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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7 성리품(性理品)

성리품(性理品) 14장

대종경(大宗經)

7 성리품(性理品) 14

대종사 봉래 정사에서 문 정규에게 물으시기를 [벽에 걸린 저 달마 대사의 영상을 능히 걸릴 수 있겠는가.] 정규 사뢰기를 [능히 걸리겠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한 번 걸려 보라.] 정규 곧 일어나 몸소 걸어가거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정규가 걷는 것이니, 어찌 달마의 화상을 걸렸다 하겠는가.] 정규 말하기를 [동천에서 오는 기러기 남천으로 갑니다.]하니라.

★★★★★★★★★★

문정규[文正奎]

법호는 동산(冬山). 소태산대종사 봉래주석기의 전문 시봉인. 대종경수행품 33, 인도품 36, 성리품 1422, 신성품 18, 전망품 729장 등 7곳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186365일에 전남 곡성군 곡성면 장선리에서 부친 화준(華俊)과 모친 하()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다가 52세시 전주로 이사하여 한의업을 경영했다. 1920(원기5) 친구인 송적벽의 인도로 전북 부안 변산을 찾아 소태산의 제자가 되었다. 후일 소태산은 법설하는 자리에서 문정규는 늙은 몸으로 그 산중 험로에 들어와서 거처와 음식이 기구하건마는 나 하나 만나보려는 자미로 모든 고생됨을 잊어버리고 오직 즐거워만 했다고 칭찬했다.

1934(원기19) 회보9호에 어떠한 고라도 낙 삼을 줄 아는 자는 행복자니라는 법문이 있으며, 1924(원기9)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때는 전주지방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이후 익산총부 건설에 적극 동참, 송적벽김광선 등과 더불어 엿 제조업을 발의했고, 소태산이 법설 때면 박사시화김남천 등과 더불어 백발을 휘날리며 춤을 추어 법흥을 돋구었다. 만년에는 노청년(老靑年)’이란 별명을 들으며 낙도 수양하다가 1936413일에 열반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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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達摩]

[개요]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 싼스끄리뜨로는 보디다르마(Bodhidharma)이며 보리달마(菩提達摩)로 음사(音寫)하는데, 달마는 그 약칭이며 시호는 원각(圓覺)대사이다. 생존연대는 ?~495, ?~528 설이 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선승으로 석가모니불로부터 28대 조사이며,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생애]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일설에는 페르시아) 이견왕(異見王)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27조 반야다라 존자에게 법을 배워 대승불교에 능통하고 선()에 통달했다. 520년경 중국에 들어와 북위(北魏)의 낙양(洛陽)에 이르러 동쪽의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하고 나서, 사람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다는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 선법(禪法)을 제자 혜가(慧可)에게 전수했다.

그의 전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최근 돈황(敦煌)에서 출토된 자료에 따르면, 그의 근본사상인 이입사행(二入四行)’을 설교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오늘날의 학계의 정설로는, 달마는 사권능가경(四卷楞伽經)을 중시하고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의 가르침을 설파하여 당시의 가람불교나 강설불교(講說佛敎)와는 정반대인 좌선을 통하여 그 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사람이다. 달마는 양무제 때에 중국으로 와서 양무제와 문답했으나 아직 불법을 펼 때가 아님을 알고 숭산 소림사에 들어가 9년간 면벽참선했다.

양무제와의 문답에서 확연무성(廓然無聖)’, ‘소무공덕(所無功德)’이란 말이 생겼고, 소림사의 9년 면벽에서 면벽구년란 말이 생겼다. 2조 혜가를 만나 선법(禪法)을 전해주어 중국 선종의 초조가 되었다. 혜가와의 만남에서 혜가단비(慧可斷臂)’란 말이 생겼다. 달마가 설한 혈맥론(血脈論)〉ㆍ〈관심론(觀心論)〉ㆍ〈오성론(悟性論)〉ㆍ〈사행론(四行論)등은 선가의 중요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법으로의 달마]

인물이 아닌 개념으로는 법(, Dharma)을 다르마라고 한다. 인도의 고전(古典)베다에 사용되었던 법()이라는 말이며, 불교에서는 달마(達摩)담마(曇摩)담무(曇無) 등으로 음사(音寫)하는 불교의 중심관념으로 법칙, 진실최고의 실재, 불타의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법은 싼스끄리뜨의 다르마의 한역어(漢譯語)이다. 기원은 인도의 고전인 베다에까지 소급된다.

