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원불교독경/반야심경

반야심경(이해)

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과애 무과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설명]

반야바라밀다심경은 불교의 가장 핵심 교리인 공(空)의 원리를 밝힌 불교 최고의 경전으로 이를 정성으로 외우고 또한 실천하면 모든 고통과 재액을 넘어서 극락생활을 할 수 있다.

반야[般若]

(般 : 가지 반/일반 반, 若 : 반야 야, 같을 약)

분별(分別)이나 망상(妄想)을 떠나 깨달음과 참모습을 환히 아는 지혜(智慧ㆍ知慧). 이 지혜(智慧ㆍ知慧)를 얻어야 성불(成佛)함(한자사전)

(1) 싼스끄리뜨 쁘라즈냐(prajñā)의 음을 딴 말로서 ‘지혜’라 번역됨.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확실히 아는 최상의 지혜. 모든 사물이나 도리를 명확하게 뚫어보는 깊은 통찰력. 범부의 지혜를 식(識)이라 하고, 부처의 지혜를 반야라 한다. 그러므로 반야의 지혜를 얻어야만 성불하게 되고, 반야를 얻는 사람은 곧 부처가 되기 때문에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요 어머니라 한다. 반야는 모든 법의 여실(如實)한 이치에 계합한 평등ㆍ절대ㆍ무념ㆍ무분별의 경지이며, 반드시 상대와 차별을 관조하게 하는 큰 힘을 갖고 있다. 반야의 지혜는 한량없이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에 가득 찬 보물을 얻는 것보다도, 세계를 주름잡는 권세를 가진 것보다 반야의 지혜를 얻는 것이 더 크고 중요한 일이다.

(2) 원불교적으로는 사리연구 공부로써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밝게 아는 지혜.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확실히 깨쳐 밝게 아는 지혜.(원불교대사전)

바라밀[波羅蜜]

(1) 바라밀다와 같은 말. 파라미타(Paramita)의 음사(音寫)로서 완전ㆍ구극(究極)ㆍ최고의 상태라는 뜻. 도피안(到彼岸)의 뜻으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현실의 괴로운 세계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열반의 극락세계로 건너간다는 말.

(2) 대승불교의 실천의 근본이 되는 불보살의 수행을 말한다. 바라밀다를 줄여서 바라밀이라고 하는데,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가기 위한 수행의 방법으로 육바라밀을 말한다.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를 육바라밀이라 한다.(원불교대사전)

도피안[到彼岸]

싼스끄리뜨 파라미따(Pāramitā)의 의역. 생사고해의 바다를 건너서 열반의 이상세계에 도달한다는 뜻. 중생들이 삼독오욕 번뇌망상으로 고통스럽게 사는 세상을 차안(此岸)이라 하고, 불보살들이 생사고락을 해탈하여 열반락을 즐기는 세상을 피안(彼岸)이라 한다. 불교는 고통의 차안에서 열반의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원불교대사전)

열반락[涅槃樂]

열반의 경지에 들어 누리는 즐거움. 열반은 생사의 고해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고 모든 번뇌가 끊어진 경지이기 때문에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하여 열반락이라 한다. 세상의 온갖 즐거움은 모두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지만 열반락은 영원한 것이라, 수행인이 구하는 것은 세간락이 아니라 열반락이다. 정산종사는 “사람이 이 자성의 도를 깨쳐서 자성의 원래를 회복함을 열반이라 하며, 그 자리를 단련하여 언제나 자성을 떠나지 아니하고 극락을 수용함을 일러 열반락을 얻었다 하나니라”(《세전》)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반야는 완전하고 큰 지혜, 곧 부처님의 지혜를 말한다. 싼스끄리뜨 쁘라즈냐빠라미따(prajñā-pāramitā)의 음사.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분별과 집착을 떠난 지혜의 완성.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과 같다. 바라밀다는 열반의 피안에 도달한다는 말이다. 반야의 지혜는 고해의 바다를 능히 헤쳐 열반의 이상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큰 지혜를 말한다. 육바라밀의 여섯 번째인 지혜가 바로 이 반야바라밀이다. 원불교에서는 인과보응의 이치와 불생불멸의 진리를 완전히 깨쳐 생사에 해탈을 얻고, 육도윤회에 자유를 얻으며, 복혜쌍수(福慧雙修)하는 큰 지혜라는 뜻이다.(원불교대사전)

공[空]

[개요]

싼스끄리뜨 수냐(śūnya)의 역어. 무(無)ㆍ공적(空寂)ㆍ공정(空淨)의 뜻이다.

