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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10 신성품(信誠品)

신성품(信誠品) 17장

대종경(大宗經)

10 신성품(信誠品) 17

제자 가운데 신()을 바치는 뜻으로 손을 끊은 사람이 있는지라, 대종사 크게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몸은 곧 공부와 사업을 하는 데에 없지 못할 자본이어늘 그 중요한 자본을 상하여 신을 표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며, 또는 진정한 신성은 원래 마음에 달린 것이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니, 앞으로는 누구든지 절대로 이러한 일을 하지 말라.] 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지식과 문장이 출중하고 또는 한 때의 특행(特行)으로 여러 사람의 신망이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이 회상의 종통을 잇지 못하는 것이요, 오직 이 공부 이 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血心) 노력한 사람이라야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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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성이 있고 성실함. 오상(五常)의 하나. 신 중 한 가지 덕목으로 우정이 두텁고 친구를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신은 원래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외면적인 일인데 논어에 와서는 이것이 충이 되어 내면적인 성심의 자각이 되었다. 인간으로서 내적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실함 마음을 의미하며 그에 의하여 거짓 없이 언행하는 것이 신이다. 불교에서는 싼스끄리뜨 슈랏다(śraddhā)쁘라사다(prasāda)아디묵띠(adhimukti) 등의 역어로 삼보에 대한 믿음, 곧 종교적 신앙처에 귀의함 또는 부처의 가르침을 믿음으로서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널리 진심의 의미로 쓰인다. 불교의 선요(禪要)에는 참선하는 방법의 세 가지 요긴한 요목으로 대신근(大信根)대분지(大憤志)대의정(大疑情)을 삼요(三要)라 했다 원불교에서는 공부의 요도인 팔조(八條) 중 진행사조의 하나로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할 때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정전팔조)이라고 정의했다. 한편 종교의 기본 요건인 신앙심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여 신앙의 대상을 믿는 마음을 의미하는 신심을 줄인 개념으로도 사용된다.(원불교대사전)

신성[信誠]

믿음에 대한 지극한 정성. 정성스럽게 믿는 마음.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에 대해 정성 다해 믿고 받드는 것. 신성은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된다. 따라서 도가(道家)에서는 스승이 제자를 만날 때, 그의 지식문벌재산용모 같은 것보다는 신성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신성의 깊이와 굳건함은 각종법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신앙정서가 체험되고 법열의 감화가 지속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도가에서 공부인의 신성을 먼저 보는 것은 신()이 곧 법을 담는 그릇이 되고, 모든 의두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되며, 모든 계율을 지키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니, 신이 없는 공부는 마치 죽은 나무에 거름하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결과를 보지 못하나니라. 그러므로 그대들도 먼저 독실한 신을 세워야 자신을 제도하게 될 것이며, 남을 가르치는 데에도 신 없는 사람에게 신심 나게 하는 것이 첫째 가는 공덕이 되나니라”(대종경신성품7)라고 했다.

제자로서 스승에게 법을 구할 때에 제 마음을 다 바치지 아니하거나 정성에 끊임이 있으면 그 법을 오롯이 받지 못하나니라. 옛날에 구정(九鼎)선사는 처음 출가하여 몹시 추운 날 솥을 걸라는 스승의 명을 받고 밤새도록 아홉 번이나 솥을 고쳐 걸고도 마음에 추호의 불평이 없으므로 드디어 구정이라는 호를 받고 중이 되었는데, 그 후 별다른 법문을 듣는 일도 없이 여러 십년 동안 시봉만 하되 스승을 믿고 의지하는 정성이 조금도 쉬지 아니했고, 마침내 스승의 병이 중하매 더욱 정성을 다하여 간병에 전력하다가 홀연히 마음이 열려 자기가 스스로 깨치는 것이 곧 법을 받는 것임을 알았다 하니, 법을 구하는 사람이 이만한 신성이 있어야 그 법을 오롯이 받게 되나니라”(대종경신성품10)라고 했으며, “스승이 제자를 만나매 먼저 그의 신성을 보나니 공부인이 독실한 신심이 있으면 그 법이 건네고 공을 이룰 것이요, 신심이 없으면 그 법이 건네지 못하고 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 그런 즉, 무엇을 일러 신심이라 하는가.

