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종경(大宗經)/제6 변의품(辨疑品)

변의품(辨疑品) 30장

대종경(大宗經)

6 변의품(辨疑品) 30

최 수인화(崔修仁華)는 여러 대의 동학 신자로 우연히 발심하여 입교 하였더니 하루는 대종사께 여쭙기를 [저는 동학을 신앙하올 때 늘 수운(水雲) 선생의 갱생을 믿고 기다렸삽던바, 대종사를 한 번 뵈오니 곧 그 어른을 뵈옵는 것 같사와 더욱 정의가 두터워지고 기쁜 마음을 억제할 수 없나이다.] 하거늘, 대종사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그러한 성현들은 심신의 거래를 자유 자재하시는지라 일의 순서를 따라 나신 국토에 다시 나기도 하고 동양에나 서양에 임의로 수생하여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아니하시나니라. 과거에도 이 나라에 무등(無等)한 도인이 많이 나셨지마는 이 후로도 무등한 도인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전무 후무한 도덕 회상을 마련할 것이니, 그대는 나를 믿을 때에 나의 도덕을 보고 믿을지언정 어디에 의지하는 마음으로 믿지는 말라.]

최수인화[崔修仁華]

본명은 최수엽(崔壽燁). 법호는 경타원(慶陀圓). 1889427일 전북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부친 정우(鼎雨)와 모친 이씨의 딸로 출생. 19세에 익산군 북일면 정씨가문으로 출가, 시가와 친가가 독실한 천도교인이었다. 남편이 실수로 가산을 탕진한 뒤로 행방불명되어 마음을 잡지 못하던 중 1934(원기19)에 박상지화의 지도로 소태산대종사의 일체유심조 법문을 듣고 최제우(水雲崔濟愚)의 후신이라 믿게 되면서 독실한 신성으로 일관했다(대종경변의품30).

남편이 객지에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한 뒤로 전무출신을 단행하고 총부 순교직을 맡아 익산과 전주 지방의 순교활동을 전개했다. 일찍이 소태산의 부촉하신 말씀을 받들어 광복 뒤 이리신사(神社)를 접수하여 교당으로 만들고 한국전쟁으로 미군 주둔지로 징발 당하자 휴전 뒤 다시 고등선원을 만드는 일에 갖은 신고와 열성을 다했다. 총부를 비롯하여 이리삼례전주교당 순교와 교무를 역임하고 중앙수양원에서 정양하다가 1980116일에 열반했다.(원불교대사전)

최제우[崔濟愚]

[주요약력]

동학(東學)천도교(天道敎)의 창시자.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제선(濟宣)복술(福述), 자는 성묵(性黙), 호는 수운(水雲)수운재(水雲齋)이다. 제우(濟愚)라는 이름은 어리석은 세상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결심을 다짐하기 위해 스스로 고친 이름이라고 한다.

[생애와 사상]

최제우는 18241028일 경북 경주에서 부친 옥(, 號 近庵)과 모친 한()씨와의 사이에서 만득자(晩得子)로서 출생했다. 최제우의 7대조인 최진립(崔震立)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워 병조판서의 벼슬과 정무공(貞武公)의 시호를 받은 무관이었으나 6대조부터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몰락한 양반 출신이었다. 어려서부터 경사(經史)를 읽었고, 13세의 나이로 울산 출신의 박()씨와 혼인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남달리 인생의 무상을 느끼고 참된 진리를 찾아 구도(求道)에 힘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도의 교리를 두루 섭렵해 보았으나 기성종교로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음을 개탄하고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구도행각을 하는 한편, 음양(陰陽)복술(卜術)주술(呪術) 등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으며, 활쏘기, 말타기, 행상 등을 하며 세상인심을 경험했다. 185532세 되던 해에 울산에서 초당을 마련, 조용히 묵상에 잠겨있는데 이상한 도인이 나타나 책 한권을 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을묘천서(乙卯天書)라 한다. 그 책을 받아 숙독하는 한편 기도생활을 계속했다.

