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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

제4 인도품(人道品) 25장

대종경(大宗經)

4 인도품(人道品) 25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다 남에게 존대 받는 사람 되기를 원하건마는 행하는 데 있어서는 홀대 받을 일을 더 하나니 어찌 바라는 바를 이루리요. 저 사람의 존대를 받는 방법은 곧 내가 먼저 저 사람을 존대하며 위해 주는 것이니, 내가 그를 존대하고 위해 주면 그도 나를 존대하고 위해 주나니라.]

[영원한 화해와 평화]

<장원경 교무/영산선학대학교>

인류가 생긴 이래로 강자와 약자의 출현을 피할 수가 없었다. 무수한 세월 속에 강자와 약자들은 끊임없이 대립 갈등의 악순환을 만들면서 흥망성쇠의 드라마를 펼쳐왔다.

힘을 추구하고 힘을 길러나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욕망이고 권리이지만 그 힘을 도에 맞게 구하고, 그 힘을 세상에 선용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또한 강자와 약자의 만남에서'화합'이나'평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그런데 인도품 24장에서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여 각각 그 도를 다 하면 이 세상은 영원한 평화를 이룬다 하시고, 그렇지 못하면 다 같이 재화를 입고 세상의 평화는 영원히 얻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어 25장에서는 사람의 존대를 받는 방법은 곧 내가 먼저 저 사람을 존대하며 위해 주는 것이니, 내가 그를 존대하고 위해 주면 그도 나를 존대하고 위해 준다는 평화의 방법론을 제시하셨다.

약육강식과 적자 생존의 관념에 싸여 개인이나 국가들이 힘만을 내세우고 극도의 이기주의에 휩싸여 있던 어두운 시대에, 대각 후 최초법어로서 해주신 '강자·약자의 진화(進化)상 요법'은 진리를 깨달으신 분으로서 새로운 세계를 내다보는 역사적 판단이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정확한 방향 제시였다.

강자와 약자가 서로 의지하고 바탕이 되는 상부상조의 은혜 관계임을 밝혀 주신 것은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희망의 메시지였다. 약자가 강자를 억압자·착취자로 간주하고 강자가 약자를 배신자·무식자로만 본다면 인류가 염원하는 세계평화와 사회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강자의 도와 약자의 도는 무엇일까? 강자의 도는 자리이타로서 약자의 능력과 역할을 최대로 보장해주고 발휘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는 폭넓은 불공이다. 삶의 경험에서 부터 고도의 정보 지식에 이르기까지 약자에게 모자란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지혜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강만 남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장래를 볼 때는 마치 말라 들어가고 있는 물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놀고 있는 올챙이와 같다고 했다.

약자의 도는 남을 높이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특히 진리를 믿고 수행에 노력하며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여 진보해 가는 것이다. 강자에 대한 반항이나 원망만으로는 약한 힘이 강해질 수 없다.

강자와 약자가 각각의 도를 다하면서 서로 인정하고 위해 줄 때 진정한 화합과 평화의 세상이 될 것이다.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强者弱者進化上要法]

[개요]

소태산대종사가 제시한 사회발전의 원리로 정전수행편 13최초법어’ 3절에 수록되어 있다.

[용어의 성립 및 변천과정]

불법연구회창건사에 의하면 최초법어1916(원기1)에 설해진 것이나,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1928(원기13) 226일에 서울 계동 이공주의 집에서 민자연화이성각이동진화이공주이철옥이현공성성원 등 회원에게 구체적인 내용으로 다시 설해졌으며, 이 법문이 초기교단의 간행물인 월말통신창간호에 이공주 수필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이 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자와 약자 사이에는 어찌하여 강자는 늘 강위를 여의지 아니하고 약자라도 강자가 되겠느냐. 강자가 더욱 강하여 영원한 강자가 되고 약자라도 점점 강하여 영원한 강자가 되는 법이 있건마는 이 세상 사람들은 그 좋은 자리이타법을 쓰지 못하고 약육강식을 하며 약자는 강자를 미워만 하다가 강자와 약자와는 원수가 되며 또는 생명을 희생하며 더욱 심하면 세세생생의 끊어짐이 없는 죄를 지어 고를 만나니라.

