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삼학(三學)
삼학(三學)
원불교의 중요한 기본 교리의 하나.
일원상의 진리를 깨쳐서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수행방법으로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세가지를 삼학이라고 한다.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도덕박사가 되는 공부법이 곧 삼학이다. 인간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삶·죽음·고독·방황·갈등·욕망·사랑·정치·경제·교육·문화·예술·종교 등 수없이 많고 복잡한 문제들을 갖고 살아간다. 역사상의 시대에 따라 그 시대의 절실한 문제가 있다. 이 모든 문제 중에서 모든 인류에게 공통된 문제, 개인·가정·사회·국가·민족·시대를 떠나 가장 근본적이고 절실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도덕성의 문제이다. 인간사회의 모든 문제는 결국 도덕성의 상실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모든 문제 해결의 근본은 역시 도덕성의 회복인 것이다.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정치·경제·과학 등 인간사회의 온갖 것이 아무리 발전한다 할지라도 도덕성이 타락한다면 인간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도덕성은 인간사회의 모든 것, 정치·경제·교육·종교·학문·기술 등의 발전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비례 할 때도 얼마든지 있다. 도덕성의 상실은 인간의 이중성(二重性)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 이상과 현실, 선과 악,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얼굴이다. 유한한 존재이면서도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것도 역시 인간의 두 얼굴이다. 또한 인간은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 낙천적 성격과 비관적 성격,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등의 두 얼굴도 갖고 있다. 이와같은 인간의 이중성 때문에 인간의 도덕성은 재산·권세·지위·명예·학문·기술 등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조각가는 돌이나 나무나 쇠붙이를 다듬어서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든다. 수행인은 자기의 마음을 갈고 닦아서 부처의 모습을 아로 새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만드는 예술가요 조각가이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부처와 같이 만들기도 하고, 악마와 같이 만들기로 한다.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실천하고 체험하는 길이며, 자기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여 인간의 이중성을 극복하는 길이다. 인간의 두 얼굴을 하나의 얼굴, 곧 부처의 얼굴로 만드는 길이요,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도덕성을 회복하는 것은 도덕박사가 되는 길이다. 어느 한 분야에 깊은 경지에까지 들어간 사람을 박사라고 한다. 철학박사·문학박사·의학박사·정치학박사·경제학박사 등 박사의 종류가 수없이 많다. 또한 기술이나 기능이 뛰어난 기술자나 기능공도 수없이 많이 있다. 이들 박사나 기술자나 기능공 등은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고, 인류사회에도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이들 보다도 더 존경받아야 하고 필요한 사람이 도덕박사다. 도덕박사는 모든 인류의 스승이며 도덕성을 회복시켜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삼학수행은 도덕박사가 되기 위한 필수과목이다. 삼학수행 없이는 어느 누구도 도덕박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각종 박사가 많은 나라일수록 부강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박사도 역시 인간의 도덕성과는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라는 지식이나 기술을 악용하여 인류사회를 더욱 혼란과 고통속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다. 수많은 전쟁무기의 발달도 박사나 기술자 기능인들이 개발한 것이다. 그래서 도덕박사가 많이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도덕박사가 많은 사회일수록 안녕과 평화와 번영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도덕박사가 존경받는 사회일수록 인간사회의 모든 것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수양이란 안으로 분별망상과 애착·탐착을 버리고, 밖으로 시끄러운 경계를 당해서 마음이 끌려가지 아니하도록 두렷하고 밝고 고요한 정신을 기르는 수행이다. 사리연구란 천조의 대소유무의 이치와 인간의 시비이해의 일을 연구하여 일원의 진리를 깨치고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는 공부법이다. 작업취사란 악업을 짓지않고 선업을 짓는 실천 수행이요, 계율을 잘지키고 모든 일을 정의롭게 행동하고 불의와 타협하거나 불의 앞에 비굴하지 않는 것이다. 정신수양공부를 하면 수양력을 얻게 되고, 사리연구 공부를 하면 연구력을 얻게 되며, 작업취사 공부를 하면 취사력을 얻어서 도덕성을 회복하고 부처의 인격을 이루게 된다.->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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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입문(13) / 제5장 삼학
인간의 정신은 얼굴에까지 나타나
마음이 잘못 길든 사람은 돼지나 여우처럼 된다.
