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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제2 예도편(禮道編)

예도편(禮道編) 11장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제2부 법어(法語)

제2 예도편(禮道編) 11장

또 묻기를 [우리 회상에서는 법신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 모든 의식에 심고하는 예가 있사오나, 서가모니불이나 대종사에 대하여는 심고하는 예가 없사오니, 법신불과 인격 부처님과의 관계가 어떠하오며 신앙하는 도가 어떻게 구분되어 있나이까.] 답하시기를 [이것은 대종사께서 모든 신앙처를 통일하기 위하사 법신불 신앙법을 정하신 것이니, 법신불은 우주만유의 근본이시요 제불제성의 본성이신 바, 제불 제성께서는 또한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신 어른들이시니, 그러므로 법신불에 대하여 심고를 올리는 것이 곧 제불 제성에 대하여 심고 올리는 것이 되며, 또는 신앙하는 도에 있어서도 인격 부처님이 계시므로 법신불의 진리를 알게 되고 법신불의 진리가 있으므로 인격 부처님이 이를 천명하시게 되었으니 신앙하는 도가 둘이 아니나 구분하여 말하자면 법신불 신앙은 진리적 신앙이요 인격 부처님 신앙은 교법적 신봉이라고 할 것이니라.]

★★★★★★★★★★

법신불[法身佛]

[개요]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불(佛). 싼스끄리뜨 다르마까야붓다(Dharma-kāya Buddha)의 의역으로, 법ㆍ보ㆍ화(法報化) 삼신불 중의 하나. 법불(法佛)ㆍ자성신(自性身)ㆍ법성신(法性身)ㆍ진여신(眞如身)ㆍ여여불(如如佛)ㆍ실불(實佛)이라고도 한다.

[내용]

석존이 열반에 들자 불제자들은 영원불멸의 불타를 추모하게 되었는데, 후에 점차 석존이 깨달은 불변의 진리, 곧 진여 그 자체가 불타의 참몸(眞身)이라 하는 법신불사상이 발달하게 된다. 법신은 원래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불신을 의미하지만, 삼신설을 확립한 유가행파에서는 이와 지를 나누어 전자를 법신, 후자를 보신이라 하기도 한다. 유가행파에 의하면 진여법신은 언어명상과 사려분별을 넘어선 평등일상으로서, 부증불감하고 불생불멸하며 보편평등한 무한절대의 진여체성인바, 그것은 제불여래의 근본 자성신이며, 나아가 일체법의 소의(所依)가 될 뿐만 아니라, 보신과 화신 또한 이에 의지한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유의 본래 자성인 진여의 이(理) 그자체로서, 모든 유정에 본구되어 있는 보편적인 근본 불신이라고 한다, 이러한 법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는데 오분법신(五分法身)ㆍ진여(眞如)ㆍ법성(法性)ㆍ실상(實相)ㆍ무상(無相)ㆍ이(理)ㆍ사(事)ㆍ육대(六大) 등의 구별이 있으며, 이는 나아가 만유의 실상이 바로 법신이라고 하는 데에서 ‘일체중생 실유불성(悉有佛性)ㆍ여래장(如來藏)’이라는 내재불사상이 발달하게 된다.

[원불교적 의미]

원불교에서는 소태산대종사가 깨달은 일원상진리를 법신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원불교의 교리를 총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도시(圖示)한 ‘교리도’에서는 상단에 일원상(◯)을 그려 놓고, 그 아래에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선 ‘일원은 법신불’이라는 명제에서 볼 때 ‘일원(상)’은 소태산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일원상진리’를 상징화한 것으로서, 이를 원불교에서는 ‘법신불’이라 하고, 그 상징과 진리를 합칭하여 ‘법신불 일원상’이라 부른다.

이는 원불교의 법신불관을 이해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이 근본명제에서 볼 때 원불교의 법신불인 ‘일원상진리’는 소태산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독자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그 깨달음에 바탕하여 불교적 진리관의 정수를 조화적으로 계승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불교사상사 내지 신앙발달사를 살펴보면, ‘법신불’ 개념은 불교교리의 중심을 이루면서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말기의 밀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타관과 불신론이 발전되어왔는데, 소태산은 그의 독자적인 깨달음에 바탕하여 이들 불타관 내지 불신론의 종교적 의미들을 종합 지양하여 미래의 인류사회를 이끌어나갈 이상적 불타관을 제시하고자 ‘법신불 일원상’을 주창했다.

