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正典)/제2 교의편(敎義編)

제4절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원재(Aid Perfection) 2014. 8. 15. 19:13

정전(正典)

2 교의편(敎義編)

1장 일원상(一圓相)

4절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일원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이요, 유무 초월의 생사문(生死門)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 능이성 유상(能以成有常)하고 능이성 무상(無常)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 불멸로 여여 자연(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成住壞空)과 만물의 생···(生老病死)와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일원상 서원문(一圓相誓願文)

소태산 대종사가 깨친 일원상의 진리를 모든 사람이 함께 깨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마침내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도록 법신불 일원상 앞에 간절히 서원을 올리는 경문(經文)이다. 1938(원기 23) 11월 경에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지은 경문으로서 306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일원상의 진리·사은·삼학·인과의 이치 등 원불교의 기본교리가 집약되어 있다. 원불교인은 참다운 수행의 힘을 얻기 위하여 일원상 서원문을 아침 저녁 또는 하루에도 여러번씩 외우고 있으며, 각종 의식행사 때에도 독경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원상 서원문은 소태산 대종사의 구원겁래의 서원이며, 삼세 제불 제성과 모든 수행인의 공동 발원인 동시에, 법신불 사은 전에 올리는 성불 서약이다. 따라서 일원상 서원문을 외우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는 먼저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광대 무변한 원력을 세워야 한다. 사심 잡념이 없는 지극한 신성을 가져야 하고, 나날이 참회 반성하는 수행 정진의 생활을 해야 한다. 일원상의 진리를 맹세코 깨치고야 말겠다는 큰 의심과 분발심이 있어야 하고,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도록까지 시종일관하는 지극한 정성심을 가져야 한다. 수행인이 누구나 이와같이 정진하면 마침내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고, 일원상의 진리의 공덕이 시방 삼세에 찬란하게 빛나 광대무량한 낙원세계가 건설되는 것이다. 일원상 서원문의 뜻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설한다. 일원상의 진리, 곧 진리의 궁극처는 말과 글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천만가지 생각으로써도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으며, 온갖 이름과 형상으로써도 어떻게 그 모양을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진리의 참 모습은 있다고도 말할 수가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가 없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우주 만물 삼라만상이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여 생사의 조화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따라서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의 모든 현상, 곧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이 생성발전되는 근본원리요,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와 조사며 범부와 중생들의 본래부터 타고난 근본성품이기도 한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스스로 조화자재하고 조화무궁하여 능히 영원불멸하기도 하고 변화무상하기도 하여,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이루고 무궁무진·활살자재·대기대용의 천만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영원불멸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항상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여자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서 불생불멸 하면서도 시방삼세에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무상한 입장에서 본다면 우주는 성주괴공·생주이멸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하며, 사생은 스스로의 육근동작을 따라서 육도윤회를 하게 된다. 선업이나 악업을 짓는데 따라 진급하기도 하고 강급하기도 하며, 상생의 선연을 맺기도 하고 상극의 악연을 맺기도 하여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지 못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들 어리석고 둔한 범부 중생들은 이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그대로 본받아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세상의 천만 경계를 당해서도 결코 끌려가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호하는 정신수양 공부를 지성으로 하고, 무명 번뇌의 검은 먹구름을 맑게 걷어버리고 지혜의 등불을 찬란히 밝혀, 천만 사리를 원만하게 잘 아는 사리연구 공부를 지성으로 하며, 육근동작이 항상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지어 몸과 마음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잘 사용하는 작업취사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마침내 범부 중생이 불보살로 진급하여 상부상조·상생상화로 선연을 맺고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 될때까지 간절히 서원하고 또 간절히 서원한다.(원불교 용어사전)

일원상서원문[一圓相誓願文]

[개요]

1938(원기23) 11월경에 소태산대종사가 직접 지은 경문으로, 정전교의편 제1일원상4절에 있는 글. 소태산이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를 모든 사람이 함께 깨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여 마침내 일원상의 진리와 합일되도록 간절히 서원을 올린다는 내용. 306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일원상의 진리사은삼학인과의 이치 등 원불교의 기본교리가 집약되어 있으며 원불교의 진리관신앙관수행관우주관 등이 담겨 있다.

[형성과정]

일원상서원문은 소태산의 일원상 사상 또는 일원상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다. 소태산은 대각을 이루고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대각의 심경을 표현했다. 여기서 () 두렷한() 기틀()’을 일원상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어 경축가에서 일원대원 될 것이니 경축가나 불러보세라 하여 일원이란 표현을 직접적으로 했다.

1918(원기3) 10월에 방언공사 중 구간도실 상량문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목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梭圓機日月 織春秋法呂 松樹萬木餘春立 溪合千峰細雨鳴)”(원불교교사2편 제4)이라 했는데, 이 글귀 가운데 사원기일월에서 일원상의 의미가 드러나 있다. 1919(원기4) 방언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정산종사에게 일원을 운으로 시를 짓게 했다. 이에 정산은 만유화위일 천지시대원(萬有和爲一 天地是大圓)’이라 했다(정산종사법어기연편2). 그러다가 1919(원기4) 8월 소태산은 금산사에 잠시 머무는 동안 별채 문미에 그림으로써 일원상을 표현했다(원불교교사2편 제5).

1935(원기20)조선불교혁신론에서 등상불 신앙을 불성 일원상으로’, ‘불성일원상조성법등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불교에 대한 새 불법의 상징으로 일원상을 구상했음을 알 수 있다(원불교교고총간4). 1935(원기20) 8월에 인쇄된 예전에서 상장 시에 복표에 흑색 일원상을 그려서 왼쪽 가슴에 부착하도록 하는 조항을 둘 정도로 일원상의 표현이 일반화되어 갔다. 1937(원기22) 4월에 발표한 송도성의 신앙과 수양이라는 글 속에서 심불일원상과 일원이라는 표현을 했다.

1937(원기22) 9, 하선 해제식에서 소태산은 일원상을 모본하라는 제목으로 일원상에 관련한 법어를 대중에게 처음 전했고, 동년 동월 정산은 일원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 신앙하는 법, 일원상 숭배하는 법, 일원상 체받는 법, 일원상 이용하는 법 등을 밝힘으로써 일원상 사상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제시했다.

1938(원기23) 소태산은 회보일원상과 인간과의 관계라는 법설과 심불일원상봉안법이라는 규정을 발표했다. 동년 11월 동선에서 심불일원상내역급서원문을 발표했고, 1939(원기24) 불법연구회근행법심불일원상서원문’(원불교교고총간4)으로 발표되었다. 1940(원기25) 불법연구회근행법심불일원상서원문이란 제목을 일원상서원문으로 고치며 일부 자구를 수정하게 되었고, 그 내용이 1943(원기28) 3월에 편수된 불교정전에 삽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구조와 내용]

일원상서원문의 구조는 크게 본체론(본원론), 현상론(차별론), 수행론(도덕론), 성인론(서원론)4단계로 그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4단계의 구조는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성품으로까지가 본체론이고, ‘능이성 유상~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까지가 현상론이며,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지성으로 하여까지가 수행론이며, ‘진급이 되고~합하도록까지 서원함까지가 성인론에 해당된다.

본체론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으로까지이다. 이 본체론은 진리의 양면성을 들어 일원의 진리 실상 내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 진리를 다시 사은과 관련시켜서 일원이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임을 설명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심성에 관련지어 일원의 실상을 가르쳐주고 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는 우주 만유를 주재하는 궁극적 진리인 일원의 자리는 말과 글의 길이 끊어져 말로 이르지 못하고, 생각으로 헤아리지 못하며, 형상으로 그리지 못하고, 동작으로 나투지 못할 진리의 지극한 자리 곧 일념미생전천지미분전의 한 생각 거둔 자리를 말한다.

