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일원상 법어(一圓相法語)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1장 일원상(一圓相)
제5절 일원상 법어(一圓相法語)
이 원상(圓相)의 진리를 각(覺)하면 시방 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알며, 또는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 또는 제불·조사와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 또는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인과 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陰陽相勝)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 또는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인 줄을 알리로다. 이 원상은 눈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이 원상은 귀를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이 원상은 코를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이 원상은 입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이 원상은 몸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이 원상은 마음을 사용할 때에 쓰는 것이니 원만 구족한 것이며 지공 무사한 것이로다. |
일원상 법어(一圓相法語)
소태산 대종사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경지와, 그 진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육근동작을 통하여 활용하는 표준을 제시한 법어. 일원상의 진리는 인간의 육근동작을 통해서 현실세계에 나타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육근동작을 통해서 현실생활에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사람의 육근동작은 다음과 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① 시방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인 줄을 안다.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사람은 이 우주 전체가 다 나의 소유인 줄을 아는 것이다. 우주의 근본원리와 나의 본래성품이 하나인 것인 줄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로이 「내 것」이라는 소유관념이 없다. 내 것 아닌 것이 있을 때 내 것이 따로 있다. 모두가 내 것일 때에는 내 것이 따로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 수행자는 무소유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무소유의 경지에 도달하면 내 것이라는 욕심이 없으면서도 내 것이 아닌 것도 없기 때문에 특별히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 전체가 다 나의 소유이기 때문에 모두를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내 몸처럼 아끼게 되는 것이다.
② 우주 만물이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안다.
천태만상 형형색색으로 나누어 진 우주 만물의 이름이 각각 다른 것임을 아는 것은 곧 차별세계를 아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는 우주 만유의 본원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차별세계 뿐만 아니라 평등세계 까지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이 내 몸과 하나인 경지를 알기 때문에 미물 곤충이나 금수초목까지라도 함부로 살생하거나 꺾지 않는다. 내 몸을 아끼고 생각하듯이 만물을 대하기 때문에 처처불상임을 알게 되고 사사불공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③ 제불 조사와 범부 중생의 성품인 줄을 안다.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보면, 일원상의 진리가 곧 제불 조사와 범부 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게 되며, 그렇기 때문에 제불 조사와 범부 중생의 성품이 하나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의 성품도 제불 조사의 성품과 같은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자성불의 본래 면목을 깨치고 자성 삼신불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임을 알기 때문에 내 자신에 대한 불공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며, 내 마음을 함부로 죄악에 물들게 하거나 타락 시키지 않는다. 범부 중생의 성품도 나의 성품과 하나임을 알기 때문에 범부 중생이라고 해서 경멸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범부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알아서 항상 상불경(常不輕)의 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겸허하고 공손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④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영원한 세월에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이다. 춘하추동이 한 번 돌아가면 일년이 바뀔 뿐 이듬해가 되면 다시 춘하추동으로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인간의 생로병사가 춘하추동과 같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삶에 대한 애착도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이 담담하게 생사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와도 왔다 할 것이 없고 가도 갔다 할 것이 없는 가운데 생사 거래를 하고, 오고 감이 없는 가운데 오고 가기 때문에 생사에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⑤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안다.
천지에는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있어서 음양상승하는 가운데 우주가 운행되는 것이다.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과보응의 이치도 역시 음양상승의 이치와 같이 선행자는 상생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상극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면 항상 상생 선연을 맺게 되고 상극 악연을 멀리 하게 되는 것이다. 상생선연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영원한 세상에 혜복이 구족하고 진급하게 되는 것이다.
⑥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인 줄을 안다.
일원상의 진리는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진공묘유의 조화가 우주 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와 무가 끊임없이 돌고 돌아 구공이 되고 다시 구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원상의 진리는 유와 무를 총섭해서 모든 것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으며, 진리의 궁극처이기 때문에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사람은 곧 우주의 주인이요 무궁무진한 조화불인 것이다.
⑦ 육근동작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사용한다.
육근 동작은 본래성품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깨친 사람은 성품 그대로 육근을 활용하기 때문에 육근동작은 곧 법이요 도요 진리인 것이다. 본래성품 그대로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냄새 맡고 움직이고 생각하기 때문에 육근동작은 진리의 활용 그대로라, 절도에 맞고 법에 계합하는 것이다. 육근동작이 잠시도 일원상의 진리를 떠나지 않고 천진불의 본래면목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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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일원상 법어 ①
큰 원상을 그려 진리를 상징
작은 원상을 그려 체 받게 해
[226호] 1979년 01월 25일 (목)
이은석
webmaster@wonnews.co.kr
대종사는 원기 23년에 일원상 서원문을 친재, 일원 종지를 천하에 선포하시고 수년 동안을 제자들로 하여금 그 뜻을 연마케 하시다가 이어서 그 심오한 뜻을 깨달아 얻도록 하고 또한 심독토록 하기 위하여 대 법문을 내리시니 이가 곧 일원상법어인 것이다.
