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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7 성리품(性理品)

성리품(性理品) 16장

대종경(大宗經)

7 성리품(性理品) 16

선승 한 사람이 봉래 정사에 와서, 대종사께 뵈옵고 여쭙기를 [여래(如來)는 도솔천(兜率天)을 여의지 아니하시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으며, 어머니의 태중에서 중생 제도하시기를 다 마치셨다 하였사오니 무슨 뜻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실상사(實相寺)를 여의지 아니하고 몸이 석두암(石頭庵)에 있으며, 비록 석두암에 있으나 드디어 중생 제도를 다 마쳤나니라.]

★★★★★★★★★★

여래[如來]

석가모니의 십호(十號) 가운데 하나. 원불교 대각여래위의 준말. 석가모니의 공덕상(功德相)을 일컫는 십호는 여래(如來)응공(應供)정편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이다. 여래는 싼스끄리뜨 타타가타(tathāgata)’를 의역(意譯)한 것으로서 음역(音譯)하여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달타벽다(怛他蘗多)라고도 한다.

이 말뜻에 대하여는 두 단어(單語)를 나누는 것이 좋다. 첫 말을 타타(tatha) 또는 타타-(tathā), 둘째 말을 가타(gata) 또는 아가타(āgata)라고 하는 차이가 있다. 타타(tatha)는 진실진리란 뜻, 타타-(thatā)는 같이, 곧 여시(如是) 또는 여실(如實)의 뜻, 가타(gata)는 가다()의 뜻, 아가타(āgata)는 도달오다(來格)의 뜻이다. 그러므로 thatā+gata라 하면 지금까지 부처님과 같이 저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 열반의 피안에(彼岸)에 간 사람이란 뜻, 곧 선서(善逝) 도피안(到彼岸) 등과 같은 뜻, thata+āgata라 하면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 thatā+āgata라 하면 지금까지의 제불과 같이 저들과 같은 길을 걸어서 동일한 이상경(理想境)에 도달한 사람이란 뜻, 또 이밖에도 아가타(āgata)를 오다(來格)의 뜻이라 하면 여래라는 것은 부처님과 같은 길을 걸어서 이 세상에 내현(來現)한 사람, 또는 여실한 진리에 수순하여 이 세상에 와서 진리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뜻, 한역(漢譯)에서는 이 뜻에 의하여 여래를 해석하되 여()로서 내생(來生)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운허용하, 불교사전).

원불교에서는 여래를 대각여래위의 약칭으로 주로 쓰고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대각여래위의 부처님을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의 위니라”(정전법위등급)라 했고, 대산종사는 여래는 오는 것 같을 뿐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오되 오지 않고 가되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근(六根)이 육진(六塵)가운데 출입하되 물들고 섞이지 않는 것이다.

오고 감에 얽매이지 않고 오고 감에 흔적이 없어서 오게 되면 가는 것이 여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하라했고, 유가(儒家)에서는 화이불류(和而不流)’라 하여 만유에 화하되 흐르지 않는다 했고, 선가(仙家)에서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 하여 화한 빛이 티끌에 함께 한다 했으니, 구슬이 진흙에 묻혀도 썩지 않고 그 빛을 잃지 않는 것과 같다”(대산종법사법문집3)고 했다.(원불교대사전)

도솔천[兜率天, Tusita-deva]

(1) 불교에서 욕계 6(六天) 중의 제 4(四天). 도사다(覩史多)투슬타(鬪瑟跢)라고도 한다. ‘만족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하여 지족(知足)묘족(妙足)희족(喜足)희락(喜樂)이라 번역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세계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로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 11~15라는 설이 있음) 위에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미륵보살이 살며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지 못한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외원은 천중(天衆)의 환락 장소라고 한다. 석가모니불도 인도에 태어나기 전에 이곳에서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로 알려져 있다. 도솔천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끊임없이 정진하여 덕을 많이 쌓은 사람,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보살을 염불하는 사람, 계율을 지키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은 사람, 널리 복업(福業)을 쌓은 사람, 죄를 범하고서 미륵보살 앞에 진심으로 참회하는 사람, 미륵보살의 형상을 만들어 꽃이나 향 등으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사람 등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사람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실천방법을 갖추었기 때문에 이상적인 불국세계로서 도솔천은 크게 부각되었다.

