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1 서품(序品) 15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 내가 진작 이 불법의 진리를 알았으나 그대들의 정도가 아직 그 진리 분석에 못 미치는 바가 있고, 또는 불교가 이 나라에서 여러 백년 동안 천대를 받아 온 끝이라 누구를 막론하고 불교의 명칭을 가진 데에는 존경하는 뜻이 적게 된지라 열리지 못한 인심에 시대의 존경을 받지 못할까 하여, 짐짓 법의 사정 진위를 물론하고 오직 인심의 정도를 따라 순서 없는 교화로 한갓 발심 신앙에만 주력하여 왔거니와,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혜·복(慧福)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 그러나,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 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 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 공부를 잘하면 세상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化被草木) 뇌급만방(賴及萬方)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 그대들이여! 시대가 비록 천만 번 순환하나 이 같은 기회 만나기가 어렵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만났으며, 허다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드물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이 기회를 알아서 처음 회상의 창립주가 되었나니, 그대들은 오늘에 있어서 아직 증명하지 못할 나의 말일지라도 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지도에 의하여 차차 지내가면 멀지 않은 장래에 가히 그 실지를 보게 되리라.]
★★★★★★★★★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生活是佛法]
[개요]
원불교의 교리표어의 하나. 원불교 사상과 이념을 실천적 측면에서 지침이 되도록 제시하여, 불법이 곧 생활이요 생활이 곧 불법이니, 불법과 생활을 일치시키자는 것. 이를 활용면에서 보면 불법으로써 생활을 빛내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는다는 뜻이다. 《원불교교전》 앞머리에 실려 있다.
[불법의 생활화]
소태산대종사는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대종경》 서품3)고 하여, 바른 성품을 체받으면 성품에 바탕한 생활이 될 것이며, 생사의 이치를 깨달으면 그것이 곧 생사 해탈의 생활이 된다고 보았다. 인과의 이치를 깨치면 죄를 짓지 아니하고 복을 짓는 생활이 되며, 수행을 철저히 하면 수행을 바탕으로 한 생활이 되어 불법과 생활이 둘이 아닌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는 또한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 서품1)라고 하여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생활 속에서 깨닫고 활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교리의 주체면에서 보면 불법은 일원상 진리이며, 일원상 진리가 생활이고, 생활이 곧 일원상 진리이다. 절대적 진리는 유ㆍ불ㆍ도 삼교에서도 밝히고 있으나 소태산은 이 진리를 생활에 직결시킬 것을 강조했다. 불법을 생활화한다는 것은 일원상 진리를 생활화한다는 것이다. 일원상 진리를 생활화한다는 것은 불법인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을 생활화하는 것이며, 일원상 진리로써 생활하고 생활 속에서 일원상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소태산은 “그대들은 마땅히 불법을 활용하여 생활의 향상을 도모할지언정 불법에 사로잡힌 바 되어 일생을 헛되이 지내지 말라. 무릇 불법은 원래 세상을 건지는 큰 도이거늘 도리어 세속을 피하고 산에 들어가서 다만 염불이나 간경(看經)이나 좌선 등으로 일 없이 일생을 보내고 마침내 제중의 실적도 없다면 이러한 사람은 다 불법에 사로잡힌 바이라, 자신에도 별 성공이 없으려니와 세상에도 아무 이익이 없나니라”(《대종경》 수행품51)고 했다. 이는 과거의 불교가 교리나 제도의 면에서 출세간 본위로 되어 있는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태산은 “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농공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대종경》 서품15)이라고 했다.
