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종경(大宗經)/제15 부촉품(附囑品)

부촉품(附囑品) 16장

대종경(大宗經)

15 부촉품(附囑品) 16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교법 가운데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강령인 삼학 팔조와 사은 등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다시 변경할 수 없으나, 그 밖의 세목이나 제도는 그 시대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혹 변경할 수도 있나니라.]

★★★★★★★★★★

[5만년 대운, 지켜줄 일원대도]

<강덕제 교무>

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에 보면 교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중략) ···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에 시용하시나 본체는 항상 여여히 드러내사, 안으로는 무상 묘의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의 지류까지 통하시어, 일원대도의 바른 법을 시방삼세에 한없이 열으시었으니, (하략)···."

소태산대종사께서 사은과 삼학팔조는 일원을 종지로 한 교리의 대강령이기 때문에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변할 수 없는 법임을 밝힌 것이고, 그 밖의 세목과 제도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 혹 변경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태산대종사의 교법인 사은과 삼학 팔조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여여한 진리이며 진리의 강령인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의 교단은 5만년의 대운을 타고 나온 교단이라고 한다.

시대와 국가를 초월할 수 있는 만고대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시대와 국가의 상황에 따라 변화시킬 수 있는 세목 제도를 인정하셨다.

진리라는 것은 현실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 현실초월의 것임과 동시에 현실에서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얼마나 큰 법인가? 얼마나 크고 원융하게 드러내셨는가? 일원의 교법을···.

개교의 동기에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 방법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 방법을 제시하셨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통할 수 있는 것이 진리적 종교가 된다. 그 누구도 바꾸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바꾸어도 깨친 사람들은 그 법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은과 삼학 팔조이다.

세목이나 제도는 그 시대 그 국가에 적당하도록 변경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목이나 제도는 일원의 종지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니까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리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얼마나 크고 너른 법인가? 생각할수록 주세불인 소태산대종사에 대한 신성이 더욱 커져만 간다.

★★★★★★★★★★

대종사성비[大宗師聖碑]

[개요]

소태산대종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 추모 비석. 제명(題銘)원각성존소태산대종사비명병서(圓覺聖尊少太山大宗師碑銘並序)’이다. 대종사성탑(大宗師聖塔)과 구분하여 성비로 불린다. 전북 익산시 신룡동 344-2번지 원불교중앙총부 안쪽의 성탑 동남편에 위치하며, 1대 성업봉찬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1953(원기38) 426일 세워졌다. 비문은 정산종사가 찬술하고 서예가 강암 송성용(剛菴宋成鏞)이 썼다.

[성비의 구조]

성비는 석비이다. 비신은 오석(烏石)으로 충남 웅천석이며, 나머지 석재는 중앙총부 인근의 황등에서 나온 화강암이다. 구성은 전통비석과 마찬가지로 지대석(地臺石)을 포함한 기단부(基壇部)와 비신(碑身), 그리고 비갓(碑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기단부는 총 5단으로 제1단의 지대석 위에 제2단의 하대, 3단의 중대, 4단의 상대, 5단은 비신을 받는 수화(受花)이다.

이 가운데 2~4단의 하3단에는 격협간(格狹間)이 마련되어 있다. 하대는 상하 양단으로 구분되어 상단은 지대석과 같이 문양이 없고, 하단은 전후면 5개의 격협 간에 무궁화를 양각했다. 중대는 3개의 격협간에 전후면에는 무궁화, 양 측면에는 중앙의 무궁화를 축으로 연화를, 상대는 하나의 격협간에 무궁화를 양각했다. 기단부의 모든 단 및 비신과 비갓은 장방형이다. 비신은 하나의 오석이며 기단부의 제 5단인 연화양식의 수화에 받들어진 형태를 이루고 있다. 비갓 부분은 3단으로 중첩된 연화양식 위에 원월보주(圓月寶珠)를 올렸다.

성비의 총 높이는 583.7cm인데 구성에 따른 제원을 정리하면 1과 같다. 전통의 비석이 대체로 기단부를 귀부(龜趺), 비갓을 이수(螭首)로 조각해 온데 대하여 성비는 연화대 위에 소태산의 생애와 업적을 새긴 비신을 안치한 다음, 연화로 천개(天蓋)를 장식하고 그 위에 보주를 올려놓아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양식상에서 연화가 불교적 분위기라면 무궁화는 한국적 풍토를 상징하고 있어서 비명(碑銘)의 사상성과 일치하고 있다.

