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2 교의품(敎義品) 6장
또 여쭙기를 [그러하오면 도형(圖形)으로 그려진 저 일원상 자체에 그러한 진리와 위력과 공부법이 그대로 갊아 있다는 것이오니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저 원상은 참 일원을 알리기 위한 한 표본이라, 비하건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킴에 손가락이 참 달은 아닌 것과 같나니라. 그런즉 공부하는 사람은 마땅히 저 표본의 일원상으로 인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며,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키고,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하여야 일원상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치되리라.]
★★★★★★★★★★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
법신불이 곧 일원상이라는 뜻. 법신불은 진리 그 자체, 또는 가장 근원적인 진리를 말한다. 소태산대종사는 가장 근원적인 진리인 법신불을 하나의 둥근 원(일원상)의 상징을 통해 표현했다. 원불교에서는 이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원불교대사전)
법신불[法身佛]
[개요]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불(佛). 싼스끄리뜨 다르마까야붓다(Dharma-kāya Buddha)의 의역으로, 법ㆍ보ㆍ화(法報化) 삼신불 중의 하나. 법불(法佛)ㆍ자성신(自性身)ㆍ법성신(法性身)ㆍ진여신(眞如身)ㆍ여여불(如如佛)ㆍ실불(實佛)이라고도 한다.
[내용]
석존이 열반에 들자 불제자들은 영원불멸의 불타를 추모하게 되었는데, 후에 점차 석존이 깨달은 불변의 진리, 곧 진여 그 자체가 불타의 참몸(眞身)이라 하는 법신불사상이 발달하게 된다. 법신은 원래 이지불이(理智不二)의 불신을 의미하지만, 삼신설을 확립한 유가행파에서는 이와 지를 나누어 전자를 법신, 후자를 보신이라 하기도 한다. 유가행파에 의하면 진여법신은 언어명상과 사려분별을 넘어선 평등일상으로서, 부증불감하고 불생불멸하며 보편평등한 무한절대의 진여체성인바, 그것은 제불여래의 근본 자성신이며, 나아가 일체법의 소의(所依)가 될 뿐만 아니라, 보신과 화신 또한 이에 의지한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유의 본래 자성인 진여의 이(理) 그자체로서, 모든 유정에 본구되어 있는 보편적인 근본 불신이라고 한다, 이러한 법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는데 오분법신(五分法身)ㆍ진여(眞如)ㆍ법성(法性)ㆍ실상(實相)ㆍ무상(無相)ㆍ이(理)ㆍ사(事)ㆍ육대(六大) 등의 구별이 있으며, 이는 나아가 만유의 실상이 바로 법신이라고 하는 데에서 ‘일체중생 실유불성(悉有佛性)ㆍ여래장(如來藏)’이라는 내재불사상이 발달하게 된다.
[원불교적 의미]
원불교에서는 소태산대종사가 깨달은 일원상진리를 법신불이라 한다. 그러므로 원불교의 교리를 총체적으로 일목요연하게 도시(圖示)한 ‘교리도’에서는 상단에 일원상(◯)을 그려 놓고, 그 아래에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선 ‘일원은 법신불’이라는 명제에서 볼 때 ‘일원(상)’은 소태산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일원상진리’를 상징화한 것으로서, 이를 원불교에서는 ‘법신불’이라 하고, 그 상징과 진리를 합칭하여 ‘법신불 일원상’이라 부른다.
이는 원불교의 법신불관을 이해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이 근본명제에서 볼 때 원불교의 법신불인 ‘일원상진리’는 소태산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독자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그 깨달음에 바탕하여 불교적 진리관의 정수를 조화적으로 계승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불교사상사 내지 신앙발달사를 살펴보면, ‘법신불’ 개념은 불교교리의 중심을 이루면서 초기불교로부터 대승말기의 밀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불타관과 불신론이 발전되어왔는데, 소태산은 그의 독자적인 깨달음에 바탕하여 이들 불타관 내지 불신론의 종교적 의미들을 종합 지양하여 미래의 인류사회를 이끌어나갈 이상적 불타관을 제시하고자 ‘법신불 일원상’을 주창했다.
이때의 ‘법신불일원’은 개별 현상이나 인격적 화신불을 넘어선 만유의 근원인 궁극적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불(佛), 곧 법신불(Dharma-kāya Buddha)을 가리킨다, 그것은 법ㆍ보ㆍ화(法報化) 삼신불 중의 하나인 협의의 법신불뿐만 아니라 이ㆍ지ㆍ비(理智悲)가 충만한 광의의 법신불, 곧 진리의 체성은 물론 작용과 함께, 나아가서는 우리들의 마음까지도 동시에 포함한 포월자로서의 진여실상을 지칭한 것이다. 이러한 원불교의 법신불관에 대해 엄밀히 살펴보면, 광의의 의미뿐만 아니라 협의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삼신일체의 광의의 의미의 법신을 강조함과 동시에, 우주만유와 인간자아의 존재와 가치에 있어 절대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본원ㆍ본성으로서의 법신, 곧 본질로서의 협의의 의미의 법신 또한 철두철미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법신불일원’을 원불교에서는 심불ㆍ심인(心印)ㆍ자성ㆍ심지(心地)ㆍ성품ㆍ법신불ㆍ법신불사은ㆍ일원상진리ㆍ일원불(一圓佛)ㆍ법신불일원상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본원ㆍ본성ㆍ심인으로서의 법신불]
① ‘우주만유의 본원’이라는 명제는
‘법신불일원’의 근원성ㆍ절대유일성ㆍ전체성 등의 의의를 강조한 것으로서, ‘법신불일원’이야말로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 만유는 그에 바탕하여 차원과 양상을 달리하면서 전개된 다양한 현상적 존재임을 밝힌 것이다. 이때 ‘우주만유’라는 개념에는 현상세계의 모든 사물은 물론, 정신적 심리적 존재들, 그리고 우리들의 인식과 상상을 넘어선 유형무형의 다양한 차원의 존재세계까지도 포함된다.
