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16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수양력을 얻어 나가는 데 두 길이 있나니, 하나는 기질(氣質)의 수양이요 둘은 심성(心性)의 수양이라, 예를 들면 군인이 실지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不動心)이 되는 것은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이요,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魔軍)을 항복받아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은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이라, 군인이 비록 밖으로 기질의 수양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고, 수도인이 또한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은 얻었으나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나니라.]
★★★★★★★★★★
수양[修養]
닦고 기른다는 뜻.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 가운데 정신수양의 준말로 사용된다. 통상적으로 도를 닦고 덕을 기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심신을 단련하여 지혜와 덕행을 계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는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게 하며, 밖으로 산란한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것을 말한다(《정전》 정신수양).
소태산대종사는 “자연의 변화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하나,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가 한이 없다”(《대종경》 인과품6)라고 하여 자연 변화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수양의 마음이 여여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소태산은 사람에 따라 기운과 수양을 연관시키고 있다.
“수양을 많이 쌓아서 탁한 기운이 다 가라앉고 순전히 맑은 기운만 오르는 사람과, 맑은 기운이 많고 탁한 기운이 적은 사람과,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상반되는 사람과, 탁한 기운이 많고 맑은 기운이 적은 사람과, 순전히 탁한 기운만 있는 사람이 있다”(《대종경》 천도품26)는 것이다. 이는 수양을 통하여 맑은 기운을 지니게 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태산은 복잡한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야 매월 몇 차례나 매년 몇 차례씩 적당한 휴양으로 새 힘을 기를 것을 권유한다(《대종경》 인도품43).
사람의 일생을 구분하여 “유년기에는 문자를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노년기에는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 들어가 세간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대사를 연마하면서 춘추로는 세간교당을 순회하여 교화에 노력하고, 동하에는 다시 수양생활을 주로 하라”(《대종경》 서품19) 하여 일생 중 노년기에는 수양에 힘쓸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수양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정할 때는 염불과 좌선 등을 통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애 일정심(一定心)을 이루어야 한다. 소태산은 좌선에 대하여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정전》 좌선법)고 했다.
② 동할 때는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부동심(不動心)을 기르는 것이다.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집중하여 일심의 정력을 쌓음과 아울러, 그 일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수양력을 기르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수양에 있어서 주의할 일에 대하여 “그 방법에 대하여 혹 자상히 알지 못하고 그릇 조급한 마음을 내거나 이상한 자취를 구하여 순일한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한다면, 공부하는 가운데 혹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도(邪道)에 흐르기도 하며, 도리어 번뇌가 더 일어나는 수도 있나니, 우리의 좌선법에 자주 대조하고 또는 선진자에게 매양 그 경로를 물어서 공부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대종경》 수행품13)고 했다.(원불교대사전)
기질수양[氣質修養]
기질을 수양하는 것. 실지생활 속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을 길러내는 것을 말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수양력을 얻어 나가는 데 두 길이 있다고 하고,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인이 실지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이 되는 것은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이요,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을 항복받아 순역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은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이라는 것이다. 군인이 비록 밖으로 기질의 수양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고, 수도인이 또한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은 얻었으나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대종경》 수행품16).
즉 기질수양을 외수양이라 하면 심성수양을 내수양이라 할 수 있다.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을 아울러야 기질변화와 심성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외정정과 내정정을 얻게 된다.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이 병진해야 참된 인격을 이룰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심성수양[心性修養]
심성을 수양함을 말한다. 삼독ㆍ오욕의 경계 속에서 마군을 항복받아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을 말하며, 기질수양에 상대되는 말이다. 성리학적 입장에서는 본래 품부 받은 본연의 성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수양력을 얻어 나가는 데 두 길이 있다고 하고,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인이 실지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이 되는 것은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이요,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을 항복받아 순역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은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이라는 것이다.
