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인도품(人道品) 54장
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 54장
부호(富豪) 한 사람이 흉년을 당하여 약간의 전곡으로 이웃 빈민들을 구제한 후에 항상 송덕(頌德)하여 주기를 바라는지라 동민들이 의논하고 비(碑) 하나를 세웠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많은 돈을 들이어 다시 비를 세우고 굉장한 비각(碑閣)을 건축하거늘 동민들이 그 행사를 우습게 생각하여 험담과 조소가 적지 아니한지라, 김 광선(金光旋)이 이 말을 듣고 회화 시간에 발표하였더니,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억지로 명예 구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산 경전이로다. 그 사람은 제 명예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 일을 하였건마는 명예가 나타나기는 고사하고 그 전의 명예까지 떨어진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은 명예를 구한다는 것이 도리어 명예를 손상하게 하며, 지혜 있는 사람들은 따로이 명예를 구하지 아니하나 오직 당연한 일만 행하는 중에 자연히 위대한 명예가 돌아오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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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金光旋]
[주요약력]
본명은 성섭(成燮). 법호는 팔산(八山). 법훈은 대봉도. 소태산대종사의 구도 당시 의형(義兄)으로 정신적 물질적으로 후원ㆍ조력했고, 소태산이 대각을 이루자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 구인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교단창업에 앞장섰고, 1924년(원기9)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후 익산총부 건설당시 공동체 삶에 참여하여 전무출신했다. 농업부원을 시작으로 총부 감원, 영산 서무부장, 마령교당 교무, 원평교당 교무 등을 역임하면서 교단창업에 혈심과 공심의 표준이 되었다.
[생애와 활동]
김광선은 1879년 9월 6일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부친 응오(應五)와 모친 강(姜)씨의 삼남매 중 차남으로 출생하여 숙부 응칠(應七)ㆍ숙모 조연풍(趙煙風)에게 출계(出系)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담대강직(膽大剛直)하고 솔선명철(率先明徹)한 성품으로, 10세 때 한문사숙에 나가 16세까지 수학했고, 17세 때에는 길룡리 마촌 산중에서 1년동안 음양복술(陰陽卜術)을 공부했다. 18세부터 작농과 지방을 다니면서 상업에 종사하는 한편 사숙(私塾)을 열어 훈장으로 아동들을 가르쳤다. 1894년 31세부터 3년간 광산김씨 문중의 대동보를 꾸미는데 가산을 기울여 노력했다.
당시 12세 연하인 소태산과 한 동네에 살면서 의형(義兄)으로서 그 구도에 정신적 물질적으로 후원하며, 특히 입정삼매(入定三昧)하는 가운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간구한 생활을 목도하면서 심방도 하고 살림을 보조와 공부하는 비용을 후원했다. 소태산이 건강을 잃고 있는 가운데 전북 고창군의 연화봉 초당에서 치료와 수행을 겸하도록 주선하는 등 구도에 적극적으로 조력하다가, 1916년(원기1) 4월 28일 소태산이 대각을 이루자 남 먼저 찾아와 그 증오처(證悟處)를 확인하고 괄목상대하여 첫 제자가 되었다.
소태산이 구세경륜을 펴는데 대소사의 모든 일을 함께했는데, 당시 불러주는 글과 시가(詩歌)를 받아 적어 편집한 것이 《법의대전(法義大全)》ㆍ《백일소(白日蕭)》ㆍ《심적편(心迹篇)》 등으로, 그 일부가 《대종경》 전망품 1장 등에 전한다. 1917년(원기2)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 태방(兌方)단원이 되어 저축조합ㆍ방언공사ㆍ법인기도에 앞장섰다. 방언공사에는 인근주민들의 힐난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산을 희사하고 동참하여 몸소 흙짐을 졌다. 작답(作畓) 후 어느 때 제방이 무너져 뚫린 구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몸을 던져 막아낸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불법연구회창건사》).
1923년(원기8) 당시 정읍 내장사에 잠시 머물고 있던 소태산을 찾아 본격적인 출가 수도를 시작했으니 전무출신의 시작이다. 1924년(원기9) 전북 익산 보광사에서 열린 불법연구회 창립총회에 참여하고, 그해 익산총부가 건설될 당시 송학동 박원석(朴元石)의 집에서 오창건ㆍ이동안 등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엿장사 등의 공동생활의 방책을 마련했다. 그해 총부 농업부원으로 만석리(萬石里) 방면의 작농에 참여했고, 1929년(원기14)에는 총부 감원으로, 이듬해부터는 영산 서무부장으로 봉직했다.
