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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14 전망품(展望品)

전망품(展望品) 16장

대종경(大宗經)

14 전망품(展望品) 16

최 도화(崔道華) 여쭙기를 [이 세상에 미륵불(彌勒佛)의 출세와 용화회상(龍華會上)의 건설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많사오니 미륵불은 어떠한 부처님이시며 용화회상은 어떠한 회상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들어나는 것이요, 용화 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 불상(處處佛像) 사사 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니라.] 장 적조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어느 때나 그러한 세계가 돌아오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지금 차차 되어지고 있나니라.] 정 세월(鄭世月)이 여쭙기를 [그 중에도 첫 주인이 있지 않겠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하나하나 먼저 깨치는 사람이 주인이 되나니라.]

★★★★★★★★★★

최도화[崔道華]

본명은 인경. 법호는 삼타원(三陀圓). 법훈은 대호법. 전북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 개금실에서 부친 순화(順化)와 모친 진정만옥(陳正滿玉)의 일곱자매 중 6녀로 출생. 13세에 원 없는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비관하여 28세에 동네 방죽에 투신자살을 기도, 지나가던 여승에 의해 구해져 그로부터 출가하여 한강변 종남산 미타사, 계룡산 동학사에서 나반존자 주력수행을 했다. 이후 태을주(太乙呪) 수련을 하다가 각지 용한 기도터를 찾아다니며 기도하는 한편 비단장수를 하며 절집의 화주 노릇도 했다.

간곡한 기도와 간병으로 진안 좌포 김승지의 폐병에 걸린 아들을 낫게 하여 신임을 얻어 만덕산 산제당과 그 일대의 산전을 관리하게 되면서 임실 개금실의 가족들을 이주시켰다. 최도화는 산등 넘어 미륵사에 내왕하며 화주 노릇을 하게 되고 여기서 정산종사를 만나 생불님으로 받들게 되며, 변산 봉래정사에서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왕생불님을 만난 법열로 교화, 진안 마령의 전삼삼전음광 모자를 이끌어 전주로 이사하게 하여 전주에 회상 창립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익산에서 불법연구회를 창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소태산은 최도화를 길잡이로 하여 서울에 가서 박사시화를 통해 이동진화이공주 등의 창립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정산은 최도화에 대해 전북 회상과 서울 회상의 총연원이라고 했다. 최도화는 거진출진으로서, 공식 직명은 행상 순교(行商巡敎)’319명의 입교 연원을 달았다. 타고난 강인한 기질, 담이 차고 한번 하기로 한 일은 기어이 끝을 보고 마는 성격에 주선력과 계획성이 있어 회상 창립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최도화는 미륵불의 출세와 용화회상 건설에 관심이 많았다(대종경전망품16). 소태산을 미륵불로 믿음에 추호의 의심이 없으며 궁색하게 사는 양하운 대사모에게 집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아들 조갑종이 전무출신했다.(원불교대사전)

미륵불[彌勒佛]

[개요]

대승불교의 대표적 보살 가운데 하나로,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 싼스끄리뜨로는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미륵은 성씨이고 이름은 아지타(Ajita, 阿逸多)이다. 아일다(阿逸多)무승(無勝)막승(莫勝)이라고도 번역된다. 성인 미륵은 자씨(慈氏)로 번역되어 흔히 자씨보살로도 불린다.

[미륵불 신앙의 형성과 전개]

미륵은 인도 바라내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세존의 교화를 받았는데,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있으며, 지금 그 곳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석가세존이 입멸한 뒤 56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화림원(華林院)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도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세존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세계는 낙원인 용화회상(龍華會上)이 되는데, 사시의 기후가 화창하고 사람들은 병이 없으며,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사람이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고 사이좋게 사는 세상이 된다.

그때 사람들은 얼굴이 도화색같이 곱고 사람이 모두 경중하며 금은보석이 땅에 떨어져있으나 욕심내는 사람이 없다. 수명은 극히 길고 병이 없어 오래도록 살게 된다. 이리하여 미륵은 6만세를 살고 미륵의 법 역시 6만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불설미륵하생경(佛說彌勒下生經)》ㆍ《불설미륵하생성불경(佛說彌勒下生成佛經)》ㆍ《불설미륵대성불경(佛說彌勒大成佛經)》ㆍ《불설미륵래시경(佛說彌勒來時經)등 일련의 미륵경전에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미륵보살은 불교의 여러 보살들에 대한 신앙 중에서 가장 오래 되었고, 또한 미륵의 명칭은 초기 경전에서 후기 경전까지 끊이지 않고 나오기 때문에 대중들에 대한 영향도 깊다.