특히 천성산(千聖山) 기도, 적멸굴(寂滅窟)에서의 49일 기도 후, 울산 집에서 적공을 드리던 중 그의 나이 37세 되던 186045일 갑자기 몸이 떨리고 천지가 진동하는 중에 상제(上帝)로부터 무극대도(無極大道)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년 동안 가르침에 마땅한 이치를 체득, 도를 닦는 순서와 방법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1861년부터 이 도를 동학(東學)’이라 부르며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동학을 펴기 시작한지 불과 몇 달 만에 서학(西學)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관청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고향을 떠나 피신 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남원 은적암(隱寂庵)에서 동학의 사상적 기반이 된 안심가(安心歌)교훈가(敎訓歌)포덕문(布德文)몽중노소문답가(夢中老少間答歌)논학문(論學文) 등을 제자들과의 서신(書信) 형식으로 이룩했다. 그러다가 1862년 남원으로부터 고향 경주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돌아오자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이처럼 신자들이 모여들자 그해 9월 영장(營將)은 최제우를 체포해 갔다. 이 소문을 들은 각지의 제자들이 경주병영에 모여들어 최제우를 석방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석방되었다. 이 사건으로 동학의 신도는 급증하게 되었다.

1863년 불어나는 신도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키 위해 접주제(接主制)를 실시하는 한편 8월에는 최시형(崔時亨)에게 도통(道通)을 전수 하는 등 교회제도(敎會制度)를 갖추어갔다. 그러나 그해 12월 동학의 신도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우려한 관청에서는 이단사교(異端邪敎)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좌도난정(左道亂政)이라는 죄를 씌워 최제우를 비롯한 제자 23명을 체포해갔다. 그리고 최제우는 18641월에 대구 감영에 이첩되어 310일에 참형(斬刑)을 당하게 되었다. 최제우의 사상은 동경대전용담유사에 나타나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천주(한울님)와 지기, 시천주와 사인여천, 수심정기, 성경신으로 집약된다. 수운사상의 핵심은 천주(天主)와 지기(至氣)로 대분된다. 천주사상은 신관이요 지기사상은 우주관이라 할 수 있다. 천주는 상제 즉 한울님이다. 최제우에게 나에게 영부(靈符)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요 그 모양은 태극(太極)이요 또 그 모양은 궁궁(弓弓)이니 나의 영부를 받아 사람의 병을 고치고 나의 주문을 받아 사람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면 너도 기리 살아 덕을 천하에 펴리라”(동경대전포덕문)라는 계시를 내려준 것이다.

천은 동양사상에서 유일자존(唯一自尊)의 전체자리로서 만물이 모두 여기에 근원하고 그 지배를 받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로 이 천에 인격성을 가미한 존재다. 아울러 천주는 우주의 일부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주 밖에 독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상 속에 내재해 있으면서 우주만물을 총섭 하는 존재다. 이 존재는 무한한 과거로부터 무한한 미래로 존재하고 공간적으로 무한한 이 우주전체를 총체적으로 말할 때 천주라 하고 또 한울님이라 한 것이다. 지기는 천주와 표리적 관계로 파악되는 개념으로 천주와 함께 최제우가 득도한 사상의 양대 골격중의 하나이다.

최제우는 동경대전논학문에서 지기는 허령창창(虛靈蒼蒼)하여 우주에 충만 된 한 기운이라 했다. 이렇게 우주의 근원적 진리를 지기라는 간단한 말로 표현한 것이다. 즉 지기는 한울님의 질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한울님이라고 하면 우주 본체의 전체적인 표현이 되어지는 것이고 지기라고 하면 그 본질을 이적(理的)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시천주(侍天主)는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받든다는 의미다. 모심은 살아계시는 것을 섬김이다.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한울이니 사람 받들기를 한울님 섬기듯 하라는 의미이다.

인내천이란 표현은 뒤에 나타나고 있지만 최제우의 오심즉여심(吾心卽如心)’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동경대전논학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 수심정기(守心正氣)란 안에 있는 신령의 마음을 잘 보존하고 기운을 바르게 하라는 의미이다. 최제우는 (仁義禮智)는 옛 성인의 가르친 바요 수심정기는 내가 다시 정한 것이니라”(동경대전수덕문) 했다. (誠敬信)이란 정성공경믿음을 의미한다. 최제우는 우리 도는 넓고도 간략하니 별로 다른 도리가 없고 성신 석자니라”(동경대전좌잠)하여 이 성신을 중요한 윤리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원불교에서 의미]

소태산대종사는 한 제자가 동학을 믿을 때 늘 수운선생의 갱생을 믿었었는데 대종사를 뵈오니 그 어른을 뵈옵는 것 같아 기쁜 마음을 억제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그런 성현들은 심신의 거래를 자유자재하는 큰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대종경변의품30). 우리회상이 발전됨에 따라 수운선생을 증산선생과 함께 길이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대종경변의품31)고 했고, ‘후천개벽의 순서를 날이 새는 것에 비유하여 수운선생의 행적은 첫 새벽의 소식을 알린 것이요, 증산선생의 행적은 그 다음 소식을 알린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날이 밝으매 일을 시작한 것이라 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그럴듯하다고 했다.