베다시대의 달마는 리타(rita: 天則) 등과 함께 자연계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 후 브라마나우빠니샤드 시대에는 인간의 행위의 규정으로 사용되어, 법칙질서의 의미 외에 정당(正當)정의(正義)로 변하여, 권리(權利)의 관념 및 의무(義務)규범(規範)과 같은 뜻이 첨가되었다. 빠알리 주석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 hetu) : 올바른 인과(因果) 관계로 합리성진리를 가리킨다. 연기(緣起)는 법이라고 하는 말이 이 뜻이다. 연기의 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보편타당성이 있는 진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규칙법칙 등의 의미와도 상통한다.

(, gua) : 인간이 지켜야 할 정도, 곧 윤리성을 가리킨다. 아소카 왕의 법칙문(法勅文)은 상기한 합리성과 윤리성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가르침(, āsana) : 특히 불법(佛法), 곧 석가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의 삼보(三寶) 중 법보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며, 나아가 경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법통(法統)법호(法號)법회(法會)법고(法鼓)법등(法燈) 등은 모두 불법의 의미이다. 그리고 불법은 합리성윤리성이 있어 이상(理想)궤범(軌範)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12의 의미도 당연히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사물(事物): 일체법(一切法)제법무아(諸法無我)법성(法性) 등이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후에 아비달마(阿毘達摩) 철학에서는 독자의 성질(自性)’ 또는 존재의 본질(自相)’을 유지하기 때문에 법이라 한다고 정의하여, 법을 실체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사물을 실체로 보는 데 반대하여 법공(法空) 또는 법무아(法無我)를 주장한다. 사물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상은 십이처설(十二處說)에 잘 나타나 있다.

여섯 인식기관(六根 : )과 그에 대응하는 여섯 인식대상(六境: )에서 특히 법은 인식사고의 기능을 갖는 의(: manas)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때의 법은 실체적 대상(vastu)으로서가 아니라 인식대상(viaya)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그 존재의의를 지니는 것이므로 불교 특유의 세계관이라 하겠다. 현대의 학자는 경험적(empirical) 법과 초경험적(transcendental) 법으로 나누기도 하며, 법칙정당규준, 교법, 진실최고의 실재, 경험적 사물로 나누기도 한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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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유가 하나인 자리를 알았는가.]

<조법전 교무/기흥교당>

대종사 봉래 정사에서 문 정규에게 물으시기를 "벽에 걸린 저 달마 대사의 영상을 능히 걸릴 수 있겠는가" 정규 사뢰기를 "능히 걸리겠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한 번 걸려 보라" 정규 곧 일어나 몸소 걸어가거늘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정규가 걷는 것이니, 어찌 달마의 화상을 걸렸다 하겠는가" 정규 말하기를 "동천에서 오는 기러기 남천으로 갑니다"하니라.

문정규 선진은 법호가 동산으로 봉래정사 시절 친구 송적벽의 인도로 대종사를 찾아 뵌 후 제자가 됐다. 이 장에서는 초창기에 대종사께서 제자들에게 성리문답 해준 생생한 일화가 엿보이는 내용이다. 또 스승의 질문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답하는 동산선진의 기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성리는 심상에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분별없는 자리라는 것, 또 하나는 분별없는 자리에서 분별이 있어지는 점이다. 분별없는 자리는 성품의 체자리요, 우주만유의 근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으로 모든 존재가 평등한 자리며 나아가 우주만유가 하나인 자리이다.

