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圓佛敎)/소태산 대종사

18. 옥녀봉 아래에 도실을 세우다

원재(Aid Perfection) 2014. 8. 6. 22:43

18. 옥녀봉 아래에 도실을 세우다

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1578호] 2011년 07월 29일 (금) 서문성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원기3년 음력 10월에 옥녀봉 아래 조합실(組合室) 건축을 착수하여 12월에 이를 준공했다.
소태산대종사는 1916년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저축조합을 창설하였으나 조합원의 집회 장소가 일정하지 못했다. 처음은 돛드레미(帆縣洞)에 있는 이씨제각 방 한 칸을 빌려 썼고, 방언공사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방언공사 현장 옆에 있는 강변주점을 임시 방언관리소로 정하여 사용했다.

두 곳 다 방언관리소로는 좁고 여러가지 행사에 자유롭지 못하여 대단히 불편하여 조합실 건축이 절실히 요구되어 옥녀봉 아래에 터를 고르고 건축을 시작했다.

조합원 등이 일변은 방언공사에 종사하고 일변은 조합실 짓는 일에 종사하여 산에 올라 나무를 베고 땅을 녹여 흙을 이겨서 골바람과 눈보라를 무릅쓰고 5칸 겹집 1동과 아래채 4칸을 완공했다. 이것이 새 회상에 있어서 처음 건설된 회실(會室, 道室)이다.

소태산대종사는 그 회실 상량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梭圓機日月織春秋法侶;두렷한 기틀을 해와 달이 북질해서 봄가을의 법을 짜며, 솔은 일만 나무의 남은 봄을 거두어 서 있고)'라 하고, 또 그 아래에 쓰기를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松收萬木餘春立溪合千峰細雨鳴; 개울물은 일천 봉우리의 가랑비를 합하여 소리치며 흐른다)'이라 썼다.

 

▲ 구간도실터 옛 모습.

 

후에 정산종사께 한 제자가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의 뜻을 여쭈자 "두렷한 기틀에 일월이 북질하여 춘추법려를 짜낸다는 것인데 여기 두렷한 기틀은 천지 우주요, 일월은 해와 달이다. 춘추법려는 우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이 우주에 일월이 왕래하여 사시가 짜여져 간다는 의미와 아울러 그를 본받아 성현이 인간의 법도를 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봄에는 봄의 법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의 법이 있다. 송수만목여춘립은 진리는 상주불멸이라는 뜻이요, 계합천봉세우명은 진리의 만법귀일을 의미한 것이다"라고 했다.

 

▲ 구산도실터 현재 모습.


5칸 겹집은 별로 크지도 않은 초가집에 대청과 방을 여덟 칸씩이나 들여놓은 작은 방으로 밀창을 트면 4칸이 한 방이 되었다. 그래서 아홉 단원들의 모임방이라서 회집실(會集室) 또는 '회실'이라 하였고, 소태산대종사가 공부를 가르쳐주는 곳이라서 '교실(敎室)'이라고도 했다. 또 도(道) 공부를 하고 기도하는 집이라 하여 '도실(道室)'이라고 이름 했다.

소태산대종사는 이 조합실 기둥에 '대명국영성소좌우통달만물건판양생소(大明局靈性巢左右通達萬物建判養生所; 크게 밝은 판국인 영성의 집이며 만사 만물을 좌우통달하게 판별하고 양생하는 곳이다)'라는 글귀를 써 붙여 이 집의 이름으로 삼았다.

조합실은 조합원들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교실로, 열흘마다 한 달에 세 번 보는 예회 날(三旬例會)에 모여 계문을 대조하고 단장인 소태산대종사의 법설을 듣는 예회실로 활용했다.

원기8년 소태산대종사의 모친 열반에 모인 제자들은 대중들이 모이기 좋은 곳으로 첫 도실을 옮기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돛드레미 옆 산기슭에 3개월여 동안 옥녀봉 아래 도실 5칸 겹집을 옮겨짓고, 좌우에는 학원실과 식당채로 8칸 2동을 완공하여 이름을 '영산원(靈山院)'이라 했다. 그 당시 도실을 옮겨 지으며 아래채 4칸은 어떤 형태로 변화를 가져왔는지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