이 미륵불에 대한 관념은 미륵신앙으로 이어져 미륵보살이 주재하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도솔천 상생신앙과, 말세적인 세상을 구제하러 미륵이 하생하기를 바라는 미륵하생신앙의 두 가지 흐름이 있다. 하생신앙은 특히 말세사상과 결합되어 종말론적 메시아니즘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된 민중들에게 사회모순을 해결 짓는 구세주로서의 미륵을 갈구하는 사회개혁과 민중운동의 이념으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사회 혼란이 심할 경우 미륵불을 자칭하며 새로운 세상이 왔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이상세계를 제시하는 미륵의 대승설법이 이루어지는 복지사회로의 염원에서 나온 불교적 이상사회관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인도에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미륵보살상을 통해 간다라 미술의 유입기인 B.C. 2세기경부터 모든 중생의 이익을 원하는 미륵상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고, 중국의 경우 현재 남아 있는 룽먼석굴(龍門石窟)의 미륵상들을 통해 6세기 북위 불교의 미륵신앙 열기를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미륵불신앙]

미륵사상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불교 전래 초기로 보인다. 백제 성왕 4(526)에 사문 겸익(謙益)이 인도에 유학하고 돌아와 미륵불광사(彌勒佛光寺)를 지은 점이라든가, 백제 위덕왕 때 미륵석상(彌勒石像)을 일본에 전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록, 또 무왕 때 건설된 것으로 전해지는 익산 미륵사(彌勒寺)와 미륵탑(彌勒塔)은 백제 미륵불교의 융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라에서도 법흥왕 14(527) 흥륜사(興輪寺)에 미륵존상(彌勒尊像)을 모셨고, 특히 신라의 미륵사상은 어느 것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성취시키려 했던 신라 불국토(佛國土)란 다름 아닌 미륵의 당래정토(當來淨土) 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혜공왕(惠恭王) 2년에 진표율사(眞表律師)가 금산사(金山寺)를 중건하면서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주성(鑄成)한 것은 미륵불 사상의 대표적 유물로 보인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어지러운 세태, 불안한 인심, 의지할 데 없던 민중은 미륵불의 출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었고 현실에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들의 꿈을 미륵불의 출현에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궁예(弓裔)견훤(甄萱) 등은 자칭 미륵불이라 하면서 정치적 변혁과 사회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많은 한국신종교 창시자들도 미륵을 자처했는데 예를 들면 강일순(甑山姜一淳)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상제(上帝)임과 동시에 미륵불이라 했고, 그가 활동했던 금산사 아래 동내 용화동을 용화회상의 기지라 하면서 민중구제와 다양한 사회개혁의 종교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원불교의 미륵불사상]

소태산대종사는 오랜 구도생활 끝에 자수자각을 얻고 불법(佛法)에 연원하여 불교를 주체로 한 교법과 사상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불교와 원불교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기본 교리와 사상이 불법에 근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불교가 민중신앙 속에 깊이 뿌리내린 중요한 믿음체계의 한 가닥이 미륵신앙인데 바로 이 미륵사상 역시 소태산의 가르침 속에 깊숙이 뿌리 내려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종경전망품에는 15개장에 걸쳐서 미륵불용화회상용화회상인 후천 낙원세계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소태산 열반 후에 그의 일부 제자들이 소태산을 미륵불로 받드는 경향도 있다.

소태산의 미륵불관

소태산은 한때 미륵은 어떠한 부처이며 용화회상은 어떠한 회상이냐고 묻는 제자에게 답하고 있다.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것이라”(대종경전망품16). 또 미륵불의 세계가 언제나 돌아오며 그 첫 주인은 누가 될 것이냐는 질문에 소태산은 지금 차차 되어지고 있으며 하나하나 먼저 깨치는 사람이 주인이 된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 종파들마다 다 자기 회상이 참다운 용화회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어느 회상이 참 용화회상이 될 것이냐는 물음에 말만 가지고는 되는 것이 아니니, 비록 말은 아니 할지라도 오직 그 회상에서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자연 용화회상이 될 것이요 미륵불을 친견할 수도 있으리라”(대종경전망품17)고 답하고 있다. 소태산의 이 법문에 대한 초기 기록에는 미륵불과 용화회상에 대한 보다 더 절실한 표현들이 되어 있다. 회보(會報)에 실린 글을 인용해 본다.