그래서 그 자리는 가르쳐줄 수도 없고, 생각으로 상상할 수도 없고, 개념화할 수 없는 일체 분별이 끊어진 원적무별의 진경 자리를 뜻한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진리의 작용적인 면을 나타낸 것이다. 일원의 진리는 유라고도 말할 수 없고 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근원적인 묘체로서 인간과 만물의 나고 죽는 이치가 모두 이 진리의 신비로운 작용에서 비롯한다는 것이다.

정산은 유는 무로 무는 유로 순환불궁하기 때문에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기에 초월이요(有無兩者 循環不窮 故曰超越), 생과 사가 유와 무에서 나타나니 생사문(生死兩者 現於有無 故曰 生死門)이라 했다. 없다 하자니 생사로써 변화무쌍하니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유무초월이라는 것이다. 이를 마음에 비유하면 일체분별이 다 끊어졌으나 또한 일체분별이 그 가운데서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은 일원의 진리가 천지만물의 근본 원리요 사은의 본원이라는 것이다. 곧 만물의 뿌리가 바로 일원상 진리이며, 만물의 궁극적 귀의처가 일원상 진리라는 것이다(장응철, 마음달 허공에 뜨다).

그래서 일원은 사은의 모체가 되고, 사은은 일원의 분화신으로서 하나가 곧 전체요 진리가 곧 현실이다. 천지는 곧 일원의 진리요, 그 실재이며, 부모와 동포는 일원의 한 포태 안에서 한 기운을 이어 받아 자라난 것이요, 법률은 일원의 진리 즉 하늘의 도를 본받아서 인간이 행해야 할 도리를 밝힌 것이다. 이는 일원의 진리가 없이는 우주만물의 생성 변화 존재가 불가능한 것이기에 우주만유 또는 사은의 본원이 되는 것이며, 관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는 서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가 있기에 본원이라 한 것이다.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은 일원의 진리를 심성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다.

소태산은 마음이 곧 부처라 했고, 정산도 마음이 곧 부처요 성품이 곧 법이라 한 것처럼 마음 밖에 따로 진리의 당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체 중생의 성품은 본래 평등한 것이며 그 자체는 고요하고 청정하여 한 티끌이 없는 것으로 모든 부처님이나 조사들이나 범부 중생의 본래 마음이 같아서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과 요소가 갊아 있음을 말한다. 이처럼 일원의 진리는 모든 생령들의 마음 바탕이고, 그 마음 바탕인 성품 자리는 다 같은 것으로서 제불조사나 범부 중생에 차별이 없음을 밝힘과 동시에 누구나 수행을 잘하여 그 자리를 회복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희망을 제시해 준 것이다.

현상론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 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공과 만물의 생사와 사생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까지이다. 이 현상론은 진리의 양면성 곧 불변의 측면인 유상의 내용과 변화의 측면인 무상의 내용을 들어 일원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유상과 무상이라는 개념은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 사용된 개념일 뿐이지 진리가 원래 두 면으로 나뉘어진 것이 아니다.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는 진리의 양면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 그 자체는 유상도 없고 무상도 없는 것이나 한 기운이 정하면 능히 유상을 이루고, 한 기운이 동하면 능히 무상을 이루는 것이다. 일찍이 소태산은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대종경서품1)라고 한 것처럼 일원의 진리는 한 두렷한 기틀이나 그 속성을 보면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 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유상과 무상은 진리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유상은 불변하는 자리로서 불생불멸을 나타내고 있고, 무상은 변하는 자리로서 인과보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했고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안목으로 보면 천만 가지로 변화하는 가운데 과거 무시이래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화와 증감이 없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가 전개되어 왔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토록 변함없이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원래 원만구족하게 다 갖추어 있어서 모자라고 남는 것이 없어서 채우고 버릴 것이 없으며, 천만 가지로 변화하면서 항상 그대로 있어 생멸 거래가 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원상의 진리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고금을 통하여 여여불변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임을 의미한다.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공과 만물의 생사와 사생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했나니는 우주를 무상 곧 변하는 진리로 보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변해지는 것이 아무 원칙이 없이 변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순환하는 원칙이 있어 음양상승의 도를 따라 상생상극의 과보로, 인과보응의 이치에 따라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선악 간 각자의 지은대로 받아 육도로 변화하여 진급 또는 강급하게 되고 그러는 가운데 또는 은혜가 해에서 나오기도 하고, 해가 은혜에서 나오기도 하여 이와 같이 무량세계가 전개됨을 밝힌 것이다.

수행론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까지이다. 수행론은 앞서 밝힌 진리의 실상적인 면과 작용적인 면을 근본해서 그 진리에 합일해 가는 방법을 제시한 내용이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는 일원의 진리를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근원 진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확고히 믿음과 동시에 수행의 표준을 삼아 그대로 닮아가는 공부를 한다는 뜻이다. 곧 법신불전에 이 일원상의 진리를 믿고 체받아 수행하여 이 진리를 깨달아서 견성성불제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까지 끊임없이 수행 적공할 것을 서약하는 것을 의미한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는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기 위한 구체적인 세 가지 수행 방법이요, 중생이 부처되는 가장 원만한 길인 것이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각자의 마음과 몸을 잘 지키는 공부다. 마치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처럼 내 몸과 마음을 잘 지키고 잘 수호함을 말한다. 곧 정신수양이라는 수양공부를 통해 각자의 자성자리를 잘 지키고 함양하여 동정간에 자성을 여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공부 방법으로는 염불과 좌선 과목이 있다.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한다는 것은 걸림 없이 아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가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소소영령하게 밝은 것처럼 우리 중생도 일의 대소유무와 시비이해의 이치를 걸림 없이 아는 지혜를 닦아가는 것을 말한다. 즉 천조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를 깊이 연마하고 궁구하여 천만 사리에 걸리고 막힘이 없는 각자의 원만한 지혜의 힘을 기르는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이 사리연구 과목으로는 경전강연회화의두성리정기일기 등이 있다.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는 동정간에 심신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공부다. 의 육근을 작용할 때에 정의는 죽기로써 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버리는 공부길이다. 마치 일원의 진리가 진공 묘유의 조화를 드러내듯이 우리도 동정간에 심신작용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이 공부는 일원의 진리를 체받아서 육근을 작용할 때에 불편불의하고 과불급이 없는 원만행을 하자는 것이다. 이 작업취사의 공부에는 상시일기주의조행 등의 과목이 있다.

이와 같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삼학공부를 오래 오래 계속하면 삼대력을 얻어 결국 성불에 이르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삼계의 대도사가 되어 시방삼세가 다 나의 소유가 되고, 시방세계가 다 나의 집이 되며, 일체중생이 다 나의 권속이 되어 국한을 벗어나 천지의 주인이 되어 큰살림을 맡게 된다.