이때의 ‘법신불일원’은 개별 현상이나 인격적 화신불을 넘어선 만유의 근원인 궁극적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불(佛), 곧 법신불(Dharma-kāya Buddha)을 가리킨다, 그것은 법ㆍ보ㆍ화(法報化) 삼신불 중의 하나인 협의의 법신불뿐만 아니라 이ㆍ지ㆍ비(理智悲)가 충만한 광의의 법신불, 곧 진리의 체성은 물론 작용과 함께,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동시에 포함한 포월자로서의 진여실상을 지칭한 것이다. 이러한 원불교의 법신불관에 대해 엄밀히 살펴보면, 광의의 의미뿐만 아니라 협의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삼신일체의 광의의 의미의 법신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주만유와 인간자아의 존재와 가치에 있어 절대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본원ㆍ본성으로서의 법신, 곧 본질로서의 협의의 의미의 법신 또한 철두철미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법신불일원’을 원불교에서는 심불ㆍ심인(心印)ㆍ자성ㆍ심지(心地)ㆍ성품ㆍ법신불ㆍ법신불사은ㆍ일원상진리ㆍ일원불(一圓佛)ㆍ법신불일원상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본원ㆍ본성ㆍ심인으로서의 법신불]

① ‘우주만유의 본원’이라는 명제는 ‘법신불일원’의 근원성ㆍ절대유일성ㆍ전체성 등의 의의를 강조한 것으로서, ‘법신불일원’이야말로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 만유는 그에 바탕하여 차원과 양상을 달리하면서 전개된 다양한 현상적 존재임을 밝힌 것이다. 이때 ‘우주만유’라는 개념에는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물론, 정신적 심리적 존재들, 그리고 우리들의 인식과 상상을 넘어선 유형무형의 다양한 차원의 존재세계까지도 포함된다.

②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명제는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법신불’은 동시에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존재의 본성 그 자체임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원불교의 심성론에 관한 문제로서, 진리의 내재성과 그에 따른 인간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곧 인간 자아의 본성이야말로 바로 ‘법신불’의 내재적 진리로서, 이를 자성불ㆍ심불ㆍ불성ㆍ성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가치론적으로는 지고ㆍ지선ㆍ지복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는 천차만별의 분별심에 의한 유위ㆍ유한의 상대적 유루(有漏)세계에 살고 있는 범부중생이라 할지라도, 근본 바탕은 어디까지나 무위ㆍ무한의 절대적 무루(無漏)본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③ ‘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명제는 ‘법신불일원’의 각증성(覺證性)ㆍ회통성(會通性)ㆍ귀일성(歸一性) 등의 의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종교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명제이다. 곧 만유의 본원이요 자아의 본성으로서의 ‘법신불일원’은 상대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이나 논리 차원을 넘어선, 부처와 성자들의 심오한 종교체험에 의한 깨달음이나 계시의 차원에서 현시된 근원적 진리의 경지를 원불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근원적 진리의 경지와 차원에서는 제종교의 진리관이 서로 만나게 되며, 모든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 또한 이를 향한다. 결국 ‘제불제성의 심인’으로서의 근원적 진리, 곧 본원ㆍ본성자리는 모든 종교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다.

[법신불의 신앙ㆍ수행]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일체의 차별을 초월한 진공의 측면과 아울러, 진리의 작용이 소소영령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차별세계로 나타나는 묘유의 측면으로 밝히고, 이러한 진공묘유의 조화가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 곧 ‘일원상진리’라 했다. 한편 ‘교리도’의 게송에서는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고 하여, 구공과 구족의 2대 속성으로 밝히고 있다. 진공과 묘유라고도 부르는 이 양면관은 원불교 교리전체에 대한 교상판석적 검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대종경》 서품 1장의 대각일성에서 강조되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 또한 동일한 논리의 전개이다. 이와 같이 원불교의 법신불관은 진공과 묘유, 또는 진리의 체성뿐만 아니라 진리의 작용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의미의 법신불관을 강조하고 있다. 소태산은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했나니, 곧 천지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라,…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 또는 무극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또는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법신불이라 했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대종경》 교의품3)라고 했다.

이처럼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한 진리를 ‘법신불’이라 하고 있다. 정산종사는 만법의 근원인 진리불을 법신불이라 의미지었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5). 이와 같이 원불교의 법신불관은 진리의 체성과 작용, 또는 진공과 묘유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그것은 우주만유의 근본과 우리들 마음의 본성을 하나로 보는 이지불이(理智不二)의 의미를 지닌 불신관이다. 이는 유가행파에서 총상(總相)법신과 별상(別相)법신으로 나누고, 총상법신이야말로 이와 지를 겸한 법신, 곧 소조(所照)의 진여와 능조(能照)의 진각(眞覺)을 합쳐 이지불이의 법신이라 함과 상통한다.

