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43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처음 발심한 사람이 저의 근기도 잘 모르고 일시적 독공(篤工)으로 바로 큰 이치를 깨치고자 애를 쓰는 수가 더러 있으나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몸에 큰 병을 얻기 쉽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퇴굴심(退屈心)이 나서 수도 생활과 멀어질 수도 있나니 조심할 바이니라. 그러나, 혹 한 번 뛰어서 불지(佛地)에 오르는 도인도 있나니 그는 다생 겁래에 많이 닦아 온 최상의 근기요 중·하(中下)의 근기는 오랜 시일을 두고 공을 쌓고 노력하여야 되나니, 그 순서는 첫째 큰 원이 있은 뒤에 큰 신(信)이 나고, 큰 신이 난 뒤에 큰 분(忿)이 나고, 큰 분이 난 뒤에 큰 의심이 나고, 큰 의심이 있은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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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發心]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 불교적 의미로는 발보리심(發菩提心)의 의미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을 의미한다. 불교 일반적으로는 불문(佛門)에 들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킴의 의미로도 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발심을 신성취발심(信成就發心)ㆍ해행발심(解行發心)ㆍ증발심(證發心)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이외에도 결정발심과 부정(不定)발심의 두 가지가 있다. 결정발심은 한번 일으킨 발심이 중도에 변하거나 퇴전하지 않는 발심이다. 이런 발심을 ‘초발심이 곧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初發心是便正覺)’라고 하는 것이다. 부정발심은 한번 일으킨 발심이 경계따라 변하거나 중도에 퇴전하는 발심이다. 이런 발심은 쉽사리 도를 이루기 어렵다. 대개의 사람들은 부정발심이기 때문에 성불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수행인은 결정발심을 일으켜야 한다.(원불교대사전)
독공[篤工]
열성을 가지고 착실하게 공부하는 것. 독공(篤功)은 마음공부를 잘하기 위해 열성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고, 독공(篤工)은 지식공부를 잘하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다. 처음 발심한 사람이 자기의 근기도 잘 모르고 일시적 독공으로 바로 큰 이치를 깨치고자 애를 쓰는 수가 더러 있으나 그러한 마음을 가지면 몸에 큰 병을 얻기 쉽고,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퇴굴심(退屈心)이 나서 수도 생활과 멀어질 수도 있나니 조심할 것이다(《대종경》 수행품43). 공부를 할 때에 육신을 돌보지 않고 너무 독공을 하여 몸을 상한다거나 또는 육신만 위하고 공부에 방종하는 사람은 다 공부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자기의 정신과 육신의 정도를 보아 능히 놓고 능히 잡을 줄 알아야 병 없는 공부를 성취할 수 있다(《정산종사법어》 권도편42).(원불교대사전)
퇴굴심[退屈心]
수도인이 순역 경계에 부딪쳐서 정진하지 못하고 물러서거나 타락하는 마음. 소태산대종사는 처음 발심한 사람이 자신의 근기도 잘 모르고 일시적 독공(篤功)으로 바로 큰 이치를 깨치고자 애를 쓰는 사람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퇴굴심(退屈心)이 나서 수도 생활과 멀어질 수도 있다고 경계하며 중ㆍ하(中下)의 근기는 오랜 시일을 두고 공을 쌓고 노력하여야 되는데 그 순서는 첫째 큰 원이 있은 뒤에 큰 신(信)이 나고, 큰 신이 난 뒤에 큰 분(忿)이 나고, 큰 분이 난 뒤에 큰 의심이 나고, 큰 의심이 있은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대종경》 수행품43).(원불교대사전)
불지[佛地]
(1) 부처님의 경지. 중생이 수행하여 보살의 경지를 거쳐 최후에 도달하게 되는 부처님의 경지. 즉 원불교인이 이상으로 하는 최상구경인 대각여래위의 경지.