[56호] 1971년 09월 15일 (수) | 손정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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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이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그 진리를 실천하여 일원상을 닮아가는 방법 즉 부처가 되어가는 길이다.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려 해도, 뛰어난 기술자가 되려 해도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되지 못한다.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된다. 하물며 사람이 일원상과 같은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삼학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공부의 요도 삼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 데에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간도 떠날 수 없는 법이다. 예를 들면 육신에 대한 의· 식· 주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즉 우리의 육신이 이 세상에 나오면 먹고 입고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없으면 우리의 생활에 결함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정신에는 수양 연구 취사의 세 가지 힘이 있어야 살 수 있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모든 일을 원만히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영육쌍전의 견지에서 육신에 관한 의· 식· 주 3건과 정신에 관한 일심 알음알이 실행의 3건을 합하여 6대 강령이라고 하나니, 이 6대 강령은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한 가지로 우리의 생명선이 된다.』<대종경 교의품 18장>
『공부하는 사람은 세상의 천만 경계에 항상 삼학의 대중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니, 삼학을 비유하여 말하자면 배를 운전하는 데 지남침 같고 기관수 같은 지라, 지남침 같고 기관수가 없으면 그 배가 능히 바다를 건너지 못할 것이요, 삼학의 대중이 없으면 사람이 능히 세상을 살아가기가 어렵다.』 <대종경 교의품 22장>
『수양 연구 취사의 삼대 과목은 병진해야 한다. 수양과목을 단련해서는 부처님과 같이 사물에 끌리지 않는 수양력을 얻게 하며, 연구과목을 단련해서는 부처님과 같이 일이나 이체에 걸림이 없는 연구력을 얻게 하며, 취사과목을 단련해서는 부처님과 같은 불의와 정의를 분석하고 실행하는 취사력을 얻게 하며, 이 삼대력으로써 일상생활에 불공하는 자료를 삼으면 모든 서원을 달성하게 되고 곧 부처님과 같이 된다.』 <대종경 서품 19장>
① 정신수양
인간의 본성이 착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많은 논란을 거듭해 왔다.
맹자(BC 372~289)와 「샤아프츠베리」(1671~1713)는 인간의 성품은 원래 착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순자(BC 315~236)와 한비자(BC ? ~ 233)와 「홉스」(1588~ 1679)는 인간의 성품은 원래 악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고자와 「록크」(1634~ 1704)와 「벤담」(1748 ~ 1832) 등은 인간의 성품은 원래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대종사께서는 인간의 성품은 원래 착한 것도 악한 것도 없고, 지극히 두렷하고 고요하여 공정한 것인데, 그것이 경계를 대해서 나타날 때는 착하게도 또 악하게도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인간이 경계를 부딪칠 때 본래의 성품이 그대로 잘 나타나면 착한 일을 하게 되고, 잘못 나타나면 악한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원불교 정전 <일상수행의 요법>을 보면 인간의 마음 바탕은 원래 어리석지도 않고 잘못도 없고, 시끄럽지도 않지만, 경계를 따라서 시끄럽게도 되고 잘못하게도 되고 어리석게도 되는 것이라 하였다.
정신수양이란 시끄럽고 더러워지고 깨끗하고 공정하게 길들여 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착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착한 마음을 가지면 착한 일을 하게 되고 악한 마음을 가지면 악한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부처님의 마음과 같이 착하고 고요하게 깨끗하고 두려하고 공정하게 가진다면, 부처님의 인격을 갖추어 부처님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그 사람의 정신 상태에 따라 좌우된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부처님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없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악마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얼굴에까지 나타나게 된다. 악한 사람의 얼굴에서 살기를 느끼게 되고 부처님의 얼굴은 쳐다보기만 해도 무언가 감동을 받게 된다.
인간은 그 마음을 경계에 끌리지 않고 나쁜데 물들지 않으며 온전하게 길들여 간다면 부처님 같은 인격을 갖추게 된다. 또한 아무리 돈을 벌고 지위를 얻어다 할지라도 그 마음을 잘못 길들인다면 돼지나 여우나 호랑이 같은 인간이 되어버린다.