정산종사는 “과거의 불법은 불법과 생활이 별리(別離)되어 불법을 하는 자는 생활을 도외시하게 되고 생활을 하면서 불법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우리는 불법과 생활을 별리시키지 말고 일치시키자는 것이니, 곧 불법을 떠난 생활은 참된 생활이 되지 못하고 생활을 떠난 불법은 산 불법이 되지 못함을 먼저 잘 알아야 할 것이니라”(오선명, 《정산종사법설》)고 했다. 이는 불법과 생활을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불법을 떠난 생활은 참된 생활이 아니며 생활을 떠난 불법은 산 불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의미]
원불교 교리의 특징 하나가 ‘불법의 생활화ㆍ대중화ㆍ시대화’이다. 당나라 혜능(慧能)은 “불법이 세간에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도를 깨칠 수 없다. 세간을 떠나서 도를 찾는 것은 흡사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佛法在世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육조단경》) 하고, 조선 말기의 한용운(韓龍雲)도 “남의 것으로 입고 먹는 것보다 나도 한 사람의 가치를 갖추어 내가 입고 먹는 것을 갚기에 족할 만큼 보답해야 할 것이며, 그런 다음에야 피차에 원한이 없어지고 전체의 경제도 결함이 없게 될 것이다.…사람 고유의 인권을 회복하고자 할 것 같으면 무엇보다도 스스로 생산하여 자활(自活)할 필요가 있는 것이니”(《조선불교유신론》)라 했다. 삶을 위해 불법이 존재하고, 출가 또한 중생제도를 위해서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태산은 불법을 계승하고 생활에 맞지 않는 제도는 개혁하자고 하여 “이제는 우리가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 그대들은 먼저 이 불법의 대의를 연구해서 그 진리를 깨치는 데에 노력하라.…미래의 불법은 재래와 같은 제도의 불법이 아니라 사ㆍ농ㆍ공ㆍ상을 여의지 아니하고, 또는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공부하는 불법이 될 것이며,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국한된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 만물 허공 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는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 뇌급만방(化被草木賴及萬方)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대종경》 서품15)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개요]
‘곳곳이 부처님, 일마다 불공’이라는 의미의 한자표현으로, 원불교 교리표어. 원불교적 삶의 태도를 적실하게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 교의의 하나이다. 불교에서 행해 왔던 불공의 본래 의미는 ‘부처님께 헌공하는 공물(供物)’이라는 뜻으로 넓은 의미로는 공물을 헌공하는 행위까지 포함하며, ‘공양(供養)’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불공이란 석가모니의 위력을 찬양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부처님 법력의 가호를 얻기 위해 정신ㆍ육신ㆍ물질로 정성을 바치는 일이라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처처불상 사사불공에서의 불공의 의미는 그와 다르다. 소태산대종사는 불공은 진리불공과 실지불공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진리불공은 심고나 기도 등 일원에 대한 신앙행위를 말하고, 실지불공은 현실 생활 속에서 만유를 부처로 모시고 그에 걸맞는 포괄적 대응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매우 깊은 교리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처처불상의 의미는 일체 만유를 다 부처의 화현으로 대하자는 것이다. 소태산은 일원상 신앙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대종경》 교의품4)라고 하여 처처불상 교리의 근원이 일원상이며 사은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보면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일원의 진리가 구체적으로 현실에 전개되는 것임을 알아서, 모든 개물(個物)에서 부처의 공능이 발현되도록 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불국토를 만들어가자는 원불교의 독특한 신앙과 실천의 교리라 할 수 있다.
[용어의 형성과정]
1919년(원기4) 10월 6일에 소태산은 ‘불법연구회 기성조합’을 설시하고 전통 불교의 신앙적 측면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지적했는데, 하나는 등상불 숭배의 폐단이며, 다른 하나는 불공법의 비합리성이다. 이에 대하여 새로운 불공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배울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요, 후진을 가르칠 바도 부처님의 도덕이니…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한갓 불상에만 귀의하지 않고 우주만물 허공법계를 다 부처로 알게 되므로 일과 공부가 따로 있지 아니하고 세상일을 잘하면 그것이 곧 불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요, 불법 공부를 잘하면 세상일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또한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 부처의 은혜가 화피초목 뇌급만방하여 상상하지 못할 이상의 불국토가 되리라”(《대종경》 서품15).