(2) 부처님의 땅, 부처님의 나라. 불국토ㆍ극락정토를 말한다.(원불교대사전)
대각[大覺]
[개요]
불(佛)의 진리에 대한 각오(覺悟)를 지칭하는 것으로 각지(覺知)의 이상적 상태. 원불교에서는 일원(一圓)의 진리를 크게 깨침을 말한다.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 존재의 원리와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 곧 인간의 행위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통달한 상태를 말한다.
[내용]
석가모니불의 깨달음(覺)을 정등각(正等覺)이라 하는데 정(正)이란 사곡(邪曲)에 대한 중정(中正)을 뜻하며 등(等)은 편파에 대한 평등 보편을 말한다. 성문과 보살도 깨달음이 있으나 불충분해서 성문은 자각(自覺)밖에 못하고 보살은 자각각타(自覺覺他)가 이루어지나 원만치 못함에 비하여 오직 부처만이 실상(實相)을 완전히 깨달아 자각각타가 원만히 이루어지므로 대각이라 한다. 《대종경》 여러 곳에서는 대원정각(大圓正覺)이라는 용어가 나타난다. 곧 일원의 진리를 크게 원만하게 바르게 깨친 경지를 이름이다. 소태산대종사는 26세(l916)의 젊은 나이로 대각을 이루고 그 각증(覺證)한 진리의 내용을 《대종경》 서품 1장에 밝혔다.
“원기 원년 3월 26일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말씀하시기를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좀더 구체적으로 일원의 진리가 어떠한 것이며 그 진리를 깨치면 무엇을 알게 되는가를 《정전》에서 찾아보면, ‘일원상 진리’장에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이며,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 명상(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로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라고 명시되어 있다.
《정전》 ‘일원상 법어’에 원상(圓相)의 진리를 각증하면 알아지는 대각의 내용이 자세히 밝혀져 있다. “이 원상의 진리를 각(覺)하면 시방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줄을 알며 또는 생ㆍ로ㆍ병ㆍ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구족한 것이며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이상은 대각의 내용이다. 대각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대종경》 불지품 20장에 “이것이 곧 우주의 본가이니 이 가운데는 무궁한 묘리와 무궁한 보물과 무궁한 조화가 하나도 빠짐없이 갖추어 있나니라” 했다.
또, 그 집의 주인되는 방법에 대하여 “삼대력(三大力)의 열쇠를 얻어야 들어갈 것이요, 그 열쇠는 신ㆍ분ㆍ의ㆍ성(信忿疑誠)으로써 조성하나니라” 했다. 위에서 인거한 법문을 통해보면 삼대력의 열쇠를 얻어야 대각할 수 있고 또 그 열쇠는 신ㆍ분ㆍ의ㆍ성으로 조성된다. 곧 정신수양(精神修養)ㆍ사리연구(事理硏究)ㆍ작업취사(作業取捨)의 삼학을 병진하여 구경에 삼대력을 얻을 때 곧 대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종경》 신성품 3장에 “한 제자 여쭙기를 ‘저는 본래 재질이 둔하온데 겸하여 공부하온 시일이 아직 짧사와 성취의 기한이 아득한 것 같사오니 어찌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도가의 공부는 원래 재질의 유무나 시일의 장단에 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 정진하고 못하는 데 큰 관계가 있나니 누구나 신ㆍ분ㆍ의ㆍ성만 지극하면 공부의 성취는 날을 기약하고 가히 얻을 수 있나니라’” 했으니 삼학 공부를 하는데 진행사조(신ㆍ분ㆍ의ㆍ성)의 촉진과 사연사조(불신ㆍ탐욕ㆍ나ㆍ우)의 제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또한 《대종경》 수행품 43장에 불지(佛地)에 오르기 위한 순서가 밝혀져 있으니 “첫째, 큰 원(願)이 있은 뒤에 큰 신(信)이 나고 큰 신이 난 뒤에 큰 분(忿)이 나고 큰 분이 난 뒤에 큰 의심이 나고 큰 의심이 있은 뒤에 큰 정성이 나고 큰 정성이 난 뒤에 크게 깨달음이 있으며 깨달아 아는 것도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있나니라” 하여 공부하는 차서를 밝혔다.
