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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11 요훈품(要訓品)

요훈품(要訓品) 19장

대종경(大宗經)

11 요훈품(要訓品) 19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복을 받기는 좋아하나 복을 짓기는 싫어하고, ()를 받기는 싫어하나 죄를 짓기는 좋아하나니, 이것이 다 화복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설사 안다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니라.]

★★★★★★★★★★

[화복의 근원]

<송경호 교무/순천교당>

대종사께서는 어리석은 사람은 복을 받기는 좋아하나 복을 짓기는 싫어하고, 화를 받기는 싫어하나 죄를 짓기는 좋아하나니 이것이 다 화복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 설사 안다할지 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라 하였다.

이 세상에 복 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죄받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복 받는 사람 따로 있고 화나 죄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복을 받고 싶다고 받고 화를 받기 싫다고 받지 않는 다면 이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것은 분명 엉망진창인 세상이 될 것이다. 혹자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복만 받고 화는 받지 않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 할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는 분명하고 밝은 진리가 있어서 복을 짓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복을 받게 하고, 죄를 짓는 사람에게는 화를 받게 하는 엄연하고 변함없는 인과의 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복을 지은 사람에게 복을 받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복을 지은 사람에게 화를 받게 한다든지 죄를 지은 사람에게 복을 받게 한다면 그같이 불공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저지르기 쉬운 죄를 쉽게 지으면서 받을 때에는 진리가 불공평하다느니 내가 지은 죄가 없거늘 왜 이렇게 화를 당하는지 모르겠다고 진리를 원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마음으로 원하는 바와 몸으로 행하는 바가 서로 같지 못하니 받을 때도 복은 받고 싶으나 화를 당하게 되고, 죄는 면하고 싶으나 화를 당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쉽고도 당연한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알 것 같은데 실은 그렇지 못해서 세상은 이렇게 항상 시끄럽고 복잡하다. 이 원칙에 적용해서 모든 일을 감당하면 좋으련만 원하는 바와 몸의 실행이 항상 헛바퀴를 도는 것이다. 또한 설사 안다 할지라도 실행이 없는 연고라 하였다.

왜 실행이 없는가?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자행자지로 육신과 정신을 아무 예산 없이 양성하여 철석같이 굳은 연고요, 육신과 정신을 법으로 질박아서 나쁜 습관을 제거하고 정당한 법으로 단련하여 기질변화가 분명히 되기까지 공부를 아니한 연고요, 응용하는 가운데 수고 없이 속히 하고자 함이다’(고락에 대한 법문)고 밝혀주셨다.

복 받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 끊임없이 복을 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복 없는 사람을 보면 복 못받을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남의 것은 잘 보이는데 나는 얼마나 올바르게 잘 짓고 있을까?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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