(2) 도교의 33() 가운데 하나로, 태상노군(太上老君)이 이곳에 거처한다고 한다.(원불교대사전)

실상사[實相寺]

전북 부안군 내변산 천왕봉 아래에 있는 사찰로 변산면 중계리 실상동에 위치한다. 통일신라 신문왕 9년에 초의선사가 창건하고 조선조에 양녕대군이 중창했다고 전하며, 변산의 산내 사찰을 여기에서 거느렸다 한다. 따라서 이 절에 있었던 불상이나 관음상 등이 모두 고려 초기의 것으로 그 규모의 크기나 기예의 정묘함이 유명했다 한다. 또한 이밖에 고려판 화엄경소 등의 귀중한 문화재가 있었는데 한국전쟁 중에 모두 불타버려 전해지지 않는다.

절터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근처(석두암 옆)에는 3기의 석조 부도가 있다. 실상사는 한국전쟁시 전소되고 최근 소규모로 중창중이다. 소태산대종사가 1920(원기5) 초에 실상동에 와서 실상사 옆 봉래정사에서 4년간 머물며 선승들과 교제했다. 당시 실상사 주지는 한만허(韓滿虛)이며 백학명과 사형제이다. 실지불공 법문(대종경교의품15)과 인장바위 금 채굴 법문(대종경실시품2)이 실상사에서 유래된다.(원불교대사전)

석두암[石頭庵]

전북 부안 내변산 실상동 거북바위 옆에 있었던 2간 초당. 소태산대종사가 1921(원기6) 가을부터 1923(원기8) 여름까지 주석했다. 소태산은 실상초당에 머문지 1년 반 만에 다시 새 집 하나를 마련했다. 갈수록 찾아오는 신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숙소의 부족을 느껴, 김남천송적벽이 발의하여 1921(원기6) 음력 칠월에 공사를 착수했다. 신축기지는 천왕봉 아래, 거북바위 옆에 터를 정했다. 실상초당 옆 작은 밭 다랑이를 지나 잠시 대밭 비탈을 올라서면 바로 거북바위 오른쪽이다. 개울 건너 앞산의 인장바위가 한눈에 조망된다. 여기서 선인봉 쪽으로 50보쯤 가면 몇 기의 부도가 나온다.

터의 주선과 재목 보조는 월명암 주지 백학명이, 터를 고르고 축대 쌓는 일은 송적벽이, 목수 일은 김남천, 건축 기간 중 식량과 잡비 일체를 이만갑과 구남수가 맡아 동년 음력 구월에 초당을 준공했다. 석두암 2간 초당은 흙과 짚을 잘 개어 쌓은 흙집이다. 외벽은 벽회를 발랐고 방안 천정을 만들고 벽에 도배를 했다. 2간방은 가운데 칸막이를 지르고 뒷면에 각각 벽장(다락)을 넣었다. 방문은 한식으로 세창살 여닫이 쌍문을 달았고 각방의 측면에 외문을 내었다. 방문을 열면 전면에는 조금 넓은 마루, 좌우에도 반간 정도씩 마루를 달았다.

초당 우측에 아궁이를 내어 두 방에 군불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까대기를 달아내어 비바람을 막았다. 석두암 앞에 토사를 막기 위해 축대를 쌓았으며 거북바위 뒤에 큰 항아리를 하나 묻고 까대기를 쳐 뒷간으로 이용했다. 소태산은 거북바위 옆의 이 초당을 석두암이라 했다. 백학명이 검은 바탕의 목판에다가 흰 글씨로 옥호를 써 방문 위에 걸었다. 소태산 스스로 석두거사(石頭居士)’라 칭했다. 신축 2간 초당 석두암은 소태산의 거실로서 최초의 조실(祖室)이 된다. 방 하나는 석두거사의 처소, 다른 하나는 남자 제자들의 방으로 사용했다.(원불교대사전)

★★★★★★★★★★

[어머니 태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치다.]

<조법전 교무/기흥교당>

선승 한 사람이 봉래 정사에 와서, 대종사께 뵈옵고 여쭙기를 "여래(如來)는 도솔천(兜率天)을 여의지 아니하시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으며, 어머니의 태중에서 중생 제도하시기를 다 마치셨다 하였사오니 무슨 뜻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실상사(實相寺)를 여의지 아니하고 몸이 석두암(石頭庵)에 있으며, 비록 석두암에 있으나 드디어 중생 제도를 다 마쳤나니라."

10월말 경인교구바자가 열려 우리교당도 홍키위를 출품했다. 덕분에 홍키위가 비타민C가 풍부한 알카리성 과일임을 잘 알게 되었다.

