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절 게송(偈頌)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1장 일원상(一圓相)
제6절 게송(偈頌)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
일원상게송 (一圓相偈頌)
소태산 대종사가 1941년(원기 26) 1월에 여러 제자들에게 전해 준 전법게송.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고 말했다. 형상 있는 것은 변하여 형상 없는 것이 되고, 형상 없는 것은 다시 변하여 형상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형상 있는 것과 형상 없는 것이 서로 변하여 끊임없이 돌고 돌다 보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어 마침내 둘 다 텅 비어버려 아무것도 없어진다. 그러나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그 경지는 영원히 아무것도 없는 그대로 있지 않고 다시 모든 것을 갖추어 천차만별 형형색으로 무궁무진한 조화를 나타내어 이 현실세계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전법게송은 과거 불조(佛祖)들의 전법게송과는 그 형식이 약간 다르다. 과거 칠불의 경우에는 육불 까지는 7자를 1구로 한 4구게였고, 서가모니불로부터 33조사들은 5자를 1구로 한 4구게였으며, 단전밀부였다.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는 한글로 8자 1구의 4구게이고, 법회 석상에서 여러 제자들 앞에서 공전(公傳)으로 발표했으며, 열반을 2년반 정도 앞두고 미리 부촉하였다. 소태산 대종사가 이처럼 미리 그리고 쉬운 글로 여러 대중에게 전법게송을 발표한 것은 많은 제자들에게 법을 쉽게 전하고 진리를 깨치게 하려는 대자 대비심의 발로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 형상 있는 모든 것은 없는 것으로 변화하고 형상 없는 것은 다시 형상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있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주는 성주괴공, 생주이멸, 진급 강급으로 돌고 돌며 변화하는 것이다. 진리는 은현(隱現), 변 불변, 유상 무상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인생은 생로병사, 선악귀천, 흥망성쇠, 진급강급, 강자약자, 승자패자로 돌고 돌며 변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도 미오(迷悟), 번뇌보리로 돌고 도는 것이다. 일년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돌고 돌며, 하루는 밤낮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우주의 삼라만상, 모든 인생은 이와 같이 유와 무로 끊임없이 돌고 돌며 변화하는 것이다. 있다가 없어지고 없다가 있어지고, 이렇게 끝간데 없이 돌고 돌다보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무시무종이요 불생불멸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가 곧 우주의 본체요 인간의 본래성품이며 진리의 궁극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원상의 진리 바로 그 자리로서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구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공은 영원한 구공이 아니다. 진공묘유의 조화와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다. 우주는 그대로 생생약동하는 기운이다. 천차만별 형형색색의 차별세계가 전개되어 구족이 되는 것이다. 구공의 평등세계와 구족의 차별세계, 평등이 곧 차별이요 차별이 곧 평등인 세계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구공이 곧 구족이 되는 진리를 깨쳐야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형상 있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형상 있는 모든 것이 형상 없는 것으로 변화하는 이치를 모르고 고통과 번뇌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오온개공이요 몽환포영인 이치를 알아야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욕심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형상 없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무기공에 떨어지고 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진공에서 묘유가 나오고 공적에서 영지가 생기며 구공이 곧 구족이 되는 이치를 깨쳐야만 하는 것이다. 평등이 곧 차별이요 차별이 곧 평등인 줄을 알아야 하고, 법신여래와 색신여래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만 참으로 진리를 깨친 사람이며 본래 성품을 발견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야만 형상 있는 것에 집착하여 거짓 경계에 끌려 다니지도 않고, 형상 없는 것에 집착하여 허무 적멸에 떨어지지도 않는 것이다. 