성인론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까지이다. 이 성인론은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성인 또는 부처가 될 때까지 간절히 서원한다는 내용이다.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는 우리가 육근을 작용할 때에 진리와 자성 그리고 법을 여의지 않는 정의행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늘 진급이 되고 법신불 사은으로부터 끊임없는 은혜(복락)를 받게 되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육근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자신이 강급이 되고 사은으로부터 은혜가 아닌 해독(죄고)을 받게 됨을 가르쳐준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한다는 것은 진리를 여의지 아니 함으로써 늘 진급이 되고 사은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천지미분전일념미생전의 본래 마음 내지는 성품에 합일하기를 간절히 서원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것은 곧 일원의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는다는 것은 곧 진리를 내 마음대로 부려 쓴다는 것이요,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것은 내가 곧 진리가 되고, 진리가 곧 내가 된다는 것이다. 대산종사는 마음에 사사가 끊어지면 일원의 위력을 얻고, 마음에 망념이 쉬면 체성에 합하게 된다”(정전대의)고 했다.

결국 일원상서원문은 진리를 깨우쳐주기 위해 진리의 덩치를 말하여주고 다시 그 진리를 우주만유와 관련 시켜서 설명했고, 이를 다시 인간의 심성에 연결시켜 드러내 준 글이다. 더 나아가 진리의 불변의 이치와 변화의 이치를 들어 그 양면의 내역을 소상히 밝혀 진리의 모습을 드러내고, 수행론에서는 깨치지 못한 자들로 하여금 앞서 밝힌 그 진리를 표준잡고 끊임없이 수행 정진해 감으로써 진리의 위력을 얻고 그 진리에 합일하도록 한 소태산의 법문이다.

[일원상서원문의 의의]

일원상서원문은 심불(心佛) 전에 불과(佛果)를 얻으려는 간절하고도 지극한 원()으로서 법계에 서약을 올리는 글이다. 이 서원은 자신과 법신불간에 불과를 서약한 것이니 그 지극한 원력이 시방에 충만하면 대불과를 얻게 되어 결국 천지 같은 무궁한 도덕을 갊아서 한량없는 광명과 수명과 덕행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삼세제불이 다 최초 서원 일념으로 부처를 이룰 것이며, 이 서약문이 바로 불조가 되려는 서약서인 것이다.

이 서원문은 소태산의 즉흥적인 감상에서 나와진 것이 아니요 구원겁래에 큰 서원을 세우고 깨달은 진리와 밟아 온 경륜을 통해 밝혀 준 경문으로 후래 대중이 이 길을 밟아 다 같이 견성 성불하여 불보살이 되도록 대자비를 베풀어 준 부촉의 경문이며, 소태산의 서원이요 삼세제불과 일체 수행인의 서원이기도 하다.(원불교대사전)

일원상 서원문은 대종사님께서 깨치신 진리의 내용을 담은 글로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통하여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고 활용하여 마침내는 불보살의 큰 인격을 이루도록 서원을 올리는 글이다. 원불교의 각종 의식에서 독송하는 간절하고도 지극한 발원문이요, 서원문이다.

1938(원기 23) 11월 경에 소태산 대종사가 직접 지은 경문으로서 306자의 짧은 내용이지만, 일원상의 진리·사은·삼학·인과의 이치 등 원불교의 기본교리가 집약되어 있다. 원불교인은 참다운 수행의 힘을 얻기 위하여 일원상 서원문을 아침 저녁 또는 하루에도 여러번씩 외우고 있으며, 각종 의식행사 때에도 독경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원상 서원문은 소태산 대종사의 구원겁래의 서원이며, 삼세 제불 제성과 모든 수행인의 공동 발원인 동시에, 법신불 사은 전에 올리는 성불 서약이다.

따라서 일원상 서원문을 외우는 사람들의 마음 자세는 먼저 소태산 대종사와 같은 광대 무변한 원력을 세워야 한다. 사심 잡념이 없는 지극한 신성을 가져야 하고, 나날이 참회 반성하는 수행 정진의 생활을 해야 한다.

일원상의 진리를 맹세코 깨치고야 말겠다는 큰 의심과 분발심이 있어야 하고,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도록까지 시종일관하는 지극한 정성심을 가져야 한다. 수행인이 누구나 이와같이 정진하면 마침내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고, 일원상의 진리의 공덕이 시방 삼세에 찬란하게 빛나 광대무량한 낙원세계가 건설되는 것이다.

일원상 서원문의 뜻을 다음과 같이 요약 해설한다.

일원상의 진리, 곧 진리의 궁극처는 말과 글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천만가지 생각으로써도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으며, 온갖 이름과 형상으로써도 어떻게 그 모양을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의 참 모습은 있다고도 말할 수가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가 없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우주 만물 삼라만상이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여 생사의 조화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따라서 일원상의 진리는 우주의 모든 현상, 곧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이 생성발전되는 근본원리요,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와 조사며 범부와 중생들의 본래부터 타고난 근본성품이기도 한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스스로 조화자재하고 조화무궁하여 능히 영원불멸하기도 하고 변화무상하기도 하여,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이루고 무궁무진·활살자재·대기대용의 천만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영원불멸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항상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여여자재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서 불생불멸 하면서도 시방삼세에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무상한 입장에서 본다면 우주는 성주괴공·생주이멸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화하며, 사생은 스스로의 육근동작을 따라서 육도윤회를 하게 된다. 선업이나 악업을 짓는데 따라 진급하기도 하고 강급하기도 하며, 상생의 선연을 맺기도 하고 상극의 악연을 맺기도 하여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일원상의 진리를 깨치지 못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들 어리석고 둔한 범부 중생들은 이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그대로 본받아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세상의 천만 경계를 당해서도 결코 끌려가지 않도록 잘 지키고 보호하는 정신수양 공부를 지성으로 하고, 무명 번뇌의 검은 먹구름을 맑게 걷어버리고 지혜의 등불을 찬란히 밝혀, 천만 사리를 원만하게 잘 아는 사리연구 공부를 지성으로 하며, 육근동작이 항상 악업을 멀리하고 선업을 지어 몸과 마음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잘 사용하는 작업취사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마침내 범부 중생이 불보살로 진급하여 상부상조·상생상화로 선연을 맺고 일원상의 진리와 내가 합일 될때까지 간절히 서원하고 또 간절히 서원한다

일원(一圓)

(: 한 일), (: 둥글 원)

원불교에서 우주 만유의 궁극적인 진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 일원상또는 일원상의 진리라고도 한다. ()은 모든 수()의 시초, 모든 모양()의 전체, 모든 양()의 총합, ()의 순수를 의미한다. ()은 원만하고 두렷하고 온전하다는 뜻이다. 또 일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친다는 뜻이 있고, 원은 하나로 통한다는 뜻이 있다. 궁극적인 진리는 하나이고 우주 만물에 두루 통한다는 뜻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

(: 말씀 언), (: 말씀 어), (: 길 도), (: 끓은 단)

진리의 본체·본래 마음을 설명하는 말. 진리의 본체는 언어로써는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본래면목 역시 언어가 다 끊어진 경지라는 뜻.

말문이 막힌다는 뜻.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는 말.

입정처(入定處)

(: 들 입), (: 정할 정), (: 곳 처)

입정의 경지. 입정의 상태. 진리의 궁극적인 경지, 또는 궁극적인 진리에 합일된 우리의 본래마음. 언어 문자나 언어 명상으로써는 어떻게 설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는, 분별 사량이 다 끊어진 경지.

언어도단의 입정처(言語道斷入定處)

언어도단·언어도단심행처멸과 같은 뜻. 일원의 진리를 설명하는 말로서, 일원의 진리는 현묘하고 헤아리기 어려워서 언어문자나 언어명상으로써는 어떻게 짐작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오직 천만 가지의 분별 사량이 다 끊어지고 쉬어버린 경지라는 말. 이는 곧 일념미생전·천지미분전·부모미생전 소식이다. 그래서 자각(慈覺)선사는 이 자리를 서가모니불도 말로써 나타내지 못했거늘 가섭존자가 어찌 능히 말로써 전할 수 있었을 것인가(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라고 했다. 또한 회양(懷讓)선사도 설사 한 물건이라고 말해도 이미 맞지 않다(設似一物不中)라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일원의 진리의 궁극처는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어서 언어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경지라는 뜻이다.