《대종경》 수행품 46장에서는 “우연히 한 생각을 얻어 지각(知覺)이 트이고 영문(靈門)이 열리게 된 후로는 하루에도 밤과 낮으로 한 달에도 선후 보름으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변동이 생겼고 이 변동에서 혜문(慧門)이 열릴 때에는 천하에 모를 일과 못할 일이 없이 자신이 있다가도 도로 닫히고 보면 내 몸 하나도 어찌할 방략이 없어서 나의 앞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걱정이 새로 나며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의심도 나더니 마침내 그 변동이 없어지고 지각이 한결같이 계속되었노라” 했다.
이상에서 소태산의 대각 과정을 엿볼 수 있고 대각은 꼭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천통 만통이 거듭하여 대원정각을 이루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종경》 성리품 1장에 “대종사 대각을 이루시고 그 심경을 시로써 읊으시되 ‘청풍월상시(淸風月上時)에 만상자연명(萬像自然明)이라’ 하시니라” 했으니 대각은 지식의 집대성이 아니고 참 지혜의 혜일(慧日)이 떠오르면 고루 모든 진리에 통달함을 알 수 있다. 대원정각을 이룬 사람의 능력과 인격을 보면 《대종경》 불지품 10장에 “천조의 대소 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 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니라” 했다.
《대종경》 불지품 5장에는 “모든 법에 통달하신 큰 도인은 능히 만법을 주물러서 새 법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묵은 법을 뜯어 고치기도 하시나 그렇지 못한 도인은 만들어 놓은 법을 쓰기나 하고 전달하기는 할지언정 창작하거나 고치는 재주는 없나니라”고 했다. 대각성자는 만중생을 건질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 능력과 그 법이 그 시대에 맞지 않을 때는 뜯어 고치는 능력이 있으니 법위등급을 표준하면 출가위 이상의 도인이다.
그리고 대각 도인은 현재 모든 종교의 교리도 정통하며 원근 친소와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서 일체생령을 위해 천신만고와 함지사지를 당하여도 여한이 없고, 대자대비로 일체생령을 제도하되 만능이 겸비하여 천만 방편으로 수기응변(隨機應變)하여 교화하되 대의에 어긋남이 없고 교화받는 사람으로서 그 방편을 알지 못하게 하며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 사람이라 했다(《정전》 법위등급). 요약하면 대각은 일원의 진리를 크고 원만하고 바르게 깨치는 것, 대원정각(大圓正覺)의 준말이다.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확실하게 깨치는 것,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분명하게 깨치는 것을 말한다.(원불교대사전)
대원정각[大圓正覺]
원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큰 깨달음의 경지. 진리를 원만하고 크고 바르게 깨닫는 것. 소태산대종사의 대각을 말한다. 부처의 경지도 천층만층이 있고,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도 크고 작고, 넓고 좁고, 깊고 옅고, 영원하고 일시적인 차이가 있다.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하늘을 쳐다보아도 하늘을 본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하늘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진리의 한 부분만을 깨치고서 진리 전체를 깨친 것처럼 착각하는 수가 있다. 대원정각은 진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진리 전체를 크고 바르게 깨친 경지이다. 도통과 영통은 대원정각을 못해도 얻을 수 있다. 대원정각은 진리를 가장 원만하고 크고 바르게 깨친 경지이므로 도통ㆍ영통ㆍ법통을 다 얻을 수 있다.
출가위 도인이 되어야만 대원정각을 할 수 있고, 대원정각을 하면 순일(純一)한 도심(道心), 공심(公心), 희사심으로 마음도 화(和)하고, 기운도 화하고, 사람도 화하게 하여 모든 계한(界限)과 국한(局限)이 툭 트여진 도인이 된다. 그리하여 남녀의 상(相)도 초월하고, 자타(自他)의 상도, 원근 친소의 상도 초월하여 모든 사상에 얽매이고 구애된 바 없이 활달자재(闊達自在)한 기풍과 원융무애하고 호호탕탕한 기상으로 세상일을 내 일로 알아 제도사업에 헌신 봉공한다.
