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전(正典)/제2 교의편(敎義編)

제2절 지자본위(智者本位)

제2절 지자본위(智者本位)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3장 사요 (四要)

제2절 지자본위(智者本位)

 

 

 

1. 지자 본위의 강령

 

    지자는 우자(愚者)를 가르치고 우자는 지자에게 배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당연한 일이니,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배울 것을 구할 때에는 불합리한 차별 제도에 끌릴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하는 사람의 목적만 달하자는 것이니라.

 

2. 과거 불합리한 차별 제도의 조목

 

    1. 반상(班常)의 차별이요,

    2. 적서(嫡庶)의 차별이요,

    3. 노소(老少)의 차별이요,

    4. 남녀(男女)의 차별이요,

    5. 종족(種族)의 차별이니라.

 

3. 지자 본위의 조목

 

    1. 솔성(率性)의 도와 인사의 덕행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요,

    2. 모든 정사를 하는 것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요,

    3. 생활에 대한 지식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요,

    4. 학문과 기술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요,

    5. 기타 모든 상식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니라.

 

    이상의 모든 조목에 해당하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차별 있게 할 것이 아니라, 구하는 때에 있어서 하자는 것이니라.

 

 

 

지자본위 (智者本位)

사요(四要)의 하나. 계급·나이·선후진·남녀·민족·학력 등을 차별하지 말고 오직 나 보다 더 나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 모든 것을 배워가자는 정신. 한나라 국민의 지식수준이나 교육수준은 그 나라의 부강과 직결된다. 원불교가 창립될 당시의 한국 사회는 신학문을 배우려는 개화사상이 꽃피기 시작했으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배움에 대한 열기가 부족했다. 지배계급은 별다른 학식이 없어도 양반계급 이라는 것 만으로 등용될 수 있고, 천민계급은 아무리 학식이 많고 경륜이 풍부해도 등용될 수 없었다. 벼슬이 돈으로 매매되고 권세가 거래되는 사회에서 일반 민중의 학구열이 높을 수가 없다. 지자본위의 사상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불합리한 차별제도를 철폐하려는 것이요, 한국인을 일깨워 한국을 부강한 나라, 문명한 나라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또한 전세계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문명한 세계, 문화인으로 향상 발전하려는 것이다. 당시 한국 사회의 차별 현상을 보면 양반과 상민의 차별, 적자와 서자의 차별, 노소의 차별, 남녀의 차별, 종족의 차별 등 많은 차별현상이 있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지자본위의 사상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오던 봉건적 계급 차별 제도를 개혁하는 길이다. 또한 민족 지상주의, 국가 지상주의의 편협하고 배타적인 안목에서 세계시민·세계국가의 사상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지자본위의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다섯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솔성의 도와 인사의 덕행이 자기 이상이 되고보면 스승으로 알 것.

② 모든 정사(政事)를 하는 것이 자기 이상이 되고보면 스승으로 알 것.

③ 생활에 대한 지식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으로 알 것.

④ 학문과 기술이 자기 이상이 되고보면 스승으로 알 것.

⑤ 기타 모든 상식이 자기 이상이 되고보면 스승으로 알 것이라 하였다.

 

