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부모은(父母恩)
정전(正典)
제2 교의편(敎義編)
제2장 사은(四恩)
제2절 부모은(父母恩) 1. 부모 피은의 강령 우리가 부모에게서 입은 은혜를 가장 쉽게 알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부모가 아니어도 이 몸을 세상에 나타내게 되었으며, 설사 나타났더라도 자력(自力) 없는 몸으로서 저절로 장양될 수 있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볼 것이니, 그런다면 누구나 그렇지 못할 것은 다 인증할 것이다. 부모가 아니면 이 몸을 나타내지 못하고 장양되지 못한다면 그 같이 큰 은혜가 또 어디 있으리요. 대범, 사람의 생사라 하는 것은 자연의 공도요 천지의 조화라 할 것이지마는, 무자력할 때에 생육(生育)하여 주신 대은과 인도의 대의를 가르쳐 주심은 곧 부모 피은이니라.
2. 부모 피은의 조목 1. 부모가 있으므로 만사 만리의 근본되는 이 몸을 얻게 됨이요, 2. 모든 사랑을 이에 다 하사 온갖 수고를 잊으시고 자력을 얻을 때까지 양육하고 보호하여 주심이요, 3. 사람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 인류 사회로 지도하심이니라.
3. 부모 보은의 강령 무자력할 때에 피은된 도를 보아서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줄 것이니라.
4. 부모 보은의 조목 1. 공부의 요도(要道)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 없이 밟을 것이요, 2. 부모가 무자력할 경우에는 힘 미치는 대로 심지(心志)의 안락과 육체의 봉양을 드릴 것이요, 3. 부모가 생존하시거나 열반(涅槃)하신 후나 힘 미치는 대로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와 같이 보호할 것이요, 4. 부모가 열반하신 후에는 역사와 영상을 봉안하여 길이 기념할 것이니라.
5. 부모 배은 부모에 대한 피은·보은·배은을 알지 못하는 것과 설사 안다 할지라도 보은의 실행이 없는 것이니라.
6. 부모 보은의 결과 우리가 부모 보은을 한다면 나는 내 부모에게 보은을 하였건마는 세상은 자연히 나를 위하고 귀히 알 것이며, 사람의 자손은 선악간에 그 부모의 행하는 것을 본받아 행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이치인지라, 나의 자손도 마땅히 나의 보은하는 도를 본받아 나에게 효성할 것은 물론이요, 또는 무자력한 사람들을 보호한 결과 세세 생생 거래간에 혹 나의 무자력한 때가 있다 할지라도 항상 중인의 도움을 받을 것이니라.
7. 부모 배은의 결과 우리가 만일 부모에게 배은을 한다면 나는 내 부모에게 배은을 하였건마는 세상은 자연히 나를 미워하고 배척할 것이요, 당장 제가 낳은 제 자손도 그것을 본받아 직접 앙화를 끼칠 것은 물론이며, 또는 세세 생생 거래간에 혹 나의 무자력한 때가 있다 할지라도 항상 중인의 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부모은(父母恩)
사은 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큰 은혜. 부모은은 사은 중에서 우리 인간과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밀접한 은혜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은혜가 부모은이며, 부모은은 인간 윤리의 기본이 된다. 부모은이 존경받는 사회는 결코 윤리 도덕의 타락이 있을 수 없고, 부모은이 망각된 사회는 윤리 도덕의 타락과 가치관의 상실을 가져오기 쉽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나라에도 충성하고, 사회에도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며, 친구와 형제 간에도 우애한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로 떨어지기 쉽고, 인륜 도덕을 망각하기 쉽다. 우리의 육신을 낳아주고 길러주며, 보호해주고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가르쳐주며, 희생과 사랑을 다 베풀어주는 것이 부모은이다. 인간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도 없고, 설사 태어났다 할지라도 어린 몸으로 부모의 은혜가 없으면 자라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모은에 대해서는 인간 사회에 널리 예찬되어 왔던 것이다. 부모은을 절실히 느끼고 정성 다해 보은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인간다운 점이며,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성이기도 한 것이다. 부모님의 은혜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생각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려서 부모님의 따뜻한 품안에서 지극한 사랑으로 자라야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자라며 따뜻한 피가 흘러야지 컴퓨터 인간이나 인조인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은에는 절대적인 은혜가 있고 상대적인 은혜가 있다. 절대적인 은혜는 낳아 준 은혜요, 길러주고 보호해주고 가르쳐 준 것은 상대적인 은혜이다. 절대적인 은혜는 공통적인 것이지만 상대적인 은혜는 차이가 있다. 자녀의 입장에서 상대적인 은혜가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해서 부모은을 부정하거나 부모를 원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부모은에 대한 효도가 부모보은의 길이며 인륜 도덕의 근본이 된다.