정신수양은 왜 필요한가. 불 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없애고, 번뇌 망상 애착 탐착의 불을 끄고, 경계에 끌려 다니는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기르고, 욕심에 도적맞지 않은 참 마음을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정신수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종경 수행품 2장을 보면 『공부인이 동하고 정하는 두 사이에 수양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모든 일을 작용할 때에 나의 정신을 시끄럽게 하고 정신을 빼앗아 갈 일을 짓지 말며 또는 그와 같은 경계를 멀리 할 것이요 둘째는 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애착 탐착을 두지 말며 항상 담담한 맛을 길들일 것이다. 셋째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말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에 끌리지 말아서 오직 그 일 그 일에 일심만 얻도록 할 것이요, 넷째는 여가 있는 대로 염불과 좌선하기를 주의할 것이다.』하였다.
시끄럽고 복잡한 일을 겁낼 것은 아니지만, 일부러 시끄럽고 복잡한 일 속으로 뛰어들 것은 아니다.
생선장수에게서는 생선 비린내가 나고, 꽃집에 가면 향긋한 꽃향기가 난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그러한 성현으로 만들기 위하여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이야기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음담패설을 좋아하다 보면 마음까지도 타락하게 되고, 윤리도덕을 좋아하다 보면 도덕군자가 되기 쉬운 것이다.
무슨 일이든 애착 탐착을 가질 것이 아니다. <채근담>에 보면 『기러기가 연못 위를 지날 때는 그림자가 있어도, 지나가고 나면 그림자가 없어지듯이 어떤 일을 하든 미련이나 흔적 없이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무슨 일에 지나치게 미련을 갖고 보면 정신이 흩어지고 과거에 얽매이기 쉽다. 학생이 학교에 와서도 집에 놔둔 과자 생각을 하다면 공부를 잘 할 수 없다. 정치에 지나치게 애착을 가진 사람이 가산을 탕진하고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한 가지 일에 열중해야 성공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산으로 놀라갈 생각을 한다면 공부가 잘 될 리 없다. 바느질을 하는 사람이 부엌을 생각하다 보면 바늘로 손가락 찌르기 알맞다.
시간이 있을 때는 무의미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염불이나 좌선하기를 힘쓰는 것이 좋다. 아침저녁 경건한 마음으로 심고나 기도 올리기에 힘쓴다면 정신은 점점 더 맑아질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시끄럽고 복잡한 일 속으로 빠져 들어가지 말고, 도덕공부하기를 힘쓰며, 무슨 일이든 애착 탐착을 두지 말고 담담한 마음으로 처리하며 한 가지 일을 하면 딴 일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그 일에 일심으로 열중하며, 일 없이 노는 시간이 있으면 염불이나 조선이나 기도하기에 힘쓴다면 차츰 정신의 수양력을 얻어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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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입문 (14) / 제5장 삼학
[57호] 1971년 10월 01일 (금)
손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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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사리연구
선이 좋은 줄은 알되 행하지 못하고
악이 나쁜 둘은 알면서도 무엇 때문에 끊지 못하는가.
청정한 마음 밝은 지혜 용기있는 실천력을 가져야
인간은 시비이해의 생활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잘하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고, 이익 되는 일도 있고, 손해되는 일도 있다.
밥을 적당히 보기 좋게 지으면 잘 하는 일이요, 태워 버린다면 잘못하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잘해야지 잘못해서는 안 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 우주는 크게 보면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작은 우주들이 있고, 이 지구위에만 하더라도 형형색색의 삼라만상이 구별되어 있다.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며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며, 만물은 생로병사와 흥망성쇠로 변천한다.
사람이 잘 살고 복을 짓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건설된 온갖 이치와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일들을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은 무궁무진한 이치로 건설되어 있고, 우리 인간은 시비이해의 일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다.
우리 인간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다 스스로가 지은 결과이다. 우리가 일의 시비이해를 모르고 멋대로 살아간다면 찰나찰나의 행동이 모두 죄악과 괴로움이 될 것이다.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고 산다면 생각이 좁고 마음이 옹졸해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모르게 된다. 그런다면 결국 한 없는 괴로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현묘한 이치와 인간의 복잡한 일들을 미리 연구해서 실제 생활에 부딪쳐 밝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사리를 연구해 갈 것인가. 대종경 수행품 2장을 보면
『사람이 연구력 얻는 빠른 방법은, 첫째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그 일 그 일에 알음알이를 얻도록 힘쓸 것이요, 둘째는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 교환하기를 힘쓸 것이요, 셋째는 보고 듣고 생각하는 중에 의심하는 곳이 생기면 연구하는 순서를 따라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쓸 것이요, 넷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쓸 것이요, 다섯째는 우리의 경전 연습을 다 마친 뒤에는 과거 모든 도학가의 경전을 참고하여 지견을 넓힐 것이니라.』하였다.