이는 수억 겁을 통해 옛 부처가 나시기 전에 이미 이 도리가 응연히 나투시었다는 일원상이니라 하였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삼세제불 현성이 각기 그 시대와 국토를 따라 천만 방편과 언설로써 또한 표상하시었다.
그것이 8만 장경이요 사서 육경이며, 신약 구약이요, 동서학설이 있으니 어찌 우열 심천이 있으리요만, 다만 시대와 국토가 근기를 따라 달리 하였을 뿐이다.
인류 문화가 시작된 이후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문명의 세계를 맞이하여 우주 내에 펼쳐있는 이상과 현실이 모두 다 음계에서 양계로, 은(隱)이 현(現)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부분에서 전체로, 독존에서 공존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고 발현되어가고 있다. 대종사께서는 이러한 현상을 남 먼저 깨달으시고 들어내실 것을 스스로 자담하시었다.
그러기에 그 이름 주세 성자라 하시었고 이 세상 구제의 소임을 맡으시어 그에 맞도록 설하신 일원상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에 큰 원상을 그려 그의 본질 체성을 밝히시고 작은 원상 여섯 개를 그려 그를 법 받아 마음으로 체득하고 육근으로 궁행하도록 하시었으니 일원상 법어라 하신 것이라 풀이해본다. 법어라고 하신 뜻은 바로 법 받으라는 말씀으로서 그리어 표상하신 일원상을 본으로 하여 법 받도록 하신 법문이라 하겠다.
일원상의 본질 체성을 풀이하신 큰 일원상을 그려 보이시고 첫 허두에 「이 일원상을 각(覺)하면」이라 하였는데 이는 일언일구도 감히 허용하지 않는 당처임을 천명함이요, 어느 한 쪽이나 한 물건일 수 없는 궁극적이요 전체자임을 밝히심이며 한갓 상징적인 표상이 아니라 우주와 인생의 생성하는 존재론적 사실임을 입증한 것으로써 각증 위에 영롱하게 들어나는 경지라 한 것이며 또한 진리 터득의 방법론적 제시라고 할 것이다.
첫째로 「시방 삼계가 오가의 소유인 줄을 알며」라 하였다.
우주의 순환이나 만유의 생성이 각각 그 이름이 다르고 생성이 다른 천차만별한 삼라만상이다. 그것이 어찌해서 내 것이란 말인가? 이 내 것이란 나의 개념은 차별을 이룬 부분 개체의 아(我)가 아닌 전체자로서 나를 지칭한 것이기에 모두 각각 나열되어 있는 우주만유가 필경 생성변화 한다는 것은 그 어느 하나에 의하여 통어되어 있지 각각 따로 떨어져 생성변화 하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그 이름은 무엇이든지간에 오직 하나인 것이다. 하나인 경지에서 볼 때 내 것이요, 하나인 것에 통어되어진다면 또한 내 것이 아니겠는가?
둘째 「우주 만물이 이른은 각각 다르나 둘이 아닌 줄을 알며」라 하였다.
얼핏 보면 앞에 말씀을 되풀이 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앞에서 밝히신 하나는 전체 모두이거나 깨끗이 원성해 있는 경지를 설명한 말씀으로 풀이해야 할 것이다. 다만 하나인 편에서 볼 때 본질적 궁극적 전체적인 입장에서 내 것으로 달관하는 경지라면 이는 개개의 삼라만상이 생성하고 변화하고 있는 사실 세계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꽃은 붉고 버들은 푸르고 그대로 토모(兎毛)만큼의 한 가락도 빠트리지 않는 전체 실상 모두 그대로가 일원상임을 밝히신 것이다.
셋째로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인 줄을 알며」라 하였다.
나열되어 있는 우주만유 가운데 다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니 유정중생의 생성 변화케 하는 그 본래적으로 품부해 있는 성품(심신)의 작용을 따라 스스로 차별변화 세계가 이루어짐을 밝히시었다. 그러기에 여기에서 특히 자신을 자각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과 그 인간이 미오의 차이로써, 불완전한 중생계에서 완전자인 불보살의 세계로, 미혹에서 헤매이는 고해에서 자각적 선업으로, 무궁한 복락의 세계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 즉 수도 선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함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총부 순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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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일원상 법어 ②
한 개의 큰 원상을 체득하여야
지공무사한 원만행이 되도록
[227호] 1979년 02월 10일 (토) | 이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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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인간의 생로병사의 변화를 우주자연의 사시 순환으로 설명하시고 또 인간의 길흉화복과 죄복 고락으로 차별되어가는 것이 우주 자연의 이법인 음양상승과 같이 됨을 밝히셨다.
