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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6 변의품(辨疑品)

제6 변의품(辨疑品) 1장

대종경(大宗經)

6 변의품(辨疑品) 1

대종사 선원 경강(經講) 시간에 출석하사 천지의 밝음이라는 문제로 여러 제자들이 변론함을 들으시다가,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천지에 식()이 있다고 하는가 없다고 하는가.] 이 공주 사뢰기를 [천지에 분명한 식이 있다고 하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무엇으로 식이 있는 것을 아는가.] 공주 사뢰기를 [사람이 선을 지으면 우연한 가운데 복이 돌아오고 악을 지으면 우연한 가운데 죄가 돌아와서, 그 감응이 조금도 틀리지 않사오니 만일 식이 없다 하오면 어찌 그와 같이 죄복을 구분함이 있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그 구분하는 증거 하나를 들어서 아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하여 보라.] 공주 사뢰기를 [이것은 평소에 법설을 많이 들은 가운데 꼭 그렇겠다는 신념만 있을 뿐이요, 그 이치를 해부하여 증거로 변론하기는 어렵나이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지경은 알기도 어렵고 가령 안다 할지라도 충분히 증명하여 보이기도 어려우나, 이제 쉬운 말로 증거의 일단을 들어 주리니 그대들은 이것을 미루어 가히 증거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통하여 볼지어다. 무릇, 땅으로 말하면 오직 침묵하여 언어와 동작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다 무정지물로 인증하나 사실에 있어서는 참으로 소소 영령한 증거가 있나니, 농사를 지을 때에 종자를 뿌려 보면 땅은 반드시 그 종자의 생장을 도와 주며, 또한 팥을 심은 자리에는 반드시 팥이 나게 하고, 콩을 심은 자리에는 반드시 콩이 나게 하며, 또는 인공을 많이 들인 자리에는 수확도 많이 나게 하고, 인공을 적게 들인 자리에는 수확도 적게 나게 하며, 인공을 잘못 들인 자리에는 손실도 나게 하여, 조금도 서로 혼란됨이 없이 종자의 성질과 짓는 바를 따라 밝게 구분하여 주지 아니하는가. 이 말을 듣고 혹 말하기를 "그것은 종자가 스스로 생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사람이 공력을 들이므로 나는 것이요, 땅은 오직 바탕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리라.

그러나, 종자가 땅의 감응을 받지 아니하고도 제 스스로 나서 자랄 수가 어디 있으며, 땅의 감응을 받지 아니하는 곳에 심고 거름하는 공력을 들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땅에 의지한 일체 만물이 하나도 땅의 감응을 받지 아니하고 나타나는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땅은 일체 만물을 통하여 간섭하지 않는 바가 없고, ···쇠의 권능을 사용하지 않는 바가 없으며, 땅뿐 아니라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니요, 일월 성신과 풍운 우로 상설이 모두 한 기운 한 이치어서 하나도 영험하지 않은 바가 없나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짓는 바 일체 선악은 아무리 은밀한 일이라도 다 속이지 못하며, 또는 그 보응을 항거하지 못하나니 이것이 모두 천지의 식이며 천지의 밝은 위력이니라. 그러나, 천지의 식은 사람의 희···락과는 같지 않은 식이니 곧 무념 가운데 행하는 식이며 상 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식이며 공정하고 원만하여 사사가 없는 식이라,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천지의 밝음을 두려워하여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감히 양심을 속여 죄를 범하지 못하며, 한 걸음 나아가 천지의 식을 체받은 사람은 무량 청정한 식을 얻어 천지의 위력을 능히 임의로 시행하는 수도 있나니라.]