▽ 우리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을 그냥 넘기지 말고 그 일 그 일에서 어떤 이치를 찾아내도록 힘쓴다. 한 번 해 본 일은 다음에 할 때에는 다시 배우지 않아도 혼자서 할 수 있도록 이치를 찾아낸다.
▽ 스승이나 동지로 더불어 의견교환에 힘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배우고, 더 나은 의견은 받아들여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많이 보고 배워 세상을 넓게 알아야 한다.
▽ 보고 듣고 생각하는 가운데 의심나는 것이 생기면 그 의심을 해결하도록 힘쓴다. 즉 자기 마음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소년 시절에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일들에 대해서 큰 의문을 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시초가 되어 결국 일원의 진리를 깨치게 된 것이다.
▽ 정전 대종경 등의 경전 연습하기를 힘쓴다. 우리의 경전은 진리를 담은 책이다. 평생을 두고 읽고 연구해야 할 귀중한 것이다.
▽ 우리의 경전 연습을 하고 나서는 과거의 모든 경전을 연구하여 지견을 넓혀간다.
▽ 일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반성하고 평가해 본다.
이와 같이 안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밖으로 견문을 넓혀간다면, 우리는 부처님과 같이 일과 이치를 걸림 없이 다 아는 밝은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③ 작업취사
청정한 마음 밝은 지혜 용기 있는 실천력을 가져야
사람이 부처님과 같은 수양력을 얻었고,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갖추었다 할지라도 생활을 통한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가지만 무성했지 열매 없는 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사람이 선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이 나쁜 줄은 알되 악을 끊지 못하며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난한 고해를 들어가는 까닭은 그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 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이기지 못하거나, 굳어버린 습관에 끌려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는 실행력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정의라면 죽기로써 실행하고, 불의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 않는 용감한 실천력을 길러야 한다.
인간은 진리를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기는 힘 든다.
특히 수도인의 경우에 진리를 입으로 말하기는 쉬워도 행동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열 마디의 말보다는 한 번의 실천』이 더 값있는 것이다.
정의의 실천력을 얻기 위해서는
▽ 모든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쓸 때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의 감정에 끌리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일을 오직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한다.
▽ 정의는 앞장 서 실행하고 불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 무슨 일을 할 때에 잘 실행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정성을 다 한다.
▽ 동작 하나하나에 있어 눈으로 바르게 보고, 귀로 바르게 듣고, 입으로 바르게 말하고, 마음으로 바르게 생각하고, 몸으로 바르게 행동한다.
이와 같이 오래오래 작업취사 공부를 계속한다면, 부처님과 같이 정의를 실천하고 불의를 하지 않는 힘을 얻게 된다.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는 따로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수양력은 있어도 연구력 취사력이 없는가 하면, 취사력은 있어도 수양력 연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취사력 없는 수양력이나 연구력은 종이로 만든 호랑이처럼 아무 힘도 없고, 수양력이나 연구력 없는 취사력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산돼지처럼 무모한 것이다.
인간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의 세 가지 방면으로 활동한다. 사람에 다라 지성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의지적인 어느 하나에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인간은 지성 감정 의지가 잘 조화된 형태이다.
활동적인 사람은 수양력이 부족하기 쉽고, 내성적인 사람은 취사력이 부족하기 쉽다. 지성만 있고 감정이 없는 사람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기 어렵고, 감정만 있고 지성이 부족한 사람은 경건함을 찾기가 어렵다. 지성이 없다면 사물을 인식할 수 없고, 감정이 없으면 느낄 수 없고, 의지가 없으면 실천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내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가를 살펴서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잘 조화시켜야 하고, 수양력과 연구력과 취사력을 다 갖추어야 일원의 진리를 닮아서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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