효도에 세가지가 있다.
① 부모님의 사랑을 늘 생각하며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자신의 노고를 잊고 부모님의 육신을 잘 봉양하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효도이며, 세가지 효도 중에서 가장 작은 효도이다.
② 자식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인의 대도를 잘 지켜 죄짓지 않고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아무리 부모님의 육신을 잘 봉양해 드린다 할지라도 자식이 죄인이 된다면 부모님은 더욱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의 효도가 된다.
③ 자식이 사회에 선업을 짓고 큰 인물이 되어 인류 역사 속에서 큰 인격자가 되고 인류 사회에 은덕을 널리 베풀어 자식의 공덕으로 인해서 부모님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드러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이는 가장 큰 효도가 된다. 그러므로 마음 공부를 잘 해서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큰 불보살이 되는 것이 부모은에 대해 가장 큰 효도를 하는 것이다.
부모보은에 네가지 길이 있다.
① 공부의 요도 삼학 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 사요를 잘 실천하여 큰 불보살의 인격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을 희사위의 법보에 올려 드리는 길이며 큰 효도가 된다.
② 부모가 자력이 없을 때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육신을 잘 봉양해 드리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 효도이다. 나도 내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만 내 자식도 나에게 효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③ 다른 사람의 부모 까지도 내 부모처럼 잘 봉양하고 무자력한 노인이나 어린이를 잘 보호하는 것은 인류애를 실현하는 길이요 하나의 인류로 화합하는 길이다. 인간은 영원한 세상을 통하여 수없이 몸을 바꾼다. 그러므로 과거 여러생을 통하여 부모의 인연도 수없이 많고 자식의 인연도 수없이 많은 것이다. 영원한 미래 세상에 맺게 될 부모인연과 자식인연도 또한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부모는 다 나의 부모요 모든 어린이는 다 나의 자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혜로운 생각일 것이다. 이는 박애정신·자비정신으로 인류애를 발휘하여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인류를 건설해가는 길이다.
④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추모기념과 천도축원을 정성껏 올리고 부모의 뜻을 받들어 공익사업에 힘쓰는 것이다. 이는 인류사회에 윤리 도덕을 고양하는 것이며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길이다. 이와같이 부모 보은의 길은 인류 공동체 의식을 높여주고, 윤리 도덕을 발전시켜 주며, 평화롭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하며, 하나의 인류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잘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건설해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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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으로 법회 보기 / 부모은
무자력할 때 생육하여 준 대은
[1626호] 2012년 08월 10일 (금) | 송인걸 교무![]() |
부모은에 대하여 원각성존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정전〉 부모은 편에 이렇게 밝혀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부모 피은의 강령에서는 부모가 아니시면 자신의 몸이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장양(長養)되지 못하였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사람이 무자력할 때에 생육(生育)하여 주신 대은(大恩)과 인도(人道)의 대의(大義)를 가르쳐 주심이 곧 부모 피은이라 일깨워 주셨습니다.
부모 보은의 강령에서는 자신이 무자력할 때에 피은된 도를 보아서 힘 미치는대로 무자력한 사람에게 보호를 주라 하셨습니다.
이어 부모 보은의 조목으로는 제일 먼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 없이 밟으라 하셨으며, 부모님의 심지(心志)를 안락하게 해드리고 육체를 봉양토록 하셨으며, 부모가 생존하시거나 열반한 후나 힘 미치는대로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라도 내 부모와 같이 보호하라 하셨으며, 부모님이 열반하신 후에는 역사와 영상을 봉안하여 길이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불교나 유교에서 밝힌 부모은
일찍이 불교(佛敎)나 유교(儒敎)에서도 부모은의 지중함을 말씀하시고 부모은에 보답하라 가르치셨습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 보면 잉태(孕胎)에서부터 해산(解産)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뉘시고 손발이 닳도록 고생하며 품에 품어 키우신 은혜는 "왼편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가죽이 닳아서 뼈에 붙고, 뼈가 떨어져서 골수(骨髓)에 이르도록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다 갚을 수 없다"고 부처님께서 법문하셨습니다.
