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56장
대종사 선원 결제식에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선원에 입선하는 것은 마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같나니, 사람의 육신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서 의약으로 치료하게 되고, 마음에 병이 생기면 도가에서 도덕으로 치료하게 되는지라, 그러므로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 함과 같이 그 교법을 약재라 하고 그 교당을 병원이라 할 수 있나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병은 병으로 알고 시간과 돈을 들여 치료에 힘쓰지마는 마음의 병은 병인 줄도 모르고 치료해 볼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 어찌 뜻 있는 이의 탄식할 바 아니리요, 육신의 병은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칠 것이요, 경하면 짧은 시일에 가히 치료할 수도 있으나 마음의 병은 치료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면 영원한 장래에 죄고의 종자가 되나니, 마음에 병이 있으면 마음이 자유를 잃고 외경의 유혹에 끌리게 되어 아니 할 말과 아니 할 일과 아니할 생각을 하게 되어 자기 스스로 죽을 땅에 들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천대를 불러 들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고통을 만들기도 하여, 죄에서 죄로 고에서 고로 빠져 들어가 다시 회복할 기약이 없게 되나니라. 그러나, 마음에 병이 없으면 시방 세계 너른 국토에 능히 고락을 초월하고 거래에 자유하며 모든 복락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나니, 그대들이여! 이 선기 중에 각자의 마음병을 잘 발견하여 그 치료에 정성을 다하여 보라.]
★★★★★★★★★★
선원[禪院]
원불교에서 정기훈련을 실시하는 훈련기관. 일정한 기간 동안 각종 교리와 염불ㆍ좌선ㆍ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정기일기ㆍ주의ㆍ조행 등의 과목을 통해 수련을 쌓는다. 교단 초기에는 선원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으나, 현재에는 훈련원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불교 선종 사찰의 수행도량. 선방(禪房)ㆍ선실(禪室)이라고도 한다. 큰 사찰에는 강원(講院)ㆍ율원(律院)을 병설하여 총림(叢林) 체제 아래서 참선 수행을 한다.(원불교대사전)
결제식[結制式]
결제 의식. 원불교 결제식 순서는 개식, 입정, 교가, 심고, 법어봉독, 일상수행의 요법, 입선인 보고, 훈사, 담임 회고(誨告), 선원 규정 설명, 결제가, 폐식의 순으로 거행한다. 〈결제식 심고문〉에 결제의 의의와 자세가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오늘 이 결제에 모인 저희들에게 특별한 광명과 힘을 나리시와 번뇌에 속타던 저희들이 이 선의 공덕으로 정력(定力)이 날로 증진되게 하옵시고, 어둠에 헤매던 저희들이 이 선의 공덕으로 혜광이 날로 밝아지게 하옵시고, 죄악에 시달리던 저희들이 이 선의 공덕으로 계행이 날로 청정하여지게 하옵시와, 중생계를 벗어나 보살도에 오르게 되옵고 보살도를 닦아 부처님의 경계에 들게 하옵시며, 선기 중에 아무런 마장도 없이 수선 대중이 서로 화합 정진하여 이 선의 공덕이 두로 시방세계에 드러나고 널리 일체중생을 제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원불교대사전)
결제[結制]
(1) 불교에서 하안거의 처음인 음력 4월 보름날과 동안거의 처음인 10월 보름날에 행하는 의식으로 하안거 결제를 결하(結夏), 동안거 결제를 결동(結冬)이라고도 함.
(2) 원불교에서 동선, 하선, 강습회, 특별훈련 등을 시작하는 일을 결제라고 하며, 과정을 마치고 행하는 의식을 해제라고 한다.(원불교대사전)
외경[外境]
마음을 빼앗아 가는 바깥의 여러 경계. 물ㆍ심(物心)으로 구별할 때 물(物)에 해당하는 모든 것. 정신수양이 잘 되지 않으면 외부의 모든 것은 다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빼앗아가는 경계가 된다. 주관적인 나의 마음에 대해서 객관적인 대상이 모두 마음을 흔들고 빼앗아가는 외경이 된다. 정산종사는 내수양의 집심(執心)공부의 방법으로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놓지 않듯 하는 것이라 했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65).(원불교대사전)
★★★★★★★★★★
[마음병, 치료하세요]
<영산선학대학교/장원경 교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에게 출가를 권하는 중에 듣게 된 질문이 있다. "저 같이 마음병 앓는 사람도 출가할 수 있나요?" 원로교무께서는 얼른 "자기가 마음병 환자인 줄 아는 사람은 교무님이 될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수행품 56장에서 대종사께서는 보통 사람은 육신의 병은 병으로 알고 치료에 힘쓰지만 마음의 병은 병인줄도 모르고 치료해볼 생각도 내지 않음을 걱정하셨다.