1934년(원기19) 12월 《삼대요령》에서는 〈심고와 기도에 대한 설명〉에 불공법 중 진리불공의 내역을 밝히고 있다. ‘사람이 출세하여 세상을 살아가기로 하면 자력과 타력으로써 생활해 가나니, 자력은 타력의 근본이 되고 타력은 자력의 근본이 되므로 자신할 만한 타력을 얻은 사람은 나무뿌리가 땅을 만남과 같은지라 그런고로 우리는 자신할 만한 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알았으니, 이 원만한 사은으로써 신앙의 근원을 삼고 즐거운 일을 당할 때는 감사를 올리며’라고 하여 사은이 처처불상 신앙의 근원임을 나타내고 있다.
1935년(원기20) 4월의 《조선불교혁신론》에서는 조선불교의 폐단을 혁신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① 외방(外方)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② 과거의 불교를 현재와 미래의 불교로, ③ 소수의 불교를 대중의 불교로 지향하자는 것이다.
소태산은 불상의 폐단을 시대에 대한 전망에 근거를 둔다. 그 이유는 인류의 지견 정도에 따라 죄복의 근원처에 대한 설명이 달라지게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등상불을 숭배하는 것이 교화 발전에 혹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인류의 지견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불 자체를 숭배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재래 불공의 비합리성을 지양하고 합리적인 불공의 방식을 밝히고 있다. ‘천지 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인지라 자기가 구하는 바와 짓는 바를 따라서 천지에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각각 불공하는 것이 사실로 죄를 사하고 복을 받는 것이 드러날 것이니’라 했다.
이와 같이 하여 《조선불교혁신론》에서는 과거 불공법을 혁신한 구체적 불공법의 내용이 나타나며 그 근거로서 처처불상의 교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1939년(원기24) 11월 《불법연구회근행법》에서는 마침내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라는 표어가 ‘교리도’에 나타나게 된다. 이어서 1943년(원기28) 3월 발간된 《불교정전》에서는 ‘불공하는 법’이 정식으로 출현했으며 1962년(원기47)의 《정전》에서 ‘불공하는 법’이 정착되었다. 이상의 교리 발달 과정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불교에서는 과거 불교의 공양을 지양하고 진리적이고 사실적인 사사불공법을 밝혀냈으며 그 근거로서 처처불상 신앙을 정립했다.(원불교대사전)
[교리적 근거]
처처불상 교리는 일원상의 진리를 바탕으로 한다. 소태산은 일원상 신앙에 대한 질문에 답한다.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대종경》 교의품4)라고 했다. 이는 천지 만물 허공법계 즉 유형ㆍ무형의 세계 그 자체가 부처 아님이 없으니 이들 부처에게 불공을 잘하여 복락을 구하자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처처불상의 교리가 성립됨에 따라 사사불공의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태산은 “불공하는 법도 불공할 처소와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불공하는 이의 일과 원을 따라 그 불공하는 처소와 부처가 있게 되나니, 이리 된다면 법당과 부처가 없는 곳이 없게 되며”(《대종경》 서품15)라고 하여, 우주만유 자체가 바로 처처불이기 때문에 우주만물 그 자체에 불공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그러한 이치를 부연하여 “일원상의 신앙은 개체신앙이 아니고 전체신앙으로서 곧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전체 한 불성으로써 처처물물이 모두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또는 죄복을 주시는 근본을 잘 알아야 항상 이 우주대성으로서 마음의 귀의처를 삼는다”(《회보》 제38호)고 했다.