현묘[玄妙]

진리가 한없이 넓고 깊어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것. 도리나 기예 같은 것이 깊숙하고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한 것.(원불교 용어사전)

소소영령[昭昭靈靈]

소소(昭昭)는 사리가 밝고 뚜렷한 모양을 말한다. 소소영령하다는 것은 마음이 깨어 있어 밝고 신령스러운 것을 묘사하는 용어이다. 정전염불법에서는 우리의 마음은 원래 생멸이 없으므로 무량수(無量壽)라 할 것이지만, 그 가운데에도 또한 소소영령하여 매()하지 아니한 바가 있으니 곧 각()이라고 했다. 우리의 본성이 원래 밝아서 어두워지지 않는 참된 지혜가 갖추어져 있어 본래 부처인 것을 말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영령[靈靈]

(1) 신령스러운 영혼. 영혼은 신령스러운 힘이 있으며, 또한 신령스러운 존재라는 뜻으로 쓰는 말.

(2) 본래의 성품은 신령스럽게 밝다는 뜻으로 영령하다고 표현한다. 정전좌선법우리의 마음은 원래 생멸이 없으므로 곧 무량수라 할 것이요, 그 가운데에도 또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하여 매()하지 아니한 바가 있으니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생멸성쇠[生滅盛衰]

생멸은 태어남과 죽음 또는 소멸의 의미. 성쇠는 성함과 쇠퇴함의 의미. 생멸은 유위(有爲)의 제법(諸法) 인연(因緣)의 화합에 의하여 아직 있지 않은 현상이 있게 되는 것을 생()이라 하고, 인연의 이산(離散)에 의하여 이미 있던 현상이 없게 되는 것을 멸()이라 한다. 생이 있는 것은 반드시 멸이 있다. 유위법(有爲法)이 이것이다. 생멸에도 찰나생멸(刹那生滅)과 일기생멸(一期生滅)이 있는데, 찰나생멸은 일찰나인 눈 깜짝할 사이에 있는 생멸이요, 일기생멸은 시간의 길고 짧음은 물론이고 났다가 없어질 때까지의 동안이니, 생과 멸을 나누어 말한다. 모든 유위법은 생성성쇠의 과정을 겪게 된다.(원불교대사전)

영기질[靈氣質]

[개요]

우주만유의 기본적 구성요소를 밝힌 것. 정산종사는 우주만유가 영과 기와 질로써 구성되어 있나니 영은 만유의 본체로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며 기는 만유의 생기(生氣)로서 그 개체를 생동(生動)케 하는 힘이며 질은 만유의 바탕으로서 그 형체를 이름이니라”(정산종사법어원리편13)고 했다. 정산이 영기질 법문을 하게 된 기연은 유일학림에서 학인과의 문답에서 찾을 수 있다.

학인이 만법귀일(萬法歸一)의 실체를 물은 데 대하여 정산은 기가 영지(靈知)를 머금고 영지가 기를 머금은지라 기가 곧 영지요 영지가 곧 기니 형상 있는 것, 형상 없는 것과 동물식물과 달리는 것, 나는 것이 다 기의 부림이요 영의 나타남이라 대성(大性)이란 곧 영과 기가 합일하여 둘 아닌 자리니라(氣含靈知 靈知含氣 氣則靈知 靈知則氣 有相無相 動物植物 走者飛者 氣之所使 靈之所現 大性者 卽靈氣合一無二者也)”(정산종사법어원리편14)고 했다.

또한 기와 영지가 둘이 아닌데 왜 식물에서는 영지를 볼 수 없느냐는 제자의 질문에 정산은 만물이 화생하는 데 구분이 있나니 영지가 주()가 되어 기운을 머금은 즉 동물이 되고 기운이 주가 되어 영지를 먹음은 즉 식물이라 동물은 개령(個靈)이 있으나 식물은 대령(大靈)만 있나니라고 했다. 이어 대령과 개령과의 관계에 대하여 답하기를 마음이 정한즉 대령에 합하고 동한즉 개령이 나타나 정즉합덕(靜則合德)이요 동즉분업(動則分業)이라 사람이 죽어서만 대령에 합치는 것이 아니라 생사일여(一如)니라”(정산종사법어원리편15)고 했다.

