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제6 변의품(辨疑品)

제6 변의품(辨疑品) 3장

원재(Aid Perfection) 2014. 10. 19. 22:39

대종경(大宗經)

6 변의품(辨疑品) 3

한 사람이 대종사께 여쭙기를 [동양 학설에는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한다 하고, 서양 학설에는 땅은 동하고 하늘이 정한다 하여, 두 말이 서로 분분하오니 청컨대 한 말씀으로 이를 판단하여 주옵소서.]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이 학설들이 난 지가 이미 오래되고, 이론이 또한 많으나, 의 소견을 간단히 말하자면 하늘과 땅은 원래 둘이 아닌지라 그 동과 정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여, 동하는 것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다 동하고 정하는 것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다 정하나니라. 이것이 비유하건대 한 사람의 기운과 형체가 그 동·정을 서로 같이 하는 것 같나니, 하늘의 기운과 땅의 바탕이 서로 연하여 끊임 없이 순환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나니라. 그러나, 주와 종으로 논하자면 기운은 주가 되고 바탕은 종이 되어 기운이 행함에 바탕이 따르게 되나니 이것이 곧 만고에 바꾸지 못할 원리이니라.]

[하늘이 동하고 땅이 정하는가, 땅이 동하고 하늘이 정하는가.]

<정현인 교무>

동양학설에서는 하늘은 동하고 땅은 정한다 하였고, 서양 학설에서는 땅은 동하고 하늘은 정한다 한 것에 대하여 묻는 제자에게 대종사 답하셨다.

동하는 것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다 동하고, 정하는 것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다 정하다.”

서양의 기독교 전통에서 이단시 되었던 지동설을 주장하던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고 재판장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을 한 사실은 아직도 유명하다.

하늘의 해와 달은 우리의 생명과 깊은 관련이 있고, 별 또한 인간의 운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 것은 동서양의 오랜 공통적 인식이었다.

따라서 천동설과 지동설이 오랫동안 학자들의 논란거리가 되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실 동양학설을 천동지정(天動地靜)으로 일괄 규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천정지동(天靜地動)도 사실의 바른 표현이라 하기 어렵다.

우주는 관점에 따라 천만 가지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고, 하늘과 땅도 보는 바에 따라 동과 정을 논하기 어렵다는 것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후의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으로 보면 우주가 다 움직임이요, 정으로 보면 하늘과 땅이 움직임이 없다는 대종사의 말씀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화엄(華嚴)의 논사들은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한 티끌이 시방세계를 포함하고, 시방 또한 한 띠끌을 머금는다'고 설파하여, 중중무진의 법계연기(法界緣起)를 전개하였다.

티끌의 관점에서도 우주는 존재하고, 찰나의 순간에도 영원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주의를 끄는 것처럼 현대 과학 이전에 이런 진리를 밝혀준 대종사와 옛 스승들의 혜안이 놀라울 따름이다.

보기 나름인 이 세상을 대종사는 보면'으로 정리하셨다.

같은 진리이건만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고, 무상으로 보면 성주괴공과 생로병사로 무량세계를 전개하는 것이 진리의 세계이다.(일원상 서원문)

그런데 대종사는 다시 한 차례 우주의 일을 사람에 비유하여, 기와 질로써 주종을 설명하신다.

대종사님의 가르침이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법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순간이다.

기운과 경락의 한의학물리적 연구

<소광섭 교도/개포교당·서울대학교 물리학부 교수>

한 사람의 기운과 형체가 그 동정을 서로 같이 하는 것 같나니, 하늘의 기운과 땅의 바탕이 서로 연하여 끊임없이 순환함으로써 조화를 이루나니라. 그러나, 주와 종으로 논하자면 기운은 주가 되고 바탕은 종이 되어 기운이 행함에 바탕이 따르게 되나니 이것이 곧 만고에 바꾸지 못할 원리이니라대종경 변의품 3장 끝부분 말씀이다.

