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

제4 인도품(人道品) 19장

원재(Aid Perfection) 2014. 10. 8. 22:20

대종경(大宗經)

4 인도품(人道品) 19

한 제자 자기의 부하 임원에게 지나치게 엄책하는 것을 보시고,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증애에 끌린 바가 없이 훈계하였다면 그 말이 법이 될 것이나, 만일 끌린 바가 있었다면 법이 되지 못하리라. 천지의 이치도 더위나 추위가 극하면 변동이 생기는 것 같이 사람의 처사하는 것도 너무 극하면 뒷날의 쇠함을 불러들이나니라.]

증애[憎愛]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증은 미워하고 배척하는 마음이고 애는 좋아하고 끌리는 마음이다. 애증과 같은 말로 증애의 마음을 끊고 일체만물을 평등심으로 보아야 도를 이룰 수 있다. 사랑과 미움이 원인이 되어 집착하고 배척하는 업을 지어내기 때문에 도가에서는 증애에 너무 끌리지 말라 가르치고 있다. 사람을 훈계하는 데 있어서도 증애에 끌리는 바가 없이 훈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증애에 끌리지 않고 원만한 마음을 갖도록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증애에 끌리지 않는 방법은 매양 한 생각을 잘 돌리는 데에 있나니, 가령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거든 다만 생각 없이 같이 미워하지 말고, 먼저 그 원인을 생각하여 보아서 미움을 받을 만한 일이 나에게 있었거든 고치기에 힘쓸 것이요, 그러한 일이 없거든 전세의 밀린 업으로 알고 안심하고 받을 것이며, 한편으로는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할 때에 나의 마음이 잠시라도 좋지 못한 것을 미루어 나는 누구에게든지 미움을 주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라. 그리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곧 나의 마음 쓰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 될 것이니, 그를 나의 선생으로 인정할 때에는 어찌 미운 생각이 나겠는가. 이것이 곧 미운 데에 끌리지 않게 하는 방법이니라.

또는,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거든 다만 생각 없이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또한 먼저 그 원인을 생각하여 보아서 그만한 사랑 받을 일이 있었거든 그 일을 영원히 변하지 않기로 명심하고, 만일 그만한 일이 없이 받는 사랑이거든 그것을 빚으로 알아야 할 것이며, 또한 사랑 가운데에는 정당한 사랑과 부정당한 사랑이 있나니, 정당한 사랑이면이어니와 부정당한 사랑이면 그것을 끊을 줄도 알아야 할 것이며, 정당한 사랑일지라도 거기에 집착하여 다른 일에 방해될 기미가 있거든, 반드시 용단심을 일어내어 대체 행사에 그르침이 없도록 노력하라. 이것이 곧 애착에 끌리지 않는 방법이니라. 그대가 이 두 가지에 끌리지 않는 공부를 계속하면 곧 원만한 마음을 얻게 되리라”(대종경인도품18).(원불교대사전)

이치[理致]

(1)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 도리에 맞는 취지(趣旨). 이치에 부합되는 말과 행위, 상태를 합리 또는 합리적이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이치에 어긋난다고 한다. ()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2) 불교 선종(禪宗)에서 종장(宗匠)이 제자를 훈화(訓化)할 때에 경론의 도리를 개시(開示)하여 인도하는 것.(원불교대사전)

[올바른 훈계]

<장원경 교무/영산선학대학교>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의 서당도(書堂圖)를 보면 훈장 옆에 회초리가 놓여져 있고 가운데 앉아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훈장의 무섭지 않은 표정, 주위 아이들의 갖가지 표정이 재미있다. 우는 아이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가르침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훈계가 존재한다. 지도자가 사회나 학교에서 피지도자의 문제 행동이나 잘못을 묵과해 버리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판단에 무감각해지고 공동체의 질서와 규칙이 무시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훈계는 바람직한 인격형성에 꼭 필요한 지도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훈계를 해야 할 것인가?

