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종경(大宗經)/제6 변의품(辨疑品)

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 13장

<20190820 화요일>

대종경(大宗經) 제6 변의품(辨疑品) 13장

 

한 제자

여쭙기를

 

[어떠한 주문을 외고 무슨 방법으로 하여야 심령이 열리어 도를 속히 통할 수 있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공부는 주문 여하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사람의 정성 여하에 있나니, 그러므로 옛날에 무식한 짚신 장수 한 사람이 수도에 발심하여 한 도인에게 도를 물었더니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하는지라, 무식한 정신에 “짚신 세 벌”이라 하는 줄로 알아 듣고 여러 해 동안 “짚신 세 벌”을 외고 생각하였는데 하루는 문득 정신이 열리어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깨달았다 하며, 또 어떤 수도인은 고기를 사는데 “정한 데로 떼어 달라” 하니, 그 고기 장수가 칼을 고기에 꽂아 놓고 “어디가 정하고 어디가 추하냐”는 물음에 도를 깨쳤다 하니, 이는 도를 얻는 것이 어느 곳 어느 때 어느 주문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이는 말이라, 그러나 우리는 이미 정한 바 주문이 있으니 그로써 정성을 들임이 공이 더욱 크리라.]

 

 

{대종경} 제6 변의품 13장

무식한 짚신장수에게 길을 묻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졌어. 도를 잘 안다는 스승을 찾아가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 왔다 하니, ‘짚신 세 벌이다’ 하셨어. ‘내가 짚신 세 벌이라고?’ 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믿기로 했지. 내가 곧 짚신 세 벌이라고 조금도 의심없이 믿으며 생각을 아주 골똘하게 몰입해서 궁글리기를 계속했지. 하루종일 짚신세벌을 눈앞에 두고 왜 내가 짚신세벌일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상한 체험을 한 거야. 아, “짚신과 내가 하나구나, 내가 짚신이고 짚신이 나로구나, 일체가 다 형상없는 이 마음이로구나!” 그러다보니 일체 만물이 다 나로 보여지고 내가 곧 우주만물 전체임을 깨달았어. 사실 견성같이 쉬운 게 없어. 그냥 지금 훤히 눈앞 허공이 나임을 보면 되거든. 사실, 나중에 알고보니 짚신세벌이 아니라 ‘즉심시불’이더라고.

 

제자는 다시 고기 사러 갔다가 깨달았다는 수도승을 찾아가 물었다. “고기 사려다 도를 얻으셨다는데 어느 지점에서 알게 되신 겁니까?” 수도승이 답했다. “나의 스승님은 마음은 하나다, 더럽고 깨끗함이 따로 없다 하셨지. 더러운 것을 볼 때마다 왜 더러움이 따로 없다는지 속으로 묻고 또 물었지. 반야심경에서 불구부정(不垢不淨)을 배울 때도 그냥 듣지 않았어. 모든 말씀과 글들을 말씀 자체, 글자 자체가 되어 듣고 보았지. 왜 둘이 아닐까 계속해서 궁글리기를 놓지 않았지. 어느 날 고기를 사러 가서는 별 생각없이 ‘좋은 걸로 주세요’ 했더니 정육점 주인이 칼을 고기에 탁 꽂으면서 ‘어디가 좋고 어디가 안 좋습니까’ 하는데 그 말에 갑자기 그 모든 답이 확 풀리는 거야. ‘그렇구나. 온 우주에 나뿐이로구나’ 나밖에 없어서, 정하고 추한 것이 다 나여서, 상대가 없어서 더럽다 하는 자도 더럽다는 그 대상도 언어도 다 사라져 일체가 나임을 턱 알아버린 거지. 그날 아마 고기도 안 사고 돌아왔을 거야. 그 후론 그 정육점 앞에만 가도 절을 하게 됐지.”

 

오랫동안 머리만 키우는 공부를 해온 제자에게 비로소 공부길이 보였다. 도를 얻는 데 좋은 주문이나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간절함이었다. 참 나를, 마음을 알고자 하는 간절함이 핵심이었다. 무엇을 온전히 믿는 신도 지극하지 않은 채 늘 하던대로 일상성에 빠져 살았다. 게다가 믿음을 가지고 ‘지금 보고 있는 자’를 생생히 느끼며 안으로 안으로 찾아들어가 비추고 관하는 것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이것 외에 다른 길이 없는데, 그러니 보일 리가 없었다.

 

이제 제자는 더 이상 제자로만 있지 않다. 알고자 하는 간절함과 믿음을 가지고 안으로 찾고 찾음이 지극하게 계속되니, 짚신세벌에도, 어느 곳이 정하냐는 주인장의 말에도, 돌 구르는 소리에도, 나뭇잎을 보다가도 문득 참 나가 탁 보여진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했다. 알고 보니 참 나를 발견하는 일, 즉 견성보다 쉬운 일이 세상에 없었다. 견성이야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건 단지 참 공부, 참 수행의 출발선에 선 것일 뿐! 이제부터가 진짜다.

 

<송도교당 / 장오성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