첫째는 스승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비록 천만 사람이 천만 가지로 그 스승을 비방할지라도 거기에 믿음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혹 직접 보는 바에 무슨 의혹되는 점이 있을지라도 거기에 사량심(思量心)을 두지 않는 것이 신이요, 둘째는 스승의 모든 지도에 오직 순종할 따름이요 자기의 주견과 고집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신이요, 셋째는 스승이 혹 과도한 엄교(嚴敎) 중책(重責)을 하며 혹 대중의 앞에 허물을 드러내며 혹 힘에 과한 고역을 시키는 등 어떠한 방법으로 대하더라도 다 달게 받고 조금도 불평이 없는 것이 신이요, 넷째는 스승의 앞에서는 자기의 허물을 도무지 숨기거나 속이지 아니하고 사실로 직고하는 것이 신이니, 이 네 가지가 구비하면 특별한 신심이라, 능히 불조(佛祖)의 법기(法器)를 이루게 되리라”(대종경신성품1)고 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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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의 참 주인은 특행 하지 않는다]

<양지혜 교무/포천교당>

"교화가 왜 이렇게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순교자가 없는 교단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 이 땅에 주름잡고 있는 종교들은 순교자를 앞세워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번성을 하는 것이고 우리 교단은 피 흘려 목숨 바친 순교자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 감응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제법 그럴 듯한 말 같아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산종사는 과거에는 새 회상을 창건할 때에 적지 않은 순교자를 내었으나, 우리의 법은 새 세상의 상생 대도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제자가 달마대사에게 신을 바치는 행위로 자기 팔을 자른 혜가와 같이 자신도 대종사에게 신을 바친다하며 손을 끊은 일이 일어났다.

대종사는 그러한 제자의 행동을 크게 꾸짖었다. 사람의 몸은 공부와 사업을 하는데 없지 못할 가장 중요한 자본인데 그런 자본을 상하여 신심을 나타낸다는 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했다. 또한 진정한 신심이란 마음에 있는 것이지 몸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지식과 문장이 출중하고 또는 한때의 특행으로 여러 사람의 신망이 높아진다 하더라고 그것으로 이회상의 참 주인은 될 수 없다 했다. 오로지 이 공부 이사업에 죽어도 변하지 않을 신성으로 혈심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우리 회상의 참 주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천지의 우로의 덕을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 못하고 세상에 성인의 덕을 범부들은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대종사의 호덕 함을 잘 알고 있다.

대산종사는 조실청소를 마치고 돌아가는 학인들을 보며 "저들의 몸이 저들만의 몸이 아니요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몸임을 알아서 늘 챙기고 보살펴 줘야 한다"고 했다. 만사만리의 근본이 되는 몸을 상해 신을 바쳤다고 해서 그것을 좋아할 스승이 어디있을 것인가.

물론 우리가 영생을 잘 살기로 하면 머리카락 한 올 까지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의 스승을 모시고 살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 당연함에 더 무엇을 증명 받고자 한다는 것은 스승의 본의를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진정한 스승은 내게 신을 보여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다. 한 개인에게 바치는 외적인 행위보다는 인생에 더 큰 영생을 제도 받을 수 있는 공부! 새 세상의 새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한다고 했다.

생활속에서 불법을 실제로 실천하고 활용하는 살아있는 종교의 살아 있는 공부인은 수도와 생활을 아울러 영육을 쌍전하여 온전하게 가정 사회 국가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스승의 서원이고 나의 서원이며 스승의 기도이고 나의 기도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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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靑出於藍]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 푸를 청, : 날 출, : 어조사 어 , : 쪽 람)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성악설(性惡說)을 창시한 순자(荀子)의 사상을 집록한 순자권학편(勸學篇)에 나오는 말이다.

'학문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이 나왔으며, '출람(出藍)'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원래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고 해야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於藍)'는 의미가 갖추어지지만 일반적으로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쓴다.

또 이러한 재주 있는 사람을 '출람지재(出藍之才)'라고 한다.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순자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북조(北朝)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璠)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하였다. 그는 학문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되었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또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뜻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칭찬했다. 우리 속담에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출람지재' '출람지예(出藍之譽)' 등과 함께 '청출어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말이다.(두산백과)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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