유교의 〈효경(孝經)〉에 보면 공자님의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효자가 부모를 섬김에 있어서 평소에 공경함을 다하고 봉양할 때에는 즐거움을 다해드리고 편찮으실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실 때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를 모실 때에는 근엄함을 다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부모님을 희사위(喜捨位)로 모심이 큰 효
우리 원불교에서는 자녀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를 빠짐없이 밟는 것이 효도의 으뜸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녀가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를 다 밟아서 정식 법강항마위 이상 도인이 되고보면 그 부모님을 희사위로 모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종경〉 변의품 24장에서 대종사님이 그 이치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공부의 요도를 지내고 나면 부처님의 지견을 얻을 것이요, 인생의 요도를 밟고나면 부처님의 실행을 얻을지니, 자녀된 자로서 부처님의 지행을 얻어 부처님의 사업을 이룬다면 그 꽃다운 이름이 너른 세상에 드러나서 자연 부모의 은혜까지 드러나게 될 것이라, 그렇게 된다면 그 자녀로 말미암아 부모의 영명(令名)이 천추에 길이 전하여 만인의 존모할 바 될것이니, 어찌 단촉한 일생에 시봉만 드리는 것에 비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는 실로 무량한 보은이 되나니라."
이에 관하여 정산종사께서도 〈정산종사 법어〉 경의편 7장의 법문을 통하여 그 내역을 소상히 밝혀주셨습니다. "그 부모의 영명이 천추(千秋)에 영전(永傳)됨이요, 그러한 불보살을 세상에 희사한 공덕으로 자연 하늘 복이 돌아감이요, 현생과 후생을 통하여 도덕있는 자녀의 감화를 받기가 쉬움이니라."
부모님을 겹 대희사위로 모신 정산·주산 종사 형제의 효행
이렇게 보면 가장 큰 효행을 실천하신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 등 대성인들이십니다.
후천개벽 세상에서는 우리 원각성존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님께서 주세불, 주세성자가 되시어 그 부모님을 <대희사위>로 모시게 됨으로써 가장 큰 효를 행하셨습니다.
정산 송규 종사, 주산 송도성 종사님은 형제분이 나란히 '대각여래위' 부처님이 되심으로써 그 부모님을 겹대희사위로 모시게 되어 다시 없는 큰 효행을 실천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정산종사, 영산에 계실 때 손수 붕어의 배를 따고 계시는지라 뵙던 사람들이 놀라서 그 연유를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합니다.
"어머님 병환에 붕어가 약이 된다는데 죄 짓는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할 수 없어서 내가 하고 있는 중이다"(〈한울안 한이치에〉 제9장 오직 한 길 25) 참으로 놀랍지 않으십니까? 부모님을 위해서는 부처님께서도 이런 일을 하시지 않는지요?
일찍이 주산종사께서는 어머니(준타원 이운외 대희사)께 이런 편지를 써 보내십니다. 그 앞부분만 소개하겠습니다.
"늘 한 번 가서 뵈옵는다는 것이 중대한 회중사에 매인 몸이 되어 내 어머니를 가서 뵈옵겠다고 떨치고 일어날 용기가 안나오니 결단이 부족한 탓이라 하올까 효성이 전무한 소치라 하올까 도무지 무어라 엿자올 말씀이 없습니다. 행여 어머님께서 회중사에 그만치 필요한 자식이 되었으니 차라리 내 슬하에 모셔있어 조석봉공을 효성으로 하는 그 자식보다 어느 편으로 더 낫지 않느냐하는 이러한 마음을 가지시고 스스로 위안하시며 널리 용서하신다면 멀리 있어 동동촉촉하는 이 자식의 마음에 반분이라도 죄송함이 덜하련마는 그렇지 않으시다면 더욱 황공하야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저도 20여 년 전에 아버님을 젊은 연세에 먼저 떠나 보내고 살아생전에 효하지 못한 것을 뉘우치며 〈주자십회(朱子十悔)〉 가운데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를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고향 성주에 홀로 계신 어머니(78·신타원 구자성)께 아버지께 못다한 효도까지 해드려야 함에도 효심이 부족하여 제대로 모시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자식된 자로서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를 다하고 무자력한 타인의 부모라도 여력이 닿는대로 보호해 드리며 공도사업에 헌신하여 불보살이 되어 부모님을 희사위에 올려드림으로써 영겁대효를 하시기를 심축드립니다.
