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15 부촉품(附囑品) 15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사업 목표는 교화·교육·자선의 세 가지니 앞으로 이를 늘 병진하여야 우리의 사업에 결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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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화[敎化]
[개요]
①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교도(敎導)하여 감화시킴. 가르쳐서 착한 사람이 되게 함.
②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함.
③ 북한에서 쓰는 말로 교양 따위를 통하여 사상을 개조함.
④ 원불교 교법으로 사람을 가르쳐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 범부가 변하여 성현이 되게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 바른 믿음을 갖게 하며, 악한 사람이 변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 또는 원불교 교법을 신앙하도록 이끄는 일.
[내용]
일반적으로 특정 종교에서 자기 종교를 신앙하도록 권장하거나 이끌어서 신도가 되게 하는 일을 포교 또는 선교라고 하는데 비해 원불교에서는 교화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원불교 교도가 되게 하는 것은 바른 신앙과 수행을 쌓아서 궁극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자는 것이므로 원불교 교법을 가르쳐서 사람의 인격과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교화라고 한다. 종교적 교화는 일차적으로는 타력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으로 각자의 마음이 정화되어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을 할 때 완전한 교화가 되는 것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서 교화되기도 하지만 진정한 교화는 궁극적인 진리를 신앙하고 진리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교화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리에 부합되지 않으면 완전한 인격이라 할 수 없으므로 종교적 교화가 중요하다.
원불교는 실질적인 교화의 방법으로 대산종사가 제시한 무량법문교화(無量法門敎化)ㆍ무언실천교화(無言實踐敎化)ㆍ자비인정교화(慈悲人情敎化)를 병용한다. 소태산대종사의 가르침을 설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무량법문교화이며, 덕행의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 이를 본받게 하는 것이 무언실천교화이며, 인정을 베풀어서 상대를 감화시키는 것을 자비인정교화라고 한다. 이 세 가지를 교화 삼단(三段)이라 하는데 초입자에게는 자비인정교화를 먼저 베풀고, 다음으로 무량법문교화로 진리적인 인격의 표준을 확립하게 하며, 무언실천교화로 실천하는 인격체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한편 원불교에서는 교화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0인을 한 그룹으로 하는 교화단 조직법을 제정하여 활용하고 있다. 이는 교화자가 적은 노력으로 다수의 피교화자를 교화하는 방법으로, 피교화자는 각각 또 다른 10인을 교화하는 주체가 되게 함으로써 무한대로 교화를 전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 교화의 방법이나 법문과 실천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교화의 외연일 뿐이며, 실질적인 것은 각자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람직한 인격을 쌓아가는 자기교화ㆍ자신교화가 중요하다.(원불교대사전)
교화[敎花]
(1) 종교를 상징하는 꽃.
(2) 원불교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고 느껴지고 원불교의 정서를 풍겨주는 꽃을 원불교 교화(敎花)라고 한다. 1956년(원기41) 1월 당시의 교무연합회의에서 연화(蓮花)를 교화로, 보리수를 교수(敎樹)로 정했으나, 연화와 보리수는 불교를 상징하는 것인데 원불교에서도 그대로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반론과 불교를 혁신한 것이 원불교이므로 연화를 교화로 하고 보리수를 교수로 해도 좋을 것이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원불교와 불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독립적 교단이라는 입장이 강한 편에서는 불교를 상징하는 연화와 보리수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과 원불교는 혁신불교이므로 불교에서 정착된 연화와 보리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1956년(원기41)에 교무연합회의에서 결의한 내용을 지금까지 수용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교육[敎育]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고 인격을 길러주는 모든 활동과 과정. 소태산대종사는 《정전》 ‘타자녀교육의 강령’에서 “교육의 기관이 편소하거나 그 정신이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면 세상의 문명이 지체되므로, 교육의 기관을 확장하고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모든 후진을 두루 교육함으로써 세상의 문명을 촉진시키고 일체 동포가 다 같이 낙원의 생활을 하자는 것이니라”고 말하며, 세상의 문명발전과 낙원세계 건설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을 밝혔다.
정산종사는 《세전》 ‘교육’에서 “사람이 비록 만물 가운데 가장 영특하다 하나 교육의 힘이 아니면 능히 그 최령의 자격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가 비록 이루어져 있을지라도 또한 교육의 힘이 아니면 능히 유지 발전을 보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에 기초가 되는 태중의 기간으로부터 나고 자라는 여러 기간을 통하여 반드시 태교와 유교와 통교의 모든 도가 잘 베풀어져야만 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에 유용한 사람이 될 것이니라”고 하여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을 말했다.
