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13장
대종사 좌선 시간에 선원에 나오시어 대중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오는 잠을 참고 좌선을 하고 있으니 장차 무엇을 하려 함인가.] 권 동화(權動華) 사뢰기를 [사람의 정신은 원래 온전하고 밝은 것이오나, 욕심의 경계를 따라 천지 만엽으로 흩어져서 온전한 정신을 잃어 버리는 동시에 지혜의 광명이 또한 매(昧)하게 되므로, 일어나는 번뇌를 가라 앉히고 흩어지는 정신을 통일시키어 수양의 힘과 지혜의 광명을 얻기 위함이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진실로 수양에 대한 공덕을 안다면 누가 권장하지 아니할지라도 정성이 스스로 계속될 것이나, 한 가지 주의할 일은 그 방법에 대하여 혹 자상히 알지 못하고 그릇 조급한 마음을 내거나 이상한 자취를 구하여 순일한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한다면, 공부하는 가운데 혹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도(邪道)에 흐르기도 하며, 도리어 번뇌가 더 일어나는 수도 있나니, 우리의 좌선법에 자주 대조하고 또는 선진자에게 매양 그 경로를 물어서 공부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 만일 바른 공부를 부지런히 잘 행한다면 쉽게 심신의 자유를 얻게 되나니, 모든 부처 모든 성인과 일체 위인이 다 이 선법으로써 그만한 심력을 얻었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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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화[權動華]
법호는 동타원(東陀圓). 법훈은 종사. 전음광의 부인으로 정토회원. 1904년 12월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에서 부친 성수와 모친 김만공월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지도로 한글과 예의범절을 익혔으며, 16세에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거주하는 전음광과 결혼했다. 1922년(원기7) 시어머니인 전삼삼의 인도로 남편이 소태산대종사를 만나 제자가 되자 함께 불법연구회에 귀의하여 교단 창립에 응접, 식사 등 간접적으로 기여했으며, 남편이 전무출신으로 총부에 근무하게 됨에 따라 익산 총부 구내에 자택을 신축하여 이사했다.
이후 총부에서 실시하는 각종 정기 선(禪: 훈련)에 참석하여 회화, 강연 등을 통해 능숙한 언변과 지혜가 명석함을 보여 자주 소태산의 칭찬을 받았다. 한 예로 좌선시간에 소태산이 대중에게 “그대들이 오는 잠을 참고 좌선을 하는 것은 장차 무엇을 하려 함인가”라고 묻자, 권동화가 답하기를 “사람의 정신은 원래 온전하고 밝은 것이오나 욕심의 경계를 따라 천지만엽으로 흩어져서 온전한 정신을 잃어버리는 동시에 지혜의 광명이 또한 매(昧)하게 되므로 일어나는 번뇌를 가라앉히고 흩어지는 정신을 통일시켜 수양의 힘과 지혜의 광명을 얻기 위함입니다”(《대종경》 수행품13)라고 했다. 권동화는 재가 교도로서 수행에 정진하고 교단의 일에도 적극 노력했으며, 남동생 대호와 장녀 전팔근을 전무출신하도록 권장하여 교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원불교대사전)
수양[修養]
닦고 기른다는 뜻.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 가운데 정신수양의 준말로 사용된다. 통상적으로 도를 닦고 덕을 기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심신을 단련하여 지혜와 덕행을 계발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는 안으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게 하며, 밖으로 산란한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여, 두렷하고 고요한 정신을 양성하는 것을 말한다(《정전》 정신수양).
소태산대종사는 “자연의 변화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하나, 그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가 한이 없다”(《대종경》 인과품6)라고 하여 자연 변화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수양의 마음이 여여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소태산은 사람에 따라 기운과 수양을 연관시키고 있다.
