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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3 수행품(修行品)

제3 수행품(修行品) 41장

대종경(大宗經)

3 수행품(修行品) 41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은 인도상 요법(人道上要法)을 주체삼아 과거에 편벽된 법을 원만하게 하며 어려운 법을 쉽게 하여 누구나 바로 대도에 들게 하는 법이어늘, 이 뜻을 알지 못하고 묵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려면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며, 혹은 특별한 신통(神通)을 얻어서 이산 도수(移山渡水)와 호풍 환우(呼風喚雨)를 마음대로 하여야 한다고 하며, 혹은 경전·강연·회화는 쓸 데 없고 염불·좌선만 해야 한다고 하여, 나의 가르침을 바로 행하지 않는 수가 간혹 있나니, 실로 통탄할 일이니라. 지금 각도 사찰 선방이나 심산 궁곡에는 평생 아무 직업 없이 영통이나 도통을 바라고 방황하는 사람이 그 수가 적지 아니하나, 만일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며 인도를 여의고 신통만 바란다면 이는 곧 사도(邪道)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먼저 나의 가르치는 바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따라 세간 가운데서 공부를 잘 하여 나아가라. 그러한다면, 마침내 복혜 양족(福慧兩足)을 얻는 동시에 신통과 정력도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니 이것이 곧 순서 있는 공부요 근원 있는 대도니라.]

인도상요법[人道上要法]

[개요]

인도(人道)란 사람으로서 행해야할 바른 길이라는 의미이며, 인도상요법이란 인도를 떠나지 않은 요긴한 가르침이란 의미이다. 소태산대종사는 하늘이 의거하는 길을 천도(天道), 땅이 의거하는 길을 지도(地道), 사람들이 걸어야할 길을 인도라고 말하고 도를 실행함에 나타나는 결과를 덕()이라고 말한다.

[내용]

인도란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당연한 길로서 소태산은 부모자녀 사이에는 부모자녀의 행할 바 길이 있고, 상하 사이에는 상하의 행할 바 길이 있고, 부부 사이에는 부부의 행할 바 길이 있고, 붕우 사이에는 붕우의 행할 바 길이 있고, 동포 사이에는 동포의 행할 바 길이 있으며, 그와 같이 사사물물을 접응할 때마다 각각 당연한 길이 있나니”(대종경인도품l)라 하여 그 세목을 제시했다. 또한 인도에는 어느 세상을 막론하고 큰 도와 작은 도가 서로 병진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경계를 따라 나타나서 그 수가 실로 한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대종경인도품1)

나아가 천지의 도와 인간의 도가 일치되는 것을 제일 큰 도라 하며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그 중에 제일 큰 도를 말하면 곧 우리의 본래 성품인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도이니 이는 만법을 통일하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여기에 근본했으므로 이 도를 아는 사람은 가장 큰 도를 알았다 하나니라”(대종경인도품1). 이를 바꾸어 말하면 인도는 궁극적인 일원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천도와 인도의 관계에 대한 관점은 유교적 사유와 상통되는 면이 있다. 공자는 인()()()() 등을 실천하는 것을 사람으로서 당연히 행해야 할 길로 보았다.

그러나 이 인도의 바탕에는 천()이라는 근원적 존재가 전제되어 있어 공자는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을 인도의 요건으로 보았다. 중용(中庸)() 그 자체는 하늘의 도요, 성스럽게 하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誠者天之道 誠之者人之道)”라고 했다. 이렇게 천도와 인도를 일치시켜 보았으나 실질적으로는 윤리적 실천의 의미를 지니는 인도가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인도상요법과 관련되는 표현으로 법률은에서 보이는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가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바른 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구체적으로 성자들이 제시한 가르침도 법률은에 포함시키는 것을 볼 때 인도상요법과 대체로 상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인도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이에 대해 소태산은 도를 체득한 부처와 성자들이 주체적으로 파악하여 중생들에게 제시했다고 본다(정전법률은). 소태산은 나의 법은 인도상요법을 주체 삼아서 과거에 편벽된 법을 원만하게 하며 어려운 법을 쉽게 하며 누구나 바로 대도에 들게 하는 법”(대종경수행품41)이라고 말한 바 있다.