②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명제는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법신불’은 동시에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존재의 본성 그 자체임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원불교의 심성론에 관한 문제로서, 진리의 내재성과 그에 따른 인간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곧 인간 자아의 본성이야말로 바로 ‘법신불’의 내재적 진리로서, 이를 자성불ㆍ심불ㆍ불성ㆍ성품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가치론적으로는 지고ㆍ지선ㆍ지복의 의미로도 파악할 수 있다. 현상적으로는 천차만별의 분별심에 의한 유위ㆍ유한의 상대적 유루(有漏)세계에 살고 있는 범부중생이라 할지라도, 근본 바탕은 어디까지나 무위ㆍ무한의 절대적 무루(無漏)본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③ ‘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명제는
‘법신불일원’의 각증성(覺證性)ㆍ회통성(會通性)ㆍ귀일성(歸一性) 등의 의미를 강조함과 동시에, 무엇보다도 종교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명제이다. 곧 만유의 본원이요 자아의 본성으로서의 ‘법신불일원’은 상대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이나 논리 차원을 넘어선, 부처와 성자들의 심오한 종교체험에 의한 깨달음이나 계시의 차원에서 현시된 근원적 진리의 경지를 원불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시에 그러한 근원적 진리의 경지와 차원에서는 제종교의 진리관이 서로 만나게 되며, 모든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 또한 이를 향한다. 결국 ‘제불제성의 심인’으로서의 근원적 진리, 곧 본원ㆍ본성자리는 모든 종교의 알파요 오메가라 할 수 있다.
[법신불의 신앙ㆍ수행]
《정전》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일체의 차별을 초월한 진공의 측면과 아울러, 진리의 작용이 소소영령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차별세계로 나타나는 묘유의 측면으로 밝히고, 이러한 진공묘유의 조화가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하는 것이 곧 ‘일원상진리’라 했다. 한편 ‘교리도’의 게송에서는 “유는 무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하면, 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고 하여, 구공과 구족의 2대 속성으로 밝히고 있다. 진공과 묘유라고도 부르는 이 양면관은 원불교 교리전체에 대한 교상판석적 검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대종경》 서품 1장의 대각일성에서 강조되는 불생불멸과 인과보응 또한 동일한 논리의 전개이다. 이와 같이 원불교의 법신불관은 진공과 묘유, 또는 진리의 체성뿐만 아니라 진리의 작용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의미의 법신불관을 강조하고 있다. 소태산은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했나니, 곧 천지만물의 본원이며 언어도단의 입정처라,…유가에서는 이를 일러 태극 또는 무극이라 하고, 선가에서는 이를 일러 자연 또는 도라 하고, 불가에서는 이를 일러 청정법신불이라 했으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로서”(《대종경》 교의품3)라고 했다.
이처럼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한 진리를 ‘법신불’이라 하고 있다. 정산종사는 만법의 근원인 진리불을 법신불이라 의미지었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5). 이와 같이 원불교의 법신불관은 진리의 체성과 작용, 또는 진공과 묘유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그것은 우주만유의 근본과 우리들 마음의 본성을 하나로 보는 이지불이(理智不二)의 의미를 지닌 불신관이다. 이는 유가행파에서 총상(總相)법신과 별상(別相)법신으로 나누고, 총상법신이야말로 이와 지를 겸한 법신, 곧 소조(所照)의 진여와 능조(能照)의 진각(眞覺)을 합쳐 이지불이의 법신이라 함과 상통한다.
이에 비해 별상법신은 청정법계의 진여 자체만을 법신으로 본다. 원불교에서는 본원ㆍ본성ㆍ심인으로서의 법신불(일원)을 본존으로 모시고, 이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종교적 실천으로서의 신앙ㆍ수행의 양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를 타력신앙과 자력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원불교의 신앙문과 수행문은 바로 앞에서 언급한 ‘법신불일원’의 진리적 구조, 곧 진공ㆍ묘유의 양면관, 또는 공ㆍ원ㆍ정의 3속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인과보응의 신앙문’으로 표현되는 ‘법신불ㆍ사은신앙’에는 주로 진공묘유의 진리구조를, 그리고 이에 비해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 표현되는 ‘자성불 삼대력수행’에는 진공묘유는 물론, 공ㆍ원ㆍ정의 진리구조가 두루 적용되고 있다.
[원불교 법신불신앙의 특징]
원불교의 법신불 신앙이 지니는 의의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원불교의 신앙은 법신불 중심의 신앙이다.
〈원불교교헌〉에는 “본교는 법신불 일원상을 본존으로 한다”고 명시하여, 사상적으로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의례에서 조차 일체의 인격적 불상이나 존상을 모시지 않고 법신불 그 자체를 직접 신앙의 대상으로 모신다. 이와 같이 ‘법신불일원’을 본존으로 모시고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원불교의 기본입장은, 미륵불과 용화회상에 대하여 “미륵불이라 함은 법신불의 진리가 크게 드러나는 것이요, 용화회상이라 함은 크게 밝은 세상이 되는 것이니,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대의가 널리 행해지는 것이다”(《대종경》 전망품16)라고 한 소태산의 법문에도 그 취지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원불교의 주불은 바로 법신불이며, 회상 또한 본질적으로 법신불의 회상이다.
②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범재불론(汎在佛論)적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법신불 중심의 신앙은 삼신을 구별하여 보는 협의의 법신이라기보다는, 삼신일체 내지 우주불론(宇宙佛論)ㆍ우주신론적 광의의 법신불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는 우주전체를 그대로 광대무량한 불격으로 보는 화엄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사상임은 물론, 우주전체가 그대로 대일여래의 6대ㆍ4만ㆍ3밀에 의한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현현 아님이 없다고 보는 밀교의 ‘대일여래’사상과도 상통한다.
③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범은론(汎恩論)적 무량은혜불의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법신불 내지 그 응화신으로서의 만유불은 우리와 관계에서 볼 때, 무엇보다도 우리를 살리고 구제하기 위한 무한 자비의 은혜덕상을 지닌 무량은혜불로서, 이른바 우주만유 전체를 그대로 자비 법신불의 은적 현현으로 보는 범은론적 성격을 지닌다. 이는 마치 우주전체 그대로를 대자비불이라고 보는 일부 학자들의 아미타불관(宇井伯壽, 《불교범론(佛敎汎論)》)과도 상통한다. 더욱이 법신불의 구체적 은혜덕상으로서의 사은을 강조하고 있음은 밀교의 5지여래(五智如來) 또는 4종법신설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본다.
④ 원불교의 법신불신앙은 특히 내재불로서의 자성불의 의미가 강조된다.