생사 거래에 해탈을 얻고 육도 윤회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감사 보은·보은불공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형상 있는 것에 집착하지도 말고 무기공에도 떨어지지 않으며 구공이 곧 구족이 되는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게송에는 대개 오도송(悟道頌)·전법송(傳法頌)·열반송·수행시 등 네가지가 있다. 오도송은 진리를 깨친 기쁨과 그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요, 전법송은 제자들에게 법을 전해주는 것이며, 열반송은 열반을 앞두고 생사 해탈의 심경을 노래한 것이요, 수행시는 수행 과정의 깊은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일원상게송은 전법송과 열반송을 겸한 것이다. 게송의 형식은 대개 4자 내지 8자를 1구로 하고, 4구를 1게송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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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偈頌)
⑴ 경·론(經論)가운데 귀글(句)로써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한 노래 또는 교리를 요약해서 기록한 것. ⑵ 조사(祖師)나 고승 대덕들이 평생을 수행 정진한 결과로 활연대오한 진리를 요약·표현해서 후학(後學)들에게 법을 전해준 것. 게송에는 일반적으로 글자수와 글귀의 수에 형식이 있다. 4자 내지 8자를 1구로 하고 4구를 1게송으로 한다.(때로는 이 형식을 벗어난 경우도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1941년(원기 26) 1월 28일에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돌고 돌아 지극하면/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을 설했다. 정산종사는 1962년(원기 47) 1월 22일에 「한 울안 한 이치에/한 집안 한 권속이/한 일터 한 일꾼으로/일일원세게 건설하자」는 삼동윤리를 게송으로 설했다. 게송에는 일반적으로 몇가지 종류가 있다. 33조사 전법게송 같이 법을 전해주는 것을 전법게송이라 하고, 열반할 때에 생사에 관한 법문을 설하는 것을 열반송이라 하며, 도를 깨친 경지를 표현한 것을 오도송(悟道頌)이라 하고, 수행의 경지를 표현한 것을 수행시라 한다. 이외에도 불교에는 많은 게송들이 전해 온다.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를 칠불통게(七佛通偈)라 한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을 무상게(無常偈)라 한다. 「제법종연생 여래설시인 시법종연멸 시대사문설(諸法從緣生 如來說是因 是法從緣滅 是大沙門說)」을 법신게(法身偈)라 한다. 이외에도 탄불게(嘆佛偈) 등 불교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게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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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기초교리 강좌
게송(偈頌) -이 운 철
대종사의 각의 정수를 표현한 것
[442호] 1986년 01월 16일 (목) | 원불교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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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송은 소태산 대종사님의 전법게송(傳法偈頌)이다. 대종사께서는 평소에 전법을 단전(單傳)이 아닌 공전(共傳)으로 전하여 누구나 나의 심통제자가 되면 모두 받도록 하셨다.
이 게송은 원기 26년 1월에 제자들에게 내리시면서 「옛 도인들은 대개 임종 당시에 바쁘게 전법 게송을 전하였으나, 나는 미리 그대들에게 이를 전하여 주며, 또는 몇 사람에게만 비밀히 전하였으나, 나는 이와 같이 여러 사람에게 고루 전하여 주노라, 그러나 법을 오롯히 받고 못 받는 것은 그대들 각자의 공부에 있나니, 각기 정진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라」고 부촉하였다.
게송은 진리의 당체요, 성리의 진체(眞體)라고 하시고, 이 자리는 사량으로서 알려고 하지 말고 관조로서 체득하라고 하였다. 게송의 내용은 대종사님의 「각」의 정수요, 진리관 인생관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유는 변화요 무는 불변이다. 곧 변 ㆍ 불변의 진리가 상극해 있음을 의미한다. 변고 불변은 진리의 양면 곧 표리관계이다. 형이하하적, 즉 경험적으로 보면 변 ㆍ 불면이 있으나 그 극치 곧 「돌고 돌아 지극하면」의 지극한 경지, 체용합일처에 이르면 유 ㆍ 무 구공이다. 유 ㆍ 무 구공은 유 ㆍ 무 초월을 의미한다. 또한 구공은 구족이다. 구족은 남김없이 갖추어져 있다는 본자구족(本自具足)의 의미이다. 본래 스스로 구족한 자리로서 유 ㆍ 무를 총섭한 자리다.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돈다.」는 것은 묘유의 실상을 나타낸 것으로서 생생약동하는 진리의 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진리는 정체를 허용치 않는다. 정체된 것은 진리가 아니다. 「돌고 돈다.」는 것은 원만과 능동성을, 영원과 생성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구공(俱空)에 바탕한 것이다. 구공이기 때문에 구족(具足)한 것이다. 공(空)이 아니면 구족일 수가 없고, 변(有) ㆍ 불변(무)의 묘유가 있을 수가 없다. 만유를 포월(包越)한 진리요, 유 ㆍ 무를 총섭한 진리다.