타종교인의 원불교의 신(神)의 유무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어디에 따로 계시는 인격적 신은 인정하지 아니하나, 우주를 관통하여 두루 있는 신령한 진리는 인정하나니,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여 우주의 진리를 이용하며 그 위력을 얻자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40)고 답했다. 이는 처처불 신앙이 어떤 인격적 개체신앙이 아니고 우주전체에 대한 신앙과 연결되는 것이며, 따라서 처처불을 통하여 우주불을 깨치는 작업임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의 진리를 직관하고 신앙함에는 근본적으로 본래의 세계와 현실을 구별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일원상의 진리는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사은은 현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일원상의 진리 그 자체가 바로 사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물에서 일원의 근본진리가 나투어 있음을 이해하고 경건함과 정성스러움을 잃지 않는 태도야말로 원불교인의 신앙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신앙행위는 매우 합리적인 현실개척의 태도가 된다 하겠다. 소태산은 종래의 유일신적 신앙이란 천지나 부모나 동포나 법률에게 지은 죄복을 오직 유일 절대자에게 빌었음을 지적하고 이 같은 불합리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합리적 신앙생활을 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즉 “과거의 불공법과 같이 천지에게 당한 죄복도 불상에게 빌고, 부모에게 당한 죄복도 불상에게 빌고, 동포에게 당한 죄복도 불상에게 빌고, 법률에게 당한 죄복도 불상에게만 빌 것이 아니라. 우주 만유는 곧 법신불의 응화신이니, 당하는 곳마다 부처님(處處佛像)이요, 일일이 불공법(事事佛供)이라,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비는 것이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이 될 것이니라”(《정전》 불공법)고 하여 불공의 대상에 대한 합리적 해석을 한다.
또한 불공법에 대하여도 “그 기한에 있어서도 과거와 같이 막연히 한정 없이 할 것이 아니라, 수만 세상 또는 수천 세상을 하여야 성공될 일도 있고, 수백 세상 또는 수십 세상을 하여야 성공될 일도 있고, 한두 세상 또는 수십 년을 하여야 성공될 일도 있고, 수월 수일 또는 한 때만 하여도 성공될 일이 있을 것이니, 그 일의 성질을 따라 적당한 기한으로 불공을 하는 것이 또한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법이 될 것이니라”(《정전》 불공법)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이 불공이 특정한 대상에 향하는 것이 아니라 좁게는 상호간에, 넓게는 나를 포함한 우주만물을 부처로 보는 것에 바탕 하여 합당하고 조화로운 대처를 의미한다.
사사불공의 방법에 대하여 소태산은 잘 요약하고 있다. “천지만물 허공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해야 한다”(《대종경》 교의품4)는 것이다. 이처럼 처처불상 신앙의 실천방법은 사사불공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원리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우주만유는 법신불이라는 하나의 불성에 바탕 한 것이므로 법신불과 일체만유는 둘이 아니어서 ‘만유가 곧 부처’라는 것이다. 둘째, 그러므로 우주만유는 일원상 진리의 지공무사한 인과적 묘리를 구축하고 있어서 우리의 선악간의 지은 바에 따라 죄복을 나타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합당한 지혜로운 대처를 통하여 모든 행위에서 부처의 효용을 나투도록 함으로써 복락을 장만하자는 것이다.
[사사불공의 방법]
처처불상 신앙의 위력은 사사불공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처처불상이 일체처 일체불을 신앙하는 것이라면 사사불공은 그 일체처 일체불에 불공하는 행위를 말하기 때문이다. 사사불공법은 진리불공과 당처불공이라는 신앙방법으로 더욱 구체화된다. 소태산은 “불공하는 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은당처에 직접 올리는 실지불공이요, 둘은 형상 없는 허공법계를 통하여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불공이라, 그대들은 이 두 가지 불공을 때와 곳과 일을 따라 적당히 활용하되 그 원하는 일이 성공되도록까지 정성을 계속하면 시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루지 못할 일은 없으리라”(《대종경》 교의품16)고 말하고 있다.
곧 사사불공의 실천방법으로는 진리불공과 실지불공이 있는데 진리불공은 형상 없는 허공법계를 통하여 법신불에게 올려 법신불의 위력과 가호를 기원하는 신앙생활이고, 실지불공은 당처에 직접 올리는 불공행위로서 현실 속에서 보은하고 작복하는 자기실천의 신앙생활을 말한다. 허공법계를 통하여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불공의 방법은 《정전》의 ‘심고와 기도’에 잘 나타나 있다. 소태산은 우리는 자신할 만한 법신불 사은의 은혜와 위력을 알았으니, 정성된 심고와 기도를 올리면 사은의 위력을 얻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낙 있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밝혀주고 있다.