벽에 걸린 달마대사의 영상을 걸려보라는 말씀은 '죽은 달마대사를 살아나게 하여 영혼을 불러내라'는 말씀이 아니고 '우주만유가 하나인 자리'에서 달마대사와 동산 선진의 성품을 묻는 질문인 것이다. 그래서 동산 선진은 몸소 걸어가는 것으로 둘이 아닌 하나임을 답하였다. 여기까지만 하여도 전래되어온 불가의 화두문답에서는 ''이라고 인증하고 도인이 났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종사는 정규가 걷는 것이니 어찌 달마의 화상을 걸렸다 하겠느냐로 한 번 더 쐐기를 박는 질문을 던졌다. 이는 과거불가에서 각이라고 인증하는 방법의 얇음을 알았기에 한 번 더 깊숙이 찔러줌으로써 확철대오(廓徹大悟)의 진경에 이르지 못한 제자로 하여금 그 진경에 직입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준 것이다.

성리라는 것이 공부의 깊은 단계는 아니지만 공부의 초보자에게는 자신이 어떤 단계인지, 어느 정도 공부가 되어 가는 지, 스스로 알지 못하므로 공부가 조금만 되어도 스스로 공부가 다 된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무수히 있게 된다. 이럴 때 스승의 지도가 없으면 허송세월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스승이 있어도 공부길 잡는 것이 쉽지 않은데 대종사께서 자수 자각한 일생은 상상을 초월하는 희유한 일임을 세월이 지낼수록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동산 선진이 "동천에서 오는 기러기 남천으로 간다"고 했다. 한울안 한이치에서 이 내용에 대해 다른 제자가 정산종사께 "견성을 하고 한 말이냐"고 묻자 "잘 모르겠으나 좀 보였는지 모르지, 견성은 확철대오 해야한다"고 답했다. 정산종사의 이 법문을 받들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나 같은 하수도 진경에 이르지 못한 것이 보이는데 상황은 잘 모르겠다 하며 좀 보였는지 모른다는 말씀은 만능 만지를 갖추고도 함부로 하지 않으면서 견성은 확철대오 해야 한다는 핵심을 짚어준 혜안이기에 마냥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고 품에 안기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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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와 기러기]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장면 1 : 장소는 역시 선미(禪味) 그윽한 봉래 정사, 어느 날 저녁 장난기가 동한 대종사께서 문 정규에게 물으시었다. “벽에 걸린 저 달마 대사를 능히 걸릴 수 있겠는가?”

봉래정사의 바람벽에는 달마가 외다리로 갈잎 타고 강을 건너는 그림이 한 폭 있었다. 달마상 중에서도 드문 형태인 이 그림을 주산 송도성이 즐겨 모사하였고, 다시 이를 어깨너머로 익힌 고산 이운권의 손을 통하여 우리들 눈에도 익숙한 달마상이 되었다.

정규는 즉시 답하였다. “능히 걸리겠나이다.”

방거사가 석두스님에게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석두는 방거사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그것은 언어로 설명할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석두와 달리 정규는 표현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장면 2 : “그러면 한 번 걸려 보라.” 대종사는 그물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 정규는 일어나 몇 걸음 걸어가고 말았다. 그 그물 속으로. 몸소 걷는 달마는 당시 봉래정사에 곧잘 마실 다니던 학명 스님의 트레이드마크 선문답이었다. 그때의 기본문제는 달마를 걸리는 일이었고, 모범답안은 일어서서 걷는 것이었다. 정규는 주저 없이 모범답안을 베껴 쓰고 말았던 것이다.

장면 3 : 대종사께서는 마지막 자비를 베푸셨다. “그것은 정규가 걷는 것이니, 어찌 달마의 화상을 걸렸다 하겠는가?” 베껴 쓴 것 말고 자신의 답을 요구하신 것이다. 정규는 동천에서 오는 기러기 남천으로 갑니다하고 답한다. 동천기러기나 남천기러기나 같은 기러기가 아니냐는 말이다. 달마나 자신이나 하나라는 말이다.

정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 번째 모범답안을 쓰고 말았던 것이다.

석두와 헤어진 방거사가 마조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대가 서강에 흐르는 물을 다 마시고 오면, 그때 말해 주리라하고 말한다. 마조의 이 말은 석두의 행동과 통한다. ()을 정형화 시키는 일이나 서강의 물을 마시는 것은 모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문 정규 선진이 두 차례에 걸친 모범답안으로 커트라인 통과를 바랬다면 그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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