당도가 높고 제주도에서 개발한 국산이라 일반키위에 비해 외국에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자긍심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과일은 씨를 심어야 과가 열리고 그 씨앗 속에는 이미 과일이 될 인자가 들어있다. 단지 그 씨가 발아할 환경, 물과 온도와 영양분을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에 따라 씨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고 어엿한 과일로 존재하기도 하듯이 우리의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도솔천은 불보살들이 인도에 나기 전 머무는 천상계라 한다. 그런데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가에 내렸으며 모태 중에서 중생제도를 마치쳤다하니 이렇게 황당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모태 중에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발하기 전의 상태, 성품의 진면목을 상징하는 말씀이고 중생제도를 마쳤다는 것도 이미 상없는 천지의 이치에 계합하여 제도를 마쳐도 마친 바가 없다는 말씀이니 결국 성품의 진면목을 상징하는 말씀들이다. 그러니 분별이 없는 그 자리에 어찌 선악이 있으며, 어찌 중생과 부처가 있으며 왕궁과 태중이 어디에 있겠는가. 한발 나아가 대종사의 말씀을 받들면서 선승은 중생제도를 마쳤으니 빛을 돌이켜 그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보라는 뜻이지 어떤 말도 그 자리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성품의 평등함만이 천상천하에 가득하여 비되 비지 않은 진공묘유의 세계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에게 이 법문을 내렸을 당시 한 제자가 "보통급에 있되 대각여래위를 마쳤다"라고 대답을 했다.

어떤 제자가 그랬는지는 몰라도 상당한 근기의 선진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 시원함에 머리를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성품은 자연계의 씨앗과 같다. 씨앗이 적정한 습도와 온도, 영양분을 만나면 결실 또한 확연하듯이 내재해있는 성품이 좋은 환경이라는 연을 만나면 본성그대로 부처를 이룬다. 그 환경의 첫 번째가 스승이고 신심이다. 그러므로 도가의 생명은 신심인 것이다. 신이 있으면 스승의 법이 건네고 신이 없으면 분별망상 덩어리 중생으로 자기 업장조차 벗어나기 어렵다.

성품은 자연계 씨앗과 같아

좋은 환경은 스승과 신심

★★★★★★★★★★

[도솔천과 왕궁가]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실상사의 한 선승이 봉래 정사에 와서 대종사께 여쭈었다. “여래는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몸이 이미 왕궁가에 내리셨으며, 어머니의 태중에서 중생 제도를 다 마치셨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정전 의두요목 제 1조에 편입되어 있는 이 화두는 선가에서 유행하는 유명한 공안이다. 과학과 합리를 내세운 회의론자들은 일단 이 공안의 황당함에 냉소할 것이다. 그러나 고정관념만 벗어나면 황당과 합리에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런던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을, 기재만 동원하면 서울에서도 동시에 볼 수 있지 않은가.

관념이란 허공과 같은 것인데도 사람들은 그 관념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묶이기도 한다. 도솔천과 왕궁가, 태중과 중생제도라는 시공의 차이를 극복하는 데에는 고정관념의 너머에 출구가 있다.

그러나 성리품 16장의 백미는 그대가 실상사를 여의지 않고 몸이 석두암에 있으며, 비록 석두암에 있으나 드디어 중생 제도를 다 마쳤다하는 대종사의 답변에 있다. 얼핏 보면 앞서 여래의 화두와 견주어 그 밥에 그 나물 같지만 그 본질은 판이하다.

도솔천의 여래와 실상사 선승의 차이는 이미드디어에 있다. 여래는 태중에서 이미중생제도를 마쳤으며, 선승은 석두암에 있으면서 드디어중생제도를 마친다.

대종사는 도솔천과 왕궁가라는 공간, 그리고 태중과 전법륜의 시간이라는 간극의 황당함에 대하여 분별 이전의 세계는 여래라는 표현을 빌리고 있다. 이는 여래의 씨앗이 우리에게 갊아 있다는 원돈(圓頓)의 소식이므로 이미가 적합하다.

이와 대비한 실상사의 선승은 생활 속의 우리 모습이다.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저 세계에 도달하는 수행인의 표상이다. 이는 구도역정 끝에 도달하는 수증(修證)의 소식이므로 드디어가 된다.

이미드디어는 시골밥상의 그 밥에 그 나물이 아니다. 근사한 레스토랑의 초호화 코스요리에 나오는 군침 도는 애피타이저와 깔끔한 디저트다. 서양식 표현으로는 알파와 오메가요, 불가의 용어로는 본원과 성불로 보아도 좋다.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되듯이, 다시 아미타불이 중생의 복전이 되듯이, 하나의 진리가 둘로 나투는 동전의 양 면으로 보아도 좋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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