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孔子)
B·C 552~479 중국 춘추시대의 대철학자, 유교의 시조. 중국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대성인으로 존경받아 왔고, 서가모니불·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계의 대성인으로 손꼽힌다. 성은 공(孔),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춘추시대 말기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퀊邑)에서 탄생했다. 부친은 숙량흘(叔梁紇), 모친은 안징재(安徵在).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매우 박식하였고, 처음 노나라의 하급 관리로 출발하여 대사구(大司寇·법무장관)가 되었다. 그러나 자기의 개혁적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자 탄식하고 노나라를 떠나 위·조·송·정·채·섭·초·제 등 여러나라를 유세(遊說)하였는데, 이를 두고 후세 사람들이 철환천하(轍環天下)라 불렀다. 그러나 열국(列國)에서도 그의 주장과 의견이 수용되지 않자 정치적 개혁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제자들의 교육과 저술에 힘썼다. 그는 예·악·시·서·역·춘추 등 〈육경(六經)〉을 편찬하였다. 그의 사상의 중심은 예(禮)와 인(仁)인데, 인은 유교의 중심사상이 되었다. 공자는 3천명에 달하는 많은 제자를 두었고 그 중에서도 뛰어난 제자가 72명이나 되었다. 그는 많은 제자들에게 인의 실천을 가르치는 한편 자기 자신도 인격 수양에 힘써 성현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공자 당시에는 제자백가들이 많이 등장하여 사상적인 혼란기였다. 그가 죽은 후에 맹자와 순자가 나와서 유교사상을 집대성 발전시켰다. 한나라 무제(武帝) 때에는 유교가 국교로 채택되어 유교는 중국의 중심사상이 되었고, 공자는 인류의 큰 성현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유교사상은 우리나라에도 불교 못지않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는 지금까지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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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어 (孔子家語)
공자가 철환천하를 하면서 당시 여러나라의 공(公)·경(卿)·사대부 및 제자들과 더불어 서로 문답한 내용을 여러 제자들이 각각 보고 들은대로 기록한 책. 처음에 27권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흩어지고 전해오지 않는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공자가어〉는 위(魏)나라의 왕숙(王肅)이 공안국(公安國)의 이름을 빌어 〈좌전〉·〈맹자〉·〈순자〉·〈예기〉·〈사기〉·〈안자〉·〈열자〉·〈한비자〉 등 여러 책에서 공자에 관한 기록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왕숙이 주(註)를 붙여 10권 44편으로 편찬했는데, 편마다 공자의 진면목이 솔직히 나타나 있어 〈논어〉·〈예기〉와 함께 공자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 되고 있다.
공자집어 (孔子集語)
중국 청나라 때의 학자 손성연(孫星衍)이 편찬한 공자의 어록으로 모두 1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손성연의 〈공자집어〉가 나오기 이전에도 송나라의 설거(薛據)가 편찬한 3권의 〈공자집어〉도 있었다.
공자천주 (孔子穿珠)
공자가 아홉 구비로 구부러진 구슬 구멍에 실을 꿰려다 실패하고, 이름없는 시골 아낙네에게 개미 허리에다 실을 매어 구슬 구멍에 꿀을 발라 꿰는 비결을 배웠다는 이야기. 아무리 공자같은 대성현도 현실적인 일에 대한 역량은 시골 아낙네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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