이와같이 자기보다 어느면에서든지 더 나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배우기에 힘쓸 뿐, 남녀노소 선악 귀천의 계급에는 구애받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곧 스승도 때로는 제자에게서 배우고, 대통령도 청소부에게서 배우며, 할아버지도 손자에게서 배우고, 남자도 여자에게서 배우며, 경영자도 근로자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잘 하는 사람에게서는 그 잘 하는 점을 배우고, 잘못 하는 사람에게서는 잘못 하지 않도록 배워가는 것이다. 학문이나 지식도 배우고, 정치나 도덕도 배우며, 기술이나 생활 방법도 배우고, 지혜나 상식도 배우자는 것이다. 대통령도 윤리 도덕은 성현에게서 배우고, 학자도 과실나무 가꾸는 법은 농부에게서 배우며, 성현도 물건 사는 법은 상인에게서 배우고, 예술가도 청소하는 법은 청소부에게서 배우자는 것이다. 개미를 보고는 그 부지런한 것을 배우고, 꿀벌을 보고는 그 희생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줄치는 거미를 보고는 그 불굴의 의지를 배우고, 말없이 일만 하는 소를 보고는 그 봉사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메마른 사막에 뻗어 나는 선인장을 보고는 그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고, 하루살이를 보고는 허황된 착각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높은 산 큰 바위를 보고는 침묵의 소중함을 배우고, 잔잔한 호수를 보고는 평화로움을 배우자는 것이다. 솔바람·달빛을 보고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배우고, 하늘을 무심히 떠도는 구름을 보고는 무소유의 정신을 배우자는 것이다. 현재 눈 앞에서 전개되는 현실세계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서도 배우자는 것이다. 이미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사라져 간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그들의 사상과 정신을 배우고, 지나간 역사적 사실에서는 인류사회의 흥망 성쇠의 교훈을 배우자는 것이다. 이처럼 언제 어디서나 배울 줄 아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스승이 되고, 세상 만물이 다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 역사적 인물도 다 나의 귀중한 스승이 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나라가 짧은 시일에도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국민들의 높은 교육열과 근면 성실성 때문이라고 한다. 국민들의 교육열은 지나치리만큼 뜨겁다고 하겠다. 높은 교육열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교육열은 높았어도 솔성의 도와 인사의 덕행에 대한 교육열은 별로 높지 못했다. 그러한 결과로 기능교육·기술교육은 크게 향상되었어도, 도덕교육·인간교육은 별 발전이 없었다. 그리하여 청소년 범죄의 증가와 가치관의 혼란, 윤리 도덕의 타락이 큰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인간교육·도덕교육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기능교육과 인간교육이 조화·발전을 이루어야 지자본위의 정신을 바르게 실천할 수 있고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균형있게 발전하는 낙원세계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육쌍전·이사병행의 바람직한 인간상도 형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지자본위의 정신을 매일같이 실천해가기 위해서 일상수행의 요법 7조에 「배울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고 하였다.

==========================================================================================

 

교리공부<74>52 / 인도정의에 바탕한 참지식의 전달
지자본위 그 의지를 중심으로

 

[643호] 1991년 05월 03일 (금) 원불교신문 webmaster@wonnews.co.kr

 

사회가 보다 건전한 사회로 진화되자면 제일차적으로는 자력이 양성되어 책임사회가 되어야 민주사회가 정착될 것이요, 또한 제이차로는 지자로 본위삼는 시대가 되어야 선진사회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본인은 지자본위에 대한 강령을 밝혀볼까 한다.


 선진사회가 되는 가장 일차적인 첩경은 두말할나위없이 계급없는 사회인바 교전대의에 의하면 온인류는 지식평등이 되어야만 반상, 적서, 노소, 남녀와 인류의 차별이 없어진 사회라고 밝히고, 이에 따라 지식평등이 잘 되지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곧 지식을 위주로 하여야만 선진문명사회에 향상되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이렇게 밝히는 것이다. 이 중에 특히 다음 몇가지 문제에 유의해야할 과제가 남아있다.


 첫째 지식을 앞세우되 지식에 사로잡힘이 없는 모두를 포용하는 슬기가 가장 먼저 앞서는 지혜로운 지식이다. 따라서 지식은 에 바탕하되 까지 남음없이 수용되는 지자본위의 기준이 되어여한다.


 둘째 지식은 특수 인간에게만 갖는 이른바 영원한 전유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 지식이 앞서 있을 때만이 스승 삼게 하고 위주되게 하자는 것이다.


 셋째 지식은 인간사회의 문예를 부흥케하는 원동력이 되는 역사를 주었거니와 앞으로 영원한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등불이 되게 하자는 것이다.


 넷째 지식은 기술적인 지식이 제일차적인 것이라면 이것을 구체적으로 포용하는 전문적인 지식이 더욱 슬기로운 지식이며 전문적인 지식을 발휘하게 되자면 그 바탕에는 기초과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기초과학을 발휘하게되자면 그 바탕에는 기초과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며 기초과학을 발휘하게 하자면 인도로서의 올바른 지식이 있어야 하며 또 인도로서 올바른 지식은 곧 삼학 가운데 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사리연구의 바탕은 곧 이무애 사무애한 대원정각에 의거하지 않으면 지자의 바람직한 바탕이 될 수 없다.
 이상으로 보면 대원정각에 바탕한 지식이 가장 소중한 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식평등은 곧 인간사회에 길을 밝히는 등불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지식은 곧 눈이요 수족이며 힘이요 영생의 등불이라고 밝힌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지식의 홍수시대에 다가섰다. 이 지식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하여 연마하기 앞서 지식을 바르게 정리하는 작업을 해야만 하며 이 정리 하는 작업은 지식을 바르게 판단하는 비판적인 지식이 기초적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이 비판적인 지식은 곧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을 총섭하는 이른바 선천종합판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 인식론상에 가장 핵심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지식은 일상적 사회의 지식이 계발되자면 먼저 건전한 지식이 앞서야 한다. 이것은 아무지식이나 수용하다보면 인간사회의 병리를 유발하는 지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혀듯이 정신을 개벽하지 않은 물질만의 개벽은 마치 도둑에게 도둑질하는 무기를 주어 가르치는 결과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서 인도정의에 바탕한 참지식이 되어야만 그 지식이 우리에게 생명의 원천이 되게 한다. 이것이 다름아닌 지자본위하되 인간자신의 도학문명에 바탕한 과학문명이 개발되어야 하는 점에서 이른바 지자본위로 하는 도덕사회의 건설을 염두에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교무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신문으로 법회 보기 / 사요-지자본위