신앙인은 이러한 진리를 철저하게 깨달아 변이나 혹은 불변에 치우침이 없이 본성이 구공한 것을 잘 보림하고,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행」을 나토는 표준을 삼아야 한다. 즉 유(변)와 무(불변)를 초월하면서도, 유 ㆍ 무를 총섭 하는 구족의 진리를 나토어야 할 것이다.
<교무 ㆍ 원광대 원불교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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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6} 일원상 게송
우주와 인생문제를 푸는 열쇠
[1414호] 2008년 02월 15일 (금) | 박혜훈 교무![]() |
여기 저기 탄식과 한숨쉬는 소리가 들린다. ‘주식이 폭락했어. 이제 어쩌지?’,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지. 그 사람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지?’, ‘어느 세월에 이렇게 나이만 먹은 거야?’, ‘잘될 줄 알았는데, 그 많던 것은 다 어디로 간거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것도 아침 이슬처럼 사라져 가는 일이 빈번한 것이 사람살이인데, 언제나 처음 겪는 일처럼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한다. 문제에 봉착할 때 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괴로움에 괴로움을 거듭한다.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원상 게송은 우주와 인생의 문제를 푸는 열쇠를 제공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반적으로 게송은 부처님의 공덕을 찬미한 노래나 중요한 가르침을 요약하여 표현한 것 또는 부처님이나 성현들이 평생 동안 수행 정진하여 크게 깨달은 진리를 짧은 시구형식으로 전해준 것을 가리킨다.
일원상 게송은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1941년(원기 26년) 1월 28일에 제자들에게 발표하신 것이다. 열반을 바로 앞두고 발표하신 것이므로 소태산 대종사님의 열반송이자 법을 전하신 전법송이다.
그러므로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은 진리의 실상을 간략하지만 가장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다시 있게 되는 것이다. 형상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변화하고, 형상 없는 것은 다시 형상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 하면 보이지 않는 무량의 세계가 전개된다.
예컨대 봄·여름·가을·겨울로 돌고 돌 듯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돌고 돌며 변화 없는 가운데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주만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도 생생 약동하여 좋고 싫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양하게 변화한다(有無).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俱空) 그대로 우주의 실상을 담고 있는 절묘한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具足). 일원상 진리가 펼쳐 보이고 있는 참 세상인 것이다.
있는 것에 집착하거나, 공허함에 갇혀 헤매는 사람살이. 없는 것을 갈구하고 지금 가진 것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살이 등. 일원상 게송을 화두로 하면 무엇이 진정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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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8} 게송
자신 성업으로 백년 성업 동참하자
[1463호] 2009년 02월 27일 (금)
김원종 교무 webmaster@wonnews.co.kr
게송은 깨달아 느낀 소감을 글로 표현한 것을 게(揭)라 하고 이 글을 찬미하여 외워 읽는 것을 송(頌)이라 한다.
이 일원상 게송은 원기26년 1월4일 대중이 모인 가운데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하신 우리들에게 전하여 주신 전법 게송이다.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이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에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
부촉해 주신 말씀대로 믿고 정진하여 깨쳐 얻으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간 위로만 보이는 커다란 프로펠러가 있다. 이 프로펠러의 날개가 천천히 돌면서 아래로 내려 갈 때는 보이지 않고 위로 올라오면 보인다. 프로펠러가 눈에 보이면 유이며 보이지 않으면 무이다. 이렇게 계속 보이고, 보이지 않고 계속 돌고 돌아 빨리 돌면(지극하면) 위로 올라 올 때도 날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때가 구공이다.
날개가 보이지 않으면 날개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분명히 날개는 그대로 있으면서 아래로 위로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 숨었다 나타났다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구족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므로 변하기 전의 모습은 없는 것이다. 변한다는 것은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변하여 가는 모습 모두가 실상(實相)이 아니다.
유와 무가 함께한 모습으로 있는 것이 실상이며 공(空)이다. 찾아보면 없는 것이 구공이며, 찾아보면 없지만 실제는 있는 것이 구족이다.
마음이 일어날 때가 유이며 마음이 소멸될 때가 무인 것이다.
마음을 단전에 주하여 일어났다 소멸되어지는 마음들이 적적성성 해져서 원적무별한 진경에 들면 구공이며 성품의 진체이고, 이 안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구족이다.
생각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어 관조하는 것으로 깨쳐 얻어 대종사님께 보은 하는 제자들이 되는 것이 개교백년 성업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인 자신 성업 봉찬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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