1932년(원기17)부터는 진안 마령교당 교무로 부임하여 주경야독으로 교리를 훈련시키는 한편 전답 개간, 수박 재배, 과수원 경영 등에 노력하여 근무 3년만에 논 4두락을 장만하여 교당의 토대를 세워 놓았다. 1935년(원기20)부터 2년간은 김제 원평교당 교무로 근무하며 교화에 업적을 나타냈다. 《대종경》에 나오는 다음 내용을 보면 김광선이 성리 연마를 비롯한 마음 적공이 깊었음을 알 수 있다.
“김광선이 여쭙기를 ‘천지 만물의 미생전(未生前)에는 무엇이 체(體)가 되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말하기 전 소식을 묵묵히 반조하여 보라.’ 또 여쭙기를 ‘수행하는 데 견성이 무슨 필요가 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국문(國文)에 본문을 아는 것과 같나니라’”(《대종경》 성리품20). 김광선은 1937년(원기22) 8월 당시 교단 정기간행물인 《회보》 제37호에〈학이불능(學而不能)〉이란 글을 발표, 스승인 소태산을 높이 찬양했다.
그 내용은 옛날 증자(曾子)의 문하생 공명선의 배움의 태도에 관한 《소학(小學)》의 한 구절을 인용한 후 소태산의 위대한 점을 ① 순일(純一)하신 공심(公心), ② 일관(一貫)하신 성의(誠意), ③ 위대하신 포용력 등 3가지로 요약하여 자신은 물론 일반 학인에게도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자 했으니, 이 내용을 요약한 것이 《대종경》 실시품 47장이 되었다. 1939년(원기24) 11월 13일(음) 고향인 영산교당에서 61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열반 전날 저녁 가족들에게 “이 회상은 영겁을 두고 다시 만날 수 없는 대도회상(大道會上)이니 내가 대종사님을 받들어 모신 것을 명심하여 자손 대대로 전무출신하여 꽃다운 가훈을 천주에 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익산총부에서 그의 열반 비보를 접한 소태산은 성루(聖淚)를 보이며 비통해 하는 가운데 대각전에서 열반식을 거행케 한 후 그의 영혼 천도를 위하여 ‘생사 거래와 업보 멸도’란 제목의 법문을 설했다. 이 법문을 요약한 것이 다음과 같은 《대종경》 천도품 28장이다.
“김광선이 열반하매 대종사 눈물을 흘리시며,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팔산으로 말하면 이십여년 동안 고락을 같이 하는 가운데 말할 수 없는 정이 들었는지라 법신은 비록 생멸성쇠가 없다하나 색신은 이제 또 다시 그 얼굴로 대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어찌 섭섭하지 아니하리요. 내 이제 팔산의 영을 위하여 생사 거래와 업보 멸도(滅度)에 대한 법을 설하리니 그대들은 팔산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이 법을 더욱 잘 들으라. 생사거래와 고락이 구공(俱空)한 자리를 알아서 마음이 그 자리에 그치게 하라. 거기에는 생사도 없고 업보도 없나니, 이 지경에 이르면 생사 업보가 완전히 멸도되었다 하리라”(《대종경》 천도품28).
1957년(원기42) 교단 첫 법훈증여식전에서 정산종사로부터 대봉도의 법훈이 추서되었다. 아들 홍철ㆍ병철, 손자 대심ㆍ대관ㆍ대현ㆍ의진ㆍ정심ㆍ혜광, 외손자 이운철ㆍ은영, 증손자 덕상이 전무출신했다.
[인품과 사상]
김광선은 소태산의 구도과정에서부터 대각 후 교단창업에 이르기까지 지근거리에서 허물없이 상의하고 조력한 혈심인물이었다. 그는 소태산의 연상이면서도 항상 몸을 낮추고 중책을 맡아 솔선수범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표본을 보여주었다. 그의 공적은 흔히 공자 문정(門庭)의 자공(子貢)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소태산이 낙루한 것은 사제지간 이상의 정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광선이 소태산을 찬탄한 세 가지의 학이불능 표현은 소태산관을 정립하는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팔산ㆍ형산종사문집》이 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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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구하는 명예]
<장원경 교무/담양교당>
재물욕·색욕·명예욕·이욕(利欲)등 인간이 갖는 모든 욕망을 통 털어서 재색명리라 한다. 재색명리는 불보살과 중생의 갈림길이 된다. 하근기 중생은 재색에 관한 욕심이 더 강하고, 상근기는 명리에 대한 욕심이 더 강하다. 수행자에게는 명예욕 끊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명예는 입정처만 세우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본래 품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입정처를 세우지 못할 때 즉, 정신적인 자력이 부족할 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고 늘 칭송받기를 원하게 된다.
