화두에서 일어나는 의심을 타파하면 천 가지 의심과 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타파된다. 단지 화두를 의식에 드는 것으로 알아맞히려 하지 말며, 또한 이 화두를 사량하고 헤아려서도 안 된다”(《서장》). 이와 같이 화두는 마음을 깨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천만 가지 의심이 한 의심으로 뭉쳐져 강하게 두드려야만 깨쳐지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공안[公案]
(1) 선불교, 특히 임제종(臨濟宗)에서 선(禪)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정진(精進)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간결하고도 역설적인 문구나 물음으로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깨침을 얻도록 인도하기 위해 제시한 문제. 인연 화두(因緣話頭)라고도 한다. 화두(話頭) 또는 공안을 풀기 위해 분석적인 사고와 의지적인 노력을 다하는 동안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 직관수준에서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사(禪師)는 수행자에게 참선에서 얻은 경험의 어떤 부분을 전수해주고, 또한 수행자의 역량을 시험해본다.
예를 들면 ‘양손이 마주칠 때 소리가 난다. 한 손으로 손뼉을 칠 때 나는 소리를 들어보라’라고 문제를 제공하는 식이다. 때로 문답식으로 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부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는 대답을 공안으로 들기도 한다. 공안(화두)은 깨침의 기연이 된다. 수많은 선사가 이 공안의 참구ㆍ연마로 깨쳤고, 수많은 제자들을 이 공안으로 깨침의 세계로 인도했다. 공안은 선승들의 언행을 간단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1,700공안이 표현은 각각이지만 그 해답의 궁극처는 하나이다. 곧 우리의 본래마음과 그 마음을 깨치는 길을 인도하는 것이다. 공안은 글자 해석을 통해서는 그 뜻을 깨칠 수 없다. 마음의 체험을 통해서 깨치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화두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깨칠 때까지 참구ㆍ연마하는 것이다. 글자 해석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공안이든지 하나만 깨치면 다른 공안도 따라서 깨치게 되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 글자 해석을 통해서 공안을 깨치려 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는 불법의 진리를 크게 그르치는 것이다. 공안이란 말의 기원은 원래 중국에서 공부(公府)의 안독(案犢)이라고 하는 말, 곧 관공서의 문서 이름에서 나왔다. 현재 모두 1,700개의 공안이 전해지는데 이는 선사의 언행록에서 뽑아 모은 것이다. 널리 알려진 공안집으로는 1125년에 중국 승려 원오극근(圓悟克勤)이 이전부터 있던 공안집에서 100개 정도를 가려내어 편집ㆍ주석한 《벽암록(碧巖錄)》과 1228년에 중국 승려 혜개(慧開)가 48개를 모은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2) 대중의 공론에 따라 결정한 안건.(원불교대사전)
우주[宇宙]
(1) 천문학상으로는 지구를 포함한 모든 천체와 모든 물질 그리고 전체 공간.
(2) 전통적으로 동양에서는 사방상하(四方上下)를 우(宇)라 하고, 고왕금래(古往今來)를 주(宙)라 하여, 시간과 공간을 합칭한 개념으로 쓰고 있다. 그러한 우주는 질서 있는 통일체의 세계로서, 인간이 그 안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정전》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우주가 성ㆍ주ㆍ괴ㆍ공(成住壞空)으로 변화한다고 하여, 무한해 보이는 우주이지만 그 역시 변화하여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본다.(원불교대사전)
원리[原理]
(1) 사물이 근거하여 성립하는 근본 법칙.
(2) 인식(認識) 또는 행위의 근본 전제(前提).
(3) 존재의 근본 원인(原因). 소태산대종사는 일원상 자리를 유가에서는 태극(太極) 또는 무극(無極)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자연 또는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청정법신불이라 했으나 그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다고 했다(《대종경》 교의품3).(원불교대사전)
성품[性品]
본성(本性), 곧 태어나면서부터 본래적으로 지닌 성질을 말한다. 성품은 인간의 마음을 통하여 우주의 본체를 밝히려는 입장에서 심체(心體)라고도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사람의 성품이 정한 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 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나니라”(《대종경》 성리품2)라고 했다. 선악의 상대성을 초월하여 궁극적으로 인식되는 어떤 것임을 시사한다. 성품은 인간의 본성이며 동시에 우주적 본원과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태산은 천도법문(薦度法門)에서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이며,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그것이나, 그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ㆍ주ㆍ괴ㆍ공으로 변화하고”(《대종경》 천도품5)라고 했다.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운행되는 이법에 따라 우주의 변화가 일어나듯 성품이 현상을 대하여 응함에 따라 수많은 분별이 일어난다.