바꾸어 말하면 우주만유의 생성변화가 만고 이래로 오늘날까지 해와 달이 오고감에 따라 주야가 변천하고 이것이 돌고 돌아 춘하추동의 사시로 변화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해왔다. 이 돌고 도는 무한한 수명을 따라 인간도 또한 생로병사로써 한없는 세상에 생래사거하며 영원히 불생불멸의 무량세계를 전개하고 있음을 밝히시었다. 나아가서 무한히 생사거래 하되, 한결같이 생성 변화해 온 모습은 천차만별로 달리하고 있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조물주의 창조설도 있으며 우연발생이나 미생한 종자의 진화로 설명하는 진화설도 있음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종사께서는 자업자득이라 「스스로 지은 업식 때문에 지은대로 죄복 고락간에 과(果)를 받아 오늘의 차별현상을 이루었다.」고 설명하는 불교의 인과설을 인준하시었으니 이는 불생불멸의 영원한 생명을 전제하면서 그 생명의 생성 변화하는 법칙으로, 이 인과보응의 이치를 설파하심은 당연한 이치라 미루어 생각되어진다.
그러나 이 인과보응의 이치를 우주만유의 생성 이법인 음양상승으로써 설명하시고 이 상승의 이법이 만유를 생성할 때, 혹은 상생으로 혹은 상극으로 하여, 무한히 돌고 돌아감으로써 무량한 차별 세계가 질서있게 전개됨으로 이를 인과봉으의 이치라 설파하시었다. 그러므로 불교의 인과설을 인준했으되, 이법을 우주생성의 원리인 음양상승에 두시었음은 특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에서 밝히신 대로 하나이며 모두요, 그가 곧 부처와 중생의 성품으로서 일원상의 체성이라 하시고 그가 생성변화의 조화로 표현될 때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으로 티끌만큼의 차이도 없이 질서 있게 전개됨은 바로 인과보응의 이치라고 간파하시고 이것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라 하였다.
이 이치에 의하여 우주만유 함께 모두 생성변화해가고 있으니 원만구족이요, 생성 변화하되 털끝 하나 빠짐이 없이 또 틀림이 없이 지은대로 공 드린 대로 나투나니 지공무사라 결론하시었다. 여기에서 설명해 둘 것은 일원상의 볼진 당체가 바로 우주 인간의 본래적 마음이요, 또 한 때 묻지 않고 물들지 않은 양심이라 했으니, 이 본래적 마음이란 입장에서 원만 구족한 마음과 지공무사한 마음의 정체가 무엇이겠는가?
역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문자의 기술이 불가능한 본래적 마음을 무엇으로 밝히겠는가마는 강연히 원만 구족한 마음이라면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하며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닌 한 생각도 머물러 있지 않는 공적한 진공의 실상자리로서 불편 불의한 마음자리요 지공무사한 마음이라면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한 마음에서 있어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며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마음에서 선하기도 학하기도 하는 마음이며 공적한 곳에 영지 불매한 마음이요 진공한 가운데 조화 만능한 묘유의 마음으로 과하지 아니하고 불급하지도 아니한 원만 행을 이름이라 하시었다.
그러므로 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원상을 법 받는 것을 공부로 알고 공을 쌓으라 하시었으니 여섯 개의 작은 원상이 그 가르치심인 것이다. 우리의 마음공부란 과거와 같이 막연하게 마음마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 구체적인 작용으로 눈 귀 코 입 몸 뜻이 육근을 스스로 법 받아 규제하고 조절하고 키워서 이 육근의 작용이 바로 원만 구족한 마음으로 지공무사하게 나투어 활용하라 하신 것이다. 즉 경계에 끌리지도 아니하고 법에 얽매이지도 말고 선입된(물들은) 전심(前心)을 갖지 않는 마음으로 경계를 처리하고 또한 그랬다는 생각도 말고 나투며 전심 없이 공경하게 과하지도 말고 불급하지도 않는(중도) 원만한 처리를 하라고 하시었다.
이를 다시 결론해 말씀하시기를 잡념이 없는 일심으로 불의의 행을 하지 아니하고 정의 행을 하라 하시었다. 그러므로 공부로 알아 끊임없이 대중하고 공 드릴 때 비로소 일원상의 위력과 체성에 합덕하리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눈으로 볼 대에 그러하고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입으로 말을 할 때, 몸을 움직일 때, 뜻을 정할 때에도 항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원상을 법 받아 작용하여 원만 구족한 마음이 항시 자리하고 바탕 하여 지공무사케 처리하고 행동하여 일용 삼천의 모두가 원만행이 되도록 하라시는 법문인 것이다.
<총부 순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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