유무초월(有無超越)

(: 있을 유), (: 없을 무), (: 뛰어넘을 초), (: 넘을 월)

있고 없고를 뛰어넘은 경지. 있다 없다에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진리의 절대적 경지를 표현하는 말. 있는 것에도 묶이지 않고 없는 것에도 빠지지 않는 절대 자유의 경지. 대기대용·활살자재의 큰 능력을 얻은 대각도인의 심법이나 행동. 무무역무무·비비역비비의 뜻을 아는 지혜. 대각도인의 지혜.

유무초월의 생사문(有無超越生死門)

일원상의 진리를 용()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말. 일원의 진리는 언어 도단의 입정처이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으나, 그러한 중에서도 천만 분별이 일어나고 멸하며, 우주 만물이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하는 작용과 조화가 마치 사람들이 출입하는 문과 같다고 비유하는 말. 일원의 진리는 유무초월이요 유무총섭의 경지이나, 일체 만물의 생사의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우주 만물이 눈앞의 현상세계에서 보면 나고 죽고 있다가 없어졌다 하지만, 진리의 궁극처에서 보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다. 유무초월이요 불생불멸이다. 유무초월이라 유무총섭이요 불생불멸이라 생사일여다. 그러므로 수행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유무에 집착하거나 유무에 속지 않아야 한다. 눈앞에 전개되는 현상세계의 있는 것()은 모두 영원한 실체가 아니요 일시적인 것이며 허수아비 같은 것이다. 물거품 같고 이슬 같고 안개 같고 뜬구름 같은 것이다. 자기의 육신, 부모 형제, 남편 아내 자식, 부귀 영화, 재색명리 그 모든 것은 다 영원한 실체가 아니다.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곧 변하는 것이요, 물거품 같고 이슬 같기 때문에 곧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다. 안개 같고 뜬 구름 같은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살고, 속지 않아야 일원의 진리와 내가 합일되는 것이다.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을 끊으면 경계에도 끌려 다니지 않아서 마침내 해탈 자유를 얻게 된다. 형상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동시에 형상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일원의 진리는 유무초월이기 때문에 없는 것에 대한 집착(無記空)에서도 벗어나야만 허무 적멸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있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법신여래를 발견하게 되고, 없는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색신여래를 발견하게 된다. 일원의 진리는 유무초월이기 때문에 불생불멸이요 생사일여다. 사람들은 흔히 살아있는 것을 유()라 하고 죽는 것을 무()라고 생각하여 유무에 집착한다. 유무에 집착하면 생사 바다에 헤매게 되고 생사해탈을 얻지 못한다.

제불조사(諸佛祖師)

(: 모두 제), (: 부처 불), (: 조상 조), (: 스승 사)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 제불제성·천여래 만보살과 같은 뜻. 그러나 제불제성이라는 말은 모든 종교의 성자를 의미하고, 제불조사는 불교에 한정시켜 표현하는 말이다.

범부중생(凡夫衆生)

(: 무릇 범), (: 사내 부), (: 무리 중), (: 날 생)

범부와 중생, 또는 범부를 강조하는 말. 범부는 지혜가 얕고, 우둔한 중생. 중생은 불보살의 구제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인간, 또는 일체 생물. 곧 지수화풍 사대로 화합된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의 총칭. 보통사람, 깨치지 못한 사람, 갑남 을녀(甲男乙女), 장삼 이사(張三李四), 우부 우부(愚夫愚婦)를 통칭해서 범부 중생이라 한다.

능이성유상(能以成有常)

(: 능할 능), (: 써 이), (: 이룰 성), (: 있을 유), (: 항상 상)

일원의 진리가 항상 그대로 있어서 영원히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다는 말. 여여자연한 불생불멸의 진리를 표현하는 말이다. 일원의 진리를 불변하는 입장에서 보면 불생불멸·영원불멸·무시무종·여여자연한 것이다. 시간적으로 과거·현재·미래도 없고, 공간적으로 동서남북·사방상하도 없어 광대무량한 것이다.

능이성무상(能以成無常)

(: 능할 능), (: 써 이), (: 이룰 성), (: 없을 무), (: 항상 상)

일원의 진리가 생생약동하여 스스로 인과보응의 이치로 변화한다는 말. 변화무상한 현실세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일원의 진리를 변하는 입장에서 보면 동서남북이 있고 사방상하가 있다. 풍운우로상설의 조화가 있고, 춘하추동·성주괴공·생주이멸로 변화한다. 인생은 생로병사·선악귀천·흥망성쇠·길흉화복으로 변화한다. 인과보응의 이치 따라 잠시도 쉬지않고 변화하는 것이다.

상주불멸(常住不滅)

(: 항상 상), (: 살 주), (: 아닐 불), (: 멸망할 멸)

일원상의 진리를 변하지 않는(有常) 입장에서 바라본 것. 일원상의 진리가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히 불멸하고 항상 그대로 있어서 여여자연·불생불멸 하다는 것. 우리의 본래마음이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

여여자연(如如自然)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세월에 우주 대자연 그대로 존속해 있다는 말. 우주 대자연 그대로가 여여하다는 말. 곧 진리 그 자체가 불생불멸하고 부증불감하며 불구부정 하다는 뜻. 일원상 서원문에 보면 「…유상(有常)으로 보면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라 하였다. 일원의 진리를 유상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

무량세계(無量世界)

한량없이 많은 세계, 무량국토·삼천대천세계와 같은 말. 육도사생의 세계가 한량이 없고,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가 한량이 없어, 이 우주에는 무량세계·무량국토·무변중생이 나열되어 있다.

사생(四生)

모든 생명체를 그 출생방식에 따라 네가지로 분류한 것. 태생(胎生)사람이나 축생과 같이 모태(母胎)에서 태어나는 것. 난생(卵生)새나 물고기 같이 알로 태어나는 것. 습생(濕生)지렁이나 벌레나 곤충과 같이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것. 화생(化生)벌레가 변하여 나비가 되는 것 같이 형태를 변화하여 태어나는 것. 이 사생은 모두 깨치지 못한 미혹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육도 세계를 윤회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상태를 사생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것. 태생은 인간의 오랜 습성, 난생은 어리석은 성품, 습생은 사견(邪見)에 끌려가는 마음, 화생은 육도 윤회에 떨어지는 것.

육도(六途·)

일체중생이 선악의 업인에 따라 필연적으로 윤회하는 길을 여섯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 천도(天道인도(人道수라(修羅축생(畜生아귀(餓鬼지옥(地獄)을 육도라 한다. 육도 세계는 사람이 현생에서 지은 업에 따라 후생에 태어나게 되는 육도 세계, 인류의 역사적 시간 속의 육도 세계, 인간의 현실 생활 속의 육도 세계, 인간의 마음 상태의 육도 세계 등 네 가지 형태의 육도 세계가 있다.

후생에 태어나게 되는 육도 세계

과거·현재·미래의 삼세관에 입각해서 본 육도 세계로서, 현세의 짓는 업인에 따라 내생에 받게 되는 과보를 말한다. 오랜 세월 동안 보편적인 육도 세계로 이해되어 왔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설득력이 별로 없다.