이에 비해 별상법신은 청정법계의 진여 자체만을 법신으로 본다. 원불교에서는 본원ㆍ본성ㆍ심인으로서의 법신불(일원)을 본존으로 모시고, 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신앙ㆍ수행의 양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를 타력신앙과 자력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원불교의 신앙문과 수행문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법신불일원’의 진리적 구조, 곧 진공ㆍ묘유의 양면관, 또는 공ㆍ원ㆍ정의 3속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과보응의 신앙문’으로 표현되는 ‘법신불ㆍ사은신앙’에는 주로 진공묘유의 진리구조를, 그리고 이에 비해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 표현되는 ‘자성불 삼대력수행’에는 진공묘유는 물론, 공ㆍ원ㆍ정의 진리구조가 두루 적용되고 있다.

[원불교 법신불신앙의 특징]

원불교의 법신불 신앙이 지니는 의의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원불교의 신앙은 법신불 중심의 신앙이다. 〈원불교교헌〉에는 “본교는 법신불 일원상을 본존으로 한다”고 명시하여, 사상적으로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의례에서 조차 일체의 인격적 불상이나 존상을 모시지 않고 법신불 그 자체를 직접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다. 이와 같이 ‘법신불일원’을 본존으로 모시고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원불교의 기본입장은, 미륵불과 용화회상에 대하여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것이다”(《대종경》 전망품16)라고 한 소태산의 법문에도 그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원불교의 주불은 바로 법신불이며, 회상 또한 본질적으로 법신불의 회상이다.

②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범재불론(汎在佛論)적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법신불 중심의 신앙은 삼신을 구별하여 보는 협의의 법신이라기보다는, 삼신일체 내지 우주불론(宇宙佛論)ㆍ우주신론적 광의의 법신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우주전체를 그대로 광대무량한 불격으로 보는 화엄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사상임은 물론, 우주전체가 그대로 대일여래의 6대ㆍ4만ㆍ3밀에 의한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현현 아님이 없다고 보는 밀교의 ‘대일여래’사상과도 상통한다.

③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범은론(汎恩論)적 무량은혜불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법신불 내지 그 응화신으로서의 만유불은 우리와 관계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우리를 살리고 구제하기 위한 무한 자비의 은혜덕상을 지닌 무량은혜불로서, 이른바 우주만유 전체를 그대로 자비 법신불의 은적 현현으로 보는 범은론적 성격을 지닌다. 이는 마치 우주전체 그대로를 대자비불이라고 보는 일부 학자들의 아미타불관(宇井伯壽, 《불교범론(佛敎汎論)》)과도 상통한다. 더욱이 법신불의 구체적 은혜덕상으로서의 사은을 강조하고 있음은 밀교의 5지여래(五智如來) 또는 4종법신설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④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특히 내재불로서의 자성불의 의미가 강조된다. 이와 같은 범재불론적이고 범은론적인 성격을 지닌 법신불일원은 우리의 본성을 따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그 자체가 바로 법신의 내재불로서, 바로 지금, 여기, 이 마음에 즉하여 영원 무한한 법신불이 약동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영성심리학자들에 의하여 강조되고 있는 우주의식(Cosmic Conciousness) 또는 본질 생명 등과 상통한다고 본다.(Ken Willber, 《통합심리학》;정인석, 《트랜스퍼스날 심리학》)

⑤ 원불교 법신불신앙은 조화적 회통성 내지 병진성이 특징이다. 그것은 자력과 타력, 신앙과 수행, 향상문과 향하문, 진리불공과 실지불공, 영과 육, 이와 사, 그리고 본체와 현상 등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두루 조화적으로 회통시킨 원만한 종교신앙을 지향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이지[理智]

(理 다스릴 이(리), 智 슬기 지/지혜 지)

<한자사전>

①이성(理性)과 지혜(智慧ㆍ知慧) ②사물(事物)을 분별(分別), 이해(理解)하는 슬기

<국어사전>

명사

1. 이성과 지혜를 아울러 이르는 말. 또는 본능이나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지식과 윤리에 따라 사물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

[사람에게는 이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있고, 대개는 감정이 이지를 이기는 것이다. 출처 : 한용운, 흑풍]

2. <불교> 진여(眞如)의 이치를 깨닫는 지혜.

진여[眞如]

(眞 참 진, 如 같을 여)

우주(宇宙) 만유(萬有)의 실체(實體)로서, 현실적(現實的)이며 평등(平等) 무차별(無差別)한 절대(絶對)의 진리(眞理). 진성(眞性)(한자사전)

[정의]

불교에서 의미하는 중생심의 근원이 되는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내용]

진여는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실적이며 평등 무차별한 절대의 진리로 불교의 여러 학파에서 끊임없이 연구되어 왔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에 입각하여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가 주장한 설을 널리 채택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일심(一心)을 참되고 한결같은 본체적인 면과 변화하고 움직이는 현상적인 면으로 나누고, 이를 심진여(心眞如)와 심생멸(心生滅)이라 하였다. 그리고 참되며 한결같은 진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여 이언진여(離言眞如)를 간략히 밝히고, 이어서 그래도 감히 말로써 설명해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을 밝힌 의언진여(依言眞如)의 장을 두었다.

