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2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공부인이 동(動)하고 정(靜)하는 두 사이에 수양력(修養力)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할 것이요,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세째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 일 그 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 네째는 여가 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또는,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연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세째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 네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쓸 것이요, 다섯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을 다 마친 뒤에는 과거 모든 도학가(道學家)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넓힐 것이니라. 또는,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취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것이요, 둘째는 불의인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을 것이요, 세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즉시 실행이 되지 않는다고 낙망하지 말고 정성을 계속하여 끊임 없는 공을 쌓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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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력[三大力]
[개요]
삼학 수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수양력ㆍ연구력ㆍ취사력 등의 세 가지 큰 힘. 이 세 가지 힘은 일심ㆍ알음알이ㆍ실행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원불교 삼대력의 의미]
소태산대종사는 “공부인이 정신의 세 가지 힘 곧 일심과 알음알이 그리고 실행의 힘이 있어야 육신의 의식주를 잘 얻을 수 있고, 원만한 인격을 이룰 수 있으며, 생사의 도와 인과의 이치를 터득하여 혜와 복을 얻을 수 있다”(《대종경》 수행품7)고 하여 이 삼대력 증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양력을 얻으면 정력(定力)이 쌓이고, 연구력을 얻으면 지혜가 빛나고, 취사력을 얻으면 모든 일에 무념행과 원만행을 하게 된다. 따라서 삼대력을 얻으면 부처와 같은 인격을 갖추게 되고, 삼대력을 얻지 못하면 중생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소태산은 ‘우리 공부의 요도의 삼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간도 떠날 수 없는 법이니’(《대종경》 교의품18)라 하여 삼학공부의 결과인 삼대력은 원만한 인격을 갖추는 데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정산종사는 “수양의 결과는 생사자유와 극락수용과 만사성공이요, 연구의 결과는 사리통달과 중생제도와 만사성공이요, 취사의 결과는 만행구족과 만복원만과 만사성공이니라”(《정산종사법어》 경의편16)고 하면서 수양은 해탈이 연구는 대각이 취사는 중정이 표준(《정산종사법어》 경의편18)이 된다고 하여 원불교적 인격의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원불교의 인격은 삼대력을 갖추었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원불교적인 원만한 인격이란 한 개인의 존재에 국한된 인격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원불교 삼학 수행은 일차적으로 원만한 인격완성을 하기 위한 것이지만 단순히 개인적 인격완성을 넘어선 사회 속에 인격으로 승화하고, 더 나아가 일체 생령을 구제하고 낙원세계를 건설한다는 의미가 내재하여 있기 때문이다. 한편 원불교적 원만한 인격이란 곧 성불을 의미한다. 소태산은 일원상의 수행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고 그 진리를 체받아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나니…이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학식 있고 없는 데에도 관계가 없으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성불함을 얻으리라”(《대종경》 교의품5)고 하여 공부인이 삼학수행을 하는 것은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 있으며 그것은 곧 성불임을 밝히고 있다.
곧 수양력ㆍ연구력ㆍ취사력의 인격완성의 삼대력은 곧 부처의 세 가지 요소인 것이다. 소태산은 동정간에 끊임없이 삼대력 얻는 공부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은 항상 조용히 앉아서 좌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이나 읽는 것만 공부로 알고 실지생활에 단련하는 공부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하나니, 어찌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의 큰 공부법을 알았다 하리요. 무릇, 큰 공부는 먼저 자성의 원리를 연구하여 원래 착이 없는 그 자리를 알고 실생활에 나아가서는 착이 없는 행을 하는 것이니, 이 길을 잡은 사람은 가히 날을 기약하고 큰 실력을 얻으리라.
공부하는 사람이 처지 처지를 따라 이 일을 할 때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면 곧 이것이 일심공부요, 이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고, 저 일을 할 때 알음알이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면 곧 이것이 연구공부요, 이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고, 저 일을 할 때 불의에 끌리는 바가 없게 되면 곧 이것이 취사공부며, 한가한 때에는 염불과 좌선으로 일심에 전공도 하고 경전연습으로 연구에 전공도 하여, 일이 있는 때나 일이 없는 때를 오직 간단없이 공부로 계속한다면 저절로 정신에는 수양력이 쌓이고 사리에는 연구력이 얻어지고 작업에는 취사력이 생겨나게 되리니….