[비명의 찬술과 구성]

성비의 비신 4면에 음각된 글자 수는 모두 1,957자이다. 비제가 전서체(篆書體) 14자로 비신의 상단에 횡서로 새겨져 있고, ()1,818, ()112, ()13자로 예서체와 해서체를 섞어서 세로로 새겼다. 각 행은 50자를 배열하여 제1면에 15, 2면에 7, 3면에 15, 4면에 5행으로 모두 42행이다. 전문은 띄어쓰기가 없으며 문장의 마침표만 찍혀 있다. 서는 줄을 바꾸기 위해 6단락으로 나누었고, ‘대종사(大宗師)’라는 존칭 앞에 한 자를 띄는 방법으로 피휘(避諱)하고 있다.

서의 구성은 찬술연기에서 소태산 출현의 연기를 밝히고, 생애에서는 탄생과 출자(出自), 유시와 성품, 발심과 구도, 대각, 구세경륜의 천명, 교법제정과 개교, 교법의 요체, 제도사업과 열반, 유업의 계승을 밝힌 다음, 찬양 부분에서는 소태산의 인간상과 공덕을 찬탄하고 있다. 명은 서에서 밝힌 내용을 이념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문 41구의 운문체로 28구인데, 4구를 1단락으로 구분해서 보면 2와 같다.

또한 명문 가운데는 기년(紀年) 표시에 특히 유의하고 있는데, 서에서는 소태산의 탄생 기년을 석존기원(釋尊紀元) 2918년과 간지인 신묘(辛卯)를 함께 써서 불기(佛紀) 삼천년설을 따르고 있는데 그 당시 북방불교에서는 2918년으로 썼다. 그 후 세계불교도대회에서 현 남방불교설로 통일했다. 이는 정법(正法)상법(像法)계법(季法)의 삼시사상(三時思想)에 입각하여 소태산이 주세불(主世佛)로 출현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밖의 기년은 모두 간지로 사용하고 마지막의 건비(建碑) 연대만을 원기(圓紀)로 사용한 것은 새 회상(會上)의 기년표시에 의한 문화적 독자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성비명은 몇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졌다. 먼저 유허일 안의 대종사성탑비명병서(大宗師聖塔碑銘幷序)’와 이군일 안의 대종사성탑비명이 찬술되었으나 소태산대종사관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교단의 공의를 얻지 못하고 결국 당시 종법사인 정산이 직접 찬술하게 되었다. 정산은 소태산의 인간상을 집약하는 언어로 일월의 밝음(日月之明)’을 말하고 있는데(박정훈, 한 울안 한 이치에) 성비명의 대지(大旨)는 원불교 교단은 새 회상이며 소태산이 주세불임을 선포하는 데 있다.

[성비명의 전문]

대범 천지에는 사시가 순환하고 일월이 대명(代明)하므로 만물이 그 생성(生成)의 도를 얻게 되고 세상에는 불불(佛佛)이 계세(繼世)하고 성성(聖聖)이 상전(相傳)하므로 중생이 그 제도의 은()을 입게 되나니 이는 우주 자연의 정칙이다. 옛날 영산회상(靈山會上)이 열린 후 정법(正法)과 상법(像法)을 지내고 계법(季法)시대에 들어와서 바른 도가 행하지 못하고 삿된 법이 세상에 편만하며 정신이 세력을 잃고 물질이 천하를 지배하여 생령(生靈)의 고해(苦海)가 날로 증심(增深)했나니 이것이 곧 구주(救主)이신 대종사(大宗師)께서 다시 이 세상에 출현하시게 된 기연(機緣)이다.

대종사의 성은 박()씨요 휘는 중빈(重彬)이요 소태산(少太山)은 그 호이시니 석존기원(釋尊紀元) 2918년 신묘 327일에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탄생하시었다. 부는 박회경(朴晦傾) 모는 유정천(劉定天)이시요 신라시조왕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예이시다. 대종사 유시로부터 기상이 늠름하시고 도량이 웅대하시며 모든 사물에 매양 사색의 정신이 많으시고 한번 하기로 한 일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반드시 실천하는 용단력이 있으시었다.