교전을 보면 여러 곳에 기운 또는 기라는 용어가 나오고, 동양사상이나 한의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지만 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것이 실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윗 글에도 기운형체가 짝으로 나오는데, 형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지만 기운은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흔히 에너지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에너지는 아주 정확하게 정의되고 정밀하게 측정되는 물리학적 개념이다. 따라서 =에너지라고 하면 하늘의 에너지라는 말이 되는데, 물리학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가 에너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는 하겠으나 기=에너지라고는 할 수 없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기가 몸의 경락을 통해 흐르며, 심신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기의 흐름이 막히거나 넘치면 몸에 질병이 생기거나 아프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되는데, 이는 기운이 행함에 바탕이 따르게 되나니란 말씀에 부합된다고 본다. 그런데, 한의학에서도는 명확한 정의가 알려지지 않았고, 경락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기능만 할 뿐 실체는 없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중략>

근년에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한의학물리 연구실에서는 경락의 해부학적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을 수행해오고 있으며, 경락을 따라 흐르는 기의 물리적 의미를 탐구하는 가설을 제시한 바 있다. 경락의 실체를 주장하고 염색 방법과 전자현미경 등으로 이를 입증한 것은 1960년대에 북한의 김봉한 박사였다.

봉한학설의 요지는 경락이 실제로 액체가 흐르는 관 조직이며, 전신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제 3의 순환체계란 것이다. 이 관을 봉한관이라고 부르며, 피부아래에 분포된 것이 경락이고, 몸 속의 혈관 안에 있는 것은 내 봉한관, 장기들의 표면에 분포된 것을 내외 봉한관, 신경에 들어 있는 것을 신경 봉한관이라고 한다. 이러한 봉한관의 그물망이 전신에 분포되어 기가 전신에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침을 놓는 자리는 경혈이라고 하며, 이것은 봉한관의 중간 중간에 있는 쌀알처럼 생긴 소체에 해당하므로 봉한소체라 한다.

김봉한 팀은 특별한 염색약을 발견하여 경락체계의 실상을 규명하였지만 염색약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지금까지 아무도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었다. 2002년부터 한의학물리 연구실은 현대적 기술 개발을 통하여 봉한학설 상당부분을 확인해오고 있다.

봉한관의 생리적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을 흐르는 산알’ (살아있는 알이란 뜻)이다. 산알은 적혈구의 1/5크기의 둥근 알갱이로 그 안에 염색체 1개에 해당하는 DNA가 있다. 산알은 병든 조직의 죽은 세포를 대치시키는 세포 재생의 기능을 한다. 다시 말해 산알이 경락체계를 따라 흘러다니면서 상처난 조직들을 계속 재생시킨다. 이 산알의 존재와 DNA함유가 확인됐으며, 이들의 배양 및 줄기세포와의 관련성이 계속 연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경락·봉한관 체계는 산알의 DNA 생명정보와 빛의 에너지가 상호작용하며 전신의 광통신 제어를 하면서 유기체의 전일성과 건강을 유지하는 기관이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의 기를 현대 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봉한관을 통해 흐르는 산알의 DNA생명정보 (유전정보와 세포재생치료정보)와 빛 (생체광자)의 통신제어정보 및 에너지의 결합이라 볼 수 있다. 기는 단순한 물리학적 에너지가 아니라 생명의 정보와 빛의 에너지가 결합된 융합적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변의품 3장으로 돌아가 보면 기운은 주가 되고 바탕은 종이 되어 기운이 행함에 바탕이 따르게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바꾸지 못할 원리이니라고 했다. 의학과 물리학도 이 원리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봉한관과 산알과 생체광자는 바로 이 기운이 행하는 체계이며,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이 이러한 원리를 반영하도록 되어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의학과 한의학과 물리학을 함께 아우르는 고도의 융합적 학문 수준에서 비로소 변의품 3장에 나온 원리의 일단을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