이 진리불공의 방법인 심고와 기도의 구체적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하나는 형식적인 면으로 묵상심고와 실지기도와 설명기도로 나눌 수 있다. 또한 내용적인 면에서의 기도는 몸과 마음을 재계하고 법신불을 향하여 각기 소원을 세운 후 일체 사념을 제거하고, 선정에 들든지 또는 염불과 송경을 하든지 또는 주문 등을 외어 일심으로 정성을 올려야 함을 말하고 있다(《정전》 심고와 기도). 이러한 심고와 기도를 통해서 진리의 감응과 사은의 위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꾸준히 그 서원을 계속해야 하며, 한 번 고백한 서원에 결코 위반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대종경》 교의품17).
이렇게 해서 얻은 진리불공의 감응과 위력은 바로 실지불공 성공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실지불공은 사은당처에 직접 올리는 불공을 말한다. 곧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비는 것이 사실적인 동시에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법(《정전》 불공하는 법)을 의미한다. 실지불공의 의미는 실상사 노부부의 예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소태산은 어느 노부부가 자기들의 자부가 성질이 불순하고 불효가 막심하여 실상사 부처님께 불공을 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대종경》 교의품15)라고 권유한다.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이다. 이처럼 실지불공은 우주만물이 법신불의 응화신이므로, 불상과 같은 특정 대상이 아닌 죄복의 권능을 지니고 있는 산부처 곧 당처 당처에 실지로 불공을 하는 것이다. 이 당처불공 사상은 처처에 법신불이 존재한다는 범재신론적인 신앙에 근거한 혁신적인 실천설로서 신앙사에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태산은 현실과 유리된 신앙을 현실로 이끌어왔고, 미신적 기복적 신앙행위에서 진리에 바탕 한 사실적이고 실천적인 방향으로 신앙의 도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방법도 막연함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곧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이라는 사은에 대한 피은의 내용을 전제하고 그에 대한 보은조목을 명확히 밝혀 사사불공의 대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자력양성ㆍ지자본위ㆍ타자녀교육ㆍ공도자 숭배라는 사요에 대한 실천조목을 밝힘으로서 실지불공의 구체적 방법의 지평을 사회적으로 넓히고 있다. 한편 실지불공은 상대에 따라 행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이 실지불공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신 부처 곧 자신이라는 당처에 대한 불공이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상대처를 향한 실지불공의 주체자가 바로 서있지 못하다면 그 어떤 불공도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은 자신 불공의 길인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이다. 자기완성의 길인 이 삼학을 통해 자신에 대한 실지불공을 아우를 때 상대처에 따라 행하는 실지불공이 그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원불교대사전)
무상대도[無上大道]
이보다 더 높은 것이 없는 큰 도. 소태산대종사는 불법(佛法)이 ‘무상대도(無上大道)’이며, 그 진리와 방편이 호대하다고 하였다(《정전》 교법의 총설). 다만, 세계의 모든 종교도 그 근본되는 원리는 본래 하나이나, 교파들 사이에 서로 융통을 보지 못한 까닭은 모든 종교와 종파의 근본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는 “이제 그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 중생의 혜ㆍ복(慧福)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이 불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뿐만 아니라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니라”(《대종경》 서품15)고 예언했다.
불법을 주체삼은 이유는 “불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나니라”(《대종경》 서품3)고 했다. 따라서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삼아 일원(一圓)의 진리를 신앙하고 수행의 표본으로 삼아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한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 완전무결한 큰 회상을 이루고자 했다.(원불교대사전)
주교[主敎]
(1) 주장으로 삼는 종교. 대표할만한 가장 으뜸 되는 종교를 의미한다. 소태산대종사는 근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다운 공부를 성취하여 일체중생의 혜ㆍ복(慧福) 두 길을 인도하기로 하면 불법(佛法)으로 주체를 삼아야 할 것이며, 불교는 장차 세계적 주교가 될 것이라 했다(《대종경》 서품15). 정산종사는 한 몸의 주장은 마음이요, 교(敎)가운데 주장은 마음 잘 밝힌 교라, 불법이 마음 법을 가장 잘 밝혀 놓았기 때문에, 불법의 정맥을 올바로 살려낸 회상이 새 세상의 주교가 된다고 했다(《정산종사법어》 도운편13).