비하여 한 예를 들어 말하면 갑동리와 을동리 두 곳이 있는데 갑동리는 모두 가난하고 무학하여 천견박식자(淺見薄識者)뿐이오, 을동리는 가세도 넉넉하며 유식하여 견문이 넓고 인격도 똑똑하여 누구에게든지 굴할 일이 없고 보면 갑동리 곧 약자에게 덕을 베풀어 자리이타 되는 법을 쓰지 못하고 약자를 업수이만 여겨 차차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로 와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둘러먹기도 하고 전곡 재산도 빼앗으며 토지 전답도 저희가 차지하며 심하면 그 땅의 세금을 저희가 받아먹고도 유위부족하여 무식자니 미개자니 야만인이니 하고 가진 학대를 하여 문서 없는 노예를 삼고 각색으로 부려먹으면서도 압제는 압제대로 하게 되면 갑동리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물론 갑동리에서는 그 압제를 할 수 없이 받을지며 그중에도 성정깨나 있는 사람들은 우선의 압제받는 것만 원통하여 을동리의 명령을 복종치 않다가 혹독한 처분을 받으며, 또는 갇히고 죽고 여러 가지 설움을 당하나니라. 혹 그중에서도 뛰어나게 똑똑하고 계교 있는 사람은 저의 압제받는 원인을 생각하여보나니 그 원인인즉 무타(無他)라 곧 가세 없고 무식하며 따라서 견문이 천박한 까닭인 줄을 자각하게 되나니 그리되면 어떠한 방면으로든지 노력을 하여 을동리와 같이 강자가 되리라 굳게 결심하고 분심을 일어내어 공부를 하여가지고 겨우 강자의 위에 앉게 되면 또 앞에 할일은 생각지 못하고 우선 받은 분풀이 먼저하고 싶은 생각에 저와 같은 동지를 구한즉 몇 사람에 넘지 못하고 모두 무식하여 자기의 뜻도 이해할 자가 없는지라, 그리되면 자기 동리 사람들을 욕하고 흉보며 하는 말이 너희와 같이 생각 없고 무식한 자로 하여 우리 동리는 이와 같은 설움을 당하면서도 대항도 못하여본다하고 원망하며 그만 참지 못하여 몇몇 사람이 강자가 되었노라고 작당하여 가지고 을동리 곧 강자에게 대하여 그 곳의 무리함도 질책하고 그 편의 시키는 일이면 불복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기회 나는 대로 을동리에게 해를 가하려 하나니, 그리되면 그 을동리는 전반이 강자이라 곧 대전하여 몇몇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할 수 없어 혹 욕을 보고 혹 죽고 하여 생명만 희생하게 되나니라. 그러하나 갑동리에 참 정신이 박히고 대강의 예산이라도 있는 자가 있으면 생명 하나 없이할 일 없이 강자가 꼭 되는 법이 있나니라.

그 법은 을동리의 강자들이 와서 압제를 하며 토지와 전곡을 빼앗으며 여러 가지로 압제를 한다하여도 아무 소리 말고 종노릇을 잘 하여주며, 경우에 따라서 매라도 맞고 약자의 분수를 잘 지키고 될 수 있는 대로 외면은 어리석고 못난 체를 하여 강자로 하여금 안심을 시키고 내용으로 급히 할 일은 어떠한 방면으로든지 돈 벌기를 주장하고 배우기를 주장하며 다만 몇 사람씩이라도 편심(片心)을 버리고 단심(團心) 만들기를 위주하여 자본금을 세우고 교육기관을 설치하여 가지고 가르치며 배우고 서로 권고하되 우리는 돈 없고 배운 것 없어서 약자가 된 것이니 아무쪼록 각성하여 근검저축하며, 배우기를 힘쓰며, 우리 동리가 일심단체가 되고 보면 무엇이 두려우리요. 우리는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자하며 한 사람이 열 사람을 가르치고 열 사람이 백 사람을 가르쳐서 서로 막혔던 울타리를 트며 개인주의를 버리고 단체주의를 하여 한 동리를 위할 만한 공공심이 생긴다하면 곧 그 동리는 요부(饒富)도 할 것이요 지식도 유여(裕餘)하게 될지라, 그리만 되면 괴롭게 시비를 아니하여도 을동리의 강자들은 갑동리의 형세를 보고 이전 저의 무리한 행동을 회고하고 자겁(自怯)하여 혹독한 압제는 고사하고 저희들 스스로 뺏아갔던 토지 전곡도 내어놓으며 전자의 잘못함을 후회하여 용서를 청하게 될지니 갑동리 곧 약자들은 스스로 제일만 했건마는 강자가 되었으며 을동리 이상의 강자가 되었으니 그는 을동리에서는 항상 저희가 강자인 줄만 알아서 향상심이 없고 다못 남을 업수이만 여겼으니 물론 갑동리에 비하면 약자라 아니할 수 없나니라.