“수양을 많이 쌓아서 탁한 기운이 다 가라앉고 순전히 맑은 기운만 오르는 사람과, 맑은 기운이 많고 탁한 기운이 적은 사람과,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상반되는 사람과, 탁한 기운이 많고 맑은 기운이 적은 사람과, 순전히 탁한 기운만 있는 사람이 있다”(《대종경》 천도품26)는 것이다. 이는 수양을 통하여 맑은 기운을 지니게 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태산은 복잡한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데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하야 매월 몇 차례나 매년 몇 차례씩 적당한 휴양으로 새 힘을 기를 것을 권유한다(《대종경》 인도품43).
사람의 일생을 구분하여 “유년기에는 문자를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 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노년기에는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 들어가 세간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대사를 연마하면서 춘추로는 세간교당을 순회하여 교화에 노력하고, 동하에는 다시 수양생활을 주로 하라”(《대종경》 서품19) 하여 일생 중 노년기에는 수양에 힘쓸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수양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정할 때는 염불과 좌선 등을 통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애 일정심(一定心)을 이루어야 한다. 소태산은 좌선에 대하여 “마음에 있어 망념을 쉬고 진성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에 있어 화기를 내리게 하고 수기를 오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념이 쉰즉 수기가 오르고 수기가 오른즉 망념이 쉬어서 몸과 마음이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리라”(《정전》 좌선법)고 했다.
② 동할 때는 산란하게 하는 경계에 끌리지 아니하는 부동심(不動心)을 기르는 것이다.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집중하여 일심의 정력을 쌓음과 아울러, 그 일을 성공하게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수양력을 기르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소태산은 수양에 있어서 주의할 일에 대하여 “그 방법에 대하여 혹 자상히 알지 못하고 그릇 조급한 마음을 내거나 이상한 자취를 구하여 순일한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한다면, 공부하는 가운데 혹 병에 걸리기도 하고 사도(邪道)에 흐르기도 하며, 도리어 번뇌가 더 일어나는 수도 있나니, 우리의 좌선법에 자주 대조하고 또는 선진자에게 매양 그 경로를 물어서 공부에 조금도 그릇됨이 없게 하라”(《대종경》 수행품13)고 했다.(원불교대사전)
공덕[功德]
(1) 공로와 인덕(仁德). 악을 제거하는 것을 공(功), 선이 가득한 것을 덕(德)이라 한다. 착한 일을 많이 행한 힘 또는 선업(善業). 세상 사람들이 물질문명과 도덕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하게 살게 되므로 여러 발명가와 도덕가에게 감사해야 하지만 물질문명은 그 공덕에 국한이 있고, 도덕문명은 그 공덕에 국한이 없다(《대종경》 교의품32). 덕을 쓰더라도 상 없는 대덕을 써야 영원히 그 공덕이 멸하지 않는다.(《대종경》 실시품26)
같은 것을 가지고도 국한 있게 쓰는 것보다 국한 없이 써야 공덕이 더 크다(《대종경》 변의품27). 선은 숨겨두는 것이 그 공덕이 커지고 악은 들추어내는 것이 그 뿌리가 얕아진다(《대종경》 요훈품24). 정산종사는 심공덕(心功德)ㆍ행공덕(行功德)ㆍ법공덕(法功德)을 밝히고 특히 법공덕을 모든 공덕 가운데 근본이 된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 무본편18). 또 복을 짓되 상(相) 없이 지어야 큰 공덕이 된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 무본편34).
(2) 좋은 일을 많이 쌓은 공(功)과 불도(佛道)를 깊이 수행한 덕. 불도를 닦아서 이룬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미쳐가게 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원불교대사전)
사도[邪道]
올바르지 못하고 삿된 길. 진리에 바탕하지 않아서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도(道)나 그러한 종교. 사교(邪敎)ㆍ유사종교(類似宗敎)와 같은 의미이다. 이런 도나 종교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민중을 고통에서 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멸과 불행으로 몰아넣게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종교라 이름 하여 근원적인 진리에 뿌리하지 아니하면 사도라 규정하고(《대종경》 교의품3), 수행중 반딧불같이 나타나는 허령(虛靈)에 낙을 붙이면 큰 진리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사도에 떨어져 아수라(阿修羅)의 유(類)가 되기 쉽다고 경고하고 있다(《대종경》 수행품39).