한때에 종사주(宗師主) 가라사대 미륵불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에 부처가 다북 찼다는 말이니 천지만물 허공법계(虛空法界)를 다 생불(生佛)과 같이 위하는 시대를 일러 미륵불 출세(出世)라 하나니라.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다 생불로 위하는 시대에는 인지(人智)가 훨씬 밝아져서 모든 것에 상극이 없어지고 허실양단(虛實兩端)을 분가(分訶)하여 저 등상불(等像佛)에게만 수복(壽福)을 빌고 원하던 일은 차차 없어지고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망라하여 경우와 처지를 따라 모든 공()을 심어 부귀도 빌어가며 자손도 빌어가며 서로 생불이 되어 서로 제도(濟度)하며 서로 부처의 권능을 가진 줄 알아 집집마다 부처가 살게 되리라. 또 용화회상이라는 말은 넓고 큰 회상을 이름이니 이상에 말한바와 같이 온 세상이 만일 미륵불 회상이 되고 보면 회상을 별로 어느 것이라 지정할 것 없이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가는 곳마다 회상 아님이 없을지라 그 광대함을 어찌 말과 글로서 다할 수 있으랴. 만일 이 용화회상이 건설되는 세상에는 불법이 천하에 편만하여 중과 속인(俗人)의 차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며 공부와 생활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고 남녀노소 선악귀천에 고루 그 덕화(德化)를 입어 화피초목뇌급만방(花被草木賴及萬方)하는 원만 평등한 세상이 되리라”(회보32).

이상 대종경회보에 나오는 법설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륵불이 누구냐는 문제이다. ‘미륵불이라 함은 글자 그대로 온 세상에 부처가 가득 찼다는 말이니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다 생불과 같이 위하는 것이라 했다.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다 생불로 위하는 시대에는 인지가 밝아져서 모든 것에 상극이 없어지고 사실적으로 죄복을 빌며 서로 생불이 되어 부처의 권능을 갖추고 집집마다 부처가 살게 된다. 그러니까 소태산이 본 미륵불은 개별 인격체로서의 특정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법신불의 진리,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 곧 일원상(一圓相)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 보편화되는 모습을 말한 것이다.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라고 밝힘으로써 기존의 미륵불에 대한 관점을 크게 바꿔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 용화회상에 대한 개념이다. 용화회상이란 크게 밝아지는 세상이다. 용화회상이라 함은 넓고 큰 회상을 이름이니 미륵세상이 되고 보면 회상을 별도로 어느 곳에 지정할 필요가 없이 가는 곳마다 회상이 되고 부처가 세상에 가득 차서 성속의 구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의 구애가 없어져 원만 평등한 세상이 된다. 결국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세상을 용화회상이라 본 것이다. 셋째 그러면 그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하나 먼저 깨치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미륵불의 참 뜻을 먼저 깨닫고 미륵불이 하는 일만 하고 있으면 그 종교가 용화회상을 이끄는 주인종교가 된다고 본 것이다.

소태산이 본 용화회상의 모습

소태산의 미륵불관과 용화회상관에 바탕하여 본 다가올 용화회상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대종경전망품에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본다. 인지가 훨씬 밝아져서 모든 것에 상극이 없어지고, 허실과 진위를 분간하여 진리불공(眞理佛供)과 사실불공(事實佛供)을 한다. 서로서로 생불이 되고, 집집마다 부처가 살며, 가는 곳마다 용화회상이어서 승속(僧俗)의 구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며, 공부와 생활이 둘이 아니고, 민생이 그 덕화를 입게 된다. 세상이 말세가 되어 머지않아 파멸과 종말이 오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성인의 자취가 끊어진 지 오래고 도덕이 희미해져 말세인 것은 틀림없으나 세상이 이대로 파멸되지는 않는다. 돌아오는 세상은 참으로 문명한 도덕세계이며, 지금은 묵은 세상의 끝이요 새 세상의 처음이다. 오는 세상에는 남에게 주지 못하여 한이요, 남에게 지지 못하여 걱정이요, 남을 위해주지 못해 근심이며, 공중사를 못하여 한이요, 입신양명할 기회와 권리가 돌아와서 수양할 여가를 얻지 못해 걱정이요, 사람들이 죄짓기를 싫어하고 개인가정사회국가가 국한을 터서 유통하게 된다. 또 지금은 물질문명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마는 오는 세상은 위없는 도덕이 굉장히 발전되어 산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는 흘린 물건을 줍지 아니하는 세상이 된다.

