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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공부/오늘의 법문

대종경 요훈품 7장

원기 99년 9월 17일(수요일)

대종경 요훈품 7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도를 닦는 사람은 정과 혜를 같이 운전하되, 정 위에 혜를 세워 참 지혜를 얻고,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덕(德)과 재(才)를 같이 진행하되, 덕 위에 재를 써서 참 재주를 삼나니라.]

정[定]

정신수양 공부를 통해 마음에 요란함이 없이 정신 통일이 된 상태. 천만경계에 부딪쳐서도 정신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삼매(三昧) 또는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또는 안으로 분별 주착심을 제거하고, 밖으로 산란한 경계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다(《정전》 정신수양). 육조혜능은 심지무란(心地無亂)인 것만 깨치면 자성정(自性定)이라 했다.(원불교대사전)

심지무란자성정[心地無亂自性定]

심지에 요란함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라는 뜻. 《육조단경》에 나오는 말이나 원불교의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이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 바탕에 어지럽고 요란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고요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원불교의 공부인들은 조석으로 대조하여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표준삼도록 되어 있다.(원불교대사전)

혜[慧]

밝음을 뜻함. 내면으로 자성을 밝혀 발하는 밝은 지혜를 말한다. 사리연구 공부를 통해 마음에 어리석음이 없이 밝은 상태이며,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막힘없이 아는 경지 또는 그 힘을 말한다. 정산종사는 혜에 대하여 “모든 이치에 알음알이를 얻는 공부”(《정산종사법어》 경의편13), “밝되 혜의 상(相) 없음이 자성혜”(《정산종사법어》 경의편48), “혜를 닦되 지우에 집착않는 혜를 닦음”(《정산종사법어》 권도편52)이라 했다. 불교의 삼학인 계정혜 가운데 하나이다. 육조혜능대사는 ‘심지무치(心地無癡)인 것만 깨치면 자성혜(自性慧)’라 했다.(원불교대사전)

심지무치자성혜[心地無癡自性慧]

심지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라는 뜻. 《육조단경》에 나오는 말이나 원불교의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이를 수용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 바탕에 어둡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곧 자성의 혜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원불교의 공부인들은 조석으로 대조하여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표준삼도록 되어 있다.(원불교대사전)

덕[德]

[개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됨됨이. 도덕적, 윤리적 이상 실현을 위한 사려 깊고 인간적인 성품.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직(直)과 심(心)을 합친 ‘덕(悳)’조에서는 ‘밖에서 사람이 바람직하고 안에서 나에게 얻어진 것’이라고 했다. 곧 덕은 인간의 수양과 실천을 통해서 얻어지고 나타남을 말한다.

[유교의 덕]

유교에서는 덕을 인간 심성의 수련과 사회 윤리 체계의 기본으로 본다. 공자는 인(仁)과 예(禮) 등의 덕을 중점적으로 강조했으며 《중용》에서는 지ㆍ인ㆍ용(智仁勇)을 중심적으로 밝히고 있다.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사덕(四德)으로 밝히고 이 사덕을 인간 심성의 근본으로 보았다. 이 사덕이 후에 오상(五常)으로 확대되었고, 송대성리학(宋代性理學)에서는 ‘거경궁리(居敬窮理)’ 등의 수양설과 직결되었다.

유교사상에서 덕은 유학의 덕치주의(德治主義)와 예치주의(禮治主義)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요인이다. 그래서 인의 도덕과 그것의 실현을 덕치주의라고 한다. 맹자는 모든 성현들이 인간에게 덕을 가르침으로써 인간을 다른 피조물들과 차별되는 것을 도덕적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인간의 본성에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성현들은 당시 사회의 지도층으로 나타나고 지도층은 수양과 실천을 통해 인격적 인간이 갖춘 품성을 덕이라 했다. 또한 공자는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는 데 정치와 제도로서 형벌로 한다면 백성은 모면하려고만 하지 부끄러움을 모른다. 백성을 올바로 인도하는 데 덕으로써 하고 백성을 바르게 하는 데 예를 가지고 한다면 백성은 부끄러움을 알게 되고 바로잡힐 수 있을 것이다”(《논어》 위정편)라고 했다.