군인이 비록 밖으로 기질의 수양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고, 수도인이 또한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은 얻었으나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대종경》 수행품16). 곧 기질수양을 외수양이라 하면 심성수양을 내수양이라 할 수 있다.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을 아울러야 기질변화와 심성변화를 가져오게 되고, 외정정과 내정정을 얻게 된다. 기질수양과 심성수양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어느 한편에 치우침이 없이 병진해야 참된 인격을 이룰 수 있다.(원불교대사전)
오욕[五慾, pañca-kāmaguṇa]
(1) 중생심을 가진 인간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욕망. 오묘욕(五妙慾)ㆍ묘색(妙色)ㆍ묘오욕(妙五慾)이라고도 한다. 식욕(食慾)ㆍ색욕(色慾)ㆍ재물욕ㆍ명예욕ㆍ수면욕을 말함.
(2)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욕망의 근원이 되는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의 다섯 가지 경계(五境). 이를 오진(五塵)이라고도 한다. 오경은 욕구의 대상이고, 욕구 그 자체는 아니다.(원불교대사전)
마[魔]
(1) 악한 귀신인 마귀(魔鬼)ㆍ마라(魔羅, 摩羅)ㆍ악마(惡魔)의 준말.
(2) 정법(正法)을 파괴하는 악귀(惡鬼)나 수도(修道)를 방해하는 번뇌.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해살. 전통불교에서는 ‘죽는다’의 뜻을 지닌 싼스끄리뜨 마라(māra)를 음역(音譯)하여 처음의 구역(舊譯) 경론(經論)에는 마(摩, 磨) 또는 마라(摩羅, 磨羅)라고 하다가, 양무제(梁武帝) 때 받침에 귀(鬼)를 첨가하여 옛적에는 없던 한자인 마(魔), 마라(魔羅)로 바꾸어 씀으로써 통용되었으며 3마ㆍ4마ㆍ8마ㆍ10마 등이 있다고 한다. 곧 ‘māra’는 죽이는 자(殺者) 또는 능히 명을 빼앗는 자(能奪命者)로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선한 일을 장애(障碍)하는 악한 귀신이다.
정법을 파괴하는 악마를 천자마(天子魔)라 불렀으며 후에 마의 의미를 내관적(內觀的)으로 해설하여 번뇌마(煩惱魔)와 오음마(五陰魔) 등의 4마설이 생겼다. 모든 번뇌는 선법(善法)을 해치기 때문에 마가 된다고 이르고(《대비바사론》 권196), 혜명(慧命)을 빼앗고 도법공덕(道法功德)의 선본(善本)을 파괴하기 때문에 마가 된다(《대지도론》 권68)고 하면서 번뇌마, 오음마, 천자마, 사마(死魔)의 4마설을 제시했다.
원불교에서는 ‘마’ㆍ‘마군’ㆍ‘마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위등급의 법마상전급(法魔相戰級)은 “마음속의 법(法)과 마(魔)를 일일이 분석하고…법마상전을 하되…반수 이상 법의 승(勝)을 얻는 사람의 급이요”(《정전》 법위등급)라 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우리의 공부법은 난리 세상을 평정할 병법(兵法)이요,…병법이라 함은 곧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마군(魔軍)을 항복 받는 법이니 그 법은 바로 정(定)과 혜(慧)와 계(戒)를 닦으며, 법(法)과 마(魔)를 구분하는 우리의 수행길이라, 이것이 더할 수 없는 세계 정란(靖亂)의 큰 병법이니라”(《대종경》 수행품58)고 했다.