'해야만 한다'가 아니라 '안할 수가 없다'
모시는 마음으로 배울 때, 밝음의 힘 생겨

 

[1571호] 2011년 06월 10일 (금) 홍숙현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스마트폰 시대가 저에게도 열렸습니다. 무슨 물건을 사면 오랫동안 간직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또는 불편해하는 그런 부류인데 말이지요. 우연한 기회에 스마트 폰을 구입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불편하고 복잡해서 도로 반환하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스마트폰 세대가 되었으니 그 편리함을 최대한 잘 활용해 보고 싶었습니다. 안내책을 읽기 보다는 먼저 사용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주위를 둘러보니, 주로 20대, 젊은이, 심지어는 10대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배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물어보고 배우지 않을 수 없는 시대, 지자본위, 해야만 하는 시대가 아니라 안할 수가 없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가르치는 입장에서만 서 있었으나 물질문명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해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자니 지자본위에서 말한 과거 불합리한 차별제도(반상, 적서, 노소, 남녀, 종족)위주로 살았다가는 오히려 불편하고 손해보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밝은 세상이 된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이익(스마트폰 경우처럼)에 대해서는 지자본위를 안할 수가 없게 되었지만 모든 일에 그렇게 배우려고 하는 그 정신의 세력을 확장시키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은 대소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어 있고 시비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간다고 하셨는데 시비이해의 일로써 이 세상을 운전해 갈 때 바로 눈앞 한 치는 보이지만 대체로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한 경우가 많아 앞으로 오게 될 시비이해에는 더 밝고 넓게, 원만하게 바라 볼 수 있는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산종사께서는 지자본위(智者本位)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진정으로 내 마음에 스승이 있는가 깊이 생각하여 보라. 나의 모든 것을 직접 고백할 스승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일생의 불행이며 영생을 통하여 불행한 사람이다. 사람은 백살이 되더라도 스승이 있어야 한다. 스승을 모실 때에도 한 분만 모시지 말고 되도록 많이 모셔야 한다. 스승이 없을 때에는 스승을 구하여 항상 모시고 배우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스승을 모시고 배우지 않을 때 어둠과 퇴보와 차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식(知識)은 눈이요, 수족(手足)이며, 힘이며 영생의 등불이니 날마다 모르는 것을 배우고 살았는가, 배우지 않고 살았는가를 대조하여 배우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승이 없을 때에는 스승을 구하여 항상 모시고 배우고 살아가는 것이 복잡다단한 이 세상의 시비이해 속에서 영생의 밝은 등불을 켜고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단촉하고 편협된 시각을 밝혀줄 모시는 마음이 그 어둔 눈을 뜨게 해주는 힘입니다. 모시는 마음으로 배울 때에 어둠과 퇴보, 차별이 물러가고 밝음의 힘이 생겨 영생의 앞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잘 배우는 사람이 배운다고 생각은 하지만 잘∼ 배우고 있을까요? 지자본위를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일상수행의 요법 제7조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자! 에서 쉽고 간단하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잘∼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배우려면 우선 자기의 눈을 가리고 있는 상(相)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대종경〉 변의품 19장에서 "아상(我相)이라 함은 모든 것을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여 자기와 자기의 것만 좋다 하는 자존심을 이름이요, 인상(人相)이라 함은 만물 가운데 사람은 최령하니 다른 동물들은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라 마음대로 하여도 상관 없다는 인간 본위에 국한됨을 이름이요, 중생상(衆生相)이라 함은 중생과 부처를 따로 구별하여 나 같은 중생이 무엇을 할 것이냐 하고 스스로 타락하여 향상이 없음을 이름이요, 수자상(壽者相)이라 함은 연령이나 연조나 지위가 높다는 유세로 시비는 가리지 않고 그것만 앞세우는 장노의 상을 이름이니…." 이처럼 금강경의 사상에 대하여 대종사님께서 쉽게 풀어주셨습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수용적인 분위기에서 전적으로 듣는다는 말입니다. 복종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obedience(복종)란 말의 어원은 obedire라고 합니다. 그 뜻은 철저하게 듣는다는 것입니다. 유태전통에서는 복종이란 귀를 드러내놓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 어떤 자물쇠도 귀마개도 없고, 거기 어떤 것으로부터의 유혹도 없다면, 단순히 귀만을 열어놓은 것이 아니라 가슴 또한 열린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남의 말을 들을 때 또는 배울 때 전적으로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이것은 내 생각과 딱 들어맞는다, 그러니 옳다, 이것은 그럴듯하지만 저것에 대해서는 믿을 수가 없어, 게다가 여자고 나보다 어리잖아'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분별성의 꼬리표를 매달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듣는다는 것은 그 상(相)을 놓고 지금 여기에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 배우고 잘 듣는 사람은 깨친 분들입니다. 대종사께서 보여주신 언행도 그 본보기가 됩니다.