정, 곧 드러나지 않은 본래의 상태에서는 성품은 분별이 없는 본래의 상태에 그쳐 있으나, 동, 즉 응하여 드러나는 가운데 온갖 분별이 나타나게 된다. 정산종사는 “본래에 선악염정(染淨)이 없는 우리의 본성에서 범성(凡聖)과 선악의 분별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 본성에 소소영령한 영지(靈知)가 있기 때문”(《정산종사법어》 원리편11)이라고 했다. 분별이 나타날 때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갖가지 차별의 세계가 전개된다. 정산은 “우리의 성품은 원래 청정하나, 경계를 따라 그 성품에서 순하게 발하면 선이 되고 거슬려 발하면 악이 되나니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요”(《정산종사법어》 원리편10)라고 했다. 분별이 나타남을 잘 관조하고 공부길을 따라 수행하여 성품의 본연이 본래 그대로 발현되게 하려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이치[理致]
(1)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도리에 맞는 취지(趣旨). 이치에 부합되는 말과 행위, 상태를 합리 또는 합리적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치에 어긋난다고 한다. 이(理)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2) 불교 선종(禪宗)에서 종장(宗匠)이 제자를 훈화(訓化)할 때에 경론의 도리를 개시(開示)하여 인도하는 것.(원불교대사전)
격외[格外]
보통의 격식이나 관례에서 벗어남. 또는 그런 정도. 세속적인 척도를 훨씬 초월한 세계를 이르는 말.(원불교대사전)
자각[自覺]
(1) 자신의 형편이나 처지, 본분 따위를 스스로 깨달음. 자기 자신이 놓여 있는 일정한 상황을 매개로 하여, 자기의 위치ㆍ능력ㆍ가치ㆍ의무ㆍ사명 등을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한다.
(2) 불교에 있어 삼각(三覺)의 하나. 자각ㆍ각타(覺他)ㆍ각행궁만(覺行窮滿)을 불교에서 삼각(三覺)이라 한다. 이 가운데 자각은 자기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증득해 알지 못함이 없는 것 또는 중생이 자신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3) 철학에서 자신의 생각과 언행에 대하여 그것이 진리성과 성실성이 있는지 자신을 반성하는 일.
(4) 심리학에서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상태.(원불교대사전)
체용[體用]
[개요]
체와 용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물을 본체와 작용, 또는 사람의 본래 성품과 그 작용. 진리, 사물, 사람의 성품을 구조와 작용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각각의 의미와 상호 관계를 이해하는 개념을 말한다. 체용은 주로 도가와 불가의 사상에서 논의되던 개념으로서 유가에서도 원용했다. 정이(程頤)는 《역전(易傳)》 서(序)에서 “지극히 은미한 것은 이(理)이고 지극히 현저한 것은 상(象)이다. 체용은 일원(一源)이고 현미(顯微)는 무간(無間)이다”라고 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성품의 진공(眞空)을 체에 해당하는 것으로, 묘유(妙有)를 용으로 이해했다 (《정전》 무시선법).
[체와 용의 관계]
체(體)는 본체 또는 근본적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우주 만물이나 일체 차별 현상의 근본으로서 상주불변하는 진리의 본래 모습 또는 진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용(用)은 작용 또는 현상, 파생적인 것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따라서 체와 용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나 두 가지 측면이 하나의 진리의 양면임을 밝혀 체용일원이라고 한다.
정산종사는 “우주 만유의 본원은 법신불의 체요, 그 체 가운데에 한 기운이 순환하여 천변만화를 행하는 것은 법신불의 용이요, 그 체용 가운데에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무엇으로 가히 말할 수가 없으나 항상 허령불매하여 엄연히 체용을 주재하는 것은 법신불의 영지(靈知)니, 체와 용과 영지가 다 법신불 하나이며, 우리들의 육체와 기운과 마음도 또한 법신불의 한 분자로서 서로 통하여 둘이 아니니”(《정산종사법어》 예도편9)라고 했다. 성품에 있어서도 누구에게나 갖춰있는 본래의 성품을 체라 하고 그 성품이 발현되어 나타나는 모든 작용 현상을 용이라 한다.