편벽된 수행을 몇 가지로 대별한다. 첫째 세간을 떠나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 둘째 호풍환우나 이산도수 같은 신통에 집착하는 것, 셋째 경전, 강연 등 사리연구 공부를 등한시하고 염불, 좌선 등 수양에만 치우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종합적으로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고 인도를 여의고 신통만 바라면 사도(邪道)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몇 가지는 소태산 재세당시 많은 수행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모습으로서 대종사는 이러한 전통적 수행방법은 효율성이나 성취의 폭이 매우 떨어진다고 보았다.

한편 소태산은 교단 창건 초기에 세도인심을 바로잡고 창생을 구제하기 위한 기도를 진행하면서 세상을 다스리고 구제하는 바른 길에 대해 언급했다. “사람은 만물의 주인이요 만물은 사람의 사용할 바이며 인도는 인의가 주체요 권모술수가 그 끝이니 사람이 만물을 지배하고 인의의 대도가 서게 되는 것이 이치의 당연함이어늘”(대종경서품5) 이라고 말함으로써 인의의 대도를 인도의 중요한 내용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상을 종합하여 소태산이 제시한 공부의 길로서는 공부의 요도 삼학 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이다.

요컨대 원불교 교법 전체가 인도상 요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소태산이 이와 같이 인도상요법을 교법의 주체로 중시한 데에는 미래에 대한 통찰도 작용했다. 그는 앞으로는 민심이 개화되어 신비스러운 방편적 가르침보다는 진리의 실상에 합치되는 가르침이 요청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소태산은 시대가 밝아짐을 따라 오직 인도 정의의 요긴한 법만이 세상에 서게 될 것이니, 이러한 세상을 일러 대명천지(大明天地)라 하나니라”(대종경전망품9)고 했다.

이에 대해 정산종사는 과거 시대는 좁은 시대요, 새 시대는 훨씬 더 너른 시대라, 판이 마구 넓어지나니 이런 세상 만나기가 어렵나니라. 대종사 말씀하신 대명국이란 곧 대명세계(大明世界)라는 말씀이니라”(정산종사법어유촉편4)고 설명했다. 나아가 정산은 인도상요법으로 주체를 삼은이유에 관해 대종사께서는 신통을 성현의 말변지사(末邊之事)이므로 대종사께서도 회상을 공개하신 후에는 이를 엄금하시고 오직 인도상 요법을 주체삼아 중생을 제도하시되 일용범절과 평범한 도로써 하시었나니 이것이 무상대도니라”(정산종사법어무본편58)고 풀이했다.

정산은 인도상요법에 관해 일상을 떠나지 않고 궁극의 도를 추구하는 중도적 수행법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인도상요법을 중시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영역을 넘어선 초월세계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의 중심을 인도의 실현에 두어 이를 통해 초월의 영역까지 이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신통이나 이적, 또는 불가사의한 감응 등도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인도상요법을 통해 성취해야 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와 관련하여 천지의 무궁한 이법도 인간에 의해 그 의미과 가치가 제대로 발현된다는 관점을 제시하고 미래에는 천권보다 인권을 더 존중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대종경불지품13).(원불교대사전)

무상대도[無上大道]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 큰 도. 소태산대종사는 불법(佛法)무상대도(無上大道)’이며, 그 진리와 방편이 호대하다고 하였다(정전교법의 총설). 다만,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이나, 교파들 사이에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까닭은 모든 종교와 종파의 근본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는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혜(慧福)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대종경서품15)고 예언했다.

불법을 주체삼은 이유는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대종경서품3)고 했다. 따라서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삼아 일원(一圓)의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한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루고자 했다.(원불교대사전)

이산도수[移山渡水]