이는 곧 동정 간에 끊임없는 공부를 잘한 공덕이라, 그대들도 그와 같이 동정일여의 무시선 공부에 더욱 정진하여 원하는 삼대력을 충분히 얻을지어다”(《대종경》 수행품9). 이와 관련하여 정산종사는 동정간 삼대력 얻는 공부를 저축 삼대력 공부와 활용 삼대력 공부로 표현하기도 했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20).(원불교대사전)
수양력[修養力]
삼학 수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수양력ㆍ연구력ㆍ취사력 등의 세 가지 큰 힘 가운데 하나. 정신수양을 통해서 얻게 되는 마음의 힘. 정력(定力)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정신 수양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면 정신이 철석같이 견고하여, 천만 경계를 응용할 때에 마음에 자주의 힘이 생겨 결국 수양력을 얻을 수 있다. 공부인이 염불ㆍ좌선ㆍ심고ㆍ기도ㆍ주문 등의 수양 공부로써 수양력을 얻게 되며, 수양력을 얻으면 번뇌 망상이 끊어져 마음이 편안해지고, 애착ㆍ탐착이 없어져 모든 일에 자유자재 할 수 있다. 또한 천만경계를 당해도 마음이 끌려가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아 석벽의 외면 또는 철주의 중심과 같은 정신의 자주력이 생긴다. 이를 통하여 생사를 해탈하고 죄복 고락을 자유로 하며 극락을 수용하는 수도인이 될 수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공부인이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수양력 얻는 빠른 방법에 대하여 “첫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할 것이요,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셋째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일 그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 넷째는 여가 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다”(《대종경》 수행품2)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연구력[硏究力]
삼학 중 사리연구 공부를 통해서 얻게 되는 지혜. 인간의 시비이해와 천조의 대소유무를 연마하고 궁구해서 얻게 되는 지혜를 말한다. 안으로 진리를 연마하고 밖으로 견문을 넓히며, 경전ㆍ강연ㆍ회화ㆍ의두ㆍ성리ㆍ정기일기 등의 정기훈련법으로 지혜를 단련시켜서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반야지를 솟아나게 하면 마침내 이무애(理無礙) 사무애(事無礙)의 연구력을 얻게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연구력 얻는 빠른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연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일 그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셋째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 넷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쓸 것이요, 다섯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을 다 마친 뒤에는 과거 모든 도학가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넓힐 것이니라”(《대종경》 수행품2). 정산종사는 연구력의 정도를 알려면 “안으로 성리 연마와 경전 해득과 밖으로 사물 판단하는 능력을 대조하면”(《정산종사법어》 경의편17) 된다고 했다. (원불교대사전)
취사력[取捨力]
작업취사력의 준말. 작업취사 공부를 오래오래 계속하여 얻게 되는 마음의 힘. 육근동작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작용하는 힘으로써 천만 경계 속에서도 불의는 용기 있게 버리고 정의는 용기 있게 실행하는 실천력을 말한다. 작업취사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취사력을 얻는 공부를 말한다.
《정전》에서는 작업취사에 대하여 “작업이라 함은 무슨 일에나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육근을 작용함을 이름이요, 취사라 함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림을 이름이니라”라고 말한다. 정의를 취한다는 것은 옳은 일을 죽기로서 실행한다는 것이며 불의를 버린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을 죽기로서 아니한다는 것이다. 정의를 실행한다는 것은 원래에 갖추어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실행력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취사력을 얻으면 정의를 실천하고 불의를 물리치는 실천력 있는 사람이 되고, 그에 따라 현실세계를 정의로운 사회, 낙원세계로 건설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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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강화 ③ <수행품 제 2장>
崇山 朴光田(원광대 학장)
修養과 修飾을 구별해야
의욕상실 무기력은 수양이 아니다
일심 집중력을 얻는 게 수양
우리 원불교에서는 수행공부를 하는데 정신을 수양해서 수양력을 얻게 하고 사리를 연구해서 연구력을 얻게 하고 작업취사를 해서 취사력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삼대력이라고 하며 이 세 가지를 똑같이 단련해서 겸수해야지 만일 한 가지에 기울러지면 원만한 공부법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수양이나 연구나 취사하는데 力을 얻어야지 力을 얻지 못하는 공부는 실용할 수 없는 공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力을 얻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수양이나 연구는 정하는 데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으나 원불교에서는 동정을 통해서 할 수 있게 하며 만일 정할 때만 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이 다 일을 하지 않고 靜생활을 해야 될 것이니 인간사회는 구성되지 않을 것이며 무기력한 도피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정을 통해서 간단없는 시간에 삼대력을 얻는 공부를 해야 力을 얻는 지경에 도달하는 것이며 그것이 산 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동정을 통해서 삼대력을 얻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1. 동정을 통해서 수양력 얻는 방법
①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 할 것이요.
