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 인도품(人道品) 14장
대종경(大宗經)
제4 인도품(人道品) 14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본의는 저 편에게 이(利)를 주고자 한 일이 혹 잘못되어 해를 주는 수도 있나니,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조심해야 할 것이요, 그러한 경우로 해를 입은 사람은 그 본의를 생각하여 감사할지언정 그 결과의 해로운 것만 들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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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를 먼저 접수하기]
<장원경 교무/영산선학대학교>
세상을 살다 보면 일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더구나 상하좌우 인연에게 좋은 의도로 해준 일의 결과가 정작 나의 본의와 다른 결과로 나타날 때는 안타까움은 물론 당혹스러움까지 더해진다. 이때 해를 입은 상대방의 가슴속은 원망심으로 부글거리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공부인으로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대종사님께서는 이에 대해 "본의는 이(利)를 주고자 한 일이 혹 잘못되어 해를 주는 수도 있으므로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조심해야 하고, 해를 입은 사람은 그 본의를 생각하여 감사할지언정 그 결과의 해로운 것만 들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셨다.
먼저 다른 사람을 도와 줄 때는 나의 일처럼 사리연구에 바탕하여 신중히 처리하라는 말씀이다. '반드시', '미리 조심'이라는 말씀을 눈여겨 보자.
인과의 이치에 바탕하여 철저히 준비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이에 유무념 공부, 무시선 무처선 공부로 심신을 잘 관리하며 남을 돕는다면 타인을 돕는 것이 또한 내 역량을 키우는 길이 된다.
신중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또 소통을 중요시해야 한다. 소통이 없으면 상대의 생각이나 형편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시행하게 되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해로움을 당하는 상대는 그 결과만 보아서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 본의를 보아서 감사하라는 것이다.
대종사님께서 귀가 아프셔서 이리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치료가 잘못되어 통증을 느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의사에게 책임을 묻든지 좋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종사님은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환자를 잘 치료하려고 하는 것이지 잘못 하려고는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종교는 법률과 달리 동기를 중요시한다. 공부인이라면 동기의 좋은 본의를 생각해서 마음의 폭을 넓히는 공부가 절실하다.
소인과 대인은 무엇이 다른가? 소인은 남이 잘하여 주는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못한 것만 남겨 두었다가 원수를 만들어 배은망덕을 하고, 대인은 남이 잘못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한 것만 남겨두었다가 은인을 만들어서 보은한다고 하셨다.
혹, 나의 본의와 다른 결과로 인해 해로움을 당한 상대의 원망이 두려워 선행을 두려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에 대비하여 우리 사회는 선한 사마리아인 법 조항을 두어 만약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했다가 그 일이 잘못되었을 때 법에서 나를 보호하는 배려도 하고 있음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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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 병, 상대의 선의도 일단 의심부터]
<이제성 교무/서울서부교구장>
생후 1년 안에 「기본적 믿음」형성
「사람이 그 본의는 저 편에게 利(이)주고자 한 일이 혹 잘못되어 해를 주는 수도 있나니 남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미리 조심해야 할 것이요. 그러한 경우로 해를 입은 사람은 그 본의를 생각하여 감사할지언정 그 결과의 해로운 것만 들어서 원망하지 말아야 하나니라」(인도품 14장)
세상에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도 친구도 나중에는 마누라도 자식도 못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언제 자기를 버리고 떠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이용해 먹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나한테 손해를 입힐 것이다. 나를 배신할 것이다. 나 몰래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나를 욕할 것이다.」
상대방에게 이런 마음이 드는 이상 그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항상 상대를 의심하기 때문에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습니다.
상대가 베푼 선의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항상 저의부터 의심합니다. 좋아서 웃는 것도 자기를 비웃는다고 오해합니다. 그냥 지나치며 던진 농담도 그냥 웃고 넘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오해 잘하고 성 잘 내고 시비를 잘 걸어오기 때문에 피곤해 상대를 하기가 힘듭니다.
인간관계에서 믿음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인간관계도 믿음 없이는 성립 될 수 없습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이에서 무슨 우정이며 애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중요한 과업이 갓난아기 때 이루어집니다.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후 1년 안에 인간 인격의 기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기본적 믿음」이 형성되어 진다고 합니다. 그 해답은 아주 명료합니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 완전히 무력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 세상이 위험과 위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 의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없애주는 것이 엄마의 한결같은 보살핌이라고 합니다.
엄마의 보살핌이 모자란다면 아기는 세상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엄마가 변덕스러워 아기가 어느 장단에 놀아야 할지 모른다면 믿음의 싹은 틀 수 없을 것입니다.
엄마의 아낌없는 푸근한 사랑이 무력한 아기에게 안전감ㆍ신뢰감을 심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범부들은 작은 은혜와 처음 주는 은혜는 느낄 줄 아나 큰 은혜와 계속되는 은혜는 잘 몰라서 열 번 잘해준 은인이라도 한번 잘못하면 원수로 아는 것이 공부인과의 차이입니다.
감사 생활만 하는 사람은 늘 사은의 도움을 받게 되고 원망생활만 하는 이는 늘 미물에게서도 해독을 받게 된다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몰라준다고 한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진리는 공정하여 공이 무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마음이 편안해 질 것입니다. 같은 덕이라도 음덕과 무념의 덕을 쌓는 공덕주가 이 세상에 가득해야 낙원이 건설될 것입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