산을 옮기고 물을 건넌다는 뜻으로서 주로 기인(奇人)의 신통력과 관련된 용어. 과거 도인들이 도력으로 산을 옮기고 바닷물을 건너는 신통을 부린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도교의 신선이나 불교의 승려 중에서 이러한 신통력을 부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불교는 우리나라에 환영을 받고 배척도 받아 왔는데,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세력에 밀려 세상을 등지고 산중에 들어가 초세간적 종교로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일반 사회에서는 불법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이러한 원인을 승려들의 이산도수의 신통 등과 관련지어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그간 불교는 산수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하여 승려는 처자 없이 독신생활을 한다 하며, 삭발을 하고 단주를 들고 염불이나 송경을 하며, 바랑을 지고 동령을 했다는 것이다. 또한 승려들 중에는 호풍환우(呼風喚雨) 이산도수의 신통력을 부리고자 했다(대종경서품16)는 것이다. 과거 승려들이 풍진세상을 벗어나서 정결한 사원을 건축하고 몇 사람의 동지와 송풍나월의 생활을 계속하여 오는 동안에 부처님의 무상대도는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독선기신(獨善其身)의 소승에 떨어졌으니 이 어찌 부처님의 본회(本懷)이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불교 승려들의 초세간적 기복신앙 및 이산도수의 신통을 추구하는 행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이에 이산도수를 꿈꾸는 자는 자신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공부를 하려면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서 훤하게 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 특별한 신통을 얻어서 호풍환우 이산도수를 마음대로 하여야 큰 인물이 되지 보통 인간 도덕으로는 별 우월할 것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자는 저의 사견에 집착하여 나를 만났지마는 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자(대종경선외록)라고 했다.

정산종사도 호풍환우나 이산도수의 신통은 앞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신통은 오히려 쉬운 일로서 몇 달만 모든 사무를 다 놓고 조용한 곳에서 정()만 익힌다면 되는 것이나, 이 두 가지가 중생 제도하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한 울안 한 이치에)고 했다. 따라서 이산도수는 호풍환우와 더불어 편벽수행에 의한 신통력으로서 생활불교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정법수행이 요구되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호풍환우 이산도수[呼風喚雨移山渡水]

바람과 비를 불러오고 산을 옮기며 물을 건넨다는 뜻의 신통묘술. 화창한 날씨에 갑자기 사나운 바람을 불러 오거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억센 소나기가 쏟아지게 하는 행위. 또는 하룻밤 사이에 수 백리 밖에 있는 큰 산을 감쪽같이 옮겨 오거나, 강이나 바다 위를 자유자재로 걸어 다디는 기행 이적. 이는 곧 신통묘술을 마음대로 부리고 기행 이적을 자유자재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신통이란 모든 일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이 신기하게 통달하는 것이다.

비 오고 바람 불 것을 미리 알거나, 사람이 살고 죽을 것을 정확하게 아는 일이나, 타심통을 얻어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것 등을 말한다. 묘술이란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기 어려운 술법, 곧 축지법시해법호풍환우이산도수둔갑술장신술 등을 마음대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 옛날부터 승려들이 수행을 잘 하여 도승이 되거나, 보통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 오래오래 기도생활을 하면 신통 묘술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신통 묘술은 대도 정법이 아니라 하여 성현들이 꺼리는 것이다.

특히 소태산대종사는 크게 경계한 것이다. 호풍환우 이산도수 하는 신통 묘술은 옛날 지혜가 어두운 사람들이 간혹 믿기도 했으나, 사람의 지혜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미신이라 하여 오히려 경계를 받고 있다. 신통묘용이 물 긷고 나무 하고 밥 짓는 데에 있다고 한 수심결의 말은 가장 합리적이요 일상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큰 신통묘술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신통묘술은 호풍환우 이산도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을 두루 제도하는 부처님의 대자대비심과 무량법문의 천만방편이다.(원불교대사전)

신통[神通]

모든 일에 헤아릴 수 없이 신기하게 통달하는 것. ()은 헤아릴 수 없다는 뜻, ()은 막히고 걸림이 없다는 뜻. 원불교에서는 보통 신통묘술은 대도정법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신통묘술[神通妙術]

신통과 묘술. 모든 일에 헤아릴 수 없이 신기하게 통달하는 것이 신통, 보통 인간으로서는 하기 힘든 뛰어난 술법이 묘술. 축지법시해법호풍환우 이산도수 등이 신통묘술이다. 그러나 이런 신통묘술은 대도정법이 아니다. 부처님의 무량방편이야말로 신통 묘술이다. 일체중생을 다 제도하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는 신통을 귀하게 알지 않는다. 신통이 세상을 제도하는 데에 실다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해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원불교에서는 옛 불전의 예를 들어 신통은 말변(末邊)의 일이라했고, ‘도덕의 근거가 없이 나타나는 신통은 다못 일종의 마술(魔術)이라고 하여 크게 경계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복혜양족[福慧兩足]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복과 혜를 고루 갖추는 것. 복족족 혜족족(福足足慧足足)과 같은 의미이다. 과거 수도인은 지혜를 밝히는 데 치중한 반면, 인간생활을 복되게 하는 데에는 어두웠다. 오히려 세간에서 누리는 복락을 금기시했다. 반대로 세속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복된 생활에 치중한 반면 지혜를 밝히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혜와 복을 아울러 닦고 갖추는 것은 제생의세를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개벽시대에 알맞은 행복관은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을 통해 복혜양족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원불교대사전)