일 년 농사에 비유하여 수운선생은 해동이 되니 농사지을 준비를 하라하신 것이요, 증산선생은 농력(農曆)을 알려주신 것이요, 대종사께서는 직접 농사법을 지도하신 것이라 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에 또한 그럴듯하다고 답하고, 이어 우리 법이 세상에 드러나면 그분들도 자연히 드러나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다(대종경변의품32).(원불교대사전)

무등등[無等等]

(1) 비교하고 대등(對等)할만한 것이 없다는 뜻으로 같은 크기 또는 종류의 것이 더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2) 부처님의 존호. 부처님은 가장 높은 이어서 견줄 사람이 없고 세간의 중생들과는 같지 않다는 뜻으로 부른다.

(3) 원불교의 일원대도와 대각여래위의 도인을 높이는 말이다. 일원대도는 이 세상의 어떠한 도()도 대등할 것이 없으며, 대각여래위의 도인은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대등할 사람이 없으며, 우리의 본래마음은 이 세상의 어떠한 것도 대등할 수 없이 크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무등등한 것이다.(원불교대사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한 일, 온통 체, 끊을 절, 오직 유, 누구 수, 마음 심, 지을 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임을 뜻하는 불교(佛敎) 용어(用語)

[개요]

인간 세상의 모든 일을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짓는다는 것. 곧 길흉화복(吉凶禍福)흥망성쇠(興亡盛衰)희로애락(喜怒哀樂) 등이 다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요 인간의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이다. 각자의 마음이 들어서 온갖 조화를 다 부려 시비(是非) 선악을 가져오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승대승 등 불교의 다양한 교파에 따라 그 의미가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의미의 변천사]

일체유심조란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곳은 화엄경으로서 만일 사람들이 삼세일체불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이 모두가 마음의 짓는 바에 달려있음을 보라(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여기서의 법계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뿐 아니라,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정신적 경지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모든 법계가 마음의 산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체유심조란 표현은 화엄경에서 대두되었지만 그 단초는 초기불교부터 보였다.

초기불교에서는 유물론이나 유심적 관점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들에 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고 연기의 이법에 의한 중도적 관점을 제시했다. 따라서 석가모니의 세계관을 유심론적으로 해석하기는 적절하지 않다. 다만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실천적 수행을 통하여 무명을 벗어나 지혜를 얻는 마음수련을 통해 달성하려는 면에서 마음을 중시한 특징을 지닌다. 팔정도를 중심한 실천적 마음 수련 중심의 가르침에서 대승불교로 접어들면서 점차 그 경향이 변화되었다. 모든 존재의 생성변화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특히 유식사상에서는 삼계가 모두 마음의 소산이며 만법이 오직 식의 나타남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라는 사상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서의 심은 중생의 내면적 의식 활동뿐 아니라 외부에 펼쳐진 객관세계 전체의 뿌리라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를 오직 주관적 심식작용만 있을 뿐 개관적 대상은 없다(唯識無境)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유식사상에서의 궁극적 식은 인간의 내면적 의식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며 우주자연의 근원이라는 의미까지 확대된 것이다. 자연현상도 심식에 의한 업의 소산으로 보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유심적 경향이 화엄사상에 이르러 일체유심조라는 개념으로 표현된 것이다. 화엄사상의 경우 모든 존재의 근원을 진여본성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인연에 의한 연기설을 성기설로 발전시켰다. 모든 것을 함장한 진여본성(眞如本性)이라는 근원적 존재는 나타난 모든 존재에 그대로 상즉해 있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천태의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경우의 마음은 이미 주관적 심식자용의 범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주객을 통합한 보다 근원적 의미를 지닌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도 화엄사상을 이론적으로 깊이 연찬하여 이를 화쟁사상(和諍思想)의 이론적 기초로 삼고 무애행(無礙行)이라는 실천적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 의하면 원효는 의상대사와 더불어 당나라로 유학길을 떠나던 도중에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는 일체유심조를 깨닫고 당나라로 가던 발걸음을 신라로 다시 돌려 불교의 진리를 크게 깨우쳤다고 한다. 원효는 이 깨달음의 내용을 마음이 일어나면 만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만법이 소멸한다”(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선악미추를 비롯한 가치판단이나 사유작용을 하는 근본은 오직 한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원효는 이에 바탕하여 세간과 출세간에 대한 차별과 집착을 벗어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무애행을 구현했던 것이다. 화엄의 일체유심조의 사상은 선불교에서 실천적으로 계승되었다. 육조혜능(六祖慧能)은 만법이 모두 본성의 나타남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본성의 자각을 통해 직접 자유와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혜능에 의하면 마음이 악하면 그 행동도 악하고 마음이 선하면 그 행동도 선하다. 마음이 깨끗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고 마음에 때가 끼면 온 세상이 더럽다. 이 세상 모든 일이 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 이치를 철저히 알면 견성인 것이다. 혜능이 인종법사(印宗法師) 회상에 갔을 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한 승려는 깃발이 동()한다 하고 또 한 승려는 바람이 동한다고 다투는 것을 보고 혜능은 동하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며 당신들의 마음이 동하는 것이라 했다. 이러한 일화에서도 일체유심조의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다(육조단경).