천도

금생에 수양과 선행을 많이 쌓아 복락을 짓고 죄고가 적은 사람이 다음 생에 태어나는 세계.

인도

고락과 죄복이 상반되는 사람이 내생에 태어나는 세계. 인간세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인생을 고락 상반이라고 보는 입장에서 본 견해이다.

수라

금생에 시기·질투·고민에 가득 찬 사람이 내생에 태어나는 잡귀의 세계.

축생

··음 같은 중계를 범한 사람이 내생에 태어나는 동물의 세계.

아귀

탐욕심이 많은 사람이 태어나는 귀신세계. 도깨비세계.

지옥

죄업을 많이 지은 사람이 내생에 태어나는 광명이 없는 암흑의 세계. 고통의 세계.

육도 세계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교훈적이다. 혜복을 많이 닦은 사람만이 천도에 태어나고, 보통 사람은 인도에 태어나며, 그 외의 사람은 모두 수라·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진다. 이렇게 보면 내생에 천도·인도에 태어날 사람은 적고, 수라·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질 사람이 훨씬 더 많게 될 것이다. 비록 금생에 죄업을 많이 지었다고 해서 다음 생에 바로 수라·축생·아귀·지옥고를 받는다는 것은 지혜가 열린 현대인들에게는 설득력이 약한 것이다.

인류의 역사적 시간 속의 육도세계

천도

태평성대·평화시대·요순시대.

인도

인권이 존중되고 문화가 발달한 시대, 복지국가 시대, 민주화 시대.

수라

윤리 도덕의 타락시대, 도덕성 상실시대.

축생

인간이 동물처럼 타락하여 예의 염치가 없는 시대, 사회질서·법질서가 혼란한 시대.

아귀

약육강식의 시대, 군웅 할거시대, 전쟁시대.

지옥

인간이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가질 수 없는 시대, 고통과 압박만 있는 시대, 나라와 주권을 빼앗기고 인권을 상실한 시대.

이러한 견해는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파악할 때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발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현실생활 속의 육도세계

천도

재색명리에 대한 욕심을 벗어나 청정하고 순결한 신앙생활. 무소유의 정신으로 헌신봉공·무아봉공 하는 생활. 천직의식·사명의식으로 성직자·교육자·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는 생활.

인도

희로애락·시비이해·원근친소·선악죄복에 끌려서 살아가는 생활.

수라

목적의식·사명의식이 없는 방황·갈등의 생활. 정서불안과 방탕한 사치와 퇴폐적 향락의 생활.

축생

무지몽매한 생활. 빚지고 얽매인 생활. 금전의 노예나 남의 앞잡이로 전락한 생활.

아귀

대립과 투쟁, 약육강식, 불평 불만, 욕구불만의 생활.

지옥

하루 하루가 고통스럽고 희망이 없는 자포자기의 생활.

현실생활 속의 육도세계도 상당한 설득력과 현실성이 있다. 현실생활 속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나날이 발전해 가는 창조적·희망적·긍정적·적극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상태의 육도세계

천도

삼독 오욕심을 항복받아 텅 비고 맑은 마음. 번뇌 망상, 사심잡념을 떠나 편안한 마음.

인도

분별 시비심·사량 계교심·이성과 감성의 갈등.

수라

번뇌 망상심·요행수를 바라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마음.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축생

무명에 가리어 욕망만 추구하는 마음. 인면수심(人面獸心).

아귀

삼독 오욕심·착심·이기심·앙앙불락심.

지옥

시기 질투심. 중상모략심. 자포자기하는 마음. 희망이 끊어진 마음.

이상과 같은 마음의 육도세계는 누구나 다 갖고 있다. 하루를 두고도 순간 순간에 육도세계를 끊임없이 윤회한다. 이와 같이 육도세계는 내생의 육도세계보다 현실생활 속의 육도세계, 역사적 시간속의 육도세계, 마음속의 육도세계가 더 절실한 것이다.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

어떠한 역경·난경에서도 인과의 진리를 믿고 선업을 쌓아 복락을 장만하는 것이 은생어해, 이와 반대로 순경에 도취하거나 탐닉하여 악업을 짓고 죄과를 불러오는 것이 해생어은이다. 은생어해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은혜를 발견하여 진급하게 되고, 해생어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해독과 원망을 발견하여 강급하게 된다. 은생어해는 감사생활을 하게 되고, 해생어은은 원망생활을 하게 된다.

서원(誓願)

전무출신 하기를 법신불 전에 올리는 맹세.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려는 맹세. 모든 불보살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갖는다.

중생들이 삼독오욕심을 버리고 불보살이 되려고 맹세하고 소원하는 것.

천주교에서 예수와 같은 완전한 덕을 쌓기 위하여 자기 스스로가 깊이 생각하고 자유의사로써 신과 약속하는 것.

일원상서원문 (1)

'원 하옵니다' - 진리에 이르는 통로 -

이선조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주세불 대종사는 원기23년 법신불 진리를 일원으로 표현하며 306자 진언으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이 진급과 은혜입는 생활을 제시하고 성불제중의 서원을 이루도록 서약을 올리셨습니다.

일원상 서원문은 진리와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 진리, 신앙, 수행을 다 함께 이룰 수 있는 종합지침이요 해결 방안을 제시하신 법문입니다.

본문의 '일원은 입정처이요, 생사문인 바,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이라고 밝히셨는데 이 말씀은 교리도에서 '일원은 법신불이니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이라 말씀하신 내용과 같은 말씀 입니다. 이는 법신불 일원상 진리와 인간생활과 우주만물과 진리와의 관계를 가깝게 소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일원상서원문에서는 우주의 유상·무상의 원리를 밝히시며 무량세계가 전개되는 비밀을 해결해주는 일원상 진리를 '이법신불 일원상을 체 받아서'란 말씀에서는 일원상 신앙을 발원하셨고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에서는 일원상의 수행을 발원케 하였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진리 생활로 신앙 수행의 정진을 하여 어리석음이 소멸되고 은혜를 입고 진급이 되는 행복함으로 인도 되도록 하는 대원력의 기원문입니다.

일원상서원문을 처음에 '심불(心佛) 내역급서원문'이란 제목을 붙여 설하신 바를 헤아려 볼 때, 중생들에게 심불에 공들여 성불제중의 결과를 얻으라는 가르침이요 길라잡이인 것입니다.

대종사께서 유상·무상의 무량세계, ·불변의 진리를 손 가운데 구슬 보듯이 열어주시며 성불제중의 가능성을 확신케도 하시고 중생들을 달래주시듯이 서원으로 불지에 이르도록 간절히 발원해주셨는데 그 심경을 헤아려 볼 때 서원문 공부를 하면 행복한 눈물이 나옵니다.

이 서원은 자신과 법신불 간에 불과(佛果)를 서약하는 통로요, 코드이니 지극한 원력이 시방에 충만하면 대 불과를 얻게 되고 결국 법계의 위력과 한량없는 광명과 은혜를 갖추게 됩니다.

대종사와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은 이 서원으로 생령들이 깨달음을 얻고 불조(佛祖)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부처의 길을 서원해 주시는 법계를 향하여 원력을 세우고 천 번 만 번 독송하고 발원하고 사경하며 시시로 진리세계를 관조하고 합일하면 위력과 진급의 주인이 된다는 말씀을 모시고 사심이 떨어지면 위력이 되고 잡념이 잠자면 체성에 합일 된다는 말씀으로 '성불제중 인연'이 되어지길 서원합니다.<신림교당>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일원상 서원문 (2)

그 영원한 큰빛으로 - 되도록 까지 서원함 -

이선조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일원상 서원문은 대각의 4단계와 일원상 서원문을 연마하여 더 깊은 경지의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일원상 서원문으로 대각의 4단계를 밝혀 주셨습니다.