[영기질의 해석]

영은 우주만유의 본바탕이면서 영원불멸한 성품이다. 성품은 우주만유의 본래이면서 마음의 참모습이다. 이렇게 영은 밖으로 우주만유와 안으로 마음을 통관하는 진리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은 주관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주관과 객관을 통관한 절대적 진리인 것이다. 우주만유는 영원불멸한 영과 만유를 생생약동케 하는 기와 만유의 바탕이 되는 질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한 이치 한 기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기질은 성리학의 이(理氣質)과 관련이 있다. 성리학의 이()는 근본과 법칙의 의미이다. 이는 우주만유의 근본이면서 법칙인 것이다. 이것은 철학적 원리이며 우주만유를 철학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질의 영은 성리학의 근본과 법칙이라는 의미를 수용하면서 신령한 앎(靈知)’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더 밝혔다. 이것은 정산의 영질이 성리학의 이질에 바탕하면서도 이를 넘어서는 종교사상으로의 전개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기 속에 영지가 있고 영지 속에 기가 있으므로 영지가 곧 기이며 기가 곧 영지인 것이다.

우주만유는 영지와 기와 형체()로 되어 있다하나, 실제로 그것들이 각각 나누어진 것은 아니다. 우주만유 전체를 영지(신령한 앎)로 보면 모두가 영지요, 그 가운데 기운()과 형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우주만유 전체를 기운과 질로 보면 모두가 기운과 형체요, 그 가운데 영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 된다. 땅 위를 달리는 동물, 공중을 나는 조류, 또한 식물 등은 기운의 작용이며 영의 나타난 바이다. 이와 같이 영과 기가 합일해서 둘이 아닌 것을 큰 성품이라 한다. 우주만유는 영이 나타나고 기의 작용으로 생생약동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영과 기는 하나로 뭉쳐 있다.

영과 기가 하나로 뭉치면 우주만유를 진동케 하는 큰 위력이 나타난다. 영지가 주()가 되어 기운을 머금은 즉 동물이 되는 것은 영지와 기운이 함께 작용하되 기운보다 영지의 작용이 강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기운이 주가 되어 영지를 머금으면 식물이 되는 것은 식물의 바탕에 영지가 깔려 있으면서 기운이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식물에게도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면 싱싱하게 잘 자란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는데, 이것은 식물의 바탕에 영지가 깔려 있기 때문인 것이다.

동물은 개령이 있으나 식물은 대령만 있다는 것은, 동물의 각각에 영지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며, 식물의 각각에는 거의 영지가 작용하지 않고 그 밑바닥에 영지가 깔려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대령과 개령의 관계에 있어 마음이 정한 즉 대령에 합한다는 것은 마음이 지극한 정()에 들어 개령이라는 분별이 완전히 끊어진 경지이다. 또한 동한 즉 개령이 나타난다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에 나()라는 분별을 일으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즉합덕이라는 것은 마음이 지극한 정()에 들어 대령과 합한 경지이며, 동즉분업이라는 것은 마음이 움직여 지은 바 업에 따라 나누어져 개령으로 나타난 것이다.

대령은 바다이며 개령은 파도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바다가 지극히 고요하면 이것이 곧 대령의 경지이며, 바다가 움직여 파도로 나타나면 이를 개령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다와 파도는 같은 물이듯이, 대령과 개령도 원래 하나이다. 같은 물이지만 이를 하나로 보면 바다이며 나누어서 보면 파도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로 보면 대령이며 나누어서 보면 개령인 것이다. 또한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모두 대령에 합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분별과 주착을 완전히 끊어야 대령에 합하는 것이니, 살아있을 때도 라는 분별과 주착을 완전히 끊으면 대령에 합하는 것이다.

우주만유의 자연현상은 법신불의 체(), 그 체 가운데 한 기운이 순환하여 천변만화를 행하는 것은 법신불의 용()이요, 그 체용 가운데 형상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어서 무엇으로 가히 말할 수가 없으나 항상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엄연히 체용을 주재하는 것은 법신불의 영지니 체와 용과 영지가 다 법신불 하나이며 우리들의 육체와 기운과 마음도 또한 법신불의 한 분자로서 서로 통하여 둘이 아니니”(예전원기37년판)라 했다.