또한 교육을 크게 과학 교육과 도학 교육의 두 부문으로 나누고, “과학교육은 물질문명의 근본으로서 세상의 외부 발전을 맡았고, 도학 교육은 정신문명의 근원으로서 세상의 내부 발전을 맡았나니, 마땅히 이 두 교육을 아울러 나아가되 도학으로써 바탕되는 교육을 삼고 과학으로써 사용하는 교육을 삼아야 안과 밖의 문명이 겸전하고 인류의 행복이 원만하리라”고 하여 문명의 발전과 인류의 행복을 위해 과학교육과 도학교육의 선후본말과 조화를 강조했다.(원불교대사전)
자선[慈善]
선의를 베푸는 것. 특히 불행ㆍ재해 등으로 인하여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조하고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교화ㆍ교육과 더불어 원불교 삼대사업 목표의 하나이다. 종교의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사업을 가리키며, 오늘날 사회복지로 표현한다.(원불교대사전)
자선사업[慈善事業]
종교적ㆍ도덕적 동기에 입각하여 고아(孤兒)ㆍ병자(病者)ㆍ노약자(老弱者)ㆍ빈민(貧民) 등을 구조할 목적으로 행하는 사회공공사업. 불합리하고 차별이 있는 사회를 평등한 복지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사업. 오늘날은 일반적으로 자선사업이라는 말 대신 사회복지사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종교들은 한결같이 사회구제의 한 방법으로서 자선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원불교는 교화ㆍ교육과 더불어 자선을 교단 삼대사업으로 설정하고 고아원ㆍ양로원ㆍ병원ㆍ유치원ㆍ탁아소ㆍ청소년 상담실ㆍ복지회관ㆍ정신질환자와 부랑자 수용소 등의 각종 자선사업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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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화두 '교화·교육·자선']
<강덕제 교무>
대종사님께서 원불교 문을 열게 되는 근본목적은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우리는 그 개교의 동기를 이루기 위해 교화 교육 자선의 사업을 하고 있다. 일체생령을 빠짐없이 제도하기 위한 교화 교육 자선은 우리 교단의 화두일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화두라 생각한다.
교화·교육·자선을 넓은 의미로 본다면 모두 교화의 활동으로 볼 수 있지만 대종사님께서 교화·교육·자선으로 범주를 구분하여 주신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서 자선·교육·교화로 단어의 순서를 바꾸어 본다. 그 낱낱의 뜻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베풀고 가르치고 변화시킨다로 해석했다.
자선(慈善)은 남을 불쌍히 여겨 선의를 베풀거나, 불행·재해 등으로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을 도와줌이라 해석된다.
그런데 자력 없는 파란고해의 생령에게 자비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종교심의 발현이다.
즉, 자선은 우선 자력 없는 사람들에게 심낙원(心樂園) 신낙원(身樂園)을 베푸는 것이다.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 하는 기초로 배움을 받아들일 자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르쳐 기르는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은 지식과 기술 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어 자신을 진화시킴은 물론이요, 그 바탕으로 세계를 진화시키는 일이다. 즉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비유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화(敎化)는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걸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걸어간다는 것은 아는 바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화(化)라는 말이 그렇다. 되도록 하는 것인데 부처님의 법을 그대로 행할 수 있도록까지 한다는 것이다.
자선·교육·교화는 우리의 교법으로 공부하는 교도를 넘어서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부터 그리고 진화할 수 있고 자력을 얻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부처님과 같은 공부와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교화를 해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분야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일체생령을 제도할 책임을 가진 종교에서는 교화뿐 아니라 교화를 넘어서 교육 자선이 영원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
낙원[樂園]
[개요]
인류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세계. 극락ㆍ천국과 같은 의미이다. 차원 높게는 고와 낙을 초월한 경지를 말한다.