과거 세상은 어리고 어두운 세상이라 강하고 지식 있는 사람이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무리하게 착취하여 먹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세상은 슬겁고 밝은 세상이라 악하고 거짓된 사람의 생활은 점점 곤궁하여지고 바르고 참된 사람의 생활은 자연 풍부해진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명이 되면서부터 모든 것이 발전하고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되고 점차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되어 가고 있다. 한적하고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살며, 평지에 조산이라도 하여 좋은 경치를 만들고 집을 짓게 된다. 그리고 공도자(公道者)와 법 있는 사람을 공경하고 대접하게 된다.

면면촌촌에 학교와 교당이 있고, 종교 신자가 대우받게 되며, 직업소개소혼인소개소탁아소양로원간이식당재봉소세탁소 등 각종 생활편리 시설이 구비되어 생활이 더 없이 편리하게 된다. 재산도 상속하지 아니하고 공익사업에 쓰며, 지금은 대개 남을 해롭게 하는 것으로서 자기의 이익을 삼지마는 돌아오는 세상 사람들은 남을 유익 주는 것으로 자기의 이익을 삼게 된다.

미륵불로서의 소태산숭배

소태산의 미륵불관은 특정인물이 아닌 처처불로서의 미륵불관을 밝혀 놓았지만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 중에는 인간 소태산을 주세불로, 그리고 미륵불로 숭배하는 경향도 있다(원불교성가196).(원불교대사전)

용화회상[龍華會上]

미륵불의 회상. 미륵불이 출세하여 세 번의 법회로 많은 중생을 제도하게 되는 미래세계의 큰 회상을 의미한다. 미륵보살이 성불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연 법회.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567천만 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서 용화수 밑에서 도를 이루고, 세 차례의 설법을 한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대도 정법이 널리 퍼져서 모든 사람이 정신개벽이 되고 크게 밝은 세상이 전개되는 시대. 곧 일원대도가 널리 퍼지는 시대. 원불교가 미래세계의 주세종교가 되는 시대를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곧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을 말한다(대종경전망품16).(원불교대사전)

장적조[張寂照]

본명 미상. 법호는 이타원(二陀圓). 법훈은 대봉도. 18781015(), 경남 통영에서 부친 문중(文中)과 모친 박거창(朴居昌)65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천성이 강직하고 고결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였다. 성격이 남성적이고 활달했다. 16세 되던 해 부모의 뜻을 따라 이웃 마을의 이씨(李氏) 문중에 출가하여 풍족한 환경에서 10여년을 지냈으나 남편과 이상이 맞지 않고 집안 살림의 구속에 묶여 지내는 것이 무엇보다 구차하고 답답한 인생이라 생각하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원했다.

30세 미만에 집을 떠나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때 10여년간 예수교와 보천교 등을 신앙했다. 1921(원기6) 515일 이만갑(李萬甲)의 소개로 전북 부안 변산의 실상초당을 찾아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제자가 되고 이어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이후 영산에 도실(道室)을 지을 때는 여자의 몸으로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땔나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원평에 교당설립을 목적하고 교도를 찾아 순교하며 기금 마련을 위해 작농도 하고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원평에서 변산까지 먼 길을 내왕하며 알뜰한 신성을 바쳤다. 무엇보다도 연원교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원평의 서동풍서중안 형제를 인도하여 익산총부 건설의 주역이 되게 했고, 증산교 교파인 무극도인들을 개종시켜 귀의케 했다. 1929(원기14) 봄 부산으로 내려가 아들 이덕환의 집에 살면서 순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1931(원기16)에 하단지부(현 당리교당)를 설립하여 당시 소태산과 조송광을 초청하여 소태산의 최초 경상도 행가를 가능케 했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북방교화에 나서 1936(원기21) 함경도 청진에 사는 아들 집에 있으면서 7명을 입교시켰고, 1937(원기22)에는 만주로 진출하여 심양(審陽)길림(吉林)목단강(牧丹江)장춘(長春)연길(延吉) 등에서 1945(원기30) 5월까지 218명의 새 회원을 입교시켰다.

숱한 고생 끝에 목단강변에 교당 건물까지 준비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제2차세계대전 중 비상시국으로 인하여 중지하고 총부로 귀환해야만 했다. 특별한 교직은 없었으나 혼자의 몸으로 원평대구부산평양청진만주서울 등을 순회하며 법음(法音)을 전하던 장적조에게 소태산은 이타원(二陀圓)이란 법호를 주었는데, 박사시화(一陀圓)최도화(三陀圓)와 더불어 불법연구회 3대여걸로 불렸다. 1931(원기16) 3월 여자수위단 곤방(坎方) 단원에 피선되어 대중의 신망을 받았기도 했다. 1960(원기45) 1220일 노년의 수양을 즐기던 중앙수양원에서 열반했다. 법위는 정식 법강항마위에 올랐으며, 1988(원기73)에는 대봉도(大奉道)의 법훈이 추서되었다.(원불교대사전)