본문의 '일원 (一圓)~ 유무 초월의 생사(生死)문인 바'까지는 진리의 대원경지(大圓鏡智)자리를 밝히시어 모든 성현들이 깨달으신 불생불멸의 진리경지 본래 지혜 자리를 말씀하셨지요. '천지·부모·동포·법률~ 성품으로'까지는 평등성지(平等性智)진리를 말씀 하셨는데 부처나 중생이나 같은 그 자리를 요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능이성 유상하고(能以成有常)하고 ~ 전개하였나니'까지는 대원경지를 봐서 평등성지가 되어 우주에 진급 강급이 되고 일체중생이 육도로 변화되는 이치를 깨달음의 눈으로 보는 묘관찰지(妙觀察智) 경지 단계 입니다.

'우리 어리석은 ~ 지성(至誠)으로 하여, 진급이 되고 ~서원함'까지는 성소작지(成所作智)의 경지 말씀 하셨는데 만능 만지 만덕을 갖춘 경지 입니다. 내가 부처를 이루면 시시로 곳곳에서 대하는 곳마다 지혜 그대로를 행하고 이루게 되는 경지가 있는데 우리는 일과 이치에 까지 걸림이 없는 경지에 다 도달하도록 발원해야 겠습니다.

우주만물은 영원히 자급자족하는 자력체 이기도 하고 서로 힘을 당기고 당겨주는 영향을 주는 위력으로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원리를 통하여 자력을 양성하여 우주의 큰 힘을 얻고 그 위력에 의지하여 힘을 배양하는 공부를 지극한 정성으로 하는 것 입니다.

진리는 유상으로 보나 무상으로 보나 무량세계를 전개하였으니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일원상을 체 받아서 지성으로 즉 계속해서 공부하기를 서원하고 그 공부를 통해 얻는 위력으로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는 생활의 주체가 각자 심신작용임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자유로운 큰빛과 힘이 돨 때 까지 일체생령들이 다 성불함을 얻을 때까지 스승님 발원이 우리의 발원이 되어봅시다.

일원상 서원문을 연마하며 노래말을 적어 보았습니다.

'말로 글로 생사로도 형용 못할 / 온통 두렷이 일원이더니 / 사은 모두 평등이라.

무위이화 자동으로 변화이더니 / 심신 작용 따라 진급 강급이라.

무량세계 그대로 체 받으니 / 마음과 몸 원만하게 체 받으니 / 사리간에 원만하게 체 받으니 / 몸과 마음 사용함을 체 받으니 / 되어지이다 수호하여지이다 / 알아지이다 실행되어지이다. <서원문 노래><신림교당>

회상을 펼칠 우리들의 서원문

김원종 교무 webmaster@wonnews.co.kr

일원상서원문은 원기2311월에 대종사께서 친히 지으신 경문으로 일원상의 진리, 신앙, 수행, 서원이 들어있어서 이 일원상 서원문만 남아 있으면 다시 회상을 펼 수 있다고 말씀하신 우리들의 서원문이며 나의 서원문이다.

일원상서원문에서 원문을 보면, 일원상의 진리(일원은 ~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일원상의 신앙(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일원상의 수행(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일원상의 서원(진급이 되고 ~ 합하도록까지 서원함)으로 나눌 수가 있다.

일원은 선정에 들어간 자리이다. 그곳은 언어나 문자로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라는 말이다. 그곳은 유무를 초월한 자리로 그곳으로부터 나타나면 생()이요 사라지면 사()이다.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은 그곳으로부터 나타난 것이며 이 자리가 성품자리이다.

성품은 모든 부처와 조사와 중생들이 다 같은 것이며 능히 동하고 정할 수 있으며, 능히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면으로 보면 질량·에너지 불변의 법칙처럼 그대로이며, 변하는 것으로 보면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만물은 생로병사로 변하며, 사생의 심신 작용의 결과로 육도 중에서 진급되기도 하고 강급되기도 하는 것이다.

은혜생활을 하는 사람은 진급으로, 원망생활을 하는 사람은 강급으로 진리의 작용이 호리도 틀림 없이 전개되어진다.

이러한 일원의 진리를 믿고 본받아서 정신수양 공부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고, 사리연구 공부로 심신을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작업취사 공부로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진급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서원을 세우는 것이다.

'! 사느냐?'라는 물음에 우리들은 '나는 진급되기 위하여 산다'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일원상서원문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원각성존 소태산대종사의 제자로서 일원대도 회상을 만나 원불교의 교도가 된 우리들은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 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 까지 서원하여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일원의 위력을 얻으려면 사사(私邪)가 떨어져서 일원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일원의 체성에 합하려면 망념이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면 되는 것이다.

길이 있고 길을 가는 방법도 있으니 쉬지 않고 정성스럽게 가기만 하면 서원은 이루어질 것이다.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주제있는 정전공부 11, 일원상서원문

306자 경문 진리,수행관 함축

남궁성교무 webmaster@wonnews.co.kr

일원상 서원문은 일원상의 진리와 수행을 밝히시고 우리 모든 중생들이 진리의 위력을 얻고 진리와 하나되도록 서원을 올리는 경문입니다. 이 경문은 총 306자로 되어있으며 대종사께서 친히 지어주신 법문입니다. 대종사님께서 깨달으신 진리관과 수행관 그리고 경륜이 가장 함축적으로 정리된 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불교의 교도는 이 경을 독경 할 때는 항상 청정일념과 진리를 연마하는 마음으로 하여야 하며, 진리의 위력을 얻고 진리에 합일할 것을 발원하는 마음으로 경을 외워야 할 것입니다.

이 경을 연마하는데 참고가 되는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에서 부터 전개하였나니까지는 원불교의 진리관이 밝혀있고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부터 지성으로 하여까지는 원불교의 수행관이 밝혀 있으며 그 다음부터 끝 부분까지는 우리가 발원할 대서원의 내용이 밝혀 있습니다.

내용을 좀더 살펴보면 진리관에서는 우주의 근본은 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이지만 그 자리는 만물의 근원이 되고 모든 성현들이 깨달은 자리가 되며 일체중생의 본성이 된다고 밝히셨습니다.

또한 그 자리는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와 무한히 변화는 진리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호 바탕이 되어 우주가 운행이 되고 있으며, 그 변하는 진리 또한 그 진리 자체가 스스로 변화는 면과 우리 중생의 심신작용 여하에 따라서 변화는 양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자체가 스스로 하는 변화는 달게 받을 수 밖에 없으나 각자의 심신작용에 따라 변화는 것은 그 변화의 원인이 각자 자신에게 있으므로 은혜롭고 진급이 되도록 심신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심신작용을 잘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 수행인데 그 수행법은 먼저 사리을 원만하게 알고, 심신을 원만하게 잘 수호하고, 그리고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가 가장 원만한 수행길 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리하여 꾸준한 수행으로 진리의 위력을 얻고 진리에 합일하는데 까지 이르도록 큰 서원을 세우고 지성으로 정진하자는 경이 일원상 서원문입니다.<남궁 성 교무·교정원 총무부장>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일원상 서원문 / 고산 이운권

원불교신문 webmaster@wonnews.co.kr

이 일원상은 법신불상이니 진리의 상징이요 불성의 심인이다. 다시 말하자면 심불이니, 법신불상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세계를 형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마음은 언제나 과 같이 두렷한 모습 그대로임을 알아서 믿어야할 것이다. 또한 그의 내역을 철저히 의식하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일원상으로 표준해서 동정간에 부처님의 마음 곧 일원의 세계에 유유자적하여, 부처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요, 나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 되도록 까지 맹서하고 발원해서, 이른바 중생이 변해서 부처가 되어 가는 내용과 방편을 역력하게 나타내신 위대한 경문이 곧 일원상 서원문이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이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

진리의 본원이요 마음의 근본 체성자리로 말하면, 본래 형상이 없어서 말과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방법적으로 이름해서 일원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일원은 근본의 참 모습을 가르치기 위한 진리의 대명사요, 마음부처의 칭호라 하겠다.