성품을 잘 발현하도록 하는 공부를 삼대력공부라고 하는 데 정산은 “삼대력공부에 저축 삼대력공부와 활용 삼대력공부가 있나니, 저축 삼대력공부는 정할 때에 안으로 쌓는 공부요, 활용 삼대력공부는 동할 때 실지 경계에 사용하는 공부라, 아무리 저축 삼대력공부를 했다 할지라도 활용하지 못하면 마치 그늘에 자란 나무 같아서 힘이 없을 것이요, 활용 삼대력공부 역시 저축 삼대력공부가 없으면 마치 뿌리 튼튼하지 못한 나무 같아서 힘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항상 저축 삼대력공부와 활용 삼대력공부를 병진하여 체용이 겸전하고 동정이 서로 근원하는 원만한 삼대력을 얻을지니라”(《정산종사법어》 경의편20)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성불[成佛]
모든 번뇌를 해탈하고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 작불(作佛)ㆍ성도(成道)ㆍ득도(得道)라고도 한다. 모든 불교 수행자들이 이루기를 원하는 최고의 경지. 원불교에서는 삼학 병진수행을 원만히 하여 삼대력을 얻고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 대각여래위의 대도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원불교대사전)
솔성[率性]
(1) 천도(天道)에 순응하고, 나아가 천도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것. 《중용》에서는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敎)”라고 하여 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솔성은 곧 천지의 명한 바에 순응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2) 원불교에서 솔성은 모든 사람에게 본래 갖추어 진 일원상의 진리 곧 불성(본성)을 회복하여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잘 활용해 가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와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본래성품을 잘 사용하는 것.
소태산대종사는 “일원의 진리를 요약하여 말하자면 곧 공(空)과 원(圓)과 정(正)이니, 양성에 있어서는 유무 초월한 자리를 관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거래 없는 것이 원이요,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정이며, 견성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요, 지량(知量)이 광대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 원이요, 아는 것이 적실하여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정이며, 솔성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무념행을 하는 것이 공이요, 모든 일에 무착행을 하는 것이 원이요, 모든 일에 중도행을 하는 것이 정이니라”(《대종경》 교의품7)고 했고, “예로부터 도가(道家)에서는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이라 하나니”(《대종경》 수행품60)라고 했으며, “견성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솔성이라 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소유인 것을 알았으나 전일에 잃어버리고 지내는 동안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바 되었는지라 여러모로 주선하여 그 잃었던 권리를 회복함과 같나니라”(《대종경》 성리품8)고 했다. 소태산은 견성과 양성, 솔성의 수행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솔성은 일원상 진리에 대한 활용의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하고 삿된 길. 진리에 바탕하지 않아서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도(道)나 그러한 종교. 사교(邪敎)ㆍ유사종교(類似宗敎)와 같은 의미이다. 이런 도나 종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민중을 고통에서 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멸과 불행으로 몰아넣게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종교라 이름 하여 근원적인 진리에 뿌리하지 아니하면 사도라 규정하고(《대종경》 교의품3), 수행중 반딧불같이 나타나는 허령(虛靈)에 낙을 붙이면 큰 진리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사도에 떨어져 아수라(阿修羅)의 유(類)가 되기 쉽다고 경고하고 있다(《대종경》 수행품39).
아울러 호풍환우(呼風喚雨)나 이산도수(移山渡水) 등의 신통(神通)을 꿈꾸면서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며 인도(人道)를 여의고 신통만 바란다면 이는 곧 사도라 했으며(《대종경》 수행품41),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하면 병에 걸리거나 사도에 떨어진다고 했다(《대종경》 수행품13). 또 정도(正道)는 처음에는 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이로움이 돌아오게 되고, 사도는 처음에는 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해독이 돌라온다고 말하고, 정도는 아무리 박멸(撲滅)하려 하여도 되지 아니하며, 사도는 박멸하지 않아도 자연 서지 못한다고 했다(《대종경》 전망품10).(원불교대사전)
대도정법[大道正法]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와 올바른 법. 대도와 정법을 함께 강조한 말. 소태산대종사는 1919년(원기4) 아홉 제자들과 함께 법인기도를 올리면서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이며, 인도는 인의가 주체요 권모술수는 그 끝이니, 사람의 정신이 능히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은 이치의 당연함이어늘, 근래에 그 주체가 위(位)를 잃고 권모술수가 세상에 횡행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운지라, 우리가 이때에 먼저 마음을 모으고 뜻을 합하여 나날이 쇠퇴하여 가는 세도(世道) 인심을 바로잡아야 할 것”(《대종경》 서품5)이라고 했다.
소태산은 불법이 대도이지만 근대말 조선사회의 승려들은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소승(小乘)에 떨어져 있음을 지적하고 부처님의 무상 대도에는 변함이 없으나 부분적인 교리와 제도는 이를 혁신하여, 소수인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돌리고자 했다(《대종경》 서품16). 그는 신기한 이적과 신통을 경계했으며 대도정법인 일원상의 진리를 올바르게 신앙하고 수행함으로써 광대 무량한 낙원세계를 이루고자 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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