정세월[鄭世月]

본명은 인흥(仁興). 법호는 칠타원(七陀圓). 불법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서중안(秋山徐中安)의 부인. 최초 여자정수위단원 역임. 1896126, 전북 김제군 만경면 인흥리에서 부친 문명(文明)과 모친 이명인화(李明仁華)10남매 중 5녀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천성이 활달하고 근실했으며, 3살 때부터 백부 슬하에서 양육되어 16세에 서중안과 결혼했다. 전처소생의 딸 둘을 친딸과 다름없이 사랑하여 인근의 칭송이 자자했으며, 부모를 효양(孝養)하며 하솔의 도도 분명히 하여 가족들이 모두 따랐고 이웃의 모범이 되었다.

1924(원기9) 불법연구회 창립과 익산총부 건설에 초대회장인 부군과 함께 당시 3천여평의 기지 대금과 건축비 일부(6백여원)를 의연(義捐)했다. 1927(원기12) 부군과 더불어 가산을 정리하고 교단 창업에 전무하기 위해 총부 구내로 이사했다. 그러나 부군은 우연히 발병하여 효차를 보지 못하고 1930(원기15) 6249세의 일기로 열반했다. 큰 슬픔이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1932(원기17) 전무출신을 단행했다. 이후 총부식당 주임으로 7년간 알뜰한 공심으로 살림을 꾸렸으며, 1941(원기26)부터 3년간은 총부 순교로 교화발전에 노력했다.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여자정수위단 시보단을 조직할 때 여자정수위단의 일원이 되었다. 815광복 이듬해인 1946(원기31) 전재동포구호소 주임으로 1년간 구호사업에 종사했으며, 1947(원기32)부터는 총부 순교로 1, 총부 내 감원으로 2, 양로원 주임으로 1년을 일했다. 회보4호에 공부하는 사람과 안하는 사람의 구별이라는 감상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1935(원기20) 동선 때는 소태산으로부터 초견성 인가를 받기도 했다. 1954(원기39) 6월부터는 중앙수양원에 입원하여 수양에 힘쓰다가 1977(원기62) 열반을 얼마 앞두고 음력 구월 보름경에 가야겠다고 미리 날을 받아 두더니 과연 913(양력 1025) 82세로 열반했다.(원불교대사전)

★★★★★★★★★★

[미륵불과 용화회상]

<김혜신 교무/교동교당>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한다. 변화의 방법에 따라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달라진다.

즉 윤회와 순환이라는 역사관을 유지하는 불교와 천당과 지옥이라는 구원과 파멸의 생명관을 갖는 기독교의 미래관이 대조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륵불과 용화회상은 불교의 순환철학이 민간신앙차원으로까지 보편화된 표본적 사례이다.

부처님은 시대와 인지의 정도에 따라 진리를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하여 출현하신다. 즉 불불계세(佛佛繼世)의 사상이다.

석가모니부처님 이전에는 일곱분의 부처가 계시었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이 정법시대를 지나 상법시대가 되고 다시 말법시대에 이르면 미륵부처님이 탄강하시어 중생을 교화하신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차기부처님으로 지정받는 것) 받아 준비하여 장차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실 미래 부처님이시다.

미륵불과 용화회상의 도래를 갈망하는 기원은 불교적 이상세계에 대한 순박한 소망이 담겨있다.

최도화(초창기여성제자, 삼타원, 진안출신, 만덕산 초선참가, 교직없는 교역자역할, 대봉도서훈받음) 가 대종사님께 여쭈었다.

미륵부처님은 어떠한 부처님이며 용화회상은 어떠한 회상입니까?” 대종사 답하시기를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대의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하여지는 것이니라하셨다.

미륵부처님이 오시어 설하실 법은 과학의 무한한 발전을 도덕적 완성을 이룬 인성으로 마음껏 활용하여 광대무량한 낙원을 이루어가는 미래인류의 이상적 철학이다.

과거의 분야별 책임을 가진 체계에서는 종교와 과학은 항상 충돌하고 저항하며 과학적 천재들은 종교재판의 대상이 되었고 그 대표적 사례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 알고 있는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의 사건이다.

용화회상은 미륵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는 교단이다.

용화회상의 모습은 우리인류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모습이다.

과학과 종교, 육신과 정신, 생활과 수도, 동과 정, 남과여와 같이 상대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없어서는 살수 없는 은혜의 대상으로 돌려 서로 부처님으로 모시고 감사하며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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