이 말씀은 무이익한 아무 생산 없는 일을 짓지 말라는 말씀으로 횡재 연애 시비 자기와 상관없는 일 등입니다. 정당한 일은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뺏아 가지 않습니다. 부당한 경계는 멀리하여 마음을 온전하게 보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부의 유혹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경주를 할 때에도 너무 좇아 다니다가 피곤해지면 역주할 수 없으며 정신도 피곤해지면 생생한 수양력을 얻지 못합니다.
②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요.
모두가 무상변천 하는 것이니 우리는 어느 것에나 애착 탐착을 하지 말고 그 경계를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애착 탐착으로 제정신이 없이 사는 것이 마치 노복들이 질서 없이 살림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주인이 권리를 쥐고 질서를 세우려면 노복의 마음대로 못하게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心王을 너무 분주히 좇아 다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군데 빠져서 다른 데를 살피지 못하게 된다면 질서가 없이 혼란해 지고 말 것입니다. 한 곳에 착해 버리면 주인도 통솔자도 못될 것입니다. 한 쪽에만 치우치는 일이 없이 그 위치를 지켜야 튼튼한 주인이 되는 것과 같이 애착 탐착이 없는 정신으로 살아야 수양력이 얻어질 것입니다.
③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 일 그 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
매사에 성공한다는 것은 그 일에 열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散心 공상 방심 등 마음을 다른 데에 출장 보내지 말고 현재하는 일에 일심 집중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번민 고통은 없어지고 머리는 가벼워지고 온전한 수양력이 차차 얻어지게 됩니다. 의욕상실 무기력을 수양으로 오인하는 것은 수양력이 무엇인가를 모르는 소치입니다. 우리는 수처에 주인이 되고 자주정신을 만들어서 주인이 주인노릇을 착실히 잘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禪은 그 날을 완전하게 고통 없이, 번민 없이 자기의 본분을 다 하자는 것입니다.
오늘을 떠나서 내일이 없으며 금일의 연장이 내일이니 금일을 잘하면 내일도 잘 될 것입니다. 행ㆍ주ㆍ좌ㆍ와며 다단한 직장이 참 수선도량이니 그 일 그 일에 일심생활만 하면 수양력이 쌓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양과 수식을 구별해야 하겠습니다. 참 수양이란 생생한 산 힘을 가지고 그 일 그 일을 잘 하는 것을 이름이요, 수식은 그저 수양하는 것 같고 수양한 것 같이 보이며 그 일을 착실히 하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원불교 수양의 無의 상태는 私念 잡념이 없는 무인 동시에 적극적인 力을 가진 무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유용한 인물을 만드는 수양인 것입니다.
④ 여가 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우리 인간은 육근활동이 있으므로 모든 외부의 유혹이 생겨나서 원심이 치성하게 되면 내부에서는 자동적으로 탐심 음심 욕정 망상 수면 등의 마음도 생겨납니다. 이러한 내부 외부로 생겨나는 마음 때문에 사람 마음은 복잡하여지면 그 때 그 때 그 마음에 사로잡혀서 살기가 쉽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라 앉혀서 주인공을 찾으려면 천념만념을 차차 줄여 百念 十念으로 십념을 줄여서 일념으로 만드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일이 없을 때에는 염불 일념에다 나의 마음을 묶어 일일이 지속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단전주에 일심집중 공부를 해서 사념망상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단속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의 때를 씻고 깨끗한 일념 만드는 공부를 하며 그 심념을 활동할 때에 지속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동정을 통해서 一心 만드는 수양 공부를 해서 참다운 수양력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2. 동정을 통해서 연구력 얻는 방법
① 인간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우리에게는 知도 필요하지만 慧가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이 연구력은 혜력을 의미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사를 할 때에 그대로 넘기지 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습관을 드려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대할 때면 미리 연구해서 알음알이를 얻는데 유의할 때 知는 물론 말할 것도 없지마는 지혜력이 얻어집니다. 거기에 총 역량을 기울여서 용의주도하게 관찰 정리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일도 실수가 없이 잘 될 것이며 연구력 즉 혜력이 차차 커나가게 됩니다.
유교에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한 가지 한 가지 궁리해 가면 활연관통 할 때가 온다고 하는데 한 가지 한 가지에 합력을 해서 유의하여 해나가면 혜력을 얻게 된다는 말과 통하는 의미인가 합니다.