본체로서의 진여가 과연 절언인가 부절언(不絶言)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논쟁이 전개될 수 있는 충분한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하여 원효는 진여를 사(事, 現象)에 대한 이(理, 본질적인 원리)로 이해하고, “이 이(理)는 언설을 절한 것도 아니고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理)는 언설을 절한 것이며 또한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이기도 함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원효는 ≪대승기신론소 大乘起信論疏≫에서 이언진여에 대한 몇 가지 점을 말을 빌려 밝히고 있다.

① 진여는 전체성·보편성·영원성을 지닌 대총상(大總相)이며, ② 진여는 참된 이해를 낳게 하는 원리원칙으로서의 법(法)이고, ③ 진여는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며, ④ 일심을 그 체(體)로 하고 있고, ⑤ 불생불멸(不生不滅)로서 시간성을 초월하고 있으며, ⑥ 망념(妄念)을 떠나 있기 때문에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도, 문자와 개념으로 알릴 수 있는 것도, 분석적 사변이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진여에 대한 두번째 설명은 말에 의지하는 방법이다. 말에 의거한 진여 설명은 부정으로서의 공[如實空]과 긍정으로서의 공[如實不空]으로 다시 분류된다. 궁극적인 실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여실공을 세웠고, 진여의 자체에는 완벽한 상태의 공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밝히기 위하여 여실불공을 세운 것이다.

즉, 여실공의 진여는 유상(有相)도 아니고 무상(無相)도 아니며, 비유상(非有相)도 비무상(非無相)도 아니라고 하여 일체의 상대적인 모습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여실불공으로서의 진여는 영원하여 불변하고 공평무사한 법이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실불공의 진여가 깨달은 사람에게만 온전히 드러난다는 사실을 원효는 상기시키고 있다.

진여에 대한 세번째의 설명은 진여를 본체[體]와 속성[相]과 작용[用]의 측면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진여의 체는 보이지 않는 초험적인 것이고 선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든 현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진여 그 자체이며, 본각(本覺)이기도 하다. 이 체의 모습은 범부라 하여 주는 일이 없고 부처라 하여 늘어나는 것이 아니며,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진여의 상은 진여한 마음이 갖는 완벽한 덕성이다.

그 덕성이란 ① 대지혜이고 광명이며[大智慧光明], ② 모든 대상세계를 남김없이 두루 비춰 주며[偏照法界], ③ 진실한 인식이며[眞實識知], ④ 그 본래의 성격은 청정한 마음이며[自性淸淨], ⑤ 영원하고 행복하고 자유자재하고 더러움이 없으며[常樂我淨], ⑥ 청량하고 변화됨이 없으며 자재로운 것이다[淸凉不變自在].

이 여섯 가지 진여의 속성들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본체를 세속적인 표현을 통하여 열거한 예에 불과하다고 원효는 단서를 붙였다. 진여의 용은 진여심의 작용면에의 위대성이다. 이 용에 대한 설명은 본각을 회복해서 가진 부처를 내세워 설명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진여의 용이 무슨 까닭으로 있게 되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즉, 진여의 작용은 ① 제불여래(諸佛如來)가 본래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단계에서 대자비를 발하여 갖가지 바라밀(波羅蜜)을 닦아 중생을 포섭하여 교화하고, ② 대서원(大誓願)을 세워 무한한 겁(劫)을 통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모든 중생계를 해탈시킨다. ③ 일체의 중생을 자신의 몸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따로 중생관(衆生觀)을 두지 않는다. 그 이유는 중생과 자신의 몸이 진여이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음을 분명하게 알기 때문이다.

원효는 진여의 작용이 있게 되는 이 세 가지 중에서 ①을 결과가 나타나게끔 하는 행위, 즉 본행(本行)이라 하였고, ②를 본래의 소원[本願], ③을 위대한 능력을 지닌 대방편(大方便)이라 하였다. 그리고 대방편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무명을 없애고 본래의 법신(法身)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불가사의한 여러 가지 작용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그 작용은 참되고 한결같아 두루 미치지 않는 데가 없으며, 중생이 보고 듣는 데 따라서 그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결국 진여의 작용은 대방편의 지혜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초월자적인 존재가 힘없고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베푸는 그 무엇이 아니라 중생심 그 자체의 작용이며, 진여한 중생심 속에서 스스로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발현되는 작용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원효의 진여에 대한 주장은 중생의 본체를 설명하는 데 있어 후대의 우리 나라 불교계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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