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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大宗經)/제7 성리품(性理品)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8장

<20190902 월요일>

 

대종경(大宗經) 제7 성리품(性理品) 8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솔성(率性)이라 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소유인 것을 알았으나

전일에 잃어버리고 지내는 동안

모두 다른 사람에게 빼앗긴 바 되었는지라

여러모로 주선하여 그 잃었던 권리를

회복함과 같나니라.]

 

{대종경} 제7 성리품 8장

우리 모두는 거부장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 한국을 방문했다. 국빈급 환영과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을 하고 교황이 염원했던바, 한국에서 만든 소형차를 타고 세월호 유족을 위로했다. 교황은 가는 곳마다 낮은 곳에 임하며 대중들의 환영 속에 오고갔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언론을 통해 지켜봤다. 동시에 세월이 흘러 우리 교단이 세계주세교단이 된다면 우리 종법사는 타국을 방문할 때 어떤 메시지로 어떤 법문을 하게 될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출가 전에 만덕산 동선을 나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법문은 성품의 평등함이었다. 즉 ‘네가 곧 부처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네가 곧 거부장자라는 말씀과 하나이다.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고 육도윤회를 자유자재할 수 있다는 법문에 천지가 새롭게 보이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어 출가를 했다.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탈무드〉에 ‘가난한 자를 도우려거든 빵을 주지 말고 빵 굽는 기술을 가르쳐주라’는 유명한 글귀가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온 천지를 진동하며 약자를 보듬는 행보는 낮은 곳에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면, ‘네가 부처’라는 대종사의 말씀은 자력을 세우게 하는 빵 굽는 기술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인물 100위 안에도 대종사는 들지 못했다. 이처럼 너무 위대하신 분은 당대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세인의 눈높이에 들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견성은 거부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되는 충격이다. 거부장자란 남에게 양보할 수 없는 절대의 세계를 품에 안은 심경이며 끌리고 착된 상대적인 세계에서 착을 여읜 자유로운 세계의 시작이다. 그래서 거부장자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무위이화 자동적인 대기의 흐름을 타게 된다.

〈수심결〉에서 보조국사께서 “오늘도 헌거롭게 임의로 운전하고 내일에도 헌거롭게 임의로 운전하여 모든 인연을 따라 순하되 막히고 걸림이 없다”라고 표현한 구절은 이를 잘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솔성 또한 이와 같은 거부장자의 무위이화 흐름의 결과이다. 아침에 해가 뜨면 저녁이면 지게 되듯이, 견성은 시간이 지나고 날이 오래되면 이어지는 연속선상이 솔성이다. 마치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듯이, 견성이 아이라면 솔성은 다자란 어른과 같다.

대산종사께서 “견성이란 우리가 저 산봉우리를 본 것에 불과함을 알아서 정상을 향해 오르되 거기에 머물지 말고 다시 내려와 사람들과 더불어 흔적 없이 살 줄 알아야 하느니라”라고 솔성의 표준을 제시해 주었다. 견성에 이어 솔성에 이르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방심하지 않고 대적공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이해가 된다.

망망대해와 같은 영생의 시공 속에 이렇게 희미하지 않고 삼각산 인수봉처럼 우뚝하게 분명하게 공부길을 제시해 주는 스승이 있다는 것, 우리는 너무나 복 받은 교도들이다. 대종사의 은혜가 크고 커서 영생에 잊을 수 없는 대은을 입었다는 대산종사의 법문이 이제 우리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원기100년대를 맞이하는 요즘에 우리는 좀 더 분발해야겠다.

<기흥교당 / 조법전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