우주만유의 자연현상은 법신불의 체요정산종사법어예도편 9장에서는 우주만유의 본원은 법신불의 체요라 바뀌어져 있다. ‘우주만유의 자연현상을 법신불의 체라고 한 것은 법신불의 영지가 자연현상까지 가득 찼음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자연현상을 움직이게 하는 기운을 법신불의 용이라 하며, 체와 용을 주재하는 것이 법신불의 영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산은 체와 용과 영지가 다 법신불이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우주만유의 본원은 법신불의 체라고 하면 본원(근본)은 체가 되고 그 본원을 움직이는 기운이 용이 된다. 이렇게 되면 본원이라는 근본이 중심이 되고 자연현상은 소외가 되는데, 이것이 곧 성리학의 체용논리이다. 이러한 근본중심의 성리학이 조선조 중기까지 지배해왔으며, 이에 대한 반동으로 조선조 후기에 현상을 중심한 실학이 일어났다. 정산은 우주만유가 모두 법신불 아님이 없으므로”(정산종사법어원리편1)라 하여, 우주만유 모두가 법신불이라고 했다.

정산의 일원상 해석의 틀인 진공묘유인과와 영질을 대비시켜, “명상으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요, 그 진공한 중에 또한 영지불매하여 광명이 시방을 포함하고 조화가 만상을 통하여 자재하나니 이는 일원의 묘유요, 진공과 묘유 그 가운데 또한 만법이 운행하여 생멸거래와 선악업보가 달라져서 드디어 육도사생으로 승급, 강급하나니 이는 일원의 인과인 바 진공과 묘유와 인과가 서로 떠나지 아니하여 한 가지 일원의 진리가 되나니라”(정산종사법어원리편2)고 했다.

진공한 경지와 진공체에 바탕한 영지의 광명은 영이라 할 수 있고, 묘유의 조화력은 기라 할 수 있으며, 인과의 법칙으로 조화가 나타난 형질은 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질은 통합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정산은 영질을 우주와 인간의 두 측면에 적용시켜 설명한다.

천지만물이나 사람이나 영과 기와 질의 세 가지로 구성된 바 영이라 함은 안 보이는 것이나 형상 있고 없는 것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천지는 대령이요, 사람은 개령인데 합치면 하나가 되는 것이며, 기라 함은 조화를 나투게 하는 힘으로써 천지에는 사시순환이나 풍운우로상설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고 사람에는 호흡하고 동작하는 것이며, 질이라 함은 이의 바탕으로서 천지에는 땅이고 사람에게는 뼈와 살이다. 그런데 이 삼합(三合)이 조화가 잘 되면 천지나 사람이나 이상이 없는데 조화가 잘 못되면 천지에 괴변이 생기고 사람에 병고가 일어난다”(한 울안 한 이치에)고 했다.

인간의 경우에 초점을 맞추면 영은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을 주재하는 마음이며, 기는 호흡, 신진대사 등의 생명활동이며, 질은 영과 기가 존재하는 바탕으로서 몸을 지탱하는 뼈와 살을 의미한다.

[영기질과 천지의 식]

소태산대종사는 땅뿐 아니라 하늘과 땅이 둘이 아니요 일월성신과 풍운우로상설이 모두 한 기운 한 이치어서 하나도 영험하지 않은 바가 없나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짓는 바 일체 선악을 천지가 다 알지 아니한 바가 없어서아무리 은밀한 일이라도 가히 속이지 못하며 또는 그 보응을 항거하지 못하나니, 이것이 모두 천지의 식(, 알음)이며 천지의 밝은 위력이니라”(회보11)고 했다. 사람이 짓는바 일체선악을 천지가 다 알지 아니한 바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천지에 소소영령하게 다 아는 신령한 앎 곧 영지(靈知)와 천지의 밝은 위력이라는 큰 기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정산의 영질은 소태산의 천지의 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이 짓는바 일체선악은 그 보응을 항거하지 못한다는 것은 천지의 식 곧 신령한 앎이 인과보응을 나타낸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천지가 다 알지 아니한 바가 없어서라는 구절이 대종경변의품 1장에는 빠지고 대신 곧 사람이 짓는 바 일체선악은 아무리 은밀한 일이라도로 되어 있다.

