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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

제3 수행품(修行品) 54장

대종경(大宗經)

3 수행품(修行品) 54

대종사 김 남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전에 어떤 사람이 소를 타고 가는 것을 보니, 사람의 권리대로 소를 끌지 못하고 소의 권리에 사람이 끌려 가는데, 그 소가 가시밭이나 구렁으로 들어가면 가시밭이나 구렁으로 끌려 들어가고 산이나 들로 가면 산이나 들로 끌려가서 자빠지고 엎어지니 의복은 찢어지고 몸은 상하여 차마 볼 수 없더라. 내가 그 광경을 보다가 그에게 말하기를 그 소를 단단히 잡아서 함부로 가지 못하게 하고 꼭 길로만 몰아 가면 그런 봉변이 없을 것이 아닌가 한즉, 그 사람이 말하기를 그러하면 오죽 좋으리요마는 제가 무식하여 이 소를 길들이지 못하고 모든 권리를 소에게 맡겼더니 저는 점점 늙어지고 소는 차차 거칠어져서 이제는 도저히 어거할 능력이 없다 하더라. 오늘 그대의 오는 것을 본즉 역시 소를 타고 오니 그 소는 어디 있는가.] 남천이 사뢰기를 [방금 타고 있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 소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가.] 남천이 사뢰기를 [키는 한 길이요, 빛은 누른 빛이요, 신은 삼으로 만든 신이오며, 수염은 혹 검고 혹 희게 났나이다.] 대종사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소의 모양은 알았거니와 그러면 그대의 소는 그대의 하자는 대로 잘 하는가 그대도 역시 소에게 끌려 다니게 되는가.] 남천이 사뢰기를 [소가 대체로 저의 하자는 대로 하나이다. 만일 정당한 일에 소가 게으름을 부리오면 호령하여 아무쪼록 그 일을 하게 하오며, 부당한 일에 소가 동하려 하오면 또한 호령하여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소를 이미 발견하였고, 길들이는 법을 또한 알았으며, 더구나 소가 그대의 말을 대체로 듣게 되었다 하니, 더욱 힘을 써서 백천 만사를 다 자유 자재하도록 길을 들이라.]

김남천[金南天]

본명은 성규(星奎). 법호는 각산(角山). 1869년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집짓는 일(특히 목수일)에 능했고, 태을교(증산교의 일파) 도꾼이었다. 1919(원기4) 1013(음력 820) 친구 송찬오(송적벽의 본명)와 함께 같은 날에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제자가 되었다. 소태산이 변산 월명암을 의탁하여 지내는 것을 보고 송구히 여겨 홀로 된 딸 김혜월(金慧月), 외손녀 이청풍(李淸風)과 함께 실상초당에서 소태산을 시봉했다. 한편 둘째딸 김순풍(金順風)과 사위 박원석(朴元石)은 익산 총부기지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종질녀인 이청춘(李靑春)은 총부에 사재 70두락을 희사하여 총부유지 대책의 활로를 여는 등 일가가 모두 불법연구회 창립에 큰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원불교대사전)

어거馭車[발음 : ː]

1. 수레를 메운 소나 말을 부리어 모는 일.

2. 거느리어 바른길로 나가게 함.

[마음소 길들이기]

<영산선학대학교/장원경 교무>

수행품 54장은 원기21회보30호에 실린 법설로서 제목은 '우습다 소탄자야 소를 찾아 길들여라'로 되어 있다. 김남천에게 "네가 이미 소를 발견했고 소를 길들이는 법도 알았으니 힘써 길들여서 마음의 자유 자재를 얻으라"는 간곡한 법문이다.

소는 성질이 강하고 기운이 세지만 잘 길들이기만 하면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다고 한다. 예로부터 공부인을 소에 비유한 보명화상의 게송인 목우십도송의 마음공부 단계를 보다 보면 우리 공부인은 단호히 마음소 길들이기 공부를 하여 기질을 변화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목우십도송은 길들지 못한 검은 소가 차차 길이 잘든 흰 소로 변해 가다가 마침내는 일원상이 나타나는 경지까지를 그림과 노래로써 운치있게 엮어 선()수행에 대조하도록 해주었다.

부자유한 중생의 육근 또는 우리의 본래 마음은 소에 비유했다. 부자유한 중생이 죄고에 허덕이는 모습은 방종하고 사나운 소에 끌려 다니는 사람에 비유하며 바른 수행길을 알려 주셨다. 목우는 마음을 찾아 길들이고 닦아간다는 뜻이다.

목우십도송 법문의 마음소 길들이기는 삼학중에 주로 정신 수양공부와 관계 된다. 농가에서 송아지를 사오면 어미소에서 젖 떨어져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송아지를 길들이기 위하여 코를 뚫고 고삐를 만들었으며 일을 할 때에는 또 멍에를 씌웠다. 이 과정은 그동안 길들여진 습관을 고치고 새로운 공부인으로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는 초기 공부 과정을 비유해 놓은 것이다.