일원의 본래 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분별이 다 끊어져서 한 생각이 나기 이전의 정에 들어간 곳이다.

정에 들었다 함은 주관과 객관이 일체가 되어 아무런 구별이 없어 한 덩어리라고도 할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본 체성에 귀일이 되어있을 때를 말한다.

유와 무의 생사문이라 함은 근본 바탕에 있어서는 있다 없다 할 수도 없는 자리로서 유와 무를 떠나 있으나 생과 사의 문호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사의 문이라 함은 생사는 곧 분별이니 현실 분별 세계의 문호가 되었다는 말이다.

문호라는 말은 출입하는 통로이니, 근본 체성에 있어서는 분별이 없는 자리로되, 그를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는 분별이전의 체성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천만분별이 소소역력하여 산은 산이요, 물은 물대로 완연하다는 말이다.

또한 마음의 세계에 들어가서도 이와 같아서 각자의 자성본체에 있어서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라 마음이라 이름 할 수도 없는 한 마음 뿐이로되, 천만 분별 되어가는 마음이 그의 자성자리로 근원해서 발생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요하면 ?가 되고 움직이면 이 된 것이니 고요하고 움직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체와 용이 본래 둘 아님을 알아야할 것이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우주 대자연의 진리를 일원으로 상징해서 신앙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상적으로만 무조건 신앙하자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사실과 부합 연결을 하여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이요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초현대적인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의 진리를 현실적으로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네 가지 큰 은혜를 구분하여 실질적인 보은 감사 생활로써 진리신앙에 개방된 윤리를 천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은 사은의 모체가 되고, 사은은 일원의 분화신이 되어 사은의 윤기가 일원의 진리에 연원되어 있음을 알아서 그의 윤기를 따라 실질적인 복전을 발견하게 한 것이다.

이상을 떠난 현실은 그 수명이 길지 못할 것이며, 현실에 바탕 하지 않는 이상은 공리공론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수명에 사실적인 신앙생활이 바로 진리신앙인 동시에 실천적으로 사은을 향하여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원리를 따라 복을 짓게 되는 터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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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 고산 이운권

변화하는 도로써 볼 때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일분일각 이라도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무수 무량한 현실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으로-

원불교신문 webmaste

모든 부처님이나 조사 또는 범부중생들의 근본 성품자리가 곧 일원의 진리에 한 가지 근원 하였다는 말이다.

모든 일과 이치를 알고 알지 못하는 의 구별된 세계로 볼 때에는 제불 제성과 범부중생이 <잘 안 보임> 부처와 중생이 모두 차별이 없다는 (心 佛 衆生 三無差別) 등등한 세계에서 볼 때에는 그의 성품자리가 다르지 아니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인격을 양성하는 데에 있어서는 반드시 진공묘유의 생생 약동하게 살아있는 큰 진리에 표준 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자아완성의 길이 오직 일원의 진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그 진리를 그대로 활용해서 순역경계에 육근동작이 절도에 맞아 호리도 막히고 어긋남이 없이 일원화 되도록 까지 적공을 거듭하여 결국 일원의 분화신이 되자는 것이다.

-능이성유상하고 능이성무상하여-

본래 체와 용이 구별이 없는 자리로되, 동과 정을 따라 분별을 하고 보면, 체와 용이 같으면서도 다른 면으로 구별된다.

생과 멸이 끊어진 상주불멸의 진리가 있는가 하면, 언제나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윤회 변천하는 진리가 있어서, 우주 대자연의 진리는 변하고 변치 아니하는 도로써 조성되어 있다. 이가 바로 불생불멸의 도에 바탕 해서 인과응보의 이치가 호리도 틀림이 없이 드러나게 되는 진리이다.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다시 말하자면 일원의 본체성에 있어서는 무시무종해서 여여히 상존한다. 천지가 구분되기 전에도 여여히 상존하였고, 생멸과 증감이 없을 것이니, 그의 진리 가운데에서 무량한 세계가 전개될 것이다.

-무상으로 보면 우주의 성주괴공과 만물의 생로병사와 사생의 심신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켜,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이와 같이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나니-

무상의 진리, 다시 말하면 변화하는 도로써 볼 때에는 전 우주와 삼라만상이 일분일각이라도 그대로 있지 아니하고 항상 변화하는 도를 따라 무수 무량한 현실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크게 구분해서 볼 때, 우주에는 성··· 공의 윤회라는 도로써 변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은 생성, 발육하는 기간이거나 나날이 살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주는 성장 견고해지는 기간이니, 더욱 더 굳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괴는 결실 귀근하는 기간이니 하나 하나씩 조락되어 가는 과정이 된다. 공은 回本無相 하는 기간이니 낱낱이 없어져가는 과정이다.

성과 주는 기간을 생성발전 하는 증겁으로 본다면, 괴와 공의 기간은 조락무상 하는 강겁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1증겁을 15,995,000년으로 계산하는 학자의 주장에 의한다면 1증 강겁은 31,996,000년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다.

이는 바로 이 우주가 성···공으로 한 번 순환하여 변화하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 또한 형상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변화의 도를 따라 그대로 있지 아니하는 길을 밝힌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성···공의 변화하는 도를 축소한다면 곧 춘···동 사시 변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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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 / 고산 이운권

이 우주의 변화하는 도를 따라 만물은 생, , , 사의 도를 윤회 변천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태생, 난생, 습생, 화생으로 몸을 받게 되는 이 四生으로 말하자면 그 마음가짐과 몸의 동작을 따라, 천도 인도 축생 수라 아귀 지옥의 육도라는 현실세계로 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자기 자신의 좋아하는바 그대로 육도세계를 통해서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른 마음으로 착실한 활동을 한다면 지은 바 그대로 진급이 되는 것이요, 그릇된 마음으로 옳지 못한 행위를 한다면 강급이 되는 것이다.

은혜가 해 가운데에서 나오는 것이 모두 육도가 순환하는 법칙의 결정이니, 상생은 상극으로 상극은 상생으로 연연 상속하는 도를 따라,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도 상생과 상극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생 상극으로 변천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음양 상승으로 변화하는 도를 따라 한량없는 현실세계가 형형색색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四生六途

태생은 부모의 인연을 따라 수태하여 로써 태어나는 중생

난생은 異氣의 합으로 교배하여 알로써 태어나는 중생

습생은 이기의 합으로 함습하여 습기에서 태어나는 중생

화생은 변화기질의 형태로써 변천하여 기생케 되는 중생이다.

다시 心中 사생으로 말한다면 태생은 언제나 마음이 우울하고 침체되어 편벽된 마음이 중한 중생심, 난생은 항시 경박해서 들뜬 마음이 많은 중생심, 습생은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산만한 마음을 가진 중생심, 화생은 목적의식과 방향 감각이 없이 요란한 마음을 가진 중생심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에서 발생하는 네 가지 중생심을 멸도 하여야 할 것이다.

