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12 실시품(實示品) 24장
대종사 하루는 한 제자를 크게 꾸짖으시더니 조금 후에 그 제자가 다시 오매 바로 자비하신 성안으로 대하시는지라, 옆에 있던 다른 제자가 그 연유를 묻자오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아까는 그가 끄리고 있는 사심(邪心)을 부수기 위하여 그러하였고, 이제는 그가 돌이킨 정심(正心)을 북돋기 위하여 이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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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邪心]
(邪 간사할 사, 그런가 야, 나머지 여, 느릿할 서, 心 마음 심)
인간의 도리를 벗어난 못된 마음. 대도정법이 아닌 사도(邪道)를 생각하는 마음을 뜻한다. 대도정법은 사도를 지양하고 정도(正道)를 추구하지만 사심은 특히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정심을 벗어나 사행(邪行)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사행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산종사는 도심의 서원을 간직하도록 했다. “서원은 도심이며 정심(正心)이요, 따라서 정행을 나투게 되는 것이나 욕심은 인심이요 사심이라, 결국은 사행을 짓게 되는 것이니라”(《정산종사법설》 공도의 주인). 나아가 사심은 삼독 오욕에 물든 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삼독 오욕에 물들었다고 하는 것은 정심을 잃었다는 뜻이다. 삼독 오욕은 악업으로 이어져 죄업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사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일어나는 탐ㆍ진ㆍ치의 집착을 벗어나야 하고, 불같이 일어나는 오욕을 극복해야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제자들이 사심에 끌리는 것을 경계했다. 하루는 한 제자를 크게 꾸짖으며 조금 후에 그 제자를 자비의 성안으로 대했다. 옆에 있던 다른 제자가 그 연유를 묻자, 소태산은 “아까는 그가 끄리고 있는 사심(邪心)을 부수기 위해 그러했고, 이제는 그가 돌이킨 정심(正心)을 북돋기 위해 이러하노라”(《대종경》 실시품24)고 했다. 사심을 정심으로 돌리는 것이 올바른 공부이므로 정산은 “사납고 악한 마음을 돌려 자비의 마음을 얻게 하옵시며, 삿되고 거짓된 마음을 돌려 바르고 참된 마음을 얻게 하옵시고”(《정산종사법어》 권도편17)라고 심고를 올린다고 했다.
《정전》 ‘법위등급’ 법마상전급에서는 천만경계 중에서 사심을 제거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무관사에 동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사심 제거에 재미를 붙이면 그것은 악업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선업을 쌓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심(邪心)과 사심(私心)이 같이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극복되어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삿된 마음으로서 정심(正心)에 상대되는 개념이라면, 후자는 공심(公心)에 상대되는 것으로서, 정사(正邪)와 공사(公私)의 차별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양연구요론》 제6조 문목에서 “사사(私邪)로 음탕한 일이 있고 보면 중죄라 했으니, 연구할 사”라고 하여 두 개념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또한 정산은 공사와 정사에 관련하여 “한 마음이 일어날 때 공사와 정사를 대조하여 그 마음의 시작부터 공변되고 바르게 하라. ‘바늘구멍으로 소 바람 들어 온다’는 말이 있나니, 한 구석에 삿된 마음이 들어오기만 하면 바로 본원에 반조하여 바른 마음으로 돌려야 후일에 후회가 없으리라”(《정산종사법어》 무본편22)고 했다. 도량에서 깊은 적공이 없으면 타락하게 되며, 많은 죄업을 짓게 되므로 크게 공사와 정사를 대조하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정심[正心]
올바른 마음. 정의로운 마음. 정도(正道)ㆍ정법(正法)을 생각하는 마음. 사심(邪心)에 상대되는 말.(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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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 부수고 정심 북돋기]
<유법원 교무/평화교당>
이 법문에서 대종사님은 한 제자를 크게 꾸짖으시더니 후에 그 제자를 보고 예전의 자비하신 성안으로 대함에 그 연유를 묻자 “전에는 그 제자가 끄리고 있는 사심을 부수기 위함이요, 이제는 그 정심을 북돋기 위함이다”고 말씀하였다.
사심(邪心)이란 삿되고 악한 마음. 잘못되고 바르지 못한 마음. 대도 정법이 아닌 사도를 생각하는 마음을 말하며, 천도교에서는 도를 닦지 아니하여 천심(天心)에 어그러지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또 정심(正心)은 사심에 상대되는 말로 올바른 길, 정당한 도리, 대도정법으로 중생을 불보살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교법으로 정도는 일시적으로는 해로운 것 같으나 결국은 이로워지고, 사도는 일시적으로는 이로운 것 같으나 결국은 해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도인들은 마음을 허공같이 흔적 없이 쓰신다. 대종사님이 “쫓아낼 놈” 하고 야단을 치실 때는 총부 구내가 들썩 들썩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지 잡수실 때는 언제 야단을 쳤냐 싶게 평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형산 법사님과 성산 법사님도 공사를 할 때는 세상 사람보다 더 무섭게 싸우셨는데, 싸우고 나서 식사 하실 때 보면 도란 도란 얘기하며 언제 싸웠냐는 듯 그렇게 다감하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도인들의 심법은 불천노(不遷怒)한다는 것이다.
도인들의 심법은 싸워도 법으로 싸우고 또 그 싸움의 흔적은 마음속에 고여 있지 않고 허공이라는 대해로 흘러서 그때 그때 소멸시켜 버린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어떤가? 우리 중생들은 사소한 감정 대립이나 오해로 부딪치게 되면 말을 하지 않거나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굴을 돌려버리는 오만과 무례를 서슴치 않는다.
또 공부가 덜 된 중생들은 화가 나면 화풀이를 엉뚱한데다 한다.
부부가 싸우면 자식에게 화풀이 하고, 상사에게 당하면 부하 직원에게 화풀이 하고, 고부간에 싸우면 자식 손자가 수난을 당한다. 정산종사님께서는 “성불을 하려거든 파리 기운하고도 막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대종사님께서는 실시품에서 ‘잘못을 엄책하시나 그 사람이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게 하셨다’고 한다. 사심을 부수기 위한 꾸중이요 정심을 북돋기 위한 자비 심법은 곧 부처님의 심법이다. 우리도 그런 심법을 갖도록 노력할 일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듯 원근친소로 고여 있는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것은 증애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앙금이 남아있으면 상대방의 한 행동도 곱게 보이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좋게 들리지 않는다. 내 가까이에 원수처럼 미운 동지가 있다면 그는 정말 업장이 두터운 사람이다. 다투되 법으로 다투고 감정은 그때 그때 허공으로 날려 버리자.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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