()가 무엇인가에 대한 학인의 질문에 정산은 ()라고 하면 알기 어렵다. ()이라 하면 쉽지 않느냐. 우주에도 영이 있고 사람에게도 영이 있다. 우주의 영은 대령(大靈)이요 사람의 영은 소령(小靈=個靈)이다”(한 울안 한 이치에)고 했다. 정산은 우주의 영과 사람의 영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우주로 보면 대령이며 사람으로 보면 개령인 것이다.

불교의 법신불이나 도교의 무위자연이나 유교의 무극이나 천주교의 하나님이 진리의 체를 밝혔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논리가 정연하지 못한 감이 있는데 일원상서원문은 전무후무한 원만한 대법이며 또는 유교에서 말하는 심성이기(心性理氣)가 대체는 옳으나 개령과 육도윤회는 설명할 수 없는데 영기질은 과거에 밝히지 못한 점을 밝혔다”(한 울안 한 이치에)고도 했다.

정산은 불교에서 법신불(法身佛)을 체로 보는 것이나, 도교에서 도()를 근본으로 보는 것이나, 유교에서 무극(無極)을 근본으로 보는 것이나, 천주교에서 하느님을 초월적으로 보는 것은 진리의 체만을 밝혔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산은 불교도교유교천주교가 근본이나 초월성을 중심으로 밝히고 있음에 대하여, 우주만유의 자연현상이 법신불의 체라고 밝혀 과거의 종교가 보여 온 근본이나 초월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원불교대사전)

[천지에 식(識)이 있는가?]

<정현인 교무>

빅브라더는 속일 수 있으나 천지의 식은 속일 수 없다.

조지 오웰은 <1984>이라는 소설에서 발달된 전자시스템을 이용하여 모든 국민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시 통제하는 빅브라더를 출연시키고 있다.

대종사는 변의품 1장에서 천지의 식()’이 있음을 말씀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나 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빅브라더는 민주와 창의를 말살하는 우울한 감시 시스템임에 비하여, ‘천지의 식은 지극히 밝으며 정밀하여 능히 속일 수 없으되, 인간이 수행을 통하여 그 본성에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의 시스템이다.

또한 빅브라더의 감시는 피할 수 있다. 인위와 유념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천지의 식은 속일 수 없다. 무념의 감응이기 때문이다.

천지의 식은 하나라는 점에서 본다면 두렷한 하나이지만 여럿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참으로 다양한 것이 식의 소재이다.

식의 작용을 보면 농사지을 때 콩은 콩, 팥은 팥으로 성장하게 하는 미시의 세계(micro cosmos)에만 식이 관련된 것이 아니고, 천지와 일월성신 따위 거시의 세계(macro cosmos) 또한 식의 보응이 소소영령하다.

지구에도 식이 있다는 설을 가이아(Gaia)이론이라 하는데 인간이 환경오염 따위로 지구를 괴롭히는 바람에 가이아는 힘들어 하고 있다. 대종사의 가르침을 통하여 우리는 지진이니 해일이니 기상이변이니 하는 것들이 가이아라 부르는 지구 식의 반작용임을 알게 된다.

천지의 식을 깨친 이는 이를 바르게 보고 바르게 활용하여 진급을 하며, 미한 중생은 착각으로 그릇 운용함에 따라 괴로움과 강급을 자초한다.

착각을 정각으로 바루어 나가는 것이 식의 위력을 본받는 수행이며, 인과율을 포함한 식의 신령한 감응에 경건함으로 다가서는 것이 신앙이다.

봄이 오면 남 먼저 자태를 뽐내는 홍매화에서 천지의 식을 발견하고 행복해 하며, 흙과 물과 바람을 보며 나와 하나임을 명상할 때에 우리는 천지의 식과 하나 된다. 인간은 천지의 식을 갊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지의 식은 일원의 식과 같은 것이어서, 본래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 표현조차 어려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이 하늘과 땅을 통어하고 만물을 빠짐없이 살려내는 우주적 대 생명의 앎의 작용인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