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Aid Perfection) 2014. 8. 15. 11:38

표어(標語)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

동정일여 영육쌍전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

 

處處佛像 事事佛供

無時禪 無處禪

動靜一如 靈肉雙全

佛法是生活 生活是佛法

표어(標語)

⑴ 주의·주장·강령 등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나타낸 짧은 어귀(語句). 원불교 사상을 단적으로 나타낸 표어에 개교표어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가 있다. 또 교리표어로 「처처불상 사사불공」·「무시선 무처선」·「동정일여 영육쌍전」·「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 등이 있다.

⑵ 사회나 집단에 대하여 어떤 의견이나 주장을 강력히 호소하거나 철저히 주지시키기 위하여 그 내용을 간결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짧은 말. 불조심 표어·교통안전 표어 등.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원불교 교리표어의 하나. 이 세상 모든 사람, 또는 우주 만물이 다 부처님이므로, 모든 일에 부처님께 불공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고 엄숙하게 살아가자는 뜻이다.

불상(佛像)은 부처님의 형상이다.

나무·돌·쇠·흙·구리 등으로 만든 등상불을 불상이라 한다.

등상불은 서가모니불이 입적한 후에 제자들이 부처님을 닮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이를 숭배하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처님의 교법과 마음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라 등상불을 신앙의 대상으로 숭배하게 되어 미신신앙과 형식불공으로 흐르고 기복불교로 빠지게 된 것이다.

등상불신앙은 편벽된 신앙이요 지혜가 크게 열리지 못한 사람들의 신앙이다.

등상불이 부처님이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인 줄을 아는 것이 마음이 열린 사람이다.

우주 대자연은 부처님의 조화요 부처님은 어느 곳 어느 때나 계신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는 부처님의 음악이요, 산과 들에 피어나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은 부처님의 즐거운 웃음소리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한 개까지도 다 부처님의 형상이다. 집을 지키는 개나 짐을 끄는 소도 부처님이요, 일하는 농부와 물건 파는 장사꾼도 다 부처님이다.

불공은 부처님을 숭배하고 복을 비는 일이다.

지혜의 눈이 열린 사람은 세상 만물이 다 부처님인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처처불상이다. 처처불상인 것을 알기 때문에 등상불에게만 불공하고 복을 빌지 않는다.

삼라만상을 다 부처님으로 알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당하는 일마다 불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사불공이다. 곳곳이 부처님이라 일마다 불공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은 마음이 열린 사람의 생활이요 진정한 수행인의 생활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항상 부처님을 발견하여 걸음걸음이 불공하듯 살아가면, 나날이 새로워지는 생활이요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며, 혜복을 아울러 닦아 가는 생활이 되는 것이다.

어릴 때 연필 한 자루 훔친 마음이 자라나서 뒷날 도둑질을 하게 되면, 연필 부처님에게 불공을 잘못 한 죄로 벌을 받게 된 것이다.

어릴 때 풀 한 포기라도 사랑하는 마음이 차츰 커져서 뒷날 사람들을 널리 사랑할 줄을 알게되면 풀 부처님에게 불공을 잘 한 결과로 복을 받게 된 것이다.

부처님을 멀리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다 부처님으로 알아서 공경하고 불공하면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부처님이요 자식에게는 부모가 부처님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 부처님에게 불공 잘 하는 것보다 더 큰 불공이 없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 부처님에게 불공 잘 하는 것보다 더 큰 불공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큰 부자라 할지라도 자가용 운전기사 부처님이나 파출부 부처님에게도 불공을 잘 하는 것이 더욱 큰복을 받게 되는 길인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며, 제일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며, 제일 중요한 시간은 지금 바로 그 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일하고 놀고, 가고 오고, 말하고 먹는 것 모두가 불공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떠나서 모두 다 부처님이라 불공하듯이 공경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경우에 있어서도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알아서 처처불상을 발견하여 사사불공의 생활을 하게되는 것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우주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

어느 한 물건도 미워하거나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우주 만물이 모두 다 부처님이라 공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상생상화의 기운이 자라게 되고 상생선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투쟁·대립·전쟁이 없어서 언제나 평화로운 것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은 경건한 생활이다.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언어 동작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윤리 도덕의 타락이 없다. 경건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은 모든 미덕의 근본이 된다.

경건하고 신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이다.