나아가 그는 불교의 기본 사상이 자심(自心)을 떠나 있지 않음을 지적하고 불교의 모든 사상(思想)을 유심적(唯心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삼귀의, 사홍서원, 삼신불, 지옥과 정토 등의 여러 개념도 마음수행의 측면으로 끌어들여 해석했다.

[원불교와 일체유심조]

소태산대종사는 원래 불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되는 이치를 스스로 깨쳐 알게 하는 교이니”(대종경교의품27)라고 했다. 마음을 찾고 그 마음을 깨쳐서 악업을 짓지 말고 선업을 짓도록 수행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의 의미는 불교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과 인과보응(因果報應)의 가르침을 편 사상이라는데 역점이 있다.

한편 그는 불교는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바 있나니라”(대종경서품3)고 말한다. 이를 보면 불교에서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가르친다는 의미는 본성을 깨닫고 수행의 길을 갖추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이때의 본성은 우주만유의 본원과 상통되는 주객합일(主客合一)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유물론과 대립되는 의미의 유심론적 경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원불교대사전)

[나에 의지하지 말고 도덕에 의지하라.]

<정현인 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최수인화는 여러 대를 내려온 동학 신자였다. 그러다가 원기 19년 입교한 이래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창립 1대 내에 입교연원 238명을 기록하였다.

그는 대종사의 가르침 중에서 남녀 간에 예절바르고, 물질에 청백하며, 거래가 분명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하루는 대종사께 여쭈었다. “저는 동학을 신앙할 때 늘 수운(水雲) 선생의 갱생을 믿고 기다렸는데, 대종사를 뵈오니 곧 그 어른을 뵙는 것 같아 더욱 정의가 두터워지고 기쁜 마음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선지자들을 존숭해야 한다는 대종사의 법문을 받들고, 기쁜 마음에 대종사가 수운의 후신으로 보인다는 말씀을 올린 것이다.

이에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성현들은 심신의 거래를 자유 자재하시므로 일의 순서를 따라 나신 국토에 다시 나기도 하고 동양에나 서양에 임의로 수생하여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않는다.” 수인화의 물음에 부정하지는 않으셨으나 국한을 트게 하신 것이다.

생사(生死)에는 업()에 끌려 수생하는 중생의 거래와, ()에 따라 주체적으로 수생하는 불보살의 거래가 있다.

대종사는 이 법문에서 수운선생을 일에 따라 자유로 거래하는 성현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성인의 생사는 일에 따라라는 대종사 평소의 생사관이 여실하다.

대종사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 하던 장소가 세 곳이 있었다. 하나는 금강이 드러나면 조선이 새로워질 것이라는 산중의 보석 금강산이요, 둘은 조선 중엽을 풍미했던 무애 도인 진묵이 주석하던 봉서사요, 셋은 시천주(侍天主)로 개벽세상을 꿈꾸었던 수운이 도통했다는 경주의 용담정이었다. 모두가 낙원의 개벽세상을 원하던 한량도인 소태산의 꿈과 통하는 장소였다.