이와 같은 범재불론적이고 범은론적인 성격을 지닌 법신불일원은 우리의 본성을 따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그 자체가 바로 법신의 내재불로서, 바로 지금, 여기, 이 마음에 즉하여 영원 무한한 법신불이 약동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영성심리학자들에 의하여 강조되고 있는 우주의식(Cosmic Conciousness) 또는 본질 생명 등과 상통한다고 본다.(Ken Willber, 《통합심리학》;정인석, 《트랜스퍼스날 심리학》)
⑤ 원불교 법신불신앙은 조화적 회통성 내지 병진성이 특징이다.
그것은 자력과 타력, 신앙과 수행, 향상문과 향하문, 진리불공과 실지불공, 영과 육, 이와 사, 그리고 본체와 현상 등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두루 조화적으로 회통시킨 원만한 종교신앙을 지향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일원상[一圓相]
[개요]
일원상(◯)은 원불교에서 본 우주와 인생의 궁극적 진리의 상징으로서, 이를 ‘일원상의 진리’ 또는 ‘법신불 일원상’이라 하여, 최고의 종지(宗旨)로 삼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모신다. 일원상은 교조 소태산대종사의 대각(大覺)에 의해 밝혀진 ‘일원상 진리’의 상징이다. 이는 《대종경》 서품 1장에 소태산 자신이 20여년간의 구도 끝에 도달한 대각의 심경으로서,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선포한 대각 제일성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가운데 ‘한(一) 두렷한(圓) 기틀(相)’이란 바로 일원상을 지칭한 것이다. 이는 대각이라는 심오한 종교체험의 달관적 입장에 비쳐진 만상의 본래 면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 일(一)은 근원ㆍ전체ㆍ유일ㆍ절대를, 그리고 원(圓)은 원만ㆍ구족ㆍ완전ㆍ충만 등의 의미를 뜻하며, 상(相)은 이러한 일원의 궁극처를 상징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 상징은 인류의 정신문화사에 있어 우주와 인생에 관한 궁극적 진리의 표현 또는 상징으로서 동서고금의 종교ㆍ철학ㆍ예술ㆍ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불교의 일원상 상징은 그 가운데 소태산이 깨달은 일원상 진리를 바탕으로 하여, 과거의 전통적 종교상징들의 근본적 의미를 그 자체 안에 회통 조화시키고 있음이 특징이다. 곧 그것은 종래의 초월적 절대자에게 향한 향외적(向外的)인 신앙중심의 종교상징은 물론 내재적 진리로서의 참된 자아(自我∶眞我)의 완성을 위한 향내적(向內的)인 수행중심의 종교상징의 기능들을 조화적으로 회통시켜 미래의 인류사회를 향도할 새로운 차원의 종교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신불 일원상]
원불교 ‘교리도(敎理圖)’에는 최고 종지로서의 일원상(◯)을 상단에 그려놓고, 그 아래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일원상 진리 그 자체와 그것이 우주 만유와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지니고 있는 존재론적 내지 종교적 의의를 살펴본다.
① 법신불 일원상
먼저 ‘일원은 법신불’이라는 근본명제에서 볼 때, 원불교의 일원상 진리는 소태산 스스로의 대각에 의하여 천명된 독자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그것은 그 깨달음에 바탕하여 동양의 전통적 진리관, 특히 불교적 진리관의 정수를 조화적으로 회통시켜 계승 발전한 것이다. 물론 원불교교리 전반에 비춰볼 때 거기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ㆍ도교, 그리고 한국의 고유신앙 등 기타 모든 종교의 진리관이 조화적으로 회통되어 있는 통종교적 경향을 지니고 있으나, 무엇보다 불교적 진리관에 주된 사상적 연원을 두고 있다.
이는 ‘대각’이라는 소태산의 종교체험 그 자체가 이미 불교적 성향을 지닌 것일 뿐 아니라, 대각 제일성으로서 강조된 ‘불생불멸의 도’와 ‘인과보응의 이치’ 등의 개념 또한 불교사상적 토양위에서 전개된 것이라는 점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더욱이 소태산은 스스로 ‘불교는 무상대도(無上大道)’ 또는 ‘불법(佛法)은 천하의 큰 도’(《대종경》 서품3) 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불교 또는 불법이란 단순히 전통 불교의 교리적 전승 내지 그의 종파적 전개를 의미한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불의 근본적 진리관 또는 불교사상사를 통하여 다양하게 전개된 제(諸) 진리관이 소태산의 대각의 차원에서 종합 지향된 불교 또는 불법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법신불(Dharma-kāya)이란 법ㆍ보ㆍ화 등 삼신불 중의 하나인 협의의 법신불을 의미한 것이라기보다는, 초기불교뿐 아니라 대승불교 전반의 교리발달사를 통하여 심화 발전되어온 제(諸) 불타관 내지 진리관의 총체적 의미를 조화적으로 종합 지향한 광의의 법신불을 의미한다. 그것은 개별 현상이나 인격적 화신불(Nirmāṇa-kāya)을 넘어서서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진리(dharma) 그 자체를 부처로 본 것이다.
원불교의 법신불은 우주의 궁극적 진리 그 자체를 부처로 본 것으로서, 진리의 체성 뿐 아니라 진리의 작용까지를 동시에 포함한 궁극적 통일자를 지칭한 것이다. 또 그것은 우주만유의 본원과 우리들 마음의 본성을 둘로 나누어 볼 수 없는 진여실상을 지칭한 것이다. 또한 일체의 인격성을 넘어선 것임과 동시에, 경우에 따라서는 인격으로도 현시될 수 있는 함축적 의미마저 지닌다.
이와 같은 법신불 일원상에 대해 소태산은 과거 불교의 불상(佛像)숭배와 대비시켜, “불상은 부처님의 형체를 나타낸 것이요,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이므로, 형체라 하는 것은 한 인형에 불과한 것이요, 심체라 하는 것은 광대무량하여 능히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했나니”(《대종경》 교의품3)라고 설명하면서, 진리적 종교신앙의 방향으로서 ‘불상숭배’를 넘어선 ‘법신불 일원상의 신앙’을 주창했다.
