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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교리공부(敎理工夫)

<교리강좌> 일상수행의 요법⑤

<교리강좌> 일상수행의 요법⑤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24호] 1970년 05월 15일 (금) 원불교신문 webmaster@wonnews.co.kr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가르치는 사람으로 돌리자.
이 땅의 역사는 어느 나라 역사에 못지 않게 길다 하여도 그 역사에 비례하는 전통이 희박하다고 사가들은 지적한다.
기나긴 역사 가운데 창조적 역량으로 쌓아올린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의 자취를 찾기에는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대종사께서 말씀하기를 지난 날 우리 사회에 크게 결함 되었던 조목을 지적하신 가운데 「가르칠 줄 몰랐던 면」을 제시하고 있다.
제도상으로 특수계급이었던 양반만을 가르쳐 왔고,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천민은 가르치지 않았으며, 적자는 가르쳐왔으나 서자는 가르치지 안 했으며, 남자는 가르쳤으나 여자는 가르치지 않는 편벽된 가르침을 받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인재들은 계발하지 못한 채 땅에 묻혔던 흔적이 엿보인다. 「우리 민족의 재능이 외국 문명국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큰일을 했을 것인가」 하는 무모한 아쉬움까지 생각하면서, 이제는 그 누구라도 올바르게 계발하여 가르치는 사회 풍토를 조성해야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종사께서는 자기 자녀가 없는 부부들이라도 낙망하지 말고 타자녀 교육을 하면 자기 자녀와 다름없는 보람을 느낄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문명국을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반성하건데, 사소한 기술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자기만 알고 남은 가르치지 아니하여 폐쇄된 풍토가 이 땅을 낙후되게 한 원인이 되지는 아니하였을까.
흔히 지난 날 잘 가르친다는 집안에 대보면 도리어 완고하고 고루한 묵은 관념에 젖어 사회를 발전 향상 시킬만한 능력을 잃어버리고 도리어 신문명을 받아들일 능력조차 상실했던 역사를 뒤져볼 때 우리의 지난날을 깊이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종사께서 사회를 진화하게 하는 방안으로 「배울 자리에 배우고 가르칠 자리에 가르쳐야 한다」하였다. 배울 자리에 배우고 가르칠 자리에 가르치는 법이 원만히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어느 곳에 비할 수 없이 발전될 것으로 믿는다.
특히 지도자로서 가르칠 자리에서 잘 가르치는 노력은 더욱 더 중대한 과제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것인가 하는 과제에 앞서 정신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증애에 사로잡히지 않은 가르침, 편당성을 갖지 않는 가르침, 해심이 없는 가르침이어야 하며 또한 이 가르침을 통하여 더욱 안정되고, 더욱 밝아지고, 더욱 열려지는 힘이 되도록 하여야만 잘 가르치는 정신자세라 믿는다.
<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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