②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자기 혼자서 만사를 다 연구하려고 하면 그 힘과 수고가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연구해서 알고 아는 사실을 듣고 보면 쉽게 자기의 것이 되어 버립니다. 속담에 3인이 모이면 문주의 지혜가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의견교환 하는 데서만이 혜력은 얻어집니다.
③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
大疑之下有大悟라 큰 의심이 있는 데서 큰 깨달음이 있다는 말과 같이 의심이 있는 데서 알고 나야 참으로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치 상으로 아는 것과 심의상으로 요달하는 것이 다른데 깬다는 것을 요달 한 것을 이름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의심해서 순서 있게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유념해서 계속 노력해나간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며 연구력은 얻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천만사리를 차차 연구해서 도덕적인 문제나 우주와 인생의 모든 사리를 알아 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리에 어두워서는 큰복을 짓지 못하고 일을 잘못 처리하면 죄를 짓게 될 것이니 혜력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④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쓸 것이요.
세상에는 천만학설이 있으나 우리는 원불교에서 가르치는 법대로 해보자고 입교한 사람들이니 먼저 우리의 지침서인 원불교 경전에 통달하도록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수양력과 연구력과 취사력을 얻는 여러 가지 방법, 일상생활의 요법, 천만경전의 요지, 현대에 알맞은 모든 교리제도가 몸에 배이도록 되어야 합니다. 헛된 학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간단한 방법으로 우주의 원리와 인간의 생활법과 사회생활의 방법이 적혀있는 교전을 봄으로써 새로운 정신활동이 전개될 것이며 참다운 혜력이 얻어질 것입니다.
⑤ 우리의 경전을 마친 뒤에는 과거 모든 도학자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넓힐 것이니라.
우리가 책을 본다는 것은 남이 애써서 일평생 해놓은 것을 일시에 알게 되니 그런 편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다 새로운 것을 첨가하도록 되어야 합니다. 책만 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책에 집착하지 말고 그 뜻을 취하도록 하면 혜는 밝아질 것입니다. 한 기지 주의할 것은 博聞讀記입니다.
위산선사가 제자 향엄선사에게 경문이나 주해에서 얻은 것 외에 영아(?兒)의 심경에 돌아가서 일구(一句)를 말해보라고 하니 향엄이 여러 가지로 말을 했으나 허락하지 안했습니다. 그 후 향엄이 서책을 불사르고 초암에서 수행하는데 도로소제를 하다가 돌이 비에 맞는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박문독기가 오히려 도를 얻는 데는 방해가 되는 것이니 책을 떠나서 뜻을 취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책을 볼 때 연구력을 주체 삼아서 할 것이며 분별지만 늘어감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미리 늘 단련하여 연구력을 얻으면 마치 예리한 칼이 모든 물체를 잘 베이듯이 인간의 시비이해 우주의 모든 이체에 대해서 대하는 대로 바른 관찰과 바른 판단이 이루어져서 어떠한 일이든지 성공할 것이며 복될 일만 자꾸 할 것이니 복혜 양족이 될 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3.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취사력 얻는 방법
일 가운데 많이 단련하고
시비를 피해 초연하면 무용지물
마음대로 실행할 의지력 길러
① 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일
이 취사력도 혜가 생기면 판단이 잘 되어서 일을 잘 처리할 것 같지마는 알면서 단행하지 못하고 우물우물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꾸 단련하지 않으면 취사력은 얻어지지 않습니다.
정의라고 생각되는 일은 단행하는 습성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義를 보아도 無心常, 불의를 보아여 무심상하는 그런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저 가지 많은 나무도 쓸모없는 가지를 베어 비리면 좋은 나뭇가지가 자라지마는 엉성한 가지가 하나 둘 나서 그 나무가 연약하게 자란다면 별 것은 아니지마는 무기력한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소위 생불이라는 말을 듣는 무기력한 인간이 될 것이 아니라 좀 복잡한 의욕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정의나 불의에 대해서 의분심을 가지고 바른 실천을 하는 씩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의를 단행하지 않고 시비를 피해서 초연해 버린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취사력을 얻어서 세상사를 잘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② 불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을 일이요.
화분에 심은 나무를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서는 보기 싫은 가지를 끊어버리며 과수원을 하려면은 꽃도 따주고 적과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려면 없앨 것은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불의인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다면 참다운 쓸모있는 사람이 못될 것입니다.
