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29장
대종사 조실에 계시더니, 때마침 시찰단 일행이 와서 인사하고 여쭙기를 [귀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봉안하였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집 부처님은 방금 밖에 나가 있으니 보시려거든 잠간 기다리라.] 일행이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여 의아하게 여기더니, 조금 후 점심 때가 되매 산업부원 일동이 농구를 메고 들에서 돌아오거늘 대종사 그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시기를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 그 사람들이 더욱 그 뜻을 알지 못하니라.
★★★★★★★★★★
[저들이 우리 집 부처니라]
부처 찾는 시찰단을 기다리게 해 놓고, 대종사는 농기구를 메고 들어오는 산업부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들이 다 우리 집 부처니라.’
본 법문은 '부처'가 핵심이다. 부처 중에서도 석가모니 불상으로 대표되는 화신불과 산업부원으로 상징되는 처처불이 대상이 된다.
중생의 수효가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숫자만큼 부처도 많은 법이다. 이것이 삼신불(三身佛)에서 화신불(化身佛) 사상의 핵심이다.
부처는 일체 중생과 더불어 계시면서 모두를 초월하며, 육도와 더불어 수없는 방편으로 교화하시면서도 육도를 초월하신다.
한 편 일체 중생도 불성의 측면으로 보면 삼라만상 두두 물물 헤아릴 수 없는 사물이 모두 부처 아님이 없다(處處佛). 만약 화신불과 처처불에 대한 조화와 구분을 능히 해 낼 수 있다면 그를 견성도인이라 불러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나머지 법문은 덤이다. 우선 '잠깐 기다리라' 하신 말씀에는 소태산의 해학과 여유가 있다. '기다리라'는 말씀은 시간적 기다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관념을 다 비우라는 사고의 각성을 촉구함이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는 불상이며, 대웅전에 있는 것이며, 또한 죄복을 비는 성스런 대상이라는 일상적 관념을 비우라는 깊은 뜻이 '기다리라'에 함께 있는 것이다.
대종사는 다시 새로운 발상을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다. 산업부원들을 부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어찌 산업부원만 부처일 리가 있는가. 일체 중생에게 불성이 다 있다면 산업부원이 부처라는 말은 온전치 않다. 그 근처에는 시찰단도 제자들도 있었으며, 그들도 이미 부처이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대종사 옆에 서 있던 백구라는 이름의 흰 개도, 조실 뜰의 전나무 이파리에도 불성은 그 광휘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종사는 그 모두에게 침묵하시고, 산업부원들을 기다려 부처라고 이른 것이다.
아마 우리 집 부처는 주경야독, 힘써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우리 회상의 특징을 대종사는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日日不作 日日不食)'는 백장청규(百丈淸規)의 가풍이 오늘 우리 회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게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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