9세시에 우주의 자연 현상을 보시고 큰 의심이 발하시었으나 그 의두(疑頭)를 풀기로 한즉 생각이 막연하여 도저히 구경처(究竟處)를 해득하기가 어려우매 대종사의 우울하신 심경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시사 처음에는 산신에게 다음에는 도사에게 의뢰를 구하여 보시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시고 필경은 주소일념(晝宵一念)이 오직 한 의심뿐으로 점점 계교돈망(計較頓忘)하는 삼매의 경계에 드시시었으니 이 사이에 생활의 곤란과 심신의 피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으시었다. 26세되시던 병진 326일 이른 아침에 동천의 서광을 보시고 정신이 문득 상쾌해지시며 적세에 맺혔던 의두가 풀리기 시작하여 드디어 대각(大覺)을 이루시었다.

대종사 대각을 이루신 후 전성(前聖)의 증오처(證悟處)를 참고하기 위하사 제가(諸家)의 경전을 열람하시다가 금강경(金剛經)을 보시고 가라사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은 진실로 성중성(聖中聖)이라 하시고 이에 부처님에게 연원(淵源)을 정하시고 다시 현 시국을 관찰하시매 세도(世道)가 이미 위기에 당하여 그 구제사업이 시급함을 생각하시고 처음 구인제자를 얻으사 최초법어(最初法語)를 설하신 후 영육쌍전(靈肉雙全)의 기초를 닦기 위해 먼저 저축조합을 설치하사 길룡리 해면의 간석지를 개척하시고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을 세우기 위해 기도서원(祈禱誓願)을 명하시었던 바 9인이 한 가지 혈인(血印)의 신성을 바치었다.

기미 8월에 2, 3제자를 데리시고 석장(錫杖)을 부안 봉래산에 옮기시어 5년간 주재하시며 교리제도(敎理制度)의 초안을 대략 마치신 후 갑자 4월에 하산하시어 총부(總部)를 차() 신룡리에 건설하시고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공개하사 제자 수 10인으로 더불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간고한 생활을 하여가며 교리훈련을 시작하시었나니 교리의 대강은 일원(一圓)을 최고종지(最高宗旨)로 하여 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는 동시에 천만사리(千萬事理)를 다 이에 통일케 하시고 사은사요(四恩四要)를 윤리로 하여 종전에 미달한 모든 윤리를 다 통하게 하시고 삼학팔조(三學八條)를 수행으로 하여 종전에 편벽된 일체 수행을 병진하게 하시며 다시 영육쌍전(靈肉雙全) 이사병행(理事並行)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등 대체를 밝히사 사통오달의 원융한 도로써 모든 법을 간이능행(簡易能行)케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교리 훈련을 실시하시는 일방 다시 생활제도의 개선에 착수하사 허례산삭(虛禮刪削)과 미신타파(迷信打破)며 자작자급(自作自給)과 수지대조(收支對照) 등 방법으로써 새로운 사업기초를 쌓으사 춘풍추우(春風秋雨) 20여년에 숙야근간(夙夜勤懇)하시와 일정(日政)의 압제와 싸워가며 모든 난관을 극복하시어 교단 건설에 오로지 심혈을 다하시더니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하여 계미 516일에 대중을 모으시고 생사진리(生死眞理)의 대법문(大法門)을 최후로 설하신 후 61일에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니 세수는 53이요 개법(開法)28년이었다.

때에 도중(度衆)들은 반호벽용(攀號擗踊)하여 그칠 줄을 몰랐고 일반 사회의 차탄(嗟嘆)하는 소리 연하여 마지아니했으며 허공법계(虛空法界)와 삼라만상이 다같이 오열(嗚咽)하는 기상을 보이었다. 그 후 교단은 한결같이 선사(先師)의 유업을 이어 시국의 만난(萬難)을 겪으며 대중이 일심동진(一心同進)하던 중 을유 8월에 민족이 해방이 되자 신생국운의 발전과 아울러 교세가 점차 확장되매 병술 4월에 교명을 원불교(圓佛敎)라 정하고 이를 천하에 공시했다.

