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

제4 인도품(人道品) 30장

원재(Aid Perfection) 2014. 10. 11. 00:19

대종경(大宗經)

4 인도품(人道品) 30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큰 죄악이 처음에는 작은 허물로부터 시작되는 수가 허다하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때때로 자기의 행동을 살펴서 작은 허물이라도 발견되거든 미루지 말고 고치기에 힘쓰라. 남방의 성성이라는 짐승은 그 힘이 세고 날래어 사람이 힘으로는 잡지 못하나, 그가 술을 즐겨하므로 술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서 그의 내왕하는 길목에 두어 두면 그가 지나면서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웃으며 그대로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조금 마시고, 또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더 마시고 하기를 여러 차례 한 뒤에는 그만 정신 없이 그 술을 다 마시고, 마침내 취하여 쓰러지면 그 때에 사람이 나와서 잡아 간다고 하니, 그가 처음에는 조금만 마시기로 한 술이 커져서 한 동이에 이르렀으며, 마침내 제 생명을 잃기도 하고 혹은 생포(生捕)도 당하게 되는 것이니라. 사람도 또한 그와 같아서 처음에는 한 두 가지의 작은 허물을 고치지 못하다가, 그 허물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큰 죄업을 저질러서 전도를 크게 그르치나니 어찌 조심하지 아니하리요.]

[작은 허물을 크게 조심하자]

<장원경 교무/영산선학대학교>

계사년 새해 첫걸음이 자신의 작은 허물을 고치고자 하는 새로운 걸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작은 허물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 인도품 30장 말씀을 새겨본다.

대종사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처음에는 작은 허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시고 남방의 성성이라는 짐승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다.

성성이는 힘이 세고 날래어 사람의 힘으로는 잡지 못하는데 그가 좋아하는 술을 큰 그릇에 담아서 내왕하는 길목에 놓아두면 성성이가 처음에는 웃으며 그냥 가다가 다시 돌아와 한 모금만 마시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또 한 모금 마시기를 여러차례 한뒤에 결국 그릇의 술을 다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지면 그때 사람이 잡아간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한 모금만 마신다는 것이 결국은 성성이가 생명을 잃거나 생포당하는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르고 큰 실패를 당하는 경우는 드물다. 작은 허물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큰 죄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악간에 조그마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매사에 작은 일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수지의 제방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그것이 필경은 조그마한 구멍에서 물이 새기 시작하여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임을 기억하자. 또 아무리 크고 오래된 나무라 하여도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딱정벌레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거대한 나무의 생명력이 파괴되며, 사납고 용맹 있는 사자나 범도 비루라는 조그마한 벌레가 생겨 그것이 온 몸에 퍼지면 결국 생명을 잃게 된다.

사람도 마음 속에 미미한 생각이 원인이 되어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정산종사님께서도 법훈편 27장에서'실 끝만한 사심이 단서가 되어 영겁대사를 그르치게 된다'고 하셨다.

사람의 인격이나 품위도 쌓아 올릴 때는 갖은 노력과 수고가 들지만 무너질 때는 사소한 부주의, 조그마한 행동이 들어서 아주 쉽게 타락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항상 자신의 행동을 살펴 작은 허물이라도 고치는데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초질서부터 바로잡는 것이 지름길이며 사회의 기초 질서는 개인의 작은 허물을 발견하여 이를 고치는 데에서부터 비롯된다.

누구든지 처음에 결심할 때에는 잘해보려고 하다가 나중에 그 마음이 차차 약해져 되는대로 자행자지하는 경향도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해보고자 하는 분발심을 챙기는 공부인으로 한 해를 살자.

[忿]

분심. 분하여 성내는 마음. 불교의 선요(禪要)에 참선하는 방법의 세 가지 요긴한 요목으로 대신근(大信根)대분지(大憤志)대의정(大疑情)을 삼요(三要)라 한 것 중의 하나이다. 원불교에서는 분발심의 줄인 말로 사용하며 공부의 요도 중 진행사조의 하나로 분이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라고 정의했다. 강렬한 의욕을 가진 마음 상태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의지를 가지고 자기만족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정진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忿)과 분()은 같은 의미를 가진 글자인데 우리말 사용에 있어서 분()은 분발하여 기운을 낸다는 의미로 쓰이고 분(忿)은 분발하는 마음상태를 묘사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 두 글자는 모두 화를 낸다는 분노의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종교 수행에 관련된 개념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용례상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원불교에서 사용하는 바와 같이 나태와 반대되는 분발심으로 해석한다.(원불교대사전)

[하나의 소중성]

<이종진 교무/부안교당>

이것 하나쯤이야...하고 소홀히 생각하는 사람은 전체를 잃어 버리는 결과를 당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곧 전체이기 때문에....

숫자의 단위로서 가장 작은 것이 바로 하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 하나를 소홀히 하고 무시하기가 쉽습니다. 동전 하나쯤 가볍게 생각하기 쉬우며 군중속에서 한 사람의 의견은 무시당하기 쉽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예회나 조석심고 정례기도 좌선 한 두 번 빠지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전체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는 곧 전체이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또 한번을 낳고 다시 한번을 낳아 인과율에 의해서 무수히 되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도품 30장에 사람의 죄악이 처음에는 작은 허물을 용서하는 데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하시고 남방의 성성이라는 짐승을 예로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성성이는 힘이 세고 날세어 사람의 힘으로는 잡지 못하는데 그가 좋아하는 술을 큰 그릇에 담아서 성성이가 내왕하는 길목에 놓아두면 성성이가 처음에는 웃으며 그냥 가다가 다시 돌아와 한 모금만 마시고 가다가 다시 돌아와 또 한 모금.....이렇게 하기를 여러차례 한뒤에 결국 그릇의 술을 다 마시고 술에 취해 쓰러지면 그때 사람이 잡아간다고 했습니다.