[불교에서 의미]
불교에서는 낙원을 극락이라 한다. 극락은 즐거움만이 있는 곳으로 이 즐거움은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이 성취된 깨달음의 즐거움을 말한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극락세계는 아미타불이 거주하며 설법하는 곳으로써 서방으로 10만억의 국토를 지나서 있다. 여기에 태어난 자는 심신의 괴로움이 없고 다만 즐거움만이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공간적 거리와 인간이 죽어서 간다는 시간적 거리는 물질적 낙토관(樂土觀)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중생 구제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사람을 구제한다는 타력신앙의 요소를 가지지만 동시에 그 염불이 무아(無我)의 삼매(三昧)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극락은 현실세계와 공간적ㆍ시간적 거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극락정토가 서방에 실재하는 세계로 묘사된다 하더라도 단지 청정한 세계를 구상적(具象的), 유형적(有形的)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극락이 낙원인 것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의미]
그리스도교에서는 낙원을 에덴동산이라 한다. 《구약성서》 ‘창세기(2: 7-17)’에 의하면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한 동산으로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자라고 주위에는 보기 좋고 맛있는 과수가 가득했다. 여기에서 하나의 강이 흘러 티그리스 등 4개 지류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산의 각종 실과는 임의로 먹어도 좋으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죽는다”라고 가르쳤으나 아담이 이것을 외면하고 선악과를 따먹어 그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러므로 아담이 쫓겨나기 전의 에덴동산이 낙원인 것이다.
[원불교에서 의미]
원불교에서는 광대무량한 지상낙원을 낙원이라 한다.
첫째 마음의 낙원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한 자리에 그쳐 있으면 그 자리가 곧 극락이요…성품의 본래 이치를 오득하여 마음이 항상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면 길이 극락생활을 하게 되고”(《대종경》 변의품10)라고 했다. 마음이 죄복과 고락을 초월하고 성품의 본래 이치를 깨쳐서 자성에 사무치는 마음이 극락, 곧 마음의 낙원이라는 것이다. 삼대력을 얻어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쓸 수 있는 마음이 낙원인 것이다.
둘째 사회의 낙원이다. “오는 세상에는 위없는 도덕이 굉장히 발전되어 인류의 정신을 발전시키고 물질문명을 지배할 것이며 물질문명은 도덕 발전의 도움이 될 것이니 멀지 않은 장래에 산에는 도둑이 없고 길에서는 흘린 것을 줍지 않는 참 문명세계를 보게 되리라”(《대종경》 전망품20). 이러한 마음의 낙원과 사회의 낙원은 현실의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후천개벽의 낙원은 지상낙원이다. 죽은 후에 극락이나 에덴동산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영원한 낙원을 만드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심낙원[心樂園]
마음으로 누리는 낙원세계. 육신의 낙원을 신낙원이라 하고 마음의 낙원을 심낙원이라 한다. 신낙원은 물질개벽으로 인한 의ㆍ식ㆍ주 생활의 풍요에서 오고, 심낙원은 정신개벽으로 삼대력(수양력ㆍ연구력ㆍ취사력)을 얻어야 누릴 수 있다. 신낙원과 심낙원을 다 얻어야 결함 없는 광대무량한 낙원을 누릴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신낙원[身樂園]
몸으로 누리는 낙원. 육신이 건강하고 의식주생활이 풍족하여 안락하게 사는 것 또는 그러한 세계. 현대 사회에서 물질문명의 발달로 누리게 된 각종 문명의 혜택과 생활의 편리함을 아울러 이르는 말. 심낙원(心樂園)에 상대되는 말로서 심낙원이 삼학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마음이 안락하고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는 반면에 신낙원은 물질개벽으로 누리는 편안하고 풍요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심낙원과 신낙원은 모두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 꿈꾸는 이상세계임과 동시에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낙원은 한편을 배제하거나 치우침이 없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완전한 낙원, 결함 없는 낙원, 곧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이룰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천상락[天上樂]
(1) 불교에서 육도 중 천상계에서 받게 되는 즐거움.
(2) 천상계의 천사나 신선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비유하여 수행인들이 생사고락을 해탈하고 육도 윤회를 초월하며 심신의 자유를 얻게 되는 즐거움, 곧 도로써 즐기는 마음낙을 말함(《대종경》 불지품15). 천상락을 누리는 사람은 오욕 번뇌에서 벗어나고 사량 분별심이 끊어져서 항상 담박하고 편안하다. 인간락과는 달리 천상락은 영원히 변치 않고 무궁무진하다고 하지만 천상락을 얻은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수행정진하지 않으면 다시 육도 윤회에 떨어지게 된다(《대종경》 불지품16).(원불교대사전)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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