아울러 호풍환우(呼風喚雨)나 이산도수(移山渡水) 등의 신통(神通)을 꿈꾸면서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며 인도(人道)를 여의고 신통만 바란다면 이는 곧 사도라 했으며(《대종경》 수행품41), 선법(禪法)을 바로 행하지 못하면 병에 걸리거나 사도에 떨어진다고 했다(《대종경》 수행품13). 또 정도(正道)는 처음에는 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이로움이 돌아오게 되고, 사도는 처음에는 이로운 것 같으나 필경에는 해독이 돌라온다고 말하고, 정도는 아무리 박멸(撲滅)하려 하여도 되지 아니하며, 사도는 박멸하지 않아도 자연 서지 못한다고 했다(《대종경》 전망품10).(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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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의 올바른 방법
<장원경 교무/ 영산선학대학교>
선은 세계의 어느 국가, 어느 민족, 어느 종교, 어느 사상, 어느 문화적 형식에도 매이지 않는 일종의 절대적 보편성을 갖고 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도 불교가 단지 종교로서의 역할만이 아니라 명상과 선을 통해 일반인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맑혀주며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제거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원불교에서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에 걸쳐서 공통적으로 훈련되어지는 과목중의 하나가 좌선과목이다.
대종사께서는 일찍이 좌선의 방법과 공덕을 정전 좌선법에 밝혀 주셨다.
수행품 13장에서는 진실로 수양에 대한 공덕을 안다면 좌선의 정성이 스스로계속될 것이라 하셨는데 현재 나는 어느 정도 좌선의 공덕을 체험하고 있는지 또는 어느 정도 좌선의 방법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볼 일이다.
첫째, 방법에 대하여 혹 자상히 알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을 내지는 않는지?
둘째, 이상한 자취를 구하여 순일한 선법(禪法)을 행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좌선의 방법 9가지중 1·4·5조는 신체의 자세를 바로잡는 방법이고, 2·3·8조는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이며, 6·7·9조는 좌선을 하는 중에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보자가 좌선을 할 때 힘들어하는 것이 졸림과 잡념이다.
졸리울 때는 '환장한 사람 눈 뜨듯이 하라'고 주의를 주셨으니 얼마나 간절한 경계의 말씀인지 모른다.
바른 방법은 모르고 무조건 빨리 깨치려는 마음도 하나의 잡념이 되고 전날에 처리하지 못한 심신작용 또한 잡념을 일으키는 요소이다.
좌선을 하는 중에 정신이 맑아지면 이상한 자취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일에 재미를 붙이지 말고 오직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실천해야 한다.
바른 공부를 부지런히 잘 행한다면 쉽게 심신의 자유를 얻게 되고, 모든 부처 모든 성인과 일체 위인이 다 이 선법으로써 그만한 심력을 얻었다고 하셨다.
우리가 세끼 식사로 몸의 건강을 유지한다면 하루의 좌선은 우리의 본래 마음을 반듯하게 유지시켜 준다 .
바쁜 일상중에 하다못해 5분이라도 마음을 챙겨서 하는 선은 차츰 차츰 안정된 공부의 길로 이끌어준다.
세계적 추세로 볼 때 선과 과학이 만나서 더욱 체계적으로 좌선한 결과가 집계되고 전세계적으로 명상과 수행문화가 보편화되는 이때 영성문화가 새로운 가치로 대두 됨에 따라 대종사님께서 해주신 좌선에 대한 주의말씀을 가슴에 새겨 안으로 100년 성업의 자신성업봉찬을 이루고 밖으로 지역사회에 선방을 운영하여 교화대불공을 이루자.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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