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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7 성리품(性理品)

성리품(性理品) 1장

대종경(大宗經)

7 성리품(性理品) 1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시니라.

★★★★★★★★★★

대각[大覺]

[개요]

()의 진리에 대한 각오(覺悟)를 지칭하는 것으로 각지(覺知)의 이상적 상태. 원불교에서는 일원(一圓)의 진리를 크게 깨침을 말한다.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 존재의 원리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 곧 인간의 행위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통달한 상태를 말한다.

[내용]

석가모니불의 깨달음()을 정등각(正等覺)이라 하는데 정()이란 사곡(邪曲)에 대한 중정(中正)을 뜻하며 등()은 편파에 대한 평등 보편을 말한다. 성문과 보살도 깨달음이 있으나 불충분해서 성문은 자각(自覺)밖에 못하고 보살은 자각각타(自覺覺他)가 이루어지나 원만치 못함에 비하여 오직 부처만이 실상(實相)을 완전히 깨달아 자각각타가 원만히 이루어지므로 대각이라 한다. 대종경여러 곳에서는 대원정각(大圓正覺)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곧 일원의 진리를 크게 원만하게 바르게 깨친 경지를 이름이다. 소태산대종사는 26(l916)의 젊은 나이로 대각을 이루고 그 각증(覺證)한 진리의 내용을 대종경서품 1장에 밝혔다.

원기 원년 326일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좀더 구체적으로 일원의 진리가 어떠한 것이며 그 진리를 깨치면 무엇을 알게 되는가를 정전에서 찾아보면, ‘일원상 진리장에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정전일원상 법어에 원상(圓相)의 진리를 각증하면 알아지는 대각의 내용이 자세히 밝혀져 있다. “이 원상의 진리를 각()하면 시방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줄을 알며 또는 생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이상은 대각의 내용이다. 대각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대종경불지품 20장에 이것이 곧 우주의 본가이니 이 가운데는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나니라했다.

, 그 집의 주인되는 방법에 대하여 삼대력(三大力)의 열쇠를 얻어야 들어갈 것이요, 그 열쇠는 신(信忿疑誠)으로써 조성하나니라했다. 위에서 인거한 법문을 통해보면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대각할 수 있고 또 그 열쇠는 신성으로 조성된다. 곧 정신수양(精神修養)사리연구(事理硏究)작업취사(作業取捨)의 삼학을 병진하여 구경에 삼대력을 얻을 때 곧 대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종경신성품 3장에 한 제자 여쭙기를 저는 본래 재질이 둔하온데 겸하여 공부하온 시일이 아직 짧사와 성취의 기한이 아득한 것 같사오니 어찌하오리까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도가의 공부는 원래 재질의 유무나 시일의 장단에 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 정진하고 못하는 데 큰 관계가 있나니 누구나 신성만 지극하면 공부의 성취는 날을 기약하고 가히 얻을 수 있나니라’” 했으니 삼학 공부를 하는데 진행사조()의 촉진과 사연사조(불신탐욕)의 제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대종경수행품 43장에 불지(佛地)에 오르기 위한 순서가 밝혀져 있으니 첫째, 큰 원()이 있은 뒤에 큰 신()이 나고 큰 신이 난 뒤에 큰 분(忿)이 나고 큰 분이 난 뒤에 큰 의심이 나고 큰 의심이 있은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나니라하여 공부하는 차서를 밝혔다.

대종경수행품 46장에서는 우연히 한 생각을 얻어 지각(知覺)이 트이고 영문(靈門)이 열리게 된 후로는 하루에도 밤과 낮으로 한 달에도 선후 보름으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변동이 생겼고 이 변동에서 혜문(慧門)이 열릴 때에는 천하에 모를 일과 못할 일이 없이 자신이 있다가도 도로 닫히고 보면 내 몸 하나도 어찌할 방략이 없어서 나의 앞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걱정이 새로 나며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의심도 나더니 마침내 그 변동이 없어지고 지각이 한결같이 계속되었노라했다.