②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일원상
한편 이와 같은 법신불 일원상이야말로 바로 ‘우주만유의 본원’이라는 명제에 비춰볼 때, 일원상은 우주만유의 전체상과 그 근원성 및 유일절대성 등의 의의를 상징한다. 곧 일원상은 만유가 한 체성에 바탕해 있는 무한한 존재세계의 전체상을 상징하며, 동시에 그것은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절대 유일의 본원세계를 상징한다. 만유 또는 만법이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시ㆍ공을 통해 전개되는 유정ㆍ무정의 모든 존재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성변화 작용, 그리고 시간과 공간 그 자체까지도 포함하여 부른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일체의 가치관이나 진리관 등의 의미적 존재까지도 폭 넓게 수용한 개념이다.
소태산은 이러한 일원의 진리를 “광대무량하여 유와 무를 총섭하고 삼세를 관통했나니, 곧 천지 만물의 본원”(《대종경》 교의품3)이라고 하는가 하면, 때로는 “유무초월의 생사문”(《정전》 일원상서원문)이라 밝히고 있다. 곧 만유의 근본 체성이며 만법의 근원으로서의 일원은 유와 무의 분별 이전의 세계이며, 동시에 유와 무를 총섭하되 그 자체는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본원(本源)세계로서, 그에 의하여 만물이 생성소멸되는 근원적 존재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대소ㆍ유무ㆍ생사ㆍ선악ㆍ변불변 등 일체의 차별현상을 총섭함과 동시에 그러한 일체 상대적 차별현상을 초월한, 이른바 포월자(包越者)이다.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법신불 일원’이야말로 일체의 차별과 상대를 그 안에 총섭함과 동시에 그것들을 넘어선 유일절대의 포월자이다. 그것은 언어표상과 의식분별마저 넘어선 절대의 경지이다.
③ 인간 자아의 본성으로서의 일원상
법신불 일원상은 ‘우주만유의 본원’일 뿐 아니라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는 명제에 비춰 볼 때, 그것은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존재의 본성 그 자체이다. 이는 진리의 내재성과 그에 따른 인간 스스로의 주체성과 자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곧 우주만유의 본원으로서의 일원은 동시에 인간 자아의 본성 그 자체로서, 그것은 일원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佛菩薩)이나 깨닫지 못한 사람(凡夫衆生)에 관계없이 그들의 본성에 일원의 진리가 내재해 있다.
인간의 본성은 바로 법신불 일원의 내재적 진리로서, 이를 원불교에서는 자성불(自性佛)ㆍ심불(心佛)ㆍ불성(佛性)ㆍ성품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렇게 볼 때 본성에 있어서는 부처와 범부의 차별이 없을 뿐 아니라, 누구나 수행을 통해 일원의 진리에 계합될 수 있는 불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정산종사는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이며 자기의 성품이 곧 법”(《정산종사법어》 원리편3)이라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이야말로 일원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주체적 절대존재이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일원상 진리의 자기실현의 장이다. 그렇다고 하여 인간만이 유일한 가치가 있다거나, 마음을 떠난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뜻은 아니다. 우리들 스스로의 본성은 일원의 진리 그 자체와 동일한 것이며, 그것은 지고(至高) 지선(至善)의 존재로서 지금, 여기,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영원 무한의 법신불 일원이 약동 자재하고 있다.
④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으로서의 일원상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으로서의 법신불 일원상은 동시에 ‘제불제성의 심인(心印)’이다. 심인이란 원래 선가(禪家)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서, 심(心)은 불심(佛心), 인(印)은 인가(印可) 또는 인증(印證)을 뜻하며, 부처님이 마음으로 깨달아 증득한 경지, 곧 언어나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 그 자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불제성의 심인이라는 명제는 진리의 각증성(覺證性)과 회통성 및 귀일성 등의 의의를 강조한 것이다.
곧 근원적 진리로서의 법신불 일원은 일상적 언어로 개념화하거나 표현할 수 없으며(言語道斷), 상대적인 사유작용으로는 인식될 수 없는(心行處滅) 자리로서, 오직 부처나 성자들의 심오한 종교체험으로서의 직관적 깨달음(覺證)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그 내면세계에 체인(體認)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자들이 깨달음이나 계시의 차원을 통해 밝힌 궁극적 실재에 대한 제 종교의 진리관들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별개의 진리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진리로 만나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진리관은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서 비롯된 다양한 전개에 불과하며, 동시에 그들 모든 종교의 지향점 또한 그 궁극적 진리를 실현하고 그 근원적 진리에 돌아가기 위한 서로 다른 수단방편이 된다. 만일 어느 종교가 그 지향점을 이와 같은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 두지 않고, 오히려 그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기 종교의 도그마 내지 상징에만 국집하게 된다면 그것은 곧 우상숭배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소태산은 이러한 근원적 진리의 세계를 모든 종교의 원천이며 구경처라 보고, 하나의 근원적 진리에 바탕한 모든 종교와 교파들은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데 국집하는 종파주의를 넘어서서, 근본적으로 서로 융통하고 협조해야 할 것을 주창한다.
[일원상 진리의 논리적 구조]
일원상진리 그 자체는 인간의 상대적 인식작용의 한계를 넘어선 초논리적, 초경험적 차원에 속한 것이나, 그에 대한 인간 차원에서의 가능한 한 최대의 이해작업의 시도가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법신불 일원의 진리에 대한 이해 내지 인식작업의 일환으로서 변ㆍ불변, 유상(有常)ㆍ무상(無常), 진공ㆍ묘유, 공(空)ㆍ원(圓)ㆍ정(正), 이(理)ㆍ사(事), 대소유무, 동(動)ㆍ정(靜), 도ㆍ덕 등 다양한 논리구조에 의한 접근법이 제기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진공ㆍ묘유의 양면관과 공ㆍ원ㆍ정의 삼속성관은 무엇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기본적 진리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교를 비롯한 동양종교사상의 전통적 논리를 계승한 보편적 진리관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법신불 일원에 대한 여타의 다양한 진리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① 진공(眞空)의 체성(體性)
《정전》 교의편에 나타난 ‘일원상의 진리’의 법문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방법이 제기될 수 있다. 대체로 본체론적 입장에서 본 ‘진공의 체성’과, 현상론적 입장에서 본 ‘묘유의 조화작용’이라는 양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법신불 일원의 진리를 본체론적 입장에서 본 ‘진공의 체성’에 대해 본문에서는,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며,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라 설명하고 있다. 곧 일체의 상대적인 차별과 관념을 넘어선 진공체가 그의 근본체성으로서, 이 경지는 여여(如如)불변하여 생사변화와 선악 길흉 등 일체의 차별이 끊어진(頓空) 자리이다.