성성이가 처음에는 한모금만 마신다는 것이 마침내는 생명을 잃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법회한번 빠지고 기도나 좌선한번 빠지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고 계문 조항 하나 범하는 것을 소홀히 생각하면 결국은 큰 것을 잃어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하나의 소중성을 우리들 인생의 삶속에서 어떻게 구현시켜야 할 것인가, 저는 다음 세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루의 소중성입니다. 우리 인생을 성품의 본체자리에서 보면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초월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삶의 정황에서 볼 때 우리는 백년도 다 못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오늘 내가 이 시간 이 역사속에 살고 잇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은 시간에 의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앞에 펼쳐진 이 하루의 시간이야 말로 다시없이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오고 자고 일어나면 또 하루가 와 아무런 노력과 수고없이 무상으로 이 하루를 맞이하기 때문에 하루의 소중성을 망각하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제일 큰 손실이 시간의 낭비라고 볼 때 오늘 이 하루가 이웃에 믿음을 심는 하루가 되고 진리를 담는 하루가 되며 불심을 살리고 뿌리는 하루가 되도록 최선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한 사람의 소중성입니다.

한 사람은 나 하나의 소중성과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다른 한 사람의 소중성입니다. 자기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똑똑히 파악하고 마음속에 갊아있는 불성을 나의 삶속에서 완전히 드러내어 나의 생활을 의롭고 자비롭게 그리고 복되게 가꾸는 것은 나의 소중성을 살리는 길이라면 내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과 인격을 근본적으로 존중하고 지위나 돈이나 학식 등등의 차별에 끌리지 않고 부처님 모시듯 공경하고 섬기는 태도는 다른 사람의 소중성을 살리는 길이 될 것이며 이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평등히 대하면 사생일신의 생활이 되어질 것입니다.

셋째는 한 생각의 소중성입니다.

수행품 30장에 사람의 성품은 원래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는 않지마는 선악의 습관에 따라서 인품이 이루어지는데 습관을 처음 한 생각이 좌우의 모든 인연에 응하고 응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조선업으로 제일 발달한 나라가 영국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배를 만드는 조선업 직공이 배를 만드는데 쓰이는 목재가 약간 부실한 부분을 발견하고 한 사람은 이 목재가 아깝지만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러니 또 한사람은 이렇게 좋은 목재를 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느냐고 하면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0년 후 항해도중 결국 그 목재 부분에 구멍이 뚫려 배가 파손되어 많은 사람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헛구멍이 뚫리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리중에서 마음관리가 제일 근본이 되고 중요합니다. 우리들이 경계따라 일어나고 있는 한 생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수행상 절대금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고 기도와 보은생활은 하루의 소중성을 살리는 공부가 되고 불공법은 한 사람의 소중성을 살리는 공부가 되며 삼학공부는 한 생각의 소중성을 살리는 공부가 될 것입니다.

[술을 과히 먹으면 죄의 근본을 일어낸다 하였으니 연구할 사]

<류성태 교무>

리그베다에 나오는 여러 신()이 있다. 이를테면 태양의 신 미트라, 불의 신 아그니, 술의 신 소마(Soma)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과거에 '소마'라는 술()의 신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술이 인간사회에 밀접했던 고대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고금을 통하여 술은 인간들에게 애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1920년대 한국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내용을 보면 '혼몽중에 있던 우리, 취중(醉中)에 있던 우리'라는 것이 불법연구회규약에 나타나 있다. 구한말 역시 인간의 취중 애환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술이 왜 죄의 근본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술이 때론 기호품인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온전한 정신을 마취시킨다는 것이다. 정신이 마취되다 보면 결국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조송광 선진은 '음주의 피해는 어떠한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술은 온전한 사람으로 하여금 병신을 만드는 것이니 취한 사람은 정신이 없고, 잘 앉지도 못하며, 구역질 잘하며, 존장도 몰라보고, 개천에도 잘 빠짐이다."

이에 소태산 대종사는 금주를 강조하기 위해 계문으로 실천을 유도하였다.

원기12년에는 보통급 계문에서 '술을 과히 마시지 말라'고 했고, 원기17년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 했다. 그리고 원기47년에는 '연고 없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으니 근래에는 '연고' 조항을 붙여 부득이 사교(社交)의 경우에 한하여 예외로 하고 있다.

'연고' 조항이 있다고 해서 술을 대승행의 방편으로 삼는 경우도 금물이다.

불교에서는 5(五戒)로써 금주를 강조하고 있다.

기독교 역시 술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언 20:1

이처럼 동서의 종교가 술을 마시지 말도록 권하고 있다. 아무리 음주계에 연고 조항이 있더라도 술에 중독되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고 또 과음을 하게 되어 건강을 상실하고 위험과 실수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가능한 술을 삼가야 할 것이며, 알코올 중독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대종경인도품 30장에 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남방의 성성이라는 짐승은 그 힘이 세고 날래어 사람이 힘으로는 잡지 못하나, 그가 술을 즐겨하므로 술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두면 살짝 와서 조금 마시고, 또 다시 와서 더 마시고 하기를 여러 차례 한 뒤에는 그만 쓰러지게 되며 그 때에 사람이 나와서 잡아간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법문을 통해 성성이의 술 중독처럼 술에 취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없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