이상에서 소태산의 대각 과정을 엿볼 수 있고 대각은 꼭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거듭하여 대원정각을 이루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종경성리품 1장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하시니라했으니 대각은 지식의 집대성이 아니고 참 지혜의 혜일(慧日)이 떠오르면 고루 모든 진리에 통달함을 알 수 있다. 대원정각을 이룬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보면 대종경불지품 10장에 천조의 대소 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 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니라했다.

대종경불지품 5장에는 모든 법에 통달하신 큰 도인은 능히 만법을 주물러서 새 법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묵은 법을 뜯어 고치기도 하시나 그렇지 못한 도인은 만들어 놓은 법을 쓰기나 하고 전달하기는 할지언정 창작하거나 고치는 재주는 없나니라고 했다. 대각성자는 만중생을 건질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능력과 그 법이 그 시대에 맞지 않을 때는 뜯어 고치는 능력이 있으니 법위등급을 표준하면 출가위 이상의 도인이다.

그리고 대각 도인은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도 정통하며 원근 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해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고, 대자대비로 일체생령을 제도하되 만능이 겸비하여 천만 방편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이라 했다(정전법위등급). 요약하면 대각은 일원의 진리를 크고 원만하고 바르게 깨치는 것, 대원정각(大圓正覺)의 준말이다.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치는 것,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분명하게 깨치는 것을 말한다.(원불교대사전)

심경[心境]

마음의 상태 또는 마음의 경지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한가한 마음과 무위의 심경,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 일 있을 때에 일 없을 때의 심경 등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 이밖에도 특히 수행이 깊은 경지에 도달한 체험의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도 많다. 해탈한 사람의 심경, 사통오달한 도인의 심경 등이 그 예이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대종경성리품1)는 글에서는 심경이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원불교대사전)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

① 《대종경성리품 1장의 법문. “맑은 바람 달 떠오를 때 만상이 자연히 밝아오도다라는 뜻이다. 1916(원기1) 428일 이른 새벽에 소태산대종사가 대각(大覺)을 이루고 그 심경을 시()로 읊은 것이다. 소태산은 오랜 구도 끝에 깊은 정()에 들었는데, 대각의 상황을 원불교교사에서는 묵연히 앉으셨더니, 우연히 정신이 쇄락해지며, 전에 없던 새 기운이 있으므로, 이상히 여겨 밖에 나와 사면을 살펴보니 천기(天氣)가 심히 청랑(淸朗)하고 별과 별이 교교(皎皎)했다라고 하여 이 시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손정윤이 저술한 책의 제목.(원불교대사전)

★★★★★★★★★★

[맑은 바람에 달 오르니 만상이 절로 밝더라.]

<조법전 교무/기흥교당>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하시니라.

514일 서울국립극장에서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 칸타타 '구만리하늘에 봉황이 날다'를 성황리에 올렸었다. 교도들과 함께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구름사이로 휘영청 밝은데 장소가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한지라 칸타타의 감흥과 함께 툭 트인 곳에서 달과 허공이 내 마음으로 쑥 들어왔다. 예전에는 달빛에 취해, 현실의 복잡다단한 일에 매몰되어 시공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제 허공이 보이고 천지의 은혜가 보인다는 뜻이다. 사은님 사은님 하다가 법신불사은님을 뵈온 듯이. 오랜만에 본 달님 덕에 일상사속에서 얼마나 눈앞의 일만 보고 사는지를 느껴 보았고 심고를 올릴 때 우주허공법계를 상상하며 모시라한 정산종사의 말씀이 깊이 다가왔다.

육도사생 책임지는 대자비 심경

이 자리가 바로 성리의 정수요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

성리품 1장은 대종사께서 20여년의 구도 끝에 마음 밝아지는 심경을 시구로써 표현한 내용이다.

'맑은 바람에 달 오르니 만상이 절로 밝더라.' 이에 대해 주산종사는 약전에서 "날이 장차 밝으려 함에 만상이 저절로 나타남과 같은지라 하시며 종으로 고금을 참작해보시고 횡으로 세계를 관찰해 보시매 하나도 걸리고 막히심이 없으시었다"고 더 자상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다시 원문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청풍월상시'는 성리의 체로 진공의 체성에 합일한 심경이요. 우주만유가 하나인 성품의 달이 솟은 대각의 경지이다.

