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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圓佛敎)/소태산 대종사

29. 새 회상 창립총회 보광사에서 열다

29. 새 회상 창립총회 보광사에서 열다.

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1589호] 2011년 10월 28일 (금) 서문성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원기9년(1924. 甲子), 소태산대종사는 경성에서 이리를 거쳐 3월 말일(음력)에 전주 곤지산(坤芝山) 아래 전음광의 집에 도착했다. 그러자 각처에서 다수의 신자들이 모였다. 이에 서중안·송만경·이청춘·이춘풍·문정규·박원석·전음광 등 7인이 불법연구회 창립발기인이 되어 창립준비와 총부기지에 대하여 토의했다.

새 회상의 총부기지로 완주군과 익산군 지역으로 고산, 봉동, 왕궁, 북일 등 지역이 거론됐다. 여러 안을 들은 소태산대종사는 "익산 부근은 토지도 광활하고 교통이 편리하여 무산자(無産者)들의 생활과 각처 회원들의 내왕에 편리할 듯하니 그 곳으로 정함이 어떠한가"라고 말했다.

일동이 소태산대종사의 말씀에 이의없이 동의하자 창립총회 개최 장소를 이리 마동 죽산에 있는 보광사(普光寺)로 예정하고 총부건설 기지는 후일 실지 답사 후 확정하기로 하며 각지 회원들에게 창립총회와 관련된 사항을 연락하기로 했다.

 

▲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록.

 

 

6월1일(음 4월29일) 보광사 창립총회에 영광지방의 김기천·김광선·오창건·이동안·이준경과 김제지방의 서중안·송만경·김두환·이일근·구남수, 익산지방의 박원석, 전주지방의 문정규·전음광·임동악이 각각 지방 대표 자격으로서 참석하였고, 이밖에도 다수의 신도들이 참석하여 39명이 모였다.

오전 10시에 임시의장인 송만경이 회의를 진행했다. 임시의장이 본회의 창립취지를 설명하고 이어서 "공심과 인내, 신성으로써 유시무종(有始無終)이 안 되도록 본회를 성립하자"고 독려했다.

 

 

▲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장소였던

    익산 마동 죽산의 보광사 옛 모습.


먼저 임원 선거를 시작했다. 선거는 지명선거로 하자는 의견에 이동안의 동의와 김광선의 재청으로 선거가 시작됐다.

선거에 임하여 '불법에 정통하고 범사(凡事)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으로 본회를 지도 감독할 책임'을 갖는 불법연구회 총재에 오창건의 특청으로 소태산대종사를 추대하자는 의견에 만장일치 찬성하여 소태산대종사가 총재에 추대됐다. 이어 회장 선거에 서중안이 당선되었고, 평의원에 서동풍·박원석·김기천·문정규·송만경·오창건·이동안·전음광이 당선됐다. 그리고 각 부장과 간사는 다음 평의원회에서 선출하기로 했다.

대중의 박수를 받으며 대중 앞에 나선 서중안 불법연구회 회장이 회의를 진행했다. 서중안은 임시 서기로 전음광을 지목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첫 번째 안으로 〈불법연구회규약〉을 이의없이 한 조목 한 조목씩 차례로 원 초안 그대로 통과시켰다.
두 번째 안은 회상의 유지 안건으로 회원의 회비를 월 12전, 연 1원으로 정하고, 그 부족 금에 대해서는 작농 수익과 의연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세 번째 안으로 송만경이 회관 건축 안을 내놓았다. 금년 가을까지 초가집이라도 건립하자는데 만장이 찬성하고, 당장 예산이 서 있지 않는 실정이므로 송만경과 문정규가 나서 각처 회원들에게 모금을 하기로 했다.

네 번째 안은 오창건이 영광은 회원이 가장 많고 기성조합의 본거지이니 길룡리에 기성조합실 출장소 설치를 하여 그곳 회원을 관리하자는 안을 내었다. 이에 이준경이 재청하여 가결되고, 김기천이 영광(영산)출장소에 주재하여 일체 사무를 관할하도록 했다.

이어서 김기천이 '재가출가 선법과 솔성요론'의 강의를 한 후, 시대일보 이리지국장 정한조의 축사를 끝으로 오후 3시에 폐회를 선언했다. 이로써 소태산대종사는 1916년 깨달음을 얻은 후 영산에서 4년, 변산에서 4년의 준비과정 끝에 창립총회를 열어 새 회상을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했다.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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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자 (無産者)

무(無 : 없을 무), 산(産 : 낳을 산), 자(者 : 사람 자)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 무산계급에 속하는 노동자. 교단 초창기 전무출신들이 스스로 무산자라 했는데, 이는 당시의 우리 나라 농민들이 대부분 가난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했다. 원불교는 처음 무산계급·무산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