그 자리는 유와 무를 비롯하여 생사, 거래, 일이(一異), 단상(斷常) 등 일체의 상대적 차별현상을 초월한 진공의 경지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절대의 경지는 상대적 언어로 개념화하거나 표현될 수 없으며 일상적 사유로는 미칠 수 없는 경지로서, 오직 일체의 언어와 사유가 끊어진 입정(入定)의 체험, 곧 무분별지(無分別智)의 직관적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파악된다. 그것은 차별적 분별지(分別智), 즉 능소(能所)와 주객 대립의 틀에 의한 분별지를 넘어서서 능소미분(能所未分), 주객합일의 전일자(全一者)적 무분별지의 체험에 의해서만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원의 체성에 대해 정산은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하며, 명상으로써 가히 행동하지 못하리라. 이는 곧 일원상의 진공체요”(《정산종사법어》 원리편2)라고 주석하고 있다.
② 묘유(妙有)의 작용
법신불 일원의 진리를 현상론적 입장에서 본 묘유의 작용에 대해 본문에서는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고,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하는 것이 곧 일원상의 진리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법신불 일원’의 체성은 일체의 상대적 차별을 넘어선 무상(無相)의 진공체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은 물리적 진공이나 무기(無記)의 공과 같은 것이 아니라, 공적영지의 광명을 포함한 신묘한 공(空)이다. 다시 말하면 공적한 가운데 영지(靈知)가 내재해 있어 묘유의 조화작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차별현상은 바로 이 법신불 일원의 묘유작용에 불과한 것으로서, 그러한 묘유의 조화작용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한하고 영원하여 우주만유를 통해 무시광겁토록 은현자재한다.
한편 이러한 묘유조화에 대해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유상(有常, 곧 不變)으로 보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 무상(無常, 곧 變)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노병사와 사생(四生)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六道)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降級)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유상세계란 진공의 체성, 곧 불생불멸한 불변의 진리가 근본이 되는 본체세계를, 그리고 무상세계란 묘유작용, 곧 인과보응의 이치에 바탕한 변화무상의 현상세계를 각각 지칭한 것이다.
이들 유상세계와 무상세계는 서로 떠날 수 없는 상즉불이(相卽不二)의 관계구조라 할 수 있는바, 결국 그들은 하나의 일원상 진리에 대한 양면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정산은 이와 같은 ‘일원상의 진리’에 대해 진공과 묘유와 인과의 삼속성의 의미구조로 분석하면서, 그 가운데 ‘일원의 묘유’와 ‘일원의 인과’에 대해 각각, “그 진공한 가운데 또한 영지불매(靈知不昧)하여 광명이 시방을 포함하고, 조화가 만상(萬像)을 통하여 자재하나니 이는 곧 일원의 묘유요”, 또는 “진공과 묘유 그 가운데 또한 만법이 운행하여 생멸거래와 선악업보가 달라져서 드디어 육도와 사생으로 승급 강급하나니, 이는 곧 일원의 인과인 바”라 해석하고, 나아가 “이러한 진공과 묘유와 인과가 서로 떠나지 아니하여 한 가지 일원의 진리가 된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2)고 정의하고 있다.
이들 삼속성 가운데 특히 뒤의 두 속성, 곧 묘유조화와 인과작용이란 바로 일원상진리의 묘유작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둘로 나누어 본 것이다. 이상에서 일원상 진리를 진공의 체성과 묘유의 조화작용으로 나누어 설명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설명의 편의상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양면적 관찰에 불과한 것으로서, 실제에 있어서는 그 체와 용이 상즉불리(相卽不離)의 관계에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한편 이 법신불 일원의 진리를 공ㆍ원ㆍ정 또는 체ㆍ상ㆍ용 등의 삼속성으로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일원상 진리의 종교적 체험: 신앙과 수행]
① 일원상진리의 종교체험
법신불 일원의 진리는 소태산의 대각에 의하여 천명된 궁극적 진리로서, 그러한 법신불 일원의 세계는 일상적 인식작용이나 상대적 경험을 통해서는 도저히 파악될 수 없는 궁극의 세계이다. 이는 법신불 일원의 진리뿐만 아니라 여타 모든 종교의 궁극적 진리도 결국 심오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비로소 체감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체험은 지적ㆍ윤리적ㆍ심미적인 어느 체험과도 구별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가정할 수 있는 최상의 궁극적 존재를 향한 가장 근원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심오한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인간은 유한성을 초극하고 무한의 가능성을 실현시키며, 이로부터 생명의 원천이 용솟음치는 종교적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종교적 체험의 원천이 되는 것은 바로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이며, 그 궁극적 실재는 종교와 종파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상징체계로 나타난다. 곧 종교체험의 원천으로서의 궁극적 실재가 어떤 종교에서는 절대자로서의 초월적 신(神)으로 상징되기도 하고, 어떤 종교에서는 근원적 절대아(絶對我)로서의 불성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이 궁극적 실재에 대한 상징적 표현과 그에 대한 인간의 종교적 태도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종교의 출현과 종교체험의 모습이 전개될 수 있는 바, 이를 특징적으로 크게 유형지어 보면 감응적 종교체험과 합일적 종교체험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자가 주로 궁극적 실재를 근원적 절대자 또는 창조적 초월자의 모습으로 대상화하여 그 절대자의 감응과 은총 속에서 살아가려는 감응적 종교체험이라 한다면, 이에 비해 후자는 그 궁극적 실재를 인간 자아의 본성 또는 절대아로서의 자성불로 내면화하여 그 참 자아와 계합된 주체적 삶을 추구하는 합일적 종교체험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계시(啓示)종교와 개오(開悟)종교, 또는 타력신앙과 자력신앙 등의 유형 구분을 시도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는 이들 양대 종교체험, 곧 감응적 종교체험과 합일적 종교체험을 조화적으로 회통시켜 자타력병진신앙(自他力竝進信仰)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곧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신앙문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는 수행문이라는 신행(信行)의 양문을 열어놓고 있다. 이는 인류 정신사에 있어 동서 종교를 통해 추구되어 온 모든 종교체험을 가능한 한 상보적(相補的)으로 조화 회통시킴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둘로 보지 않는 통종교적 종교체험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② 일원상 진리의 신앙
이는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감응적 종교체험으로서 그 구체적 내용은 ‘법신불ㆍ사은(四恩)신앙’이다. 곧 일원상은 ‘법신불ㆍ사은’의 상징으로서 이 가운데 법신불은 위에서 살펴본 일원상진리의 본체론적 파악인 진공체성에 중점을 둔 근원성 내지 대체상(大體相)을 의미한 것이라면, 사은은 그 일원상진리의 현상론적 파악인 묘유작용에 역점을 둔 현현작용 내지 구체상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데에는 법신불신앙과 사은신앙의 두 가지 의미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법신불 신앙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우리 마음의 근원적 본성으로서, 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존재하는 신령하고 거룩한 법신불에의 절대적 신앙과 전인적 귀의를 통해 그 법신불의 무한한 은총과 위력의 감응 속에 살아가는 신앙적 모습을 말한다. 이 법신불 신앙은 일체의 사념(邪念)을 제거하고 형상 없는 진리 법계에 일심으로 정성을 드리는 불공, 곧 진리불공이라고도 하는 바, 그 전형적 예로서 백지혈인(白指血印)을 나툰 법인성사(法認聖事)를 들 수 있다.