인도품 19장은 부하직원을 지나치게 엄책하는 제자에게 내리신 법문으로 하나는 증애에 끌린바 없이 훈계하라는 것이고, 둘은 엄책이 너무 극하면 뒷날의 쇠함을 불러들인다는 인과 보응의 말씀이다.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베테랑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자기보다 훌륭한 숙련가를 만들어 내는데까지 가야 진정한 베테랑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훈계를 하는 사람이 상대방을 향한 '진정성'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진지하고 공평한 훈계를 할 때 훈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흔히 꾸중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꾸중이 꾸중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꾸중하는 사람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진정성'이 빠진 꾸중은 엄격한 의미에서 꾸중이 아니라 모진 처벌이나 가학적 분풀이에 불과할 따름이다. 훈계를 할 때 훈계하는 사람의 감정이 섞이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감정을 상대방의 성장을 위해 조절해 표현할 수 있어야 올바른 훈계가 될 수 있다.

다른 이를 가르치는 수단으로 훈계를 활용하고 있다면 여기서도 마음공부 전문성이 풍겨야 한다. 훈계를 하는 것도 빈 마음으로 훈계하여야 그것이 참 훈계이다. 훈계의 대상은 상대방의 인격이 아니라 행동이다. 지금 한 행동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바람직한 행동제시까지 해야 한다. 훈계를 듣는 사람이 엄책에 억울한 마음이 들면 반성은커녕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우주에 전개되는 일체의 변화의 원리가, 극하면 변화하는 음양상승의 원리이고, 이 원리 따라서 인간사는 인과보응으로 변화하는데 인간의 감정도 극하면 변화하는 것이다.

꾸준한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인과보응에 비추어 훈계를 훈계답게 하는 법에 숙달해야 인도품 19장에서 배운 것이 모두 공염불이 안될 것이다.

[남을 훈계 하는 법]

<허대성 교무/서문교당>

대종사님께서는 남을 훈계할 때 증애(憎愛)에 끌리지 않은 온전한 마음 상태를 가져야 그 말이 법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나를 채찍질 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곧 나의 발전을 기대하고 염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행복하고 가슴벅찬 일인가?

칭찬을 받으면 의욕이 생기고 꾸지람을 들으면 의기소침해 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칭찬이 70%면 꾸짖음이 30%의 비율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데 가끔 꾸짖기 스피드를 너무 많이 내면 사고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아랫사람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만 남발하는 포퓰리즘(populism:인기 영합주의)에 빠져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부하 임원을 지나치게 엄책하는 제자의 행위가 염려스러워 자비로 해주신 이 소중한 법문을 보감 삼아야 하겠다.

자던 아이도 다시 본다는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 상당수는 아이들이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고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는 등 갑작스럽게 변하는 모습에 마음 졸인다고 한다. 자녀를 바로 잡아 보려고 엄책을 하다가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부채질 하거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사랑을 담아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타이름으로 부족함을 일깨워 주면 상대방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타인의 기준이나 행동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고 감정에 치우쳐 화내는 이른 바 뒤통수치기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내 욕심의 크기와 상대에 대한 실망의 크기는 항상 비례하는 법이어서 잘한 점은 덮어두고 잘못한 부분만 낱낱이 들춰서 꾸짖으면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천지의 이치도 추위가 극하면 변동이 생기는 것 같이 사람의 처사하는 것도 너무 극하면 뒷날의 쇠함을 불러 들이나니라하셨다.

하늘과 땅의 기운도 따뜻하면 만물이 자라고 차가우면 죽는다. 이 음양상승의 기운이 인과보응으로 나타나듯 사람의 성품도 한 쪽에 치우치면 이와 같기 때문에 온화하고 따뜻한 사람은 냉철하고 이지적인 사람과 어울리게 되고 차갑고 냉정한 사람은 포용력 있고 인내심 있는 사람과 만나 중화되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추위가 극에 이르면 봄이 오고 가득찬 보름달도 이지러진다는 자연의 법칙을 생각하며 항상 만물을 대할 때 지나치거나(exceed) 넘치지(overflow)않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다. 심한 꾸지람을 했더라도 반드시 정답게 다독거려 주어서 좋지 않은 감정의 앙금이 가슴속에 남아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