대종사는 한 몸이 다른 몸으로 바뀌어가며 대대로 주세성자 노릇을 한다는 생각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다만 낙원공동체의 새로운 세상을 이루리라는 공통적 원력에 따라 성인들이 함께 모인 회상의 일원으로 일하기를 원했을 따름이었다.

그래서 대종사는 그대는 나의 도덕을 보고 믿지, 인격에 의지하지는 말라.’고 덧붙이신 것이다. 여느 성인들과 같이 생년(生年)이 아닌 대각을 회상의 기점으로 삼게 하신 점이나, 미륵불을 개체불이 아닌 처처불상으로 해석하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나에게 신령한 부()가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이요, 그 얼굴은 태극이요, 또 그 얼굴은 궁궁이라"하였으니, 그 이치를 연구할 사]

<류성태 교무>

본 문목은 동경대전'포덕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186045, 37세의 최수운은 심신이 떨리고 무슨 병인지 모를 증세가 나타났다. 순간 어떤 신선의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놀라서 귀를 기울이고 소리를 들어보니 "두려워 말라. 세상 사람들은 나를 상제라 부른다. 너는 상제도 모르는가"라고 하였다. 최수운은 상제가 이렇게 나타난 이유를 물으니 "나 역시 공을 이룬 바 없으므로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여 사람들에게 이 법을 고치고자 하니 의심치 말라"고 했다.

최수운 왈 "그럼 서학으로 사람을 가르칠까요?" 상제 답하기를 "아니다. 나에게 신령한 부적이 있으니 그 이름은 선약(仙藥)이고 그 모습은 태극 같기도 하고 궁궁 같기도 하다. 나에게 이 부적을 받아 질병으로부터 사람을 구하고 나에게 이 주문을 받아 나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면 너 또한 장생할 것이요, 덕을 천하에 펼칠 수 있으리라" 하였다. 상제와의 대화는 최수운이 이 땅에 강림한 필연을 밝혀놓은 글이다.

소태산은 동경대전에서 말한 궁궁과 태극의 의미를 사실적으로 접근했다. 즉 조원선이 동학가사에 "이로운 것이 궁궁을을에 있다(利在弓弓乙乙)" 하였사오니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다. 대종사 "글자 그대로 궁궁은 무극 곧 일원이 되고 을을은 태극이 되나니 곧 도덕의 본원을 밝히심이요, 이러한 원만한 도덕을 주장하여 모든 척이 없이 살면 이로운 것이 많다"(대종경, 변의품 29)라고 하였다.

어느 날, 최수인화는 우연히 발심하여 대종사께 여쭙기를 "저는 동학을 신앙하올 때 늘 수운선생의 갱생을 믿고 기다렸삽던 바,대종사를 한 번 뵈오니 곧 그 어른을 뵈옵는 것 같사와 더욱 정의가 두터워지고 기쁜 마음을 억제할 수 없나이다"(변의품 30)하였다.

소태산은 "그러한 성현들은 심신의 거래를 자유 자재하여 자신이 태어난 국토에 다시 나기도 하고 동양에나 서양에 임의로 수생하여 조금도 구애를 받지 아니한다"고 말했다.

고금을 통하여 이 나라에 무등등한 도인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전무후무한 도덕회상을 건설할 것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도탄에 빠진 민중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킨 새 시대의 성자들이 출현하였으니 최수운, 강증산, 소태산으로서 그들은 민중의 성현들이었다. 소태산은 강증산 및 수운선생은 새 시대의 선현들이라며 이들을 받들고 기념하게 되리라고 했다.

오늘날 성성상전(聖聖相傳)의 정신에서 볼 때 동경대전에서 말한 선약이란 원불교 교법이라 할 수 있고, 궁궁이란 일원상이요, 상제란 대종사라 해도 무방하다.

원불교 교법의 원융 회통성이 여기에 있다. 이에 종교간 배타성을 극복함으로써 최수운, 강증산, 소태산대종사로 이어진 후천개벽의 성자 정신의 회복과 신종교의 메시아적 역할이 관건이다.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6 변의품(辨疑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의품(辨疑品) 32장  (0) 2014.11.06
변의품(辨疑品) 31장  (0) 2014.11.02
변의품(辨疑品) 29장  (0) 2014.11.02
변의품(辨疑品) 28장  (0) 2014.11.01
변의품(辨疑品) 27장  (0) 2014.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