부처님 앞에서의 생활이라 모두가 기도생활인 것이다. 따라서 무시선 무처선으로 수행 정진하게 되는 것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생활이다.

이 세상의 모든 거짓 중에서 가장 큰 거짓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서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혜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크게 트인 사람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정신으로 우주 만물을 사랑하게 된다.

경건한 생활 기도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시선 무처선으로 수행 정진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부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무시선무처선(無時禪無處禪)

원불교에서 강조하는 생활 속의 선 수행법.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선 수행을 계속하는 생활. 선 수행의 길은 철저한 고독과 투쟁의 세계이다.

병든 사회와 욕심에 물든 세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결코 속진(俗塵)에 물들지 않고, 살을 저미고, 뼈를 깎고, 피를 토하는 고독·방황·고통·자신과의 투쟁을 거쳐야 비로소 툭 트인 선의 세계가 전개된다.

서가모니불의 6년 설산고행, 달마대사의 면벽 9년, 그리고 수많은 선승들의 온갖 인연을 끊어버리고 세상일을 다 쉬어버린(諸緣放捨 萬事休息) 수행은 바로 선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다. 선이란 뼈를 깎고 피를 토하며 살을 저미는 구도자를 위하여 숨어 있는 절해고도의 보물섬이다. 그러나 선은 사회생활로부터 초연하여 개인적이고 고고(孤高)한 수행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선의 본질은 깨달음의 체험이요, 일상생활 그 자체이며, 일체행위 그 자체가 바로 선이다.

다시 말하면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며,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이다.

행·주·좌·와·어·묵·동·정 그대로가 선이요, 가장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행동철학이다.

인간의 마음은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미국에도 가고 소련에도 가며, 달나라에도 갔다가 별나라에도 갔다가 한다.

잠깐 사이에 극락에도 가고 지옥에도 간다. 궁궐을 짓기도 하고 허물어 버리기도 한다.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중생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변화 무상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아무리 우주선이나 빛의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인간의 마음처럼 빠르지는 못하다.

선이란 천만가지로 흩어지는 마음을 하나로 집중 통일시키는 것이다.

온갖 욕심으로 뜨겁게 불타는 마음을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고요하게 하는 것이다.

천만 경계 속에서 온갖 때가 끼이고 혼란해지는 마음을 맑은 거울이나 푸른 하늘처럼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선수행을 통해서 통일된 마음, 깨끗한 마음, 맑은 마음, 고요한 마음을 얻지 못하면 원하는 일을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학생이 공부할 때 일심이 못되고 잡념에 사로잡힌다면 공부를 잘할 수 없다.

운전기사가 마음속에 어지러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교통사고를 일으키기 쉽다.

정치가가 깨끗한 마음으로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당리당략에 빠지기 쉽다. 공직자가 맑은 마음이 아니면 부정·부패·비리를 저지르기 쉽다.

예술가가 고요한 마음이 아니면 훌륭한 예술품을 창작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선수행은 모든 사람에게 다 필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와 같이 복잡 다양한 시대일수록 선수행은 더욱 필요한 것이다.

현대사회의 무질서와 혼란, 향락주의와 쾌락주의,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윤리 도덕의 타락 등은 선수행의 부족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현대사회는 무척 바쁘고 다양하다.

일정한 시간, 일정한 장소에서 선수행을 계속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선수행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곧 생활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생활선이란 일상생활 속에서 육근동작 그대로가 선수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무시선 무처선의 일상생활은

① 쉬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경계에 끌려 다니는 마음을 쉬고, 다투고 싸우는 마음을 쉬어 평화롭고 한가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② 그치는 마음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청정한 마음으로 온갖 죄업 짓기를 그치는 것이다.

③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일에 은혜를 발견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보은 감사생활로 보람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④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참된 아름다움은 그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예술품 앞에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⑤ 검소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할지언정 사치스럽고 향락을 추구하는 생활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⑥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수용에 넉넉하다는 마음을 가져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⑦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화합하는 마음으로 상생선연을 맺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면 무시선 무처선의 수행이 잘되어, 원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고, 내 마음이 깨끗해지면, 평화주의자가 되고, 진리에 대한 바른 판단력이 생겨나며,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사회정의를 실천하며, 이상사회·평화세계를 건설해가게 되는 것이다.

무시선 무처선을 동정(動靜)간 불리선(不離禪)이라고도 하는데, 동정간에 항상 선수행을 놓지 않는다는 뜻이다.