한편 이와는 달리 실지불공(實地佛供)으로서의 사은신앙은 어떠한가? 이에 대해 소태산은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만유로서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할지니, 이를 몰아 말하자면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만들며, 미신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게 한 것이다”(《대종경》 교의품4)고 설명했다.
이 법문에 근거하여 사은신앙의 의의를 세 가지로 특징지어 살펴본다.
첫째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事事佛供)의 신앙이다. 곧 우주만유는 법신불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응화신(Nirmāṇa-kāya)으로서 진리적 위력을 지니지 않은 존재가 하나도 없으므로, 모든 존재 모든 일에 존엄한 부처님을 모시고 받드는 경건한 신앙태도로 임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 감사보은의 신앙이다. 이와 같은 법신불의 응화신으로서의 우주만유는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한 법신불의 무한생성의 은(恩)적 현현체이므로, 이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사은이 아니고서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무한한 은혜에 감사하고 나아가 보은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됨을 강조한 것이다.
셋째 인과진리에 바탕한 합리적 신앙이다. 이와 같은 사은의 무한생성의 은혜는 무질서와 혼돈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극히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과이법을 통해 발현되므로, 우리의 심신동작 하나하나를 경건한 부처님을 모시고 받드는 정성으로 행함을 강조한 합리적 신앙이다.
이처럼 일상적 삶의 현장 속에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신념 아래 합리와 사실에 바탕한 감사보은행의 실천을 강조하는 사은신앙이야말로 원불교 신앙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때 위에서 말한 법신불신앙과 사은신앙이 궁극적으로는 둘이 아니므로, 이들을 합칭하여 ‘법신불ㆍ사은신앙’이라 한다.
③ 일원상 진리의 수행
이는 법신불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한 합일적 종교체험이다. 곧 위와 같이 법신불 일원에의 철저한 신앙과 동시에, 그 법신불 일원의 진리는 바로 인간 자아의 본성이라 확신하여 진리를 주체적으로 자기 스스로의 내면세계에서 찾아 그 참된 자아에 의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일원상 진리의 수행을 세 가지로 특징지어 설명한다.
첫째 자성불(自性佛)에 대한 확신과 자각이다.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이며, 자기의 성품이 곧 법(法)”(《정산종사법》 원리편3)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는 우주만유의 본원인 법신불 일원이 인간 자아의 본성을 떠나 따로 초재(超在)해 있다고 보지 않고, 바로 자기의 자성(自性) 안에 내재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 있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조종 여하에 따라 한 없이 변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 자기 경외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곧 나의 본성은 다름 아닌 법신불 일원으로서 나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진리와 합일할 수 있다는 자각이 중요하다. 이처럼 진리적 삶의 출발을 무엇보다도 참된 자아(自我∶眞我)의 발견과 그러한 진아의 실현에 두고 경건한 구도적 삶을 전개하는 것이다.
둘째 이와 같은 자아실현의 방법으로서 법신불 일원의 진리에 의한 삼학수행(三學修行)의 인격완성이다. 그런데 앞에서 일원상 진리의 논리적 구조로서 검토한바 있는 진공ㆍ묘유 또는 공ㆍ원ㆍ정 등은 바로 그러한 일원상 진리 그 자체에 갖추어 있는 이대력 또는 삼대력으로서, 동시에 그것은 그 일원의 내재적 진리인 우리들 자신의 본성, 곧 자성불의 이대력 또는 삼대력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삼학수행은 이 가운데 특히 일원상 진리의 삼대력에 초점을 두고, 그러한 삼대력을 일원의 내재적 진리인 우리들 스스로의 자성 안에서 발견하고(見性), 길러내고(養性), 실천해 나가는(率性) 세 가지의 진리실현 내지 자아실현의 수련법을 말한다. 이 삼학수행의 구체적 내용은 정신수양(精神修養)ㆍ사리연구(事理硏究)ㆍ작업취사(作業取捨)의 세 가지 실천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소태산은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은 견성(見性)이요,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성(養性)이요,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은 솔성(率性)이라고 정의 내린다(《대종경》 교의품5).
셋째 무시선에 의한 끊임없는 구도 노력과 진리적 삶의 전개이다. 여기에서 선(禪 dhyāna)이란 일원의 내재적 진리로서의 자아의 본성 그 자체와 합일된 종교체험의 경지, 곧 ‘절대 진리의 자기화’ 내지 ‘주객 합일의 전일자(全一者) 체험’을 말하는 것으로서, 위와 같은 진리실현 또는 진아 완성의 노력으로서의 삼학수행은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 부단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한 말로 무시선이라 한다.
소태산은 이러한 무시선의 강령을, “육근(六根)이 무사(無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육근이 유사(有事)하면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정전》 무시선법)고 하여, 무사시는 생명의 본원심(本源心)으로서의 일심을 양성하고, 유사시는 생명의 창조적 작업으로서의 정의를 실현할 것을 강조하는, 이른바 동정간불리선(動靜間不離禪)을 제시한다.(원불교대사전)
부처[佛]
[개요]
깨달은 자(覺者). 불타(佛陀, buddha)ㆍ불타(佛䭾)ㆍ부타(浮陀) 등으로 음역한다. 한자로는 불타 또는 줄여서 불(佛)이라고 한다. 의미상으로는 각자(覺者)ㆍ지자(知者)ㆍ각(覺)의 뜻이므로, 붓다인 석가모니불 곧 석존(釋尊)이나 모든 부처를 가리킨다.