이러한 빠른 법을 놓고 세상 사람들은 약자가 되었으면 약자된 것만 원망하고 한탄하며 지리한 압제를 면치 못하고 또는 혹 선각자라도 편심이 되어서 여러 사람에게 덕으로서 감화시키지 못하고 단독으로 섣불리 서둘다가 생명이나 희생하나니 어리석다 아니할 수 없나니라. 다시 간단히 말하면 약자는 강자가 되기 전에 어찌하면 약자가 변하여 강자되는 이치를 알아서 강자되는 길로만 전진을 하고, 강자는 아무리 강자라도 변하여 약자가 되고 또한 어떻게 하면 강자로서 영원한 강자가 되는 이치를 알아서 영원한 강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되겠다하시고 또 가라사대 강자로서 영원한 강위를 얻은 사람의 실례를 들면 삼천년 전 서가여래 같은 분이나 또 과거에 요임금 같은 분은 강으로서 영원한 강을 얻는 법을 실천하신 분이요, 강자로서 약자 위에 타락된 사람의 실예를 들면 과거에 진시황, 항우, 현대에 독일 황제로 있는 카이젤 같은 사람이니라”.

이 법문은 후에 예로 들었던 갑동리 을동리 이야기를 제외하고 세 절로 정리하여 최초의 정식 경전인 육대요령(六大要領)(1932) 훈련편 최초법어에 실렸으며, 불교정전(1943)원불교교전(1962)에는 마지막 절이 삭제되고 일부 자구를 교정하여 수록함으로써 완정되었다. 삭제된 마지막 절의 내용은 강자로 영원한 강을 얻은 사람은 과거에 요()와 석가모니불이요, 강자로서 약자를 얻은 사람은 과거에 진시황과 항우와 근세 독일의 윌헬름2세 카이젤이니라이다.

[법문 성립의 역사적 배경]

강자와 약자는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 상대적으로 세력이 크고 힘이 있을 때 강자가 되고 상대보다 뒤져 있을 때 약자가 된다. 소태산은 강과 약의 상대관계를 사회 구성의 불가피한 요소라고 보았으나 영원한 강과 영원한 약은 없다고 보아 강이 변하여 약이 되고 약이 변하여 강이 되는 이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강과 약이 서로 적대적 대립으로 투쟁을 일삼을 경우 함께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강과 약은 서로 의지하고 바탕이 되는 관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계를 잘 활용하여 선린우호적 관계를 맺으면 거기서 큰 은혜가 나타나서 강과 약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강자와 약자는 이 은혜의 관계를 알아서 강자는 약자를 이끌어주고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아 강이 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강자 약자가 다 같이 향상 발전하는 길이다. 대종경세상에는 강과 약 두 가지로 구성이 되었으니 강자와 약자가 서로 마음을 화합하여 각각 그 도를 다하면 이 세상은 영원한 평화를 이루려니와 만일 그렇지 못하면 강자와 약자가 다 같이 재화를 입을 것이요, 세상의 평화는 영원히 얻지 못하리니”(대종경인도품24)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 법은 함께 발전하는 원리이며 평화 공존의 원리이다. 인류의 역사는 국가와 민족간에 평화 우호적인 관계보다 적대적 대립 관계가 더 많았으며 수많은 전쟁으로 문명이 파괴되고 인명 살상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들도 여러 가지 차별제도를 만들어 강자로 군림하면서 약자를 억압해 왔다. 20세기를 전후하여 세계는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가 크게 팽배되면서 이러한 강약의 투쟁관계를 정당화시키는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을 인간 사회에도 적용시키려 했으며, 억눌려온 무산계급을 앞세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강자가 되는가 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선언하여 투쟁의 역사를 옹호했고, 소비시장의 확대를 위한 신세계 탐험, 약소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식민침탈을 자행하는 등 세계는 강약 대립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청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 안에서 각축을 벌였으며 마침내 일본에게 국권을 찬탈당하여 식민 지배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갑동리와 을동리로 강자와 약자를 비유하여 설법한 법문은 당시의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이기도 하다. 약자인 우리나라가 식민 지배자인 일본을 어떤 자세로 대응하여 자주력을 갖춘 강자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그리고 지배자인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통치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폭력을 일삼던 또 다른 강대국들과 식민지 침탈을 당하고 있던 약소국들이 서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깨우치려 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와 세계의 구조적 투쟁관계를 통찰한 소태산이 화합과 협력으로 평화 공존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원리와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이다.