육근에 일이 있으면 정의를 실천하고, 육근에 일이 없으면 일심(一心)을 키우는것이 동정간 불리선의 생활이다.

그런데 무시선 무처선의 생활은 깨달음의 검증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깨달음이 있어야 선수행의 바른 길을 찾을 수 있고, 선수행의 바른 길을 알아야 비로소 무시선 무처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선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선수행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동정일여 영육쌍전(動靜一如 靈肉雙全)

원불교 교리표어의 하나. 보통 「동정일여 영육쌍전」이라고 표현하지만, 여기서는 동정일여만 설명하고 영육쌍전은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동정일여란? 육근에 일이 있을 때에는 사심잡념·번뇌망상·삼독오욕을 버리고 청정일심이 되어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일여(一如)란 참 마음, 곧 삼매의 마음으로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고, 도(道)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인간의 생활이란 동할 때에는 욕심을 부리고 투쟁하기에 바쁘고, 정할 때에는 번뇌망상·사심잡념에 사로 잡히거나 허무적멸에 빠지기 쉽다.

대개의 사람들은 세속생활을 하다보면 동에 치우치기 쉽고, 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정에 치우치기 쉽다.

동정일여의 정신은 종교 수행이 자칫 정에 치우치기 쉬운 폐단을 극복하고 동과 정의 조화 일치를 이루려는 것이다. 정중정(靜中靜)의 생활태도를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생활태도로 바꾸어 나가려는 것이다.

동양적인 적정(寂靜)과 서양적인 분방(奔放)이 서로 만나 일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동정일여의 생활태도이다. 동정일여는 동정간에 참 마음, 곧 청정자성을 잠시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동과 정은 하나의 진리에 대한 표리 관계의 설명이다.

진리를 체와 용으로 구별해 볼 때, 체를 정이라 하고 용을 동이라 한다.

그러므로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아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마음을 작용하면,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아 육근의 동과 정이 모두 다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된다.

이가 곧 동정일여의 경지요, 동정간 불리선이며, 동정상안이 된다.

이는 곧 무시선 무처선의 수행이요,

이러한 수행을 한 사람은 생각 생각이 보리심이요 가는 곳마다 극락이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이 세상 무슨 일이나 하는 일마다 주인이 되며, 그가 사는 곳은 어디나 다 성지(聖地)가 된다.

영육쌍전(靈肉雙全)

교리표어의 하나. 인간의 정신과 육신을 아울러서 건전하고 튼튼하게, 조화있고 균형있게 발전시켜 가는 것.

정신생활과 물질생활, 정신과 육신, 이상과 현실의 조화 발전으로 영육일치의 생활을 하는 것.

육체에 대해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나, 영혼보다 육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영혼과 육체의 균형있는 조화 발전을 가져오기 어렵다.

인간은 정신과 육신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리 정신이 아름답더라도 육체가 병든 사람은 세상을 위해 크게 공헌하거나 가치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마찬가지로 육체가 아무리 건강하더라도 정신이 병들고 타락한 사람은 세상에 해독을 끼치기가 쉽고 스스로도 불행해지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정신에 건강한 육체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가치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건전한 정신과,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아울러 갖추어 정신과 육체가 조화있게 발달한 바람직한 인간이 되는 것이 영육쌍전의 생활이다.

영육쌍전의 생활을 몇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① 삼학 수행으로써 진리를 깨쳐 건전한 정신으로 영혼을 구제하고, 의·식·주의 풍요한 생활로써 생명을 유지하고 튼튼한 몸을 가져, 심신을 아울러 조화있게 발전시킨다.

② 수도생활과 현실생활, 지혜와 복, 내생과 현세,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다.

③ 도학과 과학, 공부와 사업, 이(理)와 사(事)를 병행한다.

④ 이성과 감성, 지성과 야성, 문명과 야만, 법신불과 화신불, 정치와 종교의 병행·조화를 가져온다.

⑤ 수양과 노동, 진리와 기술, 이론과 실천의 병행·조화를 가져온다.

이렇게 볼 때 영육쌍전은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며, 국가와 사회에 더욱 필요하고 유익한 인물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정신적인 것은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육체적인 것은 정신적 가치의 바탕 위에서만 정당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영육쌍전의 생활은 올바른 가치관과 정당한 방향감각을 갖고 진리를 추구하는 생활이다.