[내용 및 변천]
부처는 B.C. 6세기경 인도의 카필라국에서 태어나 태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한 뒤 6년의 수행을 거쳐 일체의 번뇌를 끊고 무상(無上)의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교화했던 석가모니를 존경하여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부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석가모니에게만 국한된 절대적인 명칭은 아니다. 부처는 일체법(一切法), 곧 우주만법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알아서 더할 수 없는 진리를 체득한 성자(聖者)를 의미하는 것이며, 그러한 성자가 바로 석가모니이기 때문에 그를 부처라고 한다. 부처의 깨달음에는 ① 자각(自覺: 스스로 깨달음), ② 각타(覺他: 다른 중생들을 깨닫게 함), ③ 각행원만(覺行圓滿: 깨달음 작용이 全知全能하게 충만함)의 3가지 의미가 있다.
부처는 이 3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며, 보살은 자각과 각타를, 성문(聲聞)ㆍ연각(緣覺)의 이승(二乘: 소승의 가르침만을 수행하는 자)은 자각만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의 의미로 스스로 깨달아(自覺)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며(覺他) 깨달음의 기능이 전지전능하게 충만하여 있다는 뜻이 있다. 이 자각과 각타와 각행원만의 관계는 범부에 있어서는 세 개가, 이승에 있어서는 뒤의 둘이, 보살에 있어서는 마지막 하나가 모자란다는 것으로, 이런 점에서 불(佛)의 우월성을 나타낸 것이다.
불타의 덕을 찬송하는 데 갖가지 불호를 세운다. 여래 십호를 비롯하여 일체지자(一切知者)ㆍ일체견자(一切見者)ㆍ세존(世尊)ㆍ천존(天尊)ㆍ법왕(法王)ㆍ대사문(大沙門)ㆍ대의왕(大醫王) 등의 불호가 있다. 또한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여러 가지 별칭이 있는데, 경전에 따라서는 60가지, 108가지, 또는 270가지나 된다. 대표적인 것은 여래10호(如來十號)이며, 이외에도 일체지자(一切智者: 모든 존재에 대해 최고의 지혜를 갖춘 자)ㆍ세존(世尊: 世間에서 존경받는 자)ㆍ법왕(法王: 진리를 설하는 자)ㆍ대의왕(大醫王: 병에 따라 알맞는 약을 주는 훌륭한 의사처럼 자유자재로 설법하는 자)ㆍ양족존(兩足尊: 복과 혜가 구족한 존귀한 자)ㆍ개도자(開道者: 깨달음의 길을 열어주는 자) 등이 있다.
불타의 특유하고 뛰어난 덕으로 인하여 그 몸에는 삼십이상(三十二相)ㆍ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고 있고, 또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의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불타의 초월성을 일곱 가지 항으로 묶어서 칠승사(七勝事)ㆍ칠종최승(七種最勝)ㆍ칠종무상(七種無上) 등으로 부른다. 원시불교와 부파불교 시대에는 부처라고 하면 곧 석가모니를 의미했고, 그의 제자들에게 부처란 오직 석가모니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대승불교에 이르는 동안 불타관(佛陀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석가모니의 입멸(入滅) 후 그의 제자들은 부처는 오랜 수행의 과보(果報)로 얻은 덕상(德相), 곧 신체적 특징인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추고 정신적인 덕성인 10력(十力)ㆍ4무외(四無畏)ㆍ3념주(三念住)ㆍ18불공법(十八不共法) 등을 성취했다고 보았다. 대승불교의 초기까지 이러한 부처의 본체, 곧 불신(佛身)은 생신(生身)과 법신(法身)이 결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생신은 석가모니의 육신을 말하는 것으로 색신(色身)이라고도 하며, 법신은 부처의 본성이자 그가 얻은 진리(法)를 말한다. 이와 같은 2신설(二身說)은 대승불교의 교리가 발전함에 따라 법신불(法身佛)ㆍ보신불(報身佛)ㆍ화신불(化身佛)의 3신설(三身說)로 전개되었다.
법신불은 위의 법신사상이 발전된 것으로 항구불변하는 진리 그 자체로서의 부처를 말한다. 《화엄경(華嚴經)》과 《대일경(大日經)》 등에서 주불(主佛)로 등장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상징적인 법신불이다. 보신불은 한량없는 수행과 정진의 과보로서 주어진 부처를 말하는데, 전생에 법장비구였을 때 48가지의 서원(誓願)을 세우고 오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된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보신불의 대표적인 예이다. 화신불은 중생의 바람에 응하여 여러 가지로 몸을 변신한 뒤 나타나 그들을 교화하는 부처를 말한다.
석가모니와 같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모든 부처는 곧 화신불인데, 때로는 현실 속에서 보살ㆍ왕ㆍ연꽃ㆍ바위 등과 같이 꾸밈없는 사물 그 자체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3신(三身)은 하나인 부처의 본체가 3가지로 나타난 작용이며 따라서 모든 부처는 법신이자 보신이며 동시에 화신인 것이다. 대승불교의 유식학파(唯識學派)에서는 자성신(自性身)ㆍ수용신(受用身)ㆍ변화신(變化身)의 3신을 말하는데, 이는 각각 법신ㆍ보신ㆍ화신에 대응되며 그 개념도 대체로 비슷하다. 부처의 출현을 시간에 따라 과거불(過去佛)ㆍ현재불(現在佛)ㆍ당래불(當來佛)로 나누기도 한다.
과거세에 나타난 부처를 과거불 또는 고불(古佛)이라 하고, 미래에 나타나는 부처를 당래불 또는 후불(後佛)이라고 한다. 과거불에는 석가모니의 전생에 그가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는 연등불(燃燈佛)을 비롯한 과거7불(석가모니도 포함됨) 등이 있고, 미래불에는 현재 도솔천(兜率天)에 있다가 석가모니가 입멸한 후 56억 7천만 년이 지나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 성불한다는 미륵불이 있다.
