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3 금요일>
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 26장
한 제자
여쭙기를
[정전 가운데 상시 응용 주의 사항 각 조목과 삼학과의 관계는 어떠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은 곧 삼학을 분해하여 제정한 것이니 오조는 정신 수양을 진행시키는 길이요, 이조·삼조·사조는 사리 연구를 진행시키는 길이요, 일조는 작업 취사를 진행시키는 길이요, 육조는 삼학 공부 실행하고 아니한 것을 살피고 대조하는 길이니라.]
또 여쭙기를
[상시 응용 주의 사항 각 조목을 동·정 두 사이로 나누어 보면 어떻게 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삼조·사조·오조는 정할 때 공부로서 동할 때 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는 길이 되고, 일조·이조·육조는 동할 때 공부로서 정할 때 공부의 자료를 준비하는 길이 되나니, 서로 서로 도움이 되는 길이며, 일분 일각도 공부를 놓지 않게 하는 길이니라.]
또 여쭙기를
[상시 응용 주의 사항과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의 관계는 어떠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은 유무식 남녀 노소 선악 귀천을 막론하고 인간 생활을 하여 가면서도 상시로 공부할 수 있는 빠른 법이 되고,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은 상시 응용 주의 사항의 길을 도와 주고 알려 주는 법이 되나니라.]
{대종경} 제6 변의품 26장
빠져나갈 틈이 없구나.
어찌하면 저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을 다 부처 만들까. 소태산 대종사님이 법을 펴신 목적은 오직 이 하나다. 기질도, 지혜의 밝기도, 업력도 각각인지라, 알고 보면 같은 말씀인데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들이 결국 〈정전〉이 됐다. 수학처럼 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해법이 없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며 사람 따라 확 와닿는 지점이 다양하니 같은 말씀을 반복한다.
어리석은 우리 중생, 공부를 한다 했다 안한다 했다 변덕도 심하고 입맛도 까다로우니 그에 맞춰 어르고 달래며 법을 이리저리 요리해서 내놓으신다. 이래서 못하네 저래서 못하네 핑계 대며 빠져나가려는 구멍을 탁탁 막아서, “그럼 이렇게 해보면 어떠냐”하고 부처되는 다른 길로 연결하신다. 동(動)으로 핑계를 대면 정(靜)으로, 너무 커서 못한다 핑계를 대면 세밀함으로, 남자라서 여자라서,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배워서 못배워서 하네 못하네 부처되는 길에서 이탈하려 하면 반대의 길을 활짝 열어 보인다.
삼학이 너무 어렵다고 건너뛰려 하니 다시, 좀 더 세세하게 상시응용주의사항, 교당내왕시주의사항으로 길을 내시며 이쪽으로 가보라 하신다. 알고보면 다 삼학인데 새로운 수행법인줄 안다. 일원상 하나면, 교리도 하나면, 일상수행의 요법 하나면 충분하지만 길을 내고 내고 또 내며 같은 말씀을 포장지를 바꿔가며 내미신다. 어떻게 해서라도 다 여래위에 올려놓고야 말겠다는 대소유무의 주밀한 프로그램 안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다.
대자대비로 일체생령을 제도하되 만능이 겸비하며, 천만방편으로 수기응변하여 교화하되 그 방편을 알지 못하도록 하시는 삼계 대도사의 교화법이다. 대포무외 세입무내, 대승, 소승, 치우침도 물샐 틈도 없는, 병진, 쌍전, 병행, 온전, 일원이다. 어느 부분만 강조하는 종파와 달라서 두루두루 원만하다.
상시로 공부할 때나, 교당을 다녀갈 때나, 동할 때나 정할 때나 한때도 공부를 떠나지 않고 누구나 부처로 만들어 놓으리라는 물 샐틈 없는 완벽한 법망이다. 다 부처 만드는 재료들이라, 어느 것을 가져다 써도 서로 도움이 되고, 서로 연결되어 모든 말씀이 결국 하나 ‘일원’으로 향한다. 평상시에 육근을 운용할 때도, 교당을 다녀갈 때도, 상시로 정기로 넘나들며 성불의 공부길 놓지 않게 한 여래의 숨은 방편들이 무량하고 무량하다. 모든 개울물들은 결국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라, 어떤 길을 통해 가더라도 목적은 하나, 부처되는 일이다. 기질, 업식, 지혜의 정도, 와 닿는 부분 따라 각자가 어떤 지류에서 시작해도 결국 다 바다, 본성, 일원, 여래로 향한다.
실상 일체 교리는 일원(○) 하나면 완벽하다. 본성이 일원이다. 일원을 깨쳐 퍼즐의 원판을 아는 이는 퍼즐 조각인 일체의 교리와 말씀들이 어느 지점인지 훤히 안다. 원판을 알면 동정에도 대소에도 유무에도 걸림 없다. 원판을 모르면 작은 퍼즐 조각 한두 개 붙잡고 평생을 자기 퍼즐이 옳다 고집한다. 원판을 먼저 알고 퍼즐을 맞춰야 성불로 가는 퍼즐놀이가 재미가 있고 완성도가 있다. 그 원판으로 안내하는 무량한 자비의 손짓이 바로 우리의 〈정전〉이다.
<송도교당 / 장오성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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