〈대종경〉 실시품 31장에서 이 운외(李雲外)의 병이 위중하매 그의 집안 사람이 급히 달려와 대종사께 방책을 문의하는지라, 말씀하시기를 "곧 의사를 청하여 치료하라" 하시고, 얼마 후에 병이 평복되니,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전에 운외가 병이 중하매 나에게 먼저 방침을 물은 것은 그 길이 약간 어긋난 일이니라. 나는 원래 도덕을 알아서 그대들의 마음 병을 치료해주는 선생이요, 육신 병의 치료는 각각 거기에 전문하는 의사가 있나니, 앞으로는 마음병 치료는 나에게 문의할지라도, 육신병 치료는 의사에게 문의하라. 그것이 그 길을 옳게 아는 것이니라"하셨습니다. 모든 일(솔성의 도, 인사의 덕행, 모든 정사(政事), 생활에 대한 지식, 학문과 기술, 모든 상식)에 해당하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차별있게 할 것이 아니라 구하는 때에 있어서 하자는 것은 지자본위를 그대로 실천하는 면을 보이신 것입니다. 잘 배우는 사람은 깨친 사람입니다. 깨쳤을 때만이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잘 배우기 싫은 경계를 대할 때마다 잘 배우는 사람으로 돌리는 것이 정진이고 적공이며 깨침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신문으로 법회 보기 / 지자본위

아는 것이 힘이다
모든 행실 덕으로 나타나면 지자
학문과 기술이 자기 이상이 되고 보면 스승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 대종사 법통제자 돼야

 

[1529호] 2010년 07월 09일 (금) 오선도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지자는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쳐서 지자로 만들고, 우자는 지자를 스승으로 알고 배울 자리에서는 고개 숙여 배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있고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면 가르쳐 주는 사람의 남녀노소, 선악귀천을 따지지 않고 오직 배우는 목적만 이루자는 것이 지자본위의 본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이가 60이 넘으니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여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아서 젊은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지만 나이든 사람이 극성맞게 물어본다고 할까봐 치심이 동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어보면 친절하고 자상하게 잘 가르쳐 주는 사람이 많으니 조심스럽게 묻고 배웁니다.

얼마 전 출가교화단회를 했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을 했는데 현실 문제가 나오니, 내가 이렇게 살아왔는데 각자의 처지에서 연구하며 건의도 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가 후배들에게 지적을 받았습니다. 살아온 방식을 강요하지 말아 달라, 교무님은 그렇게 살아오셨을지 모르나 우리는 여건이 다르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깊이 생각해 보며 한 가지 배웠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줘야겠구나, 당장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고 같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며 지금 아주 힘든 상황을 이해해 주고 알아 달라는 것이니까. 연륜이 깊어지면 적응하느라 고뇌하며 이겨내고 지내온 세월 속에 얻어진 노하우가 있어서 자칫 타인의 말을 막고 내말이 옳다고 고집하며 듣지 않으려는 분위기를 주기 쉽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모셔야 할 것인가? 대종사께서는 5가지로 밝혀 주셨습니다.

첫째, 자기 마음을 스스로 잘 다스려 모든 행실이 덕으로 나타나는 것이 자기 이상이 되면 스승으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요즈음은 모두 현명하여 판단력이 훌륭하기 때문에 어른으로서 취사를 잘 못하고 보면 후배들은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나타나게 뛰어난 것은 없지만 대의가 있고 진실하고 사심이 없으면 마음을 통하고 살기 때문에 애를 쓰고 좋은 인연이 되려고 따로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적어도 어른스럽고 총명하여 배우고 본 받을만한 후배들도 많습니다. 우리 교단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주 흐뭇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별들도 많고 우리네 회상엔 도인도 많다' 라고요.