(2) 천주교에서 교구를 관할하는 성직자.(원불교대사전)
화피초목 뇌급만방[化被草木 賴及萬方]
덕화(德化)가 사람이나 짐승뿐만 아니라 초목(草木)에까지도 미치며, 어진 덕(德)이 온 세상에 고루 미치게 됨을 뜻하는 말. 부처의 대자대비심이 사람뿐만 아니라 미물 곤충이나 금수 초목에까지 널리 미쳐가고, 시방 삼계 어느 한 곳에도 미치지 않음이 없이 고루 퍼져가는 것. 잘 수행한 사람은 부처와 같은 위대한 인격을 이루며, 그 인격의 덕화가 한없이 널리 미쳐가서 일체 차별이 없고 원만평등한 이상세계를 이루게 된다. 화피초목 뇌급만방은 그러한 인격의 모습과 성취된 이상세계를 가리킨다.(원불교대사전)
불국토[佛國土]
[개요]
이 땅에 부처와 보살이 머물고 있다고 믿는 불토관. 부처와 보살이 이 땅에 머물고 있다고 믿는 불교의 이상향을 나타내는 사상의 하나이다. 석가모니만을 부처라고 인정하는 소승불교와 달리 깨달은 이는 모두 부처라고 인정하는 대승불교에서는 시방(十方)세계에 많은 부처가 있으며, 부처와 보살이 머물며 중생을 구제하는 불국토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정토(淨土)로 부르는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석가정토,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그리고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낙가산(補陀落迦山)정토, 문수보살이 머무는 오대산(五臺山), 법기보살(法起菩薩)이 머무는 금강산(金剛山) 등이 불국토로 상정된 예이다.
[불국토사상의 전개]
중국과 한국에서는 불교수용 이후 이러한 사상을 받아들여, 자신들이 사는 국토에 부처와 보살이 머무르는 곳을 설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교전래 이후의 신라에서 그 뚜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신라의 불국토사상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매우 번성했는데, 이는 신라가 중앙집권적인 정복국가로 진입한 것이 가장 늦고, 재래의 민간 신앙이 강력하게 존재했던 당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라의 불국토사상은 자장(慈藏)과 관련하여 처음 나타난다. 자장이 중국 당나라에 유학했을 때 오대산에서 감응했던 문수보살은 ‘황룡사(皇龍寺)는 석가(釋迦)와 가섭불(迦葉佛)이 강연하던 곳’이라고 말했다.
가섭불은 과거칠불 중의 하나인데, 그를 비롯한 석가불의 자취가 황룡사에 남아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신라에 불교가 수용되던 과정에서 경주 안에 과거불이 있을 때, 가람터가 7개소였다고 하여 본래 부처가 있던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부처와의 인연을 강조하여 불교를 대중화시키는 한편, 고구려ㆍ백제와의 전쟁에 시달리던 신라인들에게 불법(佛法)이 자신들을 보호하리라는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불은 이미 열반에 들었으므로 현실감이 적었다. 자장은 신라의 불교는 결코 새로운 종교가 아니며 신라는 과거세(過去世)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불교와 인연 깊은 이상국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뜻에서 자장은 왕에게 상주(上奏)하여, 백제의 아비지(阿非知)를 초청하여 황룡사에 9층의 거대한 목탑(木塔)을 세웠다. 이것은 일본ㆍ중국ㆍ말갈 등 9개국이 와서 항복하는 것과 삼국 통일을 부처에게 빌기 위한 것이었다. 삼국통일의 염원으로 9층탑을 황룡사에 세운 뜻은, 황룡사는 과거세의 가섭불 설법지이며 현재 범왕(梵王)의 명을 받들어 그의 장자인 호법룡(護法龍)이 인도의 찰제리종(刹帝利種)인 신라 국왕을 가호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국토사상은 한국불교사상의 한 특징으로 계승되어 왔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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