[의미의 형성 및 전개]

우주 만물은 인연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생겨나서 곧 없어지고 마는 것이므로 영원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며, 유(有)에 대한 비유(非有)로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그러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체(自體)ㆍ실체ㆍ아(我)가 없다는 것이다. 무(無) 또는 허무와는 그 의미가 다른 실상(實相)의 의미이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 텅 비어 있는 것의 의미이지만 불교에서 그런 의미로 공을 사용하는 예는 드물다. 원시불교에서는 모든 개체적 존재의 실체가 공(空)하다는 의미에서 연기(緣起)의 원리가 성립되었는데 의미적으로 보면 연기와 공의 원리는 상통한다.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말한다. 아공은 자아(自我)의 실체를 공이라 한 것이요, 법공은 제법(諸法)이 다만 인연(因緣)에 의하여 존재할 뿐 그 항존 불변하는 자성(自性)은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아공ㆍ법공의 이공설(二空說)에 대하여 아공ㆍ법공ㆍ구공(俱空)의 삼공설(三空說) 등이 있다. 특히 이 공사상을 강조한 학파는 용수(龍樹)를 위시한 중관파(中觀派)이다.

《중론》 관사제품(觀四諦品)에 의하면 “모든 인연으로 생기는 법을 나는 곧 무(無)라고 하고 또한 가명(仮名)이라고 하며 중도의 뜻이라고 하느니라. 인연으로 생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나니라. 그러므로 일체의 사물은 공 아님이 없나니라(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未曾有一法 不從囚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고 하여 인연에 의하여 생겨진 모든 존재는 그 실체가 공한 것이기 때문에 일체 법은 공하지 아니함이 없다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는 ‘낳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고 하여 일체 상대적 상황을 초월한 경지를 공이라 하고, 또는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色卽是空 空卽是色)’ 하여 제법실상의 의미로도 본다. 유식계(唯識系)에서는 유와 공을 초월해서 아우른 중도(中道)의 의미로도 보며, 천태와 화엄사상에서는 제법실상의 의미로 보며, 선종에서는 주체적 실천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의미지운다.

[원불교에서의 의미]

원불교에서는 일원상 진리의 한 측면이다. 일원상의 진리를 공ㆍ원ㆍ정(空ㆍ圓ㆍ正)으로 표현할 때, 유무초월한 자리를 보는 것,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를 아는 것, 모든 일에 무념 행을 하는 것을 공이라 한다. 소태산대종사는 ‘게송(偈頌)’에서 유(有)와 무(無), 곧 변(變)과 불변(不變)을 초월하면서 둘이 아닌 경지를 구공(俱空)이라 표현하여 불이문(不二門)을 공이라 했으며,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언어도단의 입정처(入定處), 곧 언어도가 끊어지고 심행처(心行處)가 끊어진 경지이면서 유무초월의 생사문(生死門), 곧 유와 무를 초월하고 불변과 변화의 작용을 나타낼 수 있는 경지를 공이라 표현했다.

‘일원상의 진리’에서는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고 생멸거래(生滅去來)에 변함이 없고 선악업보(善惡業報)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경지를 공이라 의미지었다. 또한 일원(一圓)의 진리를 요약하여 공과 원과 정이라 표현하고, 양성(養性)에 있어서는 유무초월한 자리를 관(觀)하는 것이 공이며, 견성(見性)에 있어서는 일원의 진리가 철저하여 언어의 도가 끊어지고 심행처가 없는 자리를 아는 것이 공이며, 솔성(率性)에 있어서는 모든 일에 무념행(無念行)을 하는 것이 공이라 했다(《대종경》 교의품7). 정산종사는 “일원상의 원리는 모든 상대가 끊어져서 말로써 가히 이르지 못하며 사량으로써 가히 계교하지 못하며 명상(名相)으로써 가히 형용하지 못할지라 이는 곧 일원의 진공체(眞空體)요”(《정산종사법어》 원리편2)라 했다.(원불교대사전)

★-THE END-

'원불교독경 > 반야심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야심경(개요)  (0) 2014.11.04
반야바라밀다심경(본문)  (0) 201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