"
부모에 대한 효의 으뜸은
공부의 요도 삼학·팔조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
빠짐없이 실천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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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한정석 ③ 지은보은
천지에게 진 빚 보은은 우주질서활용
동포에게 진 빚 공정하게 사는 것으로
[262호] 1980년 09월 10일 (수) | 원불교신문![]() |
은혜를 안다는 것은 은혜를 깨친다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작게는 어느 누구에게서 과자 한 개를 받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우주의 생성의 대도까지를 은혜라고 한다.
일원상의 진리 자체를 은(恩)으로 보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 또는 진여의 이법, 유교에서 말하는 천도 또는 태극의 이법, 노장에서 말하는 도 또는 자연의 이법,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神) 등을 은(恩)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일원상의 지닐도 이러한 모든 종교의 궁극적 진리를 뜻한 것이지만 이러한 궁극적 진리를 은으로 파악하는 데에 소태산 대종사님의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다.
존재를 존재 자체로 보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면 존재를 「나」라는 생명적 관계로 훈훈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종교일는지 모른다. 그것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도 없고 네가 없이는 내가 살 수 없다는 생명적 관계를 은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은보은은 사은사요 교리의 신앙문의 강령을 내용 면에서 집약한 것이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그저 단순하게 아는 것 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은의 진리를 대각해서 은의 진경에 사무침을 뜻한다. 우주의 대기가 자동적으로 운행하는 대도가 은이요, 이 대도가 운행함에 따라 나타나는 대덕이 은(恩)인 것이다. 지극히 밝고 공정하고 정성하고 순리자연하고 광대무량하고 영원불멸하고 길흉이 없고 응용무념한 생성의 대도가 은인 것이다. 이 생성의 대도를 떠나서 나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부모라는 존재와 나와의 관계, 동포라는 존재와 나와의 관계, 법률이라는 이법과 나와의 관계, 이것을 떠나서 나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천지은과 부모은과 동포은과 법률은은 나와의 생명적 관계를 뜻한다. 천지는 우주를 생성시켜 나를 살게 하고 부모는 대자비로 나를 살게 하고 동포는 상부상조로 나를 살게 하고 법률은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으로 나를 살게 한다. 특히 법률은은 종교법이거나 사회법이거나 간에 인도정의의 공정한 법칙을 뜻한다.
우리는 은혜를 알고 깨쳐야 한다. 가장 작은 은혜에서 가장 큰 은혜까지를 알고 느끼고 깨치고 사무쳐야 한다. 은혜를 깨치면 내가 설 자리를 알게 되고, 은혜를 알면 서로가 반갑고 은혜를 느끼면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은(恩)은 서로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서로의 뜨거운 정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법칙과 모든 사물을 지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훈훈하게 실기는 어렵다.
이 세상의 모든 법칙과 모든 사물과 모든 관계를 은으로 느껴질 때 서로가 감사하고 서로가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사은에 보은함으로써 서로 훈훈하게 잘 사는 세계가 될 것이며, 사요를 실천함으로써 서로가 고루 한결같이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화하고 서로가 고루 잘 살 수 있는 길이 지은보은인 것이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자기가 설 자리에 비로소 바로 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자기가 어디에서 있는가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과의 관계 속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혼자 서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자기의 설 자리에 돌아가야 한다. 잃어버린 고향에 되돌아가는 것이 보은인 것이다. 누구에게 선행을 하는 것은 내가 누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이 받은 것을 비로소 조금 되돌려 주는 것이다.
빚을 진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다. 아무리 강요해도 마음 속 깊이 박혀 불안을 털어 버릴 수가 없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 가장 작은 것에서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빚을 갚아야 한다.
우주에서 진 빚은 우주의 질서를 활용하는 것으로 갚아 천인합일적인 인격을 이루고, 부모에게 진 빚은 나를 다 바쳐 섬기는 효도로 갚고, 동포에게 진 빚은 서로 공정하게 사는 것으로 갚고, 법률에게 진 빚은 인도정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 은혜를 깨치고 은혜를 알고 은혜를 느끼고 은혜를 하루하루 갚는 생활을 하면 우선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이 즐겁고 모두를 부둥켜안고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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