앞의 학생은 이미 마음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 아픈 것은 마음공부를 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원망병이 들어도, 탐심, 진심, 치심 병이 들어도 그렇다.
일일시시로 마음을 살펴 본래 마음에 대조하는 정성을 놓지않아야 나의 마음병을 알아차린다. 그런 힘을 갖추기 위해 훈련을 하는 것이다.
〈대종경〉 수행품 56~57장에 마음 병 치료에 대한 법문을 해 주셨다.
"선원에 입선하는 것은 마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같나니,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 함과 같이 그 교법을 약재라 하고 그 교당을 병원이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한국정신치료학회 창립자인 소암 이동식 선생님은 "모든 인간이 다 환자"라고 하면서 "최고의 정신치료자는 보살, 부처 그리고 성인이다"고 했다.
마음병을 가장 잘 치료하는 의사 중의 의사가 바로 의왕으로서의 부처의 한 모습이다. 마음병원인 교당에 계시는 교무님들의 교화는 바로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를 진료하는 일과 같고 교법이 담긴 교서 내용으로 조제한 약을 먹여 환자들의 정신세력을 확장시키는 일과 같다.
교법중에서도 특히 수행편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에서 공부인에게 정기로 법의 훈련을 받게 하기 위한 정기훈련 11과목과 상시로 수행을 훈련시키는'상시응용 주의사항 6조'와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6조'등의 약 복용으로 모든 마음의 병을 치료 할 수 있다.
수행품 57장에 마음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해야할 일은 지도인에게 마음병의 증세를 사실로 고백하여야 할 것과 지도인의 가르침에 절대 순응해야 하며 그리고 끝까지 마음병 치료에 정성을 다하라고 했다.
교당이 가까이 있어도 현실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왕래가 없으면 마음병 치료는 요원한 일이다. 더욱 완벽한 치료는 교당의 치료와 더불어 자가 치료가 합해져야 한다. 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하는 선과 심고와 매일 외우는 일상수행의 요법과 일원상서원문의 실천으로 치료를 앞당기자.
★★★★★★★★★★
[마음병을 치료합시다.]
<오선명 교무 / 경남교구 문산교당>
일원상 진리의 성품이 정신수양의 벼릿줄입니다.
정신수양이라 함은 일원상 진리를 닮은 우리의 마음을 회복하여 지키고 닦아서 양성하는 공부입니다. 일원상 진리는 곧 원만구족(圓滿具足)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어느 한 곳 모나지 않고 부족함이 없으며, 다북차고 두루하여 일호의 사가 없이 공변됩니다. 더욱 우리의 영성인 본래 마음으로 비춰볼 때 지극히 고요하고 참되며 떳떳하여 언제나 평화롭습니다. 마치 새벽 별처럼 그윽히 빛나고 소슬바람처럼 막힘이 없습니다.
이 영롱하고 빛나는 영성의 뿌리가 우리의 정신이요, 마음의 고향이며 안식처이요, 중생이 껍질을 벗고 부처가 되는 자리입니다. 소태산대종사께서는 이를 분별심과 주착성이 없는 우리의 본래 성품이라 하셨습니다.
경계가 몰아칠 때나 경계가 없을 때에도 한결같이 지키고 닦아서 일원상 진리와 같이 마음을 쓰고, 천만 경계 가운데 대중을 잡아 활불로서 제생의세의 선도자가 되자는 것이 수양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일원상 진리가 갊아있는 우리의 본래 성품은 정신 수양의 벼릿줄이요, 준거의 틀이며, 요령입니다.
정신수양으로 치료해야 할 세상의 병들
세상이 험악하고 사회가 온통 진흙탕입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치·경제·사회·종교 전반이 타락하여 혼란함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합니다.
특히 강대국들의 자국 이익과 패권 다툼으로 인명 살상의 전쟁이 끊이지 않고 반인륜적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의 병이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행위로 보이지만 내심 가까이에서 찾아보면 곧 너와 나의 문제요, 내 마음속에 종양처럼 커 나가고 있는 마음의 난리이며, 마음의 병입니다. 종교, 신분, 성, 연령, 학식, 수양 공부의 연조 등과도 크게 관계없이 무작위로 적용되는 이 마음병 난리가 우리의 안식처를 파괴하고 이 사회를 좀먹으며 세상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부모, 형제, 친지, 이웃, 또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원망심이 치솟고, 한맺힌 응어리를 풀고 보상을 얻으려는 듯 화풀이를 할 때가 있습니다. 굴절되고 왜곡된 사고로써 세상을 저울질 하며 높은 담을 쌓아갑니다. 내 주머니에 돈만을 생각하며 인색하고 탐욕스러우며 이익이 되는 일에 불나방처럼 덤벼듭니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마음난리는 분명 영원한 장래에 죄고의 종자입니다. 깊게 뿌리 내리고 포진한 종양을 도려내는 치료를 해야만 살 수 있듯 마음의 병도 또한 마찬가지로 결단코 치료해야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니면 마치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지는데 연고와 반창고로써 치료 하는것과 같습니다.
