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종경(大宗經)/제14 전망품(展望品)

전망품(展望品) 04장

대종경(大宗經)

14 전망품(展望品) 4

대종사 익산(益山)에 총부를 처음 건설하실 제 몇 간의 초가에서 많지 못한 제자들에게 물으시기를 [지금 우리 회상이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여 보라.] 권 대호(權大鎬) 사뢰기를 [못자리 판과 같나이다.] 다시 물으시기를 [어찌하여 그러한고.] 대호 사뢰기를 [우리 회상이 지금은 이러한 작은 집에서 몇 십명만 이 법을 받들고 즐기오나 이것이 근본이 되어 장차 온 세계에 이 법이 편만할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네 말이 옳다. 저 넓은 들의 농사도 좁은 못자리의 모 농사로 비롯한 것 같이 지금의 우리가 장차 세계적 큰 회상의 조상으로 드러나리라. 이 말을 듣고 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나, 앞으로 제일대만 지내도 이 법을 갈망하고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며, 몇 십년 후에는 국내에서 이 법을 요구하게 되고, 몇 백년 후에는 전 세계에서 이 법을 요구하게 될 것이니, 이렇게 될 때에는 나를 보지 못한 것을 한하는 사람이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지금 그대들 백명 안에 든 사람은 물론이요 제일대 창립 한도 안에 참례한 사람들까지도 한 없이 부러워하고 숭배함을 받으리라.]

★★★★★★★★★★

권대호[權大鎬]

본명은 육룡(六龍). 1910922일 전북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에서 부친 성수와 모친 김만공월 사이에서 출생했다. 6세시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으며, 11세시 장수군 산서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비록 어린 나이에도 귀가 후에는 나무를 하여 학비를 마련하여 외로운 모친을 항상 위로해 드리므로 인근 각처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14세 되던 1923(원기8)에는 결혼한 누나 권동화의 가족을 따라 전주로 이사했고, 바로 전주제일공립보통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16세시 매형인 전음광이 전무출신을 발원하여 가족이 익산 총부구내로 이사함에 따라 이리공립보통학교로 전학했다가 졸업과 함께 전무출신을 단행했다. 19세 되던 1928(원기13)에 농공부원 근무를 시작으로 1930(원기15)에 영광 서무부 서기겸 상조부 서기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931(원기16) 우연히 병을 얻어 순회요양했으나 결국 122122세의 일기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비록 전무출신 근무기간은 짧았으나 정남(貞男)을 서원하여 오롯이 공사에 전력한 만큼 장례절차를 익산지방 간부장으로 거행했고, 열반 5일 후인 26일에 소태산대종사와 은부시자(恩父侍子)의 결의식을 맺었다.(원불교대사전)

창립한도[創立限度]

원불교의 창립을 위해 설정한 시기. 매대(每代)36년씩으로 하고, 이를 매회(每回)12년씩으로 헤아려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제도이다. 1918(원기3) 10, 소태산대종사는 새 회상의 창립한도를 발표하여 36년씩을 1대로 환산하도록 했다. 이는 장기에 해당하므로 그 중에 중단기를 나누어 12년씩을 1회로 계산하게 된다. 창립 제136년의 제112년은 교단창립의 정신적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창립의 인연을 만나는 기간으로, 212년은 교법을 제정하고 교재를 편성하는 기간으로, 312년은 법을 펼 인재를 양성 훈련하여 포교에 주력하는 기간으로 했다.

또한 시창(원기) 기원은 소태산의 대각한 해인 1916년을 기준으로 실시할 것도 아울러 발표했다. 창립한도는 새 회상 창립을 시작하면서부터 추진한 계획적인 실천프로그램이다. 소태산은 만년에 교단사업목표로 교화교육자선을 부촉했다. 이를 통해 보면 대종사는 창립초기에 시기 중심의 기획운영을 해오다가, 각종 분야의 실적이 나타난 만년에 이르러 분야별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교단운영을 시기별분야별로 아울러 기획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원불교대사전)

★★★★★★★★★★

[대종사, “너희들은 내 눈과 같다”]

<김혜신 교무/교동교당>

지금 우리 회상이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여 보라” “못자리판과 같나이다.” “어찌하여 그러한고.” “우리회상이 지금은 이러한 작은 집에서 몇 십명만 이 법을 받들고 즐기오나 이것이 근본이 되어 장차 온 세계에 이 법이 편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말이 옳다. 저 넓은 들의 농사도 좁은 못자리의 모 농사로 비롯한 것같이 지금의 우리가 장차 세계적 큰 회상의 조상으로 드러나리라원불교 창립당시 몇 칸의 초가에서 많지 않은 제자들과 대종사님이 나누신 대화의 일편이다.

일원회상은 분열과 성장의 인류사에서 통합과 조화의 성숙한 역사로 대전환하는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정신사를 열어 가는 지표를 제시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대산종사님은 반백년기념대회에서 전 세계 인류를 향해 일원회상 소식을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메시지에 담아내셨다. 못자리판에서 넓은 들로 모를 던져내는 소식이다.

전망품 4장은 대종사님께서 회상 창립100년 안에 동참한 제자들에게 새 회상 조상으로서의 홍복과 보람을, 아울러 책임을 부여하고 계신다.

대종사 회상초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영산 옛 회상에서 만났던 사람들인데 100년 안에는 천이백대중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온다. 유능한 사람,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는 이러한 회상은 처음이다 세세 생생 내 꼴마리에 차고 다닐란다하시었다.

이 말을 들은 몇몇 제자들은 우리 같은 못난 사람이 있는데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했으면)

둘은 못자리의 모가 병들지 않은 건강한 묘목으로 성장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원불교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이 땅에 출현하였다. 물질의 노예, 원망의 지옥, 의뢰의 부자유, 개인주의의 이기심을 모두 돌려 일원주의로 성공시키는 정신개벽의 사명이다. 선택된 자에겐 책임이 있다. 원형대로 받아서 원형대로 익히고 원형대로 나투고 원형대로 전하는 것이다.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나의 가르침은 마음을 마음대로 잘 다스리는 법외에 별 다른 것이 없다. 그러니 모두들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잘 쓰는 공부를 잘하면 그 사람이 참 나의 제자가 될 것이다.”

원기10년대의 총부는 20대 초반의 송도성 전음광등이 업무를 담당하여 일을 처리하는 등 젊음으로 활기가 넘쳤다. 이들에게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너희들은 내 눈과 같다.” 원기 90년 지금 우리후진들 그 눈을 보고 싶다.

★★★★★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14 전망품(展望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망품(展望品) 06장  (0) 2014.12.30
전망품(展望品) 05장  (0) 2014.12.30
전망품(展望品) 03장  (0) 2014.12.29
전망품(展望品) 02장  (0) 2014.12.29
전망품(展望品) 01장  (0) 2014.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