또 “큰 공부를 방해하는 두 마장(魔障)이 있나니, 하나는 제 근기를 스스로 무시하고 자포자기하여 향상을 끊음이요, 둘은 작은 지견에 스스로 만족하고 자존자대하여 향상을 끊음이니, 이 두 마장을 벗어나지 못하고는 큰 공부를 이루지 못하나니라”(《대종경》 요훈품11)고 했다. 정산종사는 “공부하는 데 큰 마는 내가 무던하거니 하는 것이니 이것은 법식의 체증이니라”(《정산종사법어》 응기편30)고 했다. 이러한 법문들에서 볼 때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 곧 수도를 방해하는 번뇌(煩惱)가 마(魔)이며 마군이고 마장이라 보는 번뇌마(煩惱魔)에 관해 주로 말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마군[魔軍]
악마들의 군병(軍兵). 정법(正法)을 해롭게 하는 무리. 일에 해살을 놓는 무리. 전통불교에서는 석존이 성도(成道)할 때에 욕계를 지배하는 제6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마왕 파순(波旬, pāpiyas)이 그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와서 성도를 방해함에 신통력으로 이들을 모두 항복받았다고 한다. 또는 불도(佛道)를 방해하는 온갖 악한 일을 모두 마군이라고도 한다.(원불교대사전)
부동심[不動心]
수양력이 쌓여서 마음이 천만 경계에 부딪쳐서도 거기에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아니하는 마음. 인간의 마음은 변화무상해서 경계 따라 흔들리고 찰나에도 변화한다. 밖으로 경계를 대하되 태산교악과 같은 의지와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허공과 같은 청정심으로, 동(動)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靜)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는 마음이 곧 부동심이다. 천만경계가 내 마음에 와 부딪쳐도 그 경계가 마음속에 그림자를 남기지 앉아 명경지수(明鏡止水) 같은 마음이다. 부동심이 되면 색(色) 경계에서도 색에 끌리지 않고 권세나 명예나 재물에도 흔들리지 않아 철주중심 석벽외변(鐵柱中心 石壁外面)의 수양력을 갖게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수양력을 얻어 나가는 두 길을 밝히고 있다. 하나는 기질(氣質)의 수양, 둘은 심성(心性)의 수양이다. “군인이 실지 전쟁에서 마음을 단련하여 부동심(不動心)이 되는 것은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이요, 수도인이 오욕의 경계 중에서 마군(魔軍)을 항복받아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것은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이라, 군인이 비록 밖으로 기질의 수양력을 얻었다 할지라도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고, 수도인이 또한 안으로 심성의 수양력은 얻었으나 실지의 경계에 단련하여 기질의 수양력을 얻지 못하면 또한 완전한 수양력이 되지 못하나니라”(《대종경》 수행품16)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
[기질 수양과 심성 수양의 단련]
<장원경 교무/ 영산선학대학교>
이 장에서는 완전한 수양력을 갖추려면 밖으로 기질을 단련한 수양력과 안으로 심성을 단련한 수양력을 함께 갖추라고 하셨다.
기질 수양이란 기운과 몸을 단련하여 수양력을 얻는 것인데 '기질'이란 송학(宋學)에서 말하는 기에 의해 형성되는 실체를 말한다.
기질 수양을 하는 대표적인 모습으로 군인과 유교, 도교의 수련자 그리고 요가 전공자 등을 들 수 있다.
천도교의 교조 수운 최제우는 검도를 통하여 제자에게 기질을 단련케 하였고 태권도와 같은 운동도 옛 달마 문하의 기질 수련의 방법에서 그 기원을 찾는데 이러한 기질 단련은 정신을 일경(一境)에 모으는 훌륭한 수련 방법이며 급변하는 상황 변화에 중심을 잃지 않는 단련법의 일종이다.
수행인들은 기질 수양의 방법으로 우선 일과(日課)를 정하여 바른 자세로 몸소 일상생활을 법있게 한다.
처음 출가한 학생들이 출가전과 달리 일과를 정하여 새벽에 할 일과 낮에 할 일과 밤에 할 일을 정확하게 해내면서 육체가 기질적으로 하고자 하는 바와 하기 싫어하는 바를 능히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몸과 마음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단련하다보면 자연 수양력을 쌓게 된다.
또 군인들이 철저한 훈련으로 단련하여 생사를 눈 앞에 두고 흔들리지 않는 것과 같다.
심성 수양이란 마음과 정신을 단련하여 탐진치의 삼독과 식욕·색욕·재물욕·명예욕·수면욕 등의 오욕의 경계 속에서 마군을 항복받아 순역 경계에 부동심이 되는 수양법이다.