소승의 부파불교에서는 현재세(現在世)에서 두 부처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일불설(一佛說)을 주장했으나, 대승불교에 이르러 동방 묘락세계(妙樂世界)의 아촉불(阿閦佛)이나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불과 같이 현재에도 타방세계(他方世界)에 항하(恒河: 갠지스 강)의 모래알 수보다도 많은 부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다불설(多佛說)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부처의 보편화ㆍ일반화는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가능성, 곧 불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낳게 했고, 이는 후에 중국에서 선종(禪宗)이 성립할 수 있었던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원불교적 의미]
원불교에서 부처(佛)는 불교전래의 의미를 계승해 오고 있다. 다만 붓다 곧 석가모니불은 소태산대종사가 대각 후 《금강경(金剛經)》을 열람하고 그 증오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성중성(聖中聖)으로 찬탄하고 연원불(淵源佛)로 받들고 있다. 또한 소태산이 대각하고 상징한 일원상(◯)을 법신불로 받들며 최고종지(最高宗旨)로 삼고 있다.(〈원불교교헌〉 제1조) 이를 ‘교리도’에서는 “일원(一圓)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라 정의하고 있다.
일원상의 진리를 크게 깨쳐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한 성자, 삼학병진 수행으로 삼대력을 얻어 만능ㆍ만덕을 얻은 수행자라는 말이며, 그 수행의 결과를 대각여래위(大覺如來位)로 받든다. 정산종사는 ‘대종사성비명(大宗師聖碑銘)’에서 소태산을 ‘뭇 성자들이 모여 크게 이룬(集群聖而大成) 새 회상의 주세불(主世佛)’로 밝히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일원상의 진리[一圓相-眞理]
소태산대종사의 대각에 의하여 밝혀진 우주의 근본 원리와 인간의 본질 등에 관한 궁극적 진리. ‘교리도’에서는 이 일원상진리를 법신불이라 선언하고, 또한 이를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제성의 심인,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단정했다. 원불교는 이 일원상의 진리를 최고의 종지로 삼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서 법신불일원상을 본존으로 받들어 모신다. 일원상의 진리는 진공ㆍ묘유의 양면성(兩面性) 또는 공ㆍ원ㆍ정(空ㆍ圓ㆍ正)의 삼속성(三屬性) 외에, 불생불멸과 인과보응, 변 불변 등 다양한 구조로 파악될 수 있다.
《정전》에서는 ‘일원상 진리’의 내용설명으로서 “우주만유의 본원, 제불제성의 심인(心印), 일체중생의 본성,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는 자리, 선악업보가 끊어진 자리, 언어명상이 돈공(頓空)한 자리이나,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업보에 차별이 나타나고,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가 손바닥 위의 한 구슬처럼 드러나며, 진공묘유의 조화는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에 은현자재(隱現自在)한다”고 명시했다.(원불교대사전)
여여[如如]
산스크리트어 tathatā
① 분별이 끊어져 마음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분별이 끊어져, 있는 그대로 대상이 파악되는 마음 상태.
②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③ 모든 현상의 본성.(시공 불교사전, 2003.7.30, 시공사)
여여자연[如如自然]
우주 대자연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세월에 그대로 존속해 있다는 말. 우주 대자연 그대로가 여여하다고 함. 자연의 이치가 곧 진리이며, 근원적 진리는 낳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아서(不生不滅不增不減) 여여자연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치를 《정전》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유상(有常)으로 보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라 하여 일원의 진리를 불변의 측면 곧 유상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정산종사는 “이 세상은 변하는 이치와 불변하는 이치로 이룩되었나니…, 불변하는 이치는 여여자연하여 시종과 선후가 없는지라, 이는 생멸없는 성품의 본체를 이름”(《정산종사법어》 원리편34)이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
[일원상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
대종사께서 방언공사를 마치시고 원기 4년 김제 금산사에 잠시 머무신 적이 있으신데 그 때 거쳐하시던 출입구 위 벽에 '○'을 그려 붙이셨다고 한다. 원기 20년에는 총부 대각전 준공 기념식에서 단상 벽상에 조그만 목판 일원상을 정식으로 봉안해 보이셨고 그 뒤로 일원상 봉안이 점차 확산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일원상이 우리 인간과는 어떤 관계인가를 당시 대학생이셨던 숭산종사께서 여쭈었고(3장) 그에 대한 답변의 말씀이 이 6장에 까지 이른 것이다. 원기 23년 회보 46호에 실린 법문이니 그 무렵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을 신앙의 대상으로 드러내심은 종교사에 없는 일대 혁신이다. 당연히 대중의 이해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이런 질문도 하셨으리라.
"그렇다면 도형으로 그린 저 일원상 자체에 그처럼 무궁한 진리가 갊아 있으며(3장) 복락을 내릴 위력이 있으며(4장) 큰 인격을 이룰 공부법(5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저 도형의 일원상은 참 일원이 아니라고 하셨다. 참 일원을 알려주기 위한 한 표본일 뿐이라고 밝히시니 일체의 (우)상을 철저하게 배제하심이다.
도형으로 그린 일원상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을 뿐인데, 철없는 어린 아이는 저 하늘의 참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쳐다본다. 손가락을 달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저 일원상을 통하여 참 일원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발견하였으면 그것을 잘 지켜야 할 것이며 나아가 실지 생활에서 그대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일원을 우리의 내면으로 비추면 곧 성품이라(일원은 일체중생의 본성), 참 일원을 발견함은 견성(見性)이요, 일원의 참된 성품을 지킴은 양성(養性)이요, 일원의 원만한 마음을 실행함은 솔성(率性)이다.
결국 삼학 공부를 실천하여 삼대력을 갖추어야 일원상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이 완전히 합일하게 된다.
어느 날 대산종사께서 제자에게 물으셨다. "일 년에 보름달이 몇 번 뜨냐?" 12번 혹은 13번이라고 답하여 올리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한다. 달은 항상 보름달이다. 다만 상황(경계)따라 이지러져 보이기도 하고 차보이기도 할뿐이다.
대종사께서 형상으로 그려 보여주신 저 일원상을 통하여 내 안의 여여한 그 자리를 발견하자. 그리고 온전히 기르고 온전히 활용하자.(다음블로그 : 사랑하며 용서하며)
★★★★★-THE END-
'대종경(大宗經) > 제2 교의품(敎義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 교의품(敎義品) 8장 (0) | 2014.09.25 |
---|---|
제2 교의품(敎義品) 7장 (0) | 2014.09.23 |
제2 교의품(敎義品) 5장 (0) | 2014.09.22 |
제2 교의품(敎義品) 4장 (0) | 2014.09.22 |
제2 교의품(敎義品) 3장 (0) | 2014.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