이러한 덕치주의는 한대(漢代) 이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대에는 군주가 재이(災異)를 방지하기 위해서 덕을 닦지 않으면 안 되고, 덕을 닦아 하늘을 감동시키고 현실정치를 올바르게 실행해야만 했다. 또한 송대 성리학이 주창되면서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 더욱 강조되고 덕치주의가 확립되었다. 곧 성리학이 《대학》이나 《중용》에서 강조하는 천도(天道)ㆍ성(誠)ㆍ명덕(明德) 등의 의미에 포함된 덕치를 더욱 강화시켰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무상함을 관(觀)하여 영구불변의 성품의 덕을 얻는 상덕(常德)과 고(苦)임을 관하여 고락이 쌍망(雙忘)한 성품의 덕을 얻는 낙덕(樂德)과 사대(四大)로 모여진 나는 참 나가 아님을 관하여 진아(眞我)를 발견하는 아덕(我德)과 육신의 부정(不淨)함을 관하여 청정무구한 성품의 덕을 얻는 정덕(淨德)을 말하고 있다.

노장사상에서는 덕을 도에서 나온다는 의미와 또는 인위적 기교를 초월한 무위 자연의 덕을 강조하고 있다. 노자는 “큰 덕의 형태는 오직 도로부터 나온다”(孔德之容 惟道是從: 《도덕경》 22장)라고 하여 도와 일치된 상대를 큰 덕이라 보고 있다. 노자는 인위적인 덕목이 아닌 무위의 덕을 강조하여 근원적인 무에 도달하는 덕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정(靜)과 유라는 덕목을 중요시한다.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위해 욕심이나 경쟁심을 버리면(生而不有 無爲不恃), 밖으로는 만물을 자신에게 귀복하게 만들고, 안으로 우주(天)의 원리(道)를 체득하게 만든다는 현덕(玄德)을 이루게 된다고 했다.

[원불교의 덕]

원불교의 덕은 우주의 대도가 행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와 인도를 행함으로써 나타나는 은혜의 의미로 본다. 곧 천지의 도가 행함으로써 나타나는 화육(化育)을 일컬으며, 인도를 행함으로써 나타나는 은혜를 말한다.

“덕이라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이름이니, 하늘이 도를 행하면 하늘의 은혜가 나타나고 땅이 도를 행하면 땅의 은혜가 나타나고, 사람이 도를 행하면서 사람의 은혜가 나타나서 천만 가지 도를 따라 천만 가지 덕이 화하나니라”고 했다(《대종경》 인도품2). 천도(天道)ㆍ지도(地道)ㆍ인도(人道)에 따라 천덕(天德)ㆍ지덕(地德)ㆍ인덕(人德)이 나타나게 됨을 밝힌 것이다. 천지의 덕은 우주의 대기(大機)가 자동적으로 운행하는 천지의 도가 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를 말한다. 만물은 천지의 팔도(天地八道)가 유행되어 대덕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 생명을 지속하며 그 형체를 보존하게 된다(《정전》 천지은).

또한 사람의 덕을 중심해서 보면 “부모ㆍ자녀 사이에 도를 행하면 부모ㆍ자녀 사이에 덕이 나타나고, 부부 사이에 도를 행하면 부부 사이의 덕이 나타나고, 붕우(朋友) 사이에 도를 행하면 붕우 사이의 덕이 나타나고, 동포 사이에 도를 행하면 동포 사이의 덕이 나타나서 개인에 당하면 개인이 화하고, 가정에 당하면 가정이 화하고, 사회에 당하면 사회가 화하고, 국가에 당하면 국가가 화하고, 세계에 당하면 세계가 화하는 것이며”(《대종경》 인도품2)라고 했다. 이와 같이 인도를 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사람의 덕은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ㆍ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된다.

소태산대종사는 천지의 덕과 사람의 덕이 일치된 덕을 제일 큰 덕이라 보고, “그 중에 제일 큰 덕으로 말하면 곧 대도를 깨달은 사람으로서 능히 유무를 초월하고 생사를 해탈하며 인과에 통달하여 삼계화택(三界火宅)에 헤매는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한 가지 극락에 안주하게 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히 대덕을 성취했다 하리라”(《대종경》 인도품2)고 하여 생사해탈(生死解脫), 인과통달(因果通達),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대덕이라고 밝히고 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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