루스베네텍트가 罪感문화와 치욕문화 두 가지로 말하면서 악을 하더라도 세상에서 비난만 아니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상이 있는데 그 사상은 혼자 있을 때는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법이지만 세간의 눈이 없더라도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크고 작고간에 양심에 비추어 불의라고 생각하면 결코 하지 않는 의지력을 양성해야 하겠습니다. 불의일 경우에는 권세나 금력이나 중애에 끌리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도 실행 못하는 일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옛날 인도 서가세존 당시에 어떤 여자의 헤엄 잘 치는 아들이 나가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 때 그 여자는 슬퍼서 울었습니다. 그 후 묘하게도 헤엄을 잘 칠 줄도 모르는 아들이 나가서 물에 빠져 죽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 때 그 여자가 슬퍼하지 않고 당연한 일 같이 생각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때 다른 사람들이 묻기를 다 같은 당신의 아들인데 전번에는 그렇게 슬퍼울고 이번에는 울지 않고 당연하느냐고 하니 그 여자가 말하기를 전번에는 헤엄칠 줄 아는 아이가 왜 빠졌는가 그것이 슬펐었지만 헤엄칠 줄 모르는 아이는 모르니까 빠져죽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울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알면은 반드시 실행하는 실천력을 양성해야겠습니다. 賢愚의 差는 잘못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거듭 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렸다고 합니다.
머리로만 생각하고 재미보는 사람 그는 몽유병 환자와 같습니다.
내가 세상을 지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불의를 보고 끊으려 하지 않고 그저 피해서 자기보신만 하려고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불의를 하는 사람과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衲子도 英傑之氣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정의는 행하고 불의는 행하지 않는 기백이 있고 의지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자꾸 결심만 하고 그대로 실행을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봅니다.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성공이 없습니다. 기어이 하고 기어이 하지 않는 힘이야말로 사람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실행이 즉시로 되는 사람도 있지마는 우리 인간은 쉽게 실행이 되기 어려운 존재이니 계속해서 노력해야만 힘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저 자전거 타는 것 하나 배우는 것도 즉시 배워지는 것이 아니요 넘어지고 다치고 하다가 결국은 두 바퀴의 자전거를 타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실천력이 얻어지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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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간 삼대력 얻는 빠른 길]
<영산선학대학교 / 장원경교무>
수행품 2장은 생활 속에서 육근 작용을 통하여 동하고 정하는 가운데 수양력·연구력·취사력을 빠르게 얻는 공부 길을 밝히셨다. 빠른 방법이란 더 적극적인 방법이다.
수양력을 갖추어 가는 빠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나의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않는 것이다. 그 일과 그 경계로 인하여 정신이 온전함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요란해지는 일은 단호히 처음부터 짓지 말라는 말씀이다.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 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고 담담하게 하는 것이다. 수양에 공을 들이는 이는 특히 탐착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셋째는 이 일을 할 때와 저 일로 옮길 때에 일념의 표준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일념의 심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여러 일을 병행하여도 수양력에 손상 되는 일은 없다.
넷째는 여가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하여야 한다. 염불과 좌선을 통하여 회복된 온전한 마음은 일만 행동의 틀을 진리의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 회전축이 된다.
동정간 연구력 얻는 방법은 첫째, 해결해야 될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쓰는 일이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사회 구조의 변화는 우리에게 끝없는 학문수련을 강요한다. 둘은 스승이나 동지로부터 의견 교환하기를 힘 써야한다. 도학은 깊은 이면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지도인으로부터 쳇줄을 받는 것을 더욱 중요시 하여야 한다. 셋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 의심이 생기면 그를 해결하기에 힘 써야 한다. 넷은 경전 연습에 더욱 힘 쓸 것이다. 경전 공부에 있어 제일 주안점은 진리와 신앙과 수행을 일원상의 진리와 회통시켜 연마하는 교리의 체계를 공부하는 것이요, 교리 하나하나를 성리에 비추어 연마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 다섯은, 과거 모든 도가(道家)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더욱 넓혀야 한다.
다른 종교의 교법을 이해하는것은 곧 우리 법을 더 충실히 깨닫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종교간의 융화나 통일에도 큰 몫을 한다.
동정간 취사력 얻는 빠른 방법은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정의는 죽기로써 실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금하며 이소성대의 진리 따라서 순리로 끊임없이 공을 쌓아야 한다
정의 사회가 되려면 정치·사상·종교를 벗어난 보편타당한 정의관을 새롭게 해야하고 다른 사람과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정의를 실현시켜가는 공동체 정신으로 생활속에서 취사하는 힘을 키워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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