소태산은 “공부가 최상 구경에 이르고 보면 세 가지로 통함이 있나니 그 하나는 영통(靈通)이라, 보고 듣고 생각하지 아니하여도 천지 만물의 변태와 인간 삼세(三世)의 인과보응을 여실히 알게 되는 것이요, 둘은 도통(道通)이라, 천조의 대소 유무와 인간의 시비 이해에 능통하는 것이요, 셋은 법통(法通)이라, 천조의 대소 유무를 보아다가 인간의 시비 이해를 밝혀서 만세 중생이 거울하고 본뜰 만한 법을 제정하는 것이니, 이 삼통(三通) 가운데 법통만은 대원정각을 하지 못하고는 얻을 수 없나니라”(《대종경》 불지품10)고 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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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있는 공부]
<영산선학대학교/장원경 교무>
수행품 43장 법문에서는 자기의 근기를 먼저 알고 독공으로 편수(編修)하지 않도록 경계하시면서 신·분·의·성으로 순서있는 공부를 하라고 하셨다.
수영 선수가 자기 실력에 맞는 코스를 택하는 것처럼 수행을 하는 데에도 자기 근기에 맞는 데에서부터 순서있게 해 나가야 한다. 공부를 하는 데에도 급한 마음을 두지 말고 스승의 지도에 복종하여 순서를 밟아 진행하면 마침내 성공의 지경에 이르지만 반대로 한 때의 편벽 된 수행으로 짧은 시일에 큰 도력을 얻고자 한다면 이는 한갓 어리석은 욕심이라고 하셨다.
날씨도 조금 차고 촉촉한 겨울비가 은근히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찬 겨울이 서서히 다가오듯이 우리 공부도 자연스럽게 순서를 찾아서 서서히 그러나 쉬지 않으면서 자기 근기에 맞게 합리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한다.
근기란 부처님의 법을 수행해 증득해 가는 능력을 말하며 보통 상근기·중근기·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의 차이는 학식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심·서원·신심·공부심에 따라 좌우된다. 스승은 제자의 근기에 따라 설법하고 교화하게 되며, 근기따라 도가의 인물 되어가는 것이 달라지게 된다.
이 장에서 대종사님은 중·하근기에 대하여 오랜 시일을 두고 공을 쌓고 노력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 말씀에 유의하여 편수에 흐르는 독공이 되지 않도록 일상 수행에 주의하여야 한다.
선(禪)중심의 편수에 흐르지 않고 또는 독공 위주의 일시적인 집중수행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삼학병진의 수행법을 여실히 실행하고 신·분·의·성으로 순서 있는 공을 쌓고 노력하여야 한다.
서원을 발한 이는 법을 찾게 되고 진리와 스승께 진실한 신을 바치게 된다. 그러므로 도를 구하는 사람이 스스로 힘써 서원을 키우면 자연중 마음에 신이 확실해지며 믿음이 진리계로 확대되어 큰 신을 이루어 가게 된다.
큰 신이 서면 자연중 '부처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하는 심정으로 크게 정진하는 분발심이 우러나오게 된다. 마음 공부에 크게 분발하여 삼학을 고르게 닦고 또 닦아서 사리간에 마음으로부터 증득함을 얻고자 하면 지금까지 믿음으로만 이해하고 접하여 오던 일체법이 모두 의단(疑團)으로 화하여 오직 알음알이에 그칠 뿐 적실히 깨닫지 못할 경지에 머무르게 된다.
신분의성으로 공부해갈 때도 공부인은 지나치게 조급한 마음으로 급히 하려 말고 자기 근기에 맞게 서서히 진행하면서 다만 꾸준히 닦는 길이 가장 원만한 수행길이 될 것이라 확신하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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