진리의 깨달음 위에 정의와 선(善)을 행동적으로 실천하며 보람된 삶을 찾고 완성된 인격을 발전시켜 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사회개혁·인간개혁을 이루어 발전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해 가는 것이다.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佛法是生活 生活是佛法)

원불교 교리표어의 하나.

불법의 가르침에 따라 현실생활을 더욱 발전시켜가고, 일상생활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깨쳐 가자는 것.

불법의 진리와 일상생활을 나누어 보지말고 하나로 일치 조화시켜 가자는 것.

이는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의지를 강력히 표현한 것이다.

종교수행과 일상생활이 하나로 균형 조화를 이룰 때 인간은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고 찬란한 도덕문화를 꽃피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상생활을 외면한 종교는 건전하게 발전하기 어렵고, 종교 수행을 무시한 일상생활은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쉽다.

현대사회의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윤리 도덕의 타락은 일상생활 속에서 종교수행을 게을리한 결과요, 종교가 현실 개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생활종교가 되지못한 결과이다.

현실생활을 개선 발전시키고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종교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종교수행을 위하여 현실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교당이나 종교인의 가슴 속에서만 종교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길거리를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또는 복잡한 시장바닥이나 시끄러운 노동현장 속에서도 종교정신은 살아서 꿈틀거려야 하는 것이다.

종교인은 생산적이고 활동적인 생활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하고, 행동적·실천적 현실참여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현실생활에 더욱 적극적이고 충실해야 하며, 종교인이기 때문에 사회에 성실히 봉사하는 유능하고 행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종교는 생활을 떠난 것이 아니라 종교가 곧 생활이 되어야 하며 생활이 곧 종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이나 사찰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갇혀있는 종교는 대중의 종교가 되기도 어렵고 현실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도 어려운 것이다.

종교는 생활을 더욱 아릅답고 풍요하게 향상시켜 주어야 하고, 보람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생활은 종교정신을 바탕하고 내용으로 할 때 비로소 참된 가치를 나타낼 수 있고, 종교는 현실생활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종교 본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은 종교의 생활화인 동시에 생활의 종교화인 것이다. 이는 결코 불법을 세속생활로 끌어내리고 타락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종교의 타락현상은 결코 불법의 생활화가 아니라 병든 종교, 타락한 종교의 추악한 모습일 뿐이다.

세속생활을 불법의 심오하고 가치있는 경지로 까지 끌어 올리고 향상 발전시키자는 것이 불법의 생활화인 것이다.

세속의 부정·부패·부조리에 물들거나 영합하지 않고 종교정신을 일상생활에 그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종교의 진리를 참으로 터득한 사람은 혼자서 편안하고 고고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장바닥에 섞여서 대중과 함께 숨쉬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육근동작은 언제나 종교의 진리를 그대로 체험하고 실천하고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의 정신으로 불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표방하면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였다.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사은 신앙과 삼학 수행으로 모든 종교의 진리를 융통·활용하였다.

이는 하나의 인류, 하나의 세계, 하나의 진리를 지향하는 것이다.

모든 경전과 교서를 대중이 쉽게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평이 간명하게 편찬하였다.

종교경전 일수록 어렵지 않고 쉽게 편찬해야 일반 대중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교당은 교도가 많은 곳에 설치하고 남녀 교역자를 두루 양성하여 원활한 교화를 도모하였다.

일상생활 속에서 누구나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교도들이 많이 사는 곳에 교당을 설립하였다.

모든 신자는 정당한 직업을 가져 자력생활을 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적극 참여하며, 영혼구제에만 치우치지 않고 정신생활과 육신생활의 조화 발전을 가져오도록 하였다.

특히 남녀 교역자를 두루 양성하고 똑같은 자격으로 남녀 대중을 원만히 교화할 수 있게 하였고, 남녀평등을 실현하였다.

종교정신으로 직업을 가져 개인의 이익추구보다 공익사업과 봉사활동에 힘쓰도록 하였다.

의식과 예법을 간편과 내실을 위주로 하여 시대에 적응하고 대중이 실천할 수 있도록 개혁하였다. 형식적이고 낭비적인 의식이나 예법을 실질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출가 교역자에게도 결혼 문제를 각자의 자율적인 뜻으로 결정하게 하였고, 교단의 운영에도 재가 출가가 함께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은 종교시생활 생활시종교를 강조한 것이며, 미래지향적인 종교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