오호라, 대종사는 일찍이 광겁종성(曠劫種聖)으로 궁촌변지(窮村邊地)에 생장하시어 학문의 수습이 없었으나 문리를 스스로 알으시고, 사장(師長)의 지도가 없었으나 대도를 자각하시었으며 판탕(板蕩)한 시국을 당했으나 사업을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완강한 중생을 대할지라도 제도의 만능이 구비하시었으며, 기상은 태산교악(泰山喬嶽)같으시나 춘풍화기(春風和氣)의 자비가 겸전하시고, 처사는 뇌뢰낙락(磊磊落落)하시나 세세곡절(世世曲節)의 진정을 통해주시며, 옛 법을 개조하시나 대의는 더욱 세우시고, 시대의 병을 바루시나 완고에는 그치지 않게 하시며, 만법을 하나에 총섭하시나 분별은 오히려 역력히 밝히시고, 하나를 만법에 시용(施用)하시나 본체는 항상 여여히 드러내사, 안으로는 무상묘의(無上妙義)의 원리에 근거하시고 밖으로는 사사물물(事事物物)의 지류(支流)까지 통하시어 일원대도(一圓大道)의 바른 법을 시방삼세에 한없이 열으시었으니, 이른바 백억화신(百億化身)의 여래(如來)시요 집군성이대성(集群聖而大成)이시라, 영천영지 천만겁(永天永地 千萬劫)에 무량한 그 공덕을 만일(萬一)이라도 표기(標記)하기 위해 이 돌을 세우고 이 명()을 지어 가로대, 월약종사 광겁종성(粵若宗師 曠劫種聖) 응화기연 구세도중(應化機緣 救世度衆) 자수자각 경로간난(自修自覺 經路艱難) 건교사업 평지조산(建敎事業 平地造山) 일원대도 만법지모(一圓大道 萬法之母) 교문통달 중성공회(敎門通達 衆聖共會) 이팔년간 숙야근간(二八年間 夙夜勤懇) 천만방편 무량법문(千萬方便 無量法門) 법륜부전 불일중휘(法輪復轉 佛日重輝) 인천함대 육중동귀(人天咸戴 六衆同歸) 수긍삼제 횡편시방(竪亘三際 橫遍十方) 우로지택 일월지명(雨露之澤 日月之明) 무변공덕 표이사석(無邊功德 標以斯石) 영천영지 모앙무극(永天永地 慕仰無極) 원기38426일 입()”

[성비명의 해석과 의의]

월약종사 광겁종성: 오호라 소태산대종사께옵서는 무시광겁에 성인으로 계시사응화기연 구세도중: 기연따라 응화신으로 나투시어 세상을 구하고 중생을 건지셨도다.

자수자각 경로간난: 스스로 닦고 홀로 깨치셨으니 그 경로는 실로 온갖 어려움이었고. 건교사업 평지조산: 교단을 세우는 일은 평지에 산을 쌓으심이셨도다.

일원대도 만법지모: 일원의 대도는 만법의 모체시오. 교문통달 중성공회: 교문은 사통오달하니 뭇 성인이 함께 모이도다.

이팔년간 숙야근간: 제도(濟度) 사업 28개 성상(星霜)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의를 다하시어.

천만방편 무량법문: 천만 가지의 방편과 무량한 법문을 베푸셨도다.

법륜부전 불일중휘: 법륜 다시 구르고 불일 거듭 빛나니.

인천함대 육중동귀: 인천이 다 같이 봉대(奉戴)하고 육도중생(六途衆生)이 함께 귀의하도다. 수긍삼제 횡편시방: 위 아래는 삼세(三世)에 미치고 옆으로는 시방에 두루하니.

우로지택 일월지명: 우로의 혜택이요 일월의 광명이로다.

무변공덕 표이사석: 무량무변의 공덕을 이 돌에 새기니,

영천영지 모앙무극: 영원한 천지에 흠모숭앙(欽慕崇仰)이 한이 없도다.

이 대종사 성비는 대종사관을 상징하는 금석문이다. 성비명에는 소태산이 출현한 의의와 구도 및 대각, 그리고 회상을 건설하며 구세경륜을 펴 나간 생애와 업적이 드러나 있다. 이에 나타난 내용은 소태산을 새 주세불로 규정하고 있으며, 원불교는 석존의 영산회상에 연원을 둔 새 회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단 만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산이 찬술한 유려한 문장과 원기의 사용 및 찬자명을 밝히지 않는 등으로 원불교 금석문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원불교대사전)

★★★★★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15 부촉품(附囑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촉품(附囑品) 18장  (0) 2015.01.03
부촉품(附囑品) 17장  (0) 2015.01.03
부촉품(附囑品) 15장  (0) 2015.01.03
부촉품(附囑品) 14장  (0) 2015.01.03
부촉품(附囑品) 13장  (0)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