둘째, 정사를 하는 것이 자기 이상이면 스승으로 알라 하셨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지금 사람들이 사리 판단이 현실에 맞게 더 정확하니까 되도록이면 따라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무적인 일이나 공사를 처리하는 능력이 훨씬 나으니까 밀어주고 열심히 배우는 공부를 하여 내생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생활에 대한 지식이 자기 이상이 되면 스승으로 알라 하셨습니다. 현대 과학이 급속히 발달하여 생활이 편리해 졌으니, 과학 문명을 잘 활용하도록 생활에 대한 지식을 쌓으며 맞추어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생활에 대한 지식은 경험해 본 사람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지런히 배워 내 것을 삼고, 모르는 사람에게 부지런히 알려 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미국에 적응하며 사는 동안 많은 어려움 을 이겨내며 지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겪은 어려움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가 이겨내며 얻어진 것이 제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남이 들어 주기를 기대하고 남의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며 생활하며 취사를 하다가 실패도 하고, 어려우면 남을 속이기도 하여 서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민 생활을 잘 하려면 그 나라 법 등 많은 것들을 정확하게 배워 알아 잘 지키고 살아야, 보호도 받고 불이익도 면하고, 편안하고 안정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넷째, 학문과 기술이 자기 이상이 되면 스승으로 알라 하셨습니다. 학문과 기술은 시간과 돈 등 공을 많이 들여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겸손하게 공경하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대산종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기술이 능하다는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만 번은 연습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미국에서 근무를 하려면 영어를 해야 하겠구나, 마음은 간절하지만 뜻대로 되어지지 않았습니다. 학점을 얻기 위해 공부 했는데 세 번째 과목에서 학점을 못 얻어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공부하여 학위를 얻은 사람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처럼 쉽지 않은 것을 얻은 사람이니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배워야지요.

다섯째, 모든 상식이 자기 이상이면 스승으로 알라 하셨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배워 알아야 어려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쉬운 일이 모르는 사람에겐 어렵고 답답하고 괴롭기까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애틀란타에 교당을 개척하면서 한 가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법인 내는 것에서부터 면세, 각종 청구서 납부, 잘못된 것 바로잡기, 최근엔 교당 구입 및 법당 신축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 하나 물어서 배워 가지고 하니까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잘 되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정확하게 잘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며 다가오는 문명 시대를 맞이하여 어리둥절하지 않고 자신 있고 든든하게, 떳떳하고 힘차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배우고 또 배우는 대종사님의 법통제자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

 

주제있는 정전공부 3

배움은 생활과 인생을 바꾼다

 

[1135호] 2002년 01월 25일 (금) 남궁 성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사요의 교리중 지자본위(智者本位)란 지자는 우자(愚者)를 가르치고 우자는 지자에게 배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당연한 일이니,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배울 것을 구할 때에는 불합리한 차별 제도에 끌릴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하는 사람의 목적만 달하자는 것이 그 강령입니다.

모든 인류가 지자를 선도자로 삼고 배워 나갈 때 인류는 지식이 평등되고 나아가 낙원세계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때 반상의 차별 노소의 차별 남녀의 차별 등 불합리한 차별제도로 인하여 지자를 본위로 하지 못한 어두운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부처님 대종사께서는 이 세상에 다른 모든 차별은 없애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 그러나 있어야 할 차별은 지자와 우자의 차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근본적으로 차별하자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데 있어서만 그러자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불행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배우지 않는 데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배워서 지자(智者)가 되어야 생활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어야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지자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어느 때 어떤 분야에서든지 지자를 선도자로 삼고 어떤 체면도 버리고 마음을 낮추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배울 것은 진리와 도덕

 

한 때의 수치를 접고 배우는 사람은 일생동안 지자가 되지만 한 때의 수치를 이기지 못하고 배우기를 꺼리는 사람은 일생동안 우자(愚者)로 남게 됩니다. 앎이란 먼저 알고 늦게 아는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 가치가 더하거나 덜하지 않습니다. 지자가 되는 순간 평등한 것이 앎의 세계입니다.

대종사께서는 “나의 스승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너의 스승은 내가 되고, 나의 스승은 너희가 된다”고 답하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자동차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컴퓨터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참으로 배워야 할 것은 진리와 도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갖가지 학문과 기술 그리고 생활정보 등 여러 가지를 배워야겠지만 진리를 깨달은 성자의 사상을 배우는 것은 어떤 배움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자를 본위하여 부지런히 배워서 개인도 사회도 새롭게 거듭나자는 교리가 지자본위입니다.

<교정원 총무부장>

ⓒ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