성품의 공(空)한 자리를 알음알이로 체득하고 관조를 통하여 진실한 수양의 힘을 쌓는 것이다.
번뇌와 육근의 경계에 따라 일어나는 오욕심과 희로애락의 감정 등을 오직 성품의 본래 면목에 비추어 깨끗이 비우고 또한 빈 마음을 지킬 수 있는 수양력을 얻는 것이다.
오욕의 큰 경계에도 부동심을 잃지 않고 생사와 순역고락의 경계에도 본심을 잃지 않아서 마음의 자유를 회복하여 참 열반을 얻자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기질 단련과 심성 단련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나, 본래 기질과 심성은 둘이 아닌 것이며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
일반사람은 기질 단련에만 중점을 두고 수도인은 심성 수양에만 중점을 두기 쉬운데 사람은 영과 육을 합한 존재이므로 영을 단련하는 심성의 수양과 육신을 단련하는 기질의 수양을 병행해야 완전한 인간을 이룰 수 있다.
이 수양법에 공을 들이면 일이 있을 때에나 없을 때에나 수양력이 일관되어 어묵동정(語默動靜)과 영육(靈肉)간에 수양력이 한결같게 될 것이다.
일경[一境]
(1) 한 경계. 육근 작용과 순역간에 직면하게 되는 어려운 일을 말한다. 한 고비와 유사한 개념이다. 이 한 경계 한 경계를 뛰어 넘어야 일을 성취하고 큰 공부를 하게 된다.
(2) 같은 경계를 대해도 관찰자에 따라 차이가 생겨난다. 그래서 일경사견(一境四見)ㆍ일경사심(一境四心)ㆍ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표현도 있다.(원불교대사전)
관조[觀照]
밝게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어떠한 특정한 견해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음의 성품과 진리의 세계를 비추어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불교의 지관(止觀)의 수행방법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지(止)와 관(觀)은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방법으로 석가모니불의 선정은 지와 관을 그 내용으로 한다. 관은 불교 수행법의 하나로서 진리의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방법이다. 싼스끄리뜨는 위파사나(vipāsyanā)이며 능견(能見)ㆍ정견(正見)ㆍ관찰ㆍ관으로 번역된다.
소태산대종사는 1941년(원기26) 1월에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역시 구족(具足)이라”는 게송(偈頌)을 내린 후, “유는 변하는 자리요 무는 불변하는 자리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했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해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에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고 했다(《대종경》 성리품31).
관조는 성품의 진체를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수행의 방법이다. 생각과 분석만으로는 진리의 표현되어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미치지 못하는 심오한 진리의 세계는 관조의 방식으로 체득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소태산은 일원의 진리를 공(空)과 원(圓)과 정(正)으로 요약하고 있으며, 이를 관하고 실천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양성에 있어서는 유무 초월한 자리를 관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거래 없는 것이 원이요,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는 것이 정이며, 견성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요, 지량(知量)이 광대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 원이요, 아는 것이 적실하여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는 것이 정이며, 솔성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무념행을 하는 것이 공이요, 모든 일에 무착행을 하는 것이 원이요, 모든 일에 중도행을 하는 것이 정이다”(《대종경》 교의품7)라고 하여 성품의 진체는 생각만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관조의 방법을 통해 깨쳐 얻을 수 있음을 밝혔다. 유무초월한 자리를 관하고, 아는 것이 적실하여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판단하게 될 때 무념행ㆍ무착행ㆍ중도행을 할 수 있는 경지에 달하게 됨을 밝히고 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3 수행품(修行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 수행품(修行品) 18장 (0) | 2014.10.02 |
---|---|
제3 수행품(修行品) 17장 (0) | 2014.10.02 |
제3 수행품(修行品) 15장 (0) | 2014.10.02 |
제3 수행품(修行品) 14장 (0) | 2014.10.01 |
제3 수행품(修行品) 13장 (0) | 2014.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