마음 난리의 이 온갖 적군들은 찰나의 순간도 용이한 생각으로 대처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우리는 정신수양 공부를 할 때 냉정한 정신으로 살피고 또 살펴서 공부하라는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점검해야 합니다.
새 세상의 주인되는 정신수양 공부
소태산대종사께서 〈대종경〉 전망품에서 밝히시기를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라고 하셨고 점진적으로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되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세계의 으뜸가는 정신적 지도국, 개울의 작은 피라미같은 나라가 구천 허공을 주름잡는 황룡이 된다는 예견적 법설에 주목해야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금 현 시국에서 자신할 수 있는 내용일까요? 그렇습니다. 만고에 전무후무한 일원대도가 이 땅에 우뚝 섰고, 일원회상이 건립되어 전개되기에 분명 이 땅은 세계에 으뜸가는 정신적 지도국이 될 것이요, 일원회상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마치 어변성룡의 도약적 대발전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냉정한 정신, 확고부동한 결단의 신성을 바탕해서 정신수양(삼학을 겸한)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요원한 미래요, 여의보주를 얻지 못한 용이 심곡에서 이무기가 되어 억겁의 통한을 삼키는 비통한 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차리고 공부합시다.
사실 정신수양 공부를 오래 오래 쉬지 않고 하면 세상 만물의 주인이요, 모든 선연 공덕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본래 성품을 회복하여 일등 마음 조종사로서, 원융무애한 불법의 활용자로서, 이 사회에 우뚝 서는 결함없는 인격자로서 자신만이 아니라 사회와 이 세상의 병든 사람들까지도 치료해 줄 수 있는 능력자가 됩니다. 교리 곳곳에 나타나는 마음난리 평정, 묵은 마음 일구고 가꾸기, 도둑 맞은 마음 되찾고 지키기, 탐진치에 찌들은 마음 놓고, 가라 앉히고, 씻는 온갖 공부가 정신 수양 공부를 강조한 내용입니다.
또한 선과 염불, 기도를 아침과 저녁 내지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정진하여 흩어지고 미약한 정신을 추스려 잡고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에 지나치게 끌리고 파묻혀 참된 정신을 잃지 않도록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는 공부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천만경계 가운데 복잡하고 혼란스러우며 정신을 빼앗고 시끄럽게 하는 일을 짓지 않고 정당한 일과 공덕이 되는 사업에 매진하는 것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사물을 접응할 때에 경외심을 놓지 않고 불공하는 마음으로 대하면서 애착, 탐착은 물론 여유롭고 한가하며 담담한 맛을 길들여 가는 것도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일경(一境)일처(一處)에 일심을 얻는 재미로 삶의 안식을 삼고 뜬구름 같은 번뇌와 부질없는 헛꿈에 방일하지 않는 심경을 길들여 결국 일원상 진리와 같이 구경에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정신수양 공부입니다.
부귀와 영화, 세상의 고락, 특정 직업이나 직장의 대우, 빈천의 환경, 원불교 교단의 예우 내지는 법위등급과 사업성적의 평가 등에 무애의 대자유를 얻을 뿐만 아니라 무상(無常)은 신속하고 생사는 큰 일인데 공부인의 구경 목적인 대해탈 도인이 될 것입니다.
동정간 쉼없는 정신수양 공부
정신수양 공부는 일 있을때나 일 없을 때나 한결같이 정진 적공하는 공부입니다. 특히 천만 경계 가운데 정신수양 공부를 놓지 않아야 참다운 큰 힘을 얻고 공부의 실력이 나타납니다. 하루 몇 시간, 몇 번의 정해진 정신수양 공부도 반드시 필요하고 정신수양 공부의 요령과 대중을 놓지 않고 경계 속에서 일심을 양성하고 대해탈의 법력을 얻는 법기의 공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정신수양 공부는 그 밑받침이 되고 보완이 되어야 하는 사리연구 공부, 작업취사 공부를 병행해야만 실다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다함께 언제나 쉼없이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를 정진 적공하여 불보살의 인품과 능력을 갖춥시다.