복족족 혜족족[福足足慧足足]

복덕과 지혜가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 선업을 많이 지어서 복덕을 장만하고, 지혜를 부지런히 밝혀서 지혜가 밝다는 말. 복족혜족, 복혜양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하는데, 복과 지혜를 다 갖춘 가장 존귀한 분이기 때문이다. 대산종사는 두 가지 큰 보물이 있으니 하나는 복족족(福足足)으로, 그 원천은 사은에 보은해야 되고, 또 하나는 혜족족(慧足足)으로, 그 원천은 삼학공부로 얻어지는 것이다”(대산종법사법문집3)라고 하여 사은보은과 삼학공부로 복족족 혜족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정력[定力]

정신수양으로 마음에 요란함이 없이 정신통일이 된 상태를 통해 얻게 되는 힘. 선정(禪定)에 의하여 마음을 적정(寂靜)하게 이끄는 힘이다. 또한 동적으로 천만경계에 부딪쳐서도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힘을 말한다. 수양력연구력취사력의 삼대력 가운데 수양력을 가리킨다. 소태산대종사는 동정간에 끊임없이 삼대력 얻는 공부 길을 제시했다. 수양력 곧 정력을 쌓는 길에도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먼저 염불좌선 등의 정()공부가 있고,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는 일심공부”(대종경수행품9)의 동()공부를 통하여 동정일여의 정력을 얻는 길을 제시했다.(원불교대사전)

[인도상 요법과 신통]

<영산선학대학교/장원경 교무>

대종사님께서는 앞으로의 불법은 신비한 기적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선천시대의 천도 중심에서 후천시대의 인도 중심의 교법을 전개해야 한다고 하였다.

수행품 41장에서는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에 따라 세상에서 공부를 잘하여 나가면 복과 혜를 얻고 신통과 정력(定力)도 그 가운데 있음을 밝히셨다.

그리고 42장에서는 신통의 폐단으로써 신통에 대해 재미를 붙이고 신통하는 것이 도통이라고 생각하면 사회가 무너진다고 경계해 주셨다.

수심결'물을 긷고 나무 운반 하는 것이 신통'이라고 밝히듯이 신통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농공상의 인도정의에 맞게 실천하여 복과 혜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수행 방법은 고요한 산중에 들어가서야만 선을 할 수 있다고 하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산을 옮기고 물을 건너고 바람을 일으키고 비를 내리게 하는 신통을 배우려 하거나 염불 좌선만 해서 영통만 바란다면 사회를 그릇 인도하여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대종사님 친견 법설 중에 송자명 원로교무에게 전해준 말씀이 있다. "내가 지금 이리 시내 사람을 다 불러 오라면 다 불러올 수 있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참 법이 아니다." 대종사님은 신통의 경지를 체험했지만 앞으로의 법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해서 법의대전을 불태우셨다.

정산종사님은 화해리에서 대종사님 만나기 전에는 종종 이적을 보이셨는데 '내가 그때는 도를 몰랐기 때문에 부질없는 일이 나타났으며, 혹 나도 모르는 가운데 이상한 자취가 있었을 따름'이라고 하시어 이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셨다.

우리 공부인들의 진정한 신통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내가 발 딛고 서있는 가정, 학교, 사회에서 나온다. 정신, 육신, 물질로 보은봉공하며 병든 세상을 고쳐나가면 각 방면에서 은혜가 쏟아져 나온다.

우주의 진리가 공··정으로 되어 있기에 우리들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삼학수행으로 우주의 진리를 실현해야 복도 생산하고 혜도 생산하는 바른 신통력을 얻는다.

동정을 통하여 쌓여진 정력이라야 참 정력이며 서원대로 노력하여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신통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공부인들은 '생활시불법 불법시생활'의 표어 아래 자신성업봉찬의 길로 매진할 뿐이다. 욕심 가득한 신통을 버리고, 오직 서원 가득한 인도상 요법을 챙기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