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圓佛敎)/소태산 대종사

13. 〈법의대전〉저술하고 소화하다

원재(Aid Perfection) 2014. 8. 6. 15:40

13. 〈법의대전〉저술하고 소화하다

서문성 교무의 '소태산대종사 생애 60가지 이야기'

 

[1572호] 2011년 06월 17일 (금) 서문성 교무 webmaster@wonnews.co.kr

 

 

▲ 소태산대종사의 가사집인 '회성곡' 표지.

 

소태산대종사는 대각을 이룬 후 원기 2년 부터 많은 가사와 한시를 읊어 김광선으로 하여금 기록하게 했다.
김광선은 자신이 문중의 대동보(大同譜, 족보)를 수찬할 정도의 실력이므로 소태산대종사가 아무리 진리를 깨달았다 해도 한문 실력만큼은 자신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소태산대종사는 김광선이 한문만 숭상하여 그에 구애됨을 알고 모른체 하며 물었다.
"돌아오는 세상에 교법을 제정하려면 한문으로 경전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광선은 의아하게 여겨 내심으로 생각했다.

 

'당신님(소태산대종사)은 어려서 부터 진리 공부에 발심하여 한학에는 뜻이 없었고, 실제 배운 기간은 2년 정도여서 아는 바가 별로 없을 터인데, 어떻게 교법을 제정하려는고?'

김광선이 대답하지 않고 있음을 보고 소태산대종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붓대 한번 잡아보시오."
"그러지요."
"내가 지금 한문으로 교법을 불러낼 것이니 즉시 받아 쓰시오."

소태산대종사는 즉석에서 수많은 한시를 연속하여 불렀다. 김광선은 서슴없이 붓끝에 먹물을 듬뿍 묻혀 불러주는 한시를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벼루에 다시 먹물을 묻히지 못하고 쩔쩔맸다. 그 까닭은 소태산대종사가 부르는 글을 알 수 없어 도저히 받아 적을 수 없었다.

김광선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자 소태산대종사가 글을 알려준 후 말했다.

"도덕은 문자 여하에 매인 것이 아닙니다. 이제 한문에 얽매이는 생각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앞으로는 모든 경전을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편찬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 한글이 세계의 명문이 되는 동시에 우리말로 편찬한 경전을 세계 사람들이 서로 번역하여 배우는 날이 멀지 않습니다. 다시 어려운 한문을 숭상하지 마십시오."

소태산대종사는 그러나 제자들의 근기에 맞추어 많은 한시를 읊어 김광선이 받아 적었다. 이렇게 엮어진 한시 편편이 9백여 수에 달했다.

또 '탄식가' '경축가' '권도가' '전반세계가' '몽각가' '백일소' '심적편' '감응편' 등의 가사를 지었다. 그 많은 한시와 가사들을 묶어 〈법의대전(法義大全)〉이라 했다.

제자들은 이 〈법의대전〉의 한시와 가사들을 읽고 외우며 재미를 붙여 신심이 깊어졌다. 그 중 '경축가'는 법인기도 당시 9인에게 많이 외우게 했다.
〈법의대전〉의 내용은 도덕의 정맥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며, 세계의 대세가 역수가 지나면 순수가 올 것이며, 장차 새 회상 건설의 계획 등 을 밝힌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원기4년 영산에서 변산으로 입산하여 원기5년 음력 3월 실상초당에서 장편 가사인 '회성곡'을 지었다.


그 후 4월에 교리의 강령인 사은사요와 삼강령 팔조목을 발표하고 영산으로 돌아와 김광선을 불러 말했다.

"지난번에 쓴 그 한시를 모두 다 불살라 버리시오. 비록 한 때의 발심에 도움은 될지언정 많은 사람을 제도할 보편적 교과서는 아니오.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또 평범한 대경대법이 아니니, 앞으로는 더욱 쉬운 한글로 경전을 편찬해야만 일반 대중이 널리 배울 수 있을 것이오."

이렇게 〈법의대전〉은 모두 불살라졌으나 서문 첫 절과 한시 열한 귀와 그 외 몇 귀의 한시가 구송으로 전해지고, 가사들 중에는 '탄식가' '경축가' '권도가' '전반세계가' '회성곡' '몽각가' '감응편' 등과 익산총부 건설 후 전주의 김동순 교도가 열반하자 만장용으로 지은 '만장'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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