[교리사상적 의의]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은 종교적으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동시에 성취하게 하는 이념을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약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며 그 원인을 자기 스스로에게서 찾을 것이며 강자로 진화할 방법도 자신에게서 찾도록 했으며, 강자가 오래도록 강을 유지하고자 할 때도 약자를 착취하거나 멸시하는 등 비교 우위의 자만에 머물지 않고 절대의 강을 유지하는 방법이 강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곧 강자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한 것이다. 이를 알고 실천하면 강자와 약자 모두 강자가 되어 진정한 평화를 구가하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집단과 집단, 단체와 단체, 국가와 국가가 상호 투쟁적 대립을 일삼으면 함께 멸망하고 만다는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공존공영으로 나아갈 상생의 도를 실천하도록 하여 평등사회, 낙원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사회구원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이 내포하고 있는 이러한 이념은 원불교 교리의 특징인 은사상, 곧 보은상생사상과 다르지 않으며, 나아가서 원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에 고착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보편타당성을 가지는 원리로서 인류가 지향해 온 이상세계를 만들어가는 사상이다. 사회가 진화한다는 것은 사회변동이 긍정적 발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사회변동은 변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원인이라는 것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몇 가지의 원인을 밝혀낸다고 해서 변동의 방향을 예측한다거나 변동의 물길을 임의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변동 과정을 잘 살펴서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역사의식을 가진 인간의 할 일이다.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은 갈등과 투쟁의 사회구조를 상호 발전하는 진화의 구조로 전환시키자는 논리이며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과 가치관을 그런 방향으로 바꿔갈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류 역사의 변천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론은 수없이 많으나 허다한 이론들 가운데 이 시대의 상황에 적합한 이론을 선택하고 수정을 가하여 인류사회에 제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초자연적 또는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이론을 배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류의 발전된 문명이 신의 은총이라거나 전쟁의 참화가 신의 노여움 때문이라는 해석은 합리적이지 않을 뿐더러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피동적 사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은 강자가 더욱 강하여 영원한 강자가 되고 약자도 점점 강하여져서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은 자리이타의 도를 실천하는 것이라 하여 인간의 합리적인 노력으로 상생하는 법을 제시했으며 조금이라도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힘에 의지하려는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둘째, 보편성이 없는 이론을 배제해야 한다. 특정한 사회, 특정한 시대의 현상만을 설명하는 그친 이론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의 사회는 물론이요 미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어야 하며, 공간적으로도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가에 관계없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특정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이라도 다른 사회에 적용이 가능한 이론은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셋째, 사회학적 이론이어야 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회 변동의 원천을 사회의 흐름과 문화 속에서 찾는다는 의미이다. 사회 밖의 원인, 예를 들면 지리적기후적생물학적 요인으로 사회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이 상호 작용하는 양태는 협동갈등경쟁강압교환 등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 갈등은 사회변동의 중요한 요인이다. 갈등이 없는 사회가 지극히 평화로울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진보 없이 정체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체된다는 것은 발전이 없다는 것과 같으며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퇴보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갈등은 역동적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 역동성을 살리면서 과정상에 나타날 구조적인 악을 최소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해 볼 때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은 적절하며 합리적이고 보편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