목우십도송의 열가지 순서는 미목(未牧)으로 아직 소를 길들이기 전, 마음공부 전 단계 초조(初調)는 처음 소를 길들이기 시작 애써 노력해서 마음공부를 하는 단계 수제(受制)로 차츰 길들어가는 것으로 힘을 다해서 이끄는 단계 회수(回首)는 머리를 돌이키는 것으로 어느 정도 마음은 길들였지만 아직 매어두는 단계 순복(馴伏)으로 길들어진 상태로 옳은 일을 해야겠다면 어느 정도 따라 오는 단계 무애(無碍)는 걸리고 막힘이 없이 마음이 잘 따라 오는 단계 임운(任運)은 자유롭다는 뜻으로 마음이 자유의 경지를 얻는 단계 상망(相忘)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잊었으며 마음이 공한 단계 독조(獨照)는 홀로 찬란히 비친다는 뜻으로 마음을 마음대로 자유자재 한다 쌍민(雙泯)은 일원상만 두렷이 나타나 한 관문마저도 넘어섰다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이 법에 입문하고도 도덕의 단계별 훈련이 없고 마음 공부에 대한 진전이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목우십도송[牧牛十圖頌]

[개요]

중국 명나라 때의 보명화상(普明和尙)이 지은 도상(圖相)을 곁들인 게송 형식의 선서(禪書). 원불교 연원경전인 불조요경에 나오는 수양서. 수행을 소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만든 십 단계의 그림과 송()이다. ‘목우도계통의 전적예는 명나라 보명화상(普明和尙)의 저술본과 송나라 곽암선사(廓庵禪師)심우도(尋牛圖)와 청거선사(淸居禪師)목우도(牧牛圖)등이 전한다. 원불교에서는 보명선사의 저술을 통용하고 있다. 10개의 목우도에 일일이 송()을 붙여, 길들지 못한 검은 소가 차차 길이 잘든 흰소로 변해 가다가 마침내는 일원상이 나타나는 경지까지를 그림과 송으로서 운치 있게 엮어 선() 수행에 대조하도록 해준 수양서이다. 여기에서 소()는 우리의 본래 마음을 의미하며, 목우는 마음을 찾아 길들이고 닦아간다는 뜻이다.

[내용]

목우십도송의 열 가지 순서는 다음과 같다.

미목(未牧: 길들기 전)은 수도의 문에 들어오기 전 본능적으로 마음이 방자하고 객기의 충동에 휩쓸리는 경지.

초조(初調: 길들기 시작하다)는 수도에 뜻을 두어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붙들어 매기에 애를 쓰는 경지.

수제(受制: 차츰 길들어가다)는 점점 마음이 길들여져 마음을 챙기면 상당히 골라지는 경지.

회수(回首: 머리를 돌이키다)는 일구월심 공을 쌓아 어느 정도 힘을 얻었으나 아직 방심할 수는 없는 경지.

순복(馴伏: 길들었다)은 마음을 챙기고 놓아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어느 정도 마음이 한가로워진 경지.

무애(無礙: 걸리고 막힘이 없다)는 마음을 애써서 챙기지 아니해도 크게 어긋나지 아니하여 어떠한 일에나 거의 걸림이 없는 경지.

임운(任運: 자유롭다)은 마음을 경계 따라 놓아 보되 그 경계를 이겨내어 한결 자유로워진 경지.

상망(相忘: 주관과 객관이 서로 잊었다)은 마음과 경계가 한 경지가 되어 일체 돈망에 드는 경지.

독조(獨照: 홀로 찬란히 비친다)는 일체 돈망의 경지에서 낭낭독존(朗朗獨尊)한 영지(靈知)의 광명이 드러나는 경지.

쌍민(雙泯: 일원상만 두렷이 나타났다)은 돈망과 영지가 하나로 어우러져 만상 그대로가 법신으로 나타나는 경지의 내용이다.

원불교에서 목우십도송불조요경에 채용하게 된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미목에서 쌍민에 이르는 10가지 수행의 과정이 돈오점수적 관점에서 보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채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보명의 입장은 소가 중생의 마음을 대변하는 상징으로서 소의 습관개조(習慣改造)에 의한 흑우에서 백우로 변화하게 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소를 고삐와 회초리로서 길들여 나가는데, 고삐채찍회초리 등은 수행의 정진을 나타내고 있으며, 점수적으로 닦아야만 깨침에 이른다는 동산문하의 조동선의 특색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곽암의 십우도는 돈오돈수적 입장에서 소는 본연심(本然心)이므로 이미 닦음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각되어야 하는 소이다. 그러므로 고삐와 회초리가 그리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소에게 목동 자신을 맡겨도 심우(心牛)는 본향(本鄕)에까지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본향에 돌아가면 시각심(始覺心)은 없어진다. 곧 돈오돈수적인 성격이 강하고 염정(染淨)의 대립이 적어 임제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불교에서 보명의 목우십도송을 채용한 것은 임제선 중심인 한국불교계와의 차별을 고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곽암 십우도의 순서는

심우(尋牛: 소를 찾아간다)

견적(見跡: 소의 자취를 발견했다)

견우(見牛: 소의 모양을 보았다)

득우(得牛: 소를 붙잡았다)

목우(牧牛: 소를 길들여 간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망우존인(忘牛存人: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이 남았다)

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도 소도 함께 다 잊어버렸다)

반본환원(返本還源: 다시 현실세계로 되돌아 온다)

입전수수(入廛垂手: 시장바닥 같은 현실 세계 속에 들어가 중생제도 하기에 바쁘다) 등으로 되어 있다. 목우십도송이나 십우도가 다 같이 풍류적이면서도 예술과 종교의 깊은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어 수행인의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