옛 사람이 '상천의 덕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하신 말씀을 생각하며 인도품 54장을 보자. 부호(富豪) 한 사람이 흉년에 약간의 전곡으로 이웃 빈민들을 구제한 후에 송덕(頌德)하여 주기를 바라자 동민들이 비(碑) 하나를 세웠더니, 그 사람이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많은 돈을 들여 다시 비를 세우자 험담과 조소가 적지 않았다는 발표를 듣고 대종사는 '이것이 곧 억지로 명예 구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산 경전'이라 하시고, 그 사람은 명예가 나타나기는 커녕 그 전의 명예까지 떨어졌으니 어리석은 사람은 명예를 구한다는 것이 도리어 명예를 손상하게 한다 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사람들은 오직 당연한 일만 행하는 중에 자연히 위대한 명예가 돌아온다고 하셨다.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선명한 자취가 남는 것이 진리이다. 나의 언어 행동이 훌륭하면 남이 다 아는 것인데 그동안 급해서 제가 제 칭찬을 하는 것은 자취의 방향을 엇갈리게 하는 일이다. 조그마한 선한 일을 하고도 그것이 남들에게 빨리 알려지기를 바란다면 거기에는 오히려 악의 뿌리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수도하는 사람이 명예에 팔려 남이 '잘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나서 수도하기에 힘쓸 생각이 나고, 남이 몰라주거나 '잘못한다'고 하면 원망이 나고 기운이 가라 앉는다면 그동안 수도의 공력이 매우 민망할 노릇이다.
대종사는 수도하는 사람이 이곳 저곳으로 제 이름과 아는 것을 자랑하고 알리러 다니는 것은 명예를 팔고 다니는 장사꾼은 될지언정 큰 도를 지닌 참 도인은 아니라고 경계해 주셨다.
열반하신 한 선진은 평소 공부표준은 '세상의 재색명리를 버렸다하더라도 불문의 재색명리에 집착하면 영겁대사가 무너지니 주의할 것'이라고 했다.
늘 단전에 들어 우리의 본래 주소 회복하는 데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 대산종사는 단전에 들기를 한 시간만 하게 되면 하루, 십년, 이십년 한 것이 다 탈탈 털어져 버린다 했으니 다른 이의 칭송이 없어도 내 스스로 기뻐지는 열쇠를 단전 세상에 들어가는 데서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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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있는 사람의 찬란한 공덕]
<송경호 교무/순천교당>
'지혜있는 사람은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거짓없이 그 일에만 충실하므로, 시일이 갈수록 그 일과 공덕이 찬란하게 드러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일에는 충실하지 아니하면서 이름과 공만을 구하므로, 결국 이름과 공이 헛되이 없어지나니라'고 하였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위하여 영입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지도 방법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도 많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의 축구 발전을 위해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기의 소신대로 충실하고 진실하게 진행시킨 결과 1년반 정도의 시일에 4강을 향해 달려와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우리 모두를 감동시키고 있다.
그는 20여명의 연구인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심리적으로 연구하여 우리 선수들의 실력을 개발하고 특성을 살려내는 지도 방법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또 이 충무공은 높은 위에 있으나 마음에 넘치는 바가 없이 모든 군졸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였고, 권세를 잃어 일개 마졸이 되었으나 또한 마음에 원망과 타락이 없이 말 먹이는데 전력을 다하여 말을 살찌게 하며 편안하고 명예스러운 일은 다른 장군에게 돌리고 어렵고 명색없는 일은 자신이 차지하였다 한다.(인도품52장)
이와 같이 지혜 있는 사람은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거짓 없이 일에만 충실하기 때문에 그 공덕이 지금까지 찬란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공덕을 억지로 구하므로 이름과 공이 헛되이 없어지게 된다.
'부호 한 사람이 흉년을 당하여 약간의 전곡으로 이웃 빈민들을 구제한 후에 항상 송덕하여 주기를 바라는지라 동민들이 의논하고 비를 하나 세웠더니, 그 사람이 오히려 만족하지 못하여 스스로 많은 돈을 들여 다시 비를 세우고 굉장한 비각을 건축하거늘 동민들이 이 행사를 우습게 생각하여 험담과 조소가 적지 아니한지라 … 이것이 곧 억지로 명예를 구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산 경전이로다'(인도품 54장)
'어리석은 사람은 명예가 좋은 줄만 알고 헛된 명예라도 드러 내려고만 힘을 쓰나니, 그는 헛 명예가 마침내 자신을 해롭게하는 화근인줄을 모르는 연고라, 세상 이치가 실상된 명예는 아무리 숨기려 하여도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요, 헛된 명예는 아무리 드러내려 하여도 마침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니…'(인과품20장)
우리는 지위의 고하나 이름이나 공을 계교하지 않고 일을 당하여 거짓 없이 그 일에만 충실하는 사람이 되도록 서원을 굳게굳게 다짐하는 지혜 있는 대종사님의 참제자가 되자.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