경지라는 것은 노력하는 단계가 아니라 연이은 노력의 결과, 유무를 초월하여 완벽한 절대의 세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때의 청풍은 달과 따로 노는 바람이 아니고 달과 하나 되어 우주만유를 통관하며 사사물물의 지류까지 소통시키고 만생령을 살리는 대자비의 청풍이다.

그러므로 '청풍월상시'는 착이 없는 가운데 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 불괴(不壞) 불매(不昧) 불염(不染)하는 경지요, 혜월(慧月)과 성월(性月)이 솟아 육도사생을 책임지는 대자대비의 심경이다.

'만상자연명'은 진공과 묘유를 겸한 상태로 도통·법통·영통을 마치고 육도사생의 변태와 변화가 장중에 구슬처럼 보이는 심경을 표현한 것 같다. 이는 성리의 용으로 보려하지 않아도 들으려 하지 않아도 육도윤회로 전개되는 삼천대천 인과의 세계를 보여 줌이다.

또한 삼세와 시방을 자유로 갖고 놀다가 때를 따라 중생제도를 하시는 폭 잡을 수 없는 혜안과 법안이니 우리가 가야할 목적지요, 성리의 정수라 하겠다.

그러므로 우리가 뭘 좀 아는 것 같아도 도통·법통·영통을 하지 못하고서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을 알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 평화로운 고향의 노래]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심경을 노래하시었다. ‘맑은 바람에 달 오르니, 만상이 자연히 밝았도다(淸風風月上時 萬象自然明).’

맑은 바람에 드러난 대종사님의 달은 깨달음의 은유이다. 만약 붉은 태양 불끈 솟으니 대명천지 여기로세라고 했더라면 그 멋없는 글이 대종경에 실렸을까.

달을 주제로 삼은 성리품 1장은 한껏 격을 높인 맑은 빛 수채화다.

오늘날 도시화로 사람들은 하늘의 달과 별을 잊고, 고향마저 잃어버렸다. 추석 전날 고속도로에서 열 두 시간을 보내도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은 잃어버린 보름달의 추억을 찾고자 하는 고향 길 순례행이다. 달은 우리에게 고향의 품이며 성품의 상징이다.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에서 대종사님은 어디 계셨을까? 여기서 우리는 만상이 자연히 밝았다에 주목해야 한다. 얼핏 생각하면 맑은 바람에 구름 걷히고 둥근 달이 밝게 드러나니, 어둠은 사라지고 대종사님의 눈에 만상이 밝게 보였다고 정리된다. 만약 그렇게 풀이한다면 자연히 밝았다가 아니고 내게 밝게 보였다고 해야 옳았다.

그러나 대자연의 달님놀이에 대종사님은 보는구경꾼이 아니었다. 대종사님과 산하(山河)는 보고 보이는 사이가 아니었다. 깨친 대종사님은 그저 맑은 바람이었고, 달은 산하 그 자체였다.

이들 넷은 성리품 1장의 공동주연이요, 한 몸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서품 1장의 대각일성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정산종사의 신령한 주문에서는 천지여아동일체라 한 것이다.

깨친 대종사님은 중생의 상징, 에고와 집착이 사라진 까닭으로 천지여아동일체가 되어, 무심한 바람이 되어, 이 드라마에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사물을 본 것이 아니고 사물이 자연히 드러난 것이라고 묘사한 것이리라.

깨달음은 무위(無爲)로되 천지에 빛과 생명을 부여한다. 그 이름을 부르자 꽃이 되듯, 소태산의 대각에 산하는 온통 부처로 부활한다. 후일 대종사님은 이처럼 자신과 천지,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모두 부처된 소식을 처처불상의 교리로 정리하셨다.

애 낳는 돌장승’ ‘한 밤중에 뜨는 태양등 강렬한 부정을 통하여 존재에 이르게 하려 했던 과거 선사들에 비하면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은 너무도 평화로운 고향의 노래가 아닌가.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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