★★★★★★★★★★
어변성룡[魚變成龍]
물고기가 변하여 용(龍)이 된다는 말.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과 상통하는 말이다. 곤궁하던 사람이 부유하여지거나 미천(微賤)하던 사람이 크게 성공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우리나라가 아직은 미약하지마는 정신적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니, 지금 이 나라는 점진적으로 어변성용이 되어 가고 있다고 했다(《대종경》 전망품23).(원불교대사전)
여의보주[如意寶珠]
싼스끄리뜨 찐따마니(cintāmaṇi)의 번역어. 뜻대로 보물을 가져다주는 구슬. 불교에서 이것을 가진 자의 모든 소원과 희망을 성취시켜준다는 상상의 구슬. 보주, 여의주, 여의보, 마니주, 마니보주라고도 한다. 흔히 용(龍)의 턱 아래에 있다고 한다. 용이 이 구슬을 얻으면 하늘로 올라가게 되고, 이 구슬을 잃으면 인간 세상에 떨어진다고 한다. 이 구슬을 갖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비유해서 본래 성품, 진리를 깨친 마음을 여의보주라고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여의보주가 따로 없나니,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 하고 보면 그것이 곧 여의보주니라”(《대종경》 요훈품13)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경외심[敬畏心]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부처나 신 같은 신앙의 대상이나 절대자에게 느끼는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다. 불가사의한 존재나 신비한 존재 또는 위대한 인물에게서도 이 경외심이 일어나게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일원상 신앙의 핵심적 방법으로 경외심을 놓지 않는 것이라 했고(《대종경》 교의품4), 마음을 지키고 몸을 두호하는 표어로 경외심을 제시하고 있다(《대종경》 인도품33). 정산종사는 진급하는 사람의 요건으로 이 경외심을 들고 있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39).(원불교대사전)
일경[一境]
(1) 한 경계. 육근 작용과 순역간에 직면하게 되는 어려운 일을 말한다. 한 고비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 한 경계 한 경계를 뛰어 넘어야 일을 성취하고 큰 공부를 하게 된다.
(2) 같은 경계를 대해도 관찰자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다. 그래서 일경사견(一境四見)ㆍ일경사심(一境四心)ㆍ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표현도 있다.(원불교대사전)
구경[究竟]
궁극의 경지. 완전하다, 지극하다, 철저하다, 마지막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과 이치 곧 사리의 마지막 최고의 경지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최후 최고의 깨달음에 은유하여 구경각이라고 말한다.(원불교대사전)
무상[無常]
덧없음. 정함이 없음. 모든 것이 다 생멸 전변(轉變)하여 상주(常住)함이 없다는 진리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 진리를 변하는 진리와 불변하는 진리로 나누어 설명할 때, 변하는 진리를 무상, 불변하는 진리를 유상이라 한다. 유상이 변함없이 존속되는 진리의 본체적 측면을 말한 것이라면, 무상은 온갖 변화를 일으켜 전개되는 일원의 작용적 측면을 말한다. 무상은 곧 인과보응의 진리로서, 우주의 성주괴공, 만물의 생로병사, 육도사생의 진급 강급, 인생의 흥망성쇠ㆍ길흉화복 등 변하는 진리이다.
이 무상의 이치에 입각하여 보면 현상세계의 모든 것은 고정됨 없이 끊임없이 변화하여 영구히 존속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요, 인생의 모든 일이 다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므로 집착하거나 욕심에 사로잡힘이 없이 살아가야 함을 시사한다. 동시에 주어진 순간순간을 가치 있게 의미지어 가야 함도 일깨워주는 말이다. 불교에서도 삼법인 가운데 제행무상을 두어 일체 현상에 대한 무집착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다. 이 유상과 무상이라는 개념은 진리를 인식하거나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일 뿐이지 진리 자체가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원불교대사전)
유상[有常]
진리의 속성을 두 가지로 표현한 것. 무상은 온갖 변화를 일으켜 전개되는 일원의 작용적 측면으로서 인과보응의 진리를 말한다. 유상은 변함없이 존속되는 진리의 본체적 측면으로 불생불멸을 나타낸 말이다. 유상은 일원상의 진리를 불변하는 입장에서 보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유상의 면으로 보면 영원불멸하고 불생불멸하며 무시무종해서 무시광겁에 은현자재 하는 것이다. 진리 그 자체는 변하는 것도 아니고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기운이 정하면 능히 유상, 곧 불변의 진리가 되고, 한 기운이 동하면 능히 무상, 곧 변하는 진리가 된다. 이 유상과 무상, 곧 불변하는 진리와 변하는 진리는 진리의 두 얼굴로서 양면성이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변하는 입장에서 보면 진리는 불생불멸ㆍ영원불멸ㆍ무시무종ㆍ여여자연한 것이다. 시간적으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도 없고, 공간적으로 동서남북ㆍ사방 상하도 없어 광대무량하고 무한광대한 것이다.(원불교대사전)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3 수행품(修行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 수행품(修行品) 58장 (0) | 2014.10.04 |
---|---|
제3 수행품(修行品) 57장 (0) | 2014.10.04 |
제3 수행품(修行品) 55장 (0) | 2014.10.04 |
제3 수행품(修行品) 54장 (0) | 2014.10.04 |
제3 수행품(修行品) 53장 (0) | 2014.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