육도를 설명하면, 천도는 청정 무애한 진리의 세계, 오탁악세를 떠나 무허 삼매의 적적 무위한 영계를 말한다.

인도는 현실 세계 즉 욕정으로 얽혀 살고 있는 인간 세계,

수라는 대도대덕을 망각한 요행신의 세계,

아귀는 탐심으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져 있는 악귀의 세계,

축생은 예의염치를 모르는 짐승들이 사는 세계,

지옥은 상극으로 맺혀 같이 살수도 없고, 또는 일월의 광명을 볼 수도 없이 살고 있는 악도중생 세계이다.

다시 心上 육도를 설명하면, 천도는 모든 욕심이 다 청산되고 일체 생각이 청정하여 진리로 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인도는 감정과 의식이 잘 조화되어 살게 되는 마음가짐,

수라는 공리공론만을 주장하여 아무런 실상이 없는 거짓 꾸밈의 마음가짐,

아귀는 탐욕이 일어날 때 참지 못하는 마음가짐,

축생은 어리석어서 예의염치를 망각하는 마음가짐,

지옥은 불 같이 일어나는 瞋心을 참지 못하고 상충되고 상극이 되는 마음가짐이다.

요약하면, 욕심이 다 떨어진 마음이 천도, 욕정과 분별로 시비이해를 따지고 사는 마음이 인도, 본심을 잃고 보는 대로 듣는 대로 허영에 끌려 사는 마음이 수라, 탐욕심이 아귀, 치심이 축생, 瞋心이 지옥 중생이라 하겠다.

이상은 법신불의 내역을 체와 용으로, 또는 신앙과 수행으로 생명 없는 도와 인과 응보의 변천하는 이치로써 구분하여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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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상 서원문 / 고산 이운권 <>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우주 대자연의 진리를 투철히 알지 못한 범부중생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가기로 할 것 같으면, 이 법신불상인 일원상을 그대로 따라 의지하고 체득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일원상을 지표 삼아서 몸과 마음을 지키며 두호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원만하게 지킨다는 것은 통일된 마음과 정확한 행위로써 일이 없을 때에는 모든 경계를 능히 초월하여 적적열반에 안식하며, 일이 있을 때에는 모든 경계를 능히 총섭하되 일심분란이 되어, 한 마음 지키기를 개가 도둑 지키듯 하여 동정간에 모든 경계가 원만한 근본 자성자리에 침범치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두호한다는 것은 청정한 몸과 마음이 밖의 경계에 끌려나가지 아니하도록 조심하자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몸과 마음을 양성하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우주 대자연의 진리는 무소부재하고 무시불촉하나니, 일원상을 절대 유일의 스승으로 모시고 심신을 오직 진리로써 단련하여 이무애 사무애가 되어서, 진리의 광명이 바로 마음의 광명이 되고 마음의 혜광이 또한 진리에 거울이 되도록 까지 마음공부에 적공을 해야 할 것이다.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도 자기 마음대로 활용 못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일과 경계에 자유와 해탈을 얻지 못하고, 끌리고 사로잡히게 되는 원인은 키 잃은 사공과 같이, 먹줄 없는 목수와 같이 행방을 인도하는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법신불 일원상으로서 좌표를 삼아 심신동작을 오직 일원의 진리에 조종을 받아 결국 나의 동작이 일원의 동작이 되고 일원의 표현이 바로 나의 표현이 되도록까지 알고 행하며 알아 가는 공부를 끊임없이 계속하자는 것이다.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생생약동하게 살아있는 마음으로써 발전이 되고 진보가 되어가도록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요, 또는 온 누리가 은혜로써 구성되어 있다는 은의 사상에 입각해서 상생상화의 도를 따라, 언제나 고마운 마음으로 은혜의 세계가 전개 하도록까지 수행은 할지언정 행여나 정지되고 후퇴해서 서로가 원망과 질투로써 상충과 상극이 되풀이되지는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마음이 요란하고 혼탁하여서 사념망상이 쉬지 아니한다면 자성자리에 이탈됨은 물론 일체 대중과 더불어 동화할 수가 없을 것이다.

동화하지 못한다면 자연히 고립될 것이요, 고립되고 보면 어찌할 수 없이 스스로가 악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신동작을 오직 일원의 진리에 순종하여 각자의 마음을 단련하여야 할 것이요, 모든 동작을 오로지 대자연의 진리에 부합되도록까지 정력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이상과 같이 모든 적공과 노력을 다하여 최후에 있어서는 타력으로써 완전한 자력을 얻도록까지 서원 실행하지는 것이다.

일원의 체성에 합한다는 말은 일이 없을 때나 일이 있을 때 나를 막론하고 일원의 진리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일이 없을 때는 기쁨과 슬픔을 다 잊어버리고 선악을 초월한 자성의 본체에 귀일 하여야 할 것이요, 급기야 일을 당하고 보면 고락을 총섭하고 선악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자성자리를 활용함이 절도에 어긋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경계를 대하기 전에는 적적성성한 자성의 본래 면복을 그대로 물아일매가 되고 혼연일체가 되어 있다가, 경계를 접할 때에는 그 경계를 능히 요리할 수 있는 자주의 정신이 확립되어야 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뼈와 살이 얼굴을 나눌 수 있는 행위와 동작으로써 그 일 그 일을 생생하게 처리하여, 경계는 경계요 조금도 걸리고 막힘이 없이 투철해서 일원진리의 동작과 나 자신의 동작이 둘이 아니어서, 진리의 동정이 나의 동정이 되도록까지 서원함이 곧 진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진리의 주인이 바로 원불교의 주인이요 원불교의 주인이 또한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경처에 있어서는 곧 세계의 주인이 되도록까지 서원하고 적공하자는 것이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1>

진리의 전체를 여실히 표현

신앙과 수행의 양면 밝히고

장성진 webmaster@wonnews.co.kr

머릿말

소태산대종사께서 28년간 설하신 무량법문을 집대성한 일원상서원문은 시방 삼세를 통하여 짝할 바 없는 거룩한 대법문이다. 그 자구는 비록 306자에 불과하지만, 진리의 전체를 여실히 표현하고 신앙과 수행의 양면을 두루 밝히고, 생활과 일치를 도모하여 내가 곧 일원이 되고 일원이 곧 내가 되도록 하였으니, 마가대법왕이여 앞으로 무량겁을 통하여 무량세계를 정화하고 무량중생을 제도하리니 법의 광명이 어찌 저 천지에 비할 수 있으리오. 스승님들의 법문을 종합하여 주해의 붓을 드니 조문상덕이 될까 두렵다.

(向下長文知不知看看平地 波濤起 : 향하장문지불지간간평지 파도기)

大意

1. 대종사님 久遠劫來(구원겁래)의 서원이오.

2. 삼세 제불 제성과 일체 수행인의 공동 발원이요.

3. 각자 심불 전에 불과를 얻으려는 지극한 서원이다.

○ 『일원은 언어도단의 入定處이요 유무초월의 生死門인 바

단어해석

일원= 우주 만유를 주재하는 궁극적이고 원만한 하나의 진리.

언어도단의 입정처= 일원의 현묘하고 심오한 진리는 말과 글로써는 도저히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분별과 사량이 완전히 끊어져서 고요히 에 든 자리.

유무초월의 생사문인 바= 일원의 진리는 이름과 형상이 없기 때문에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일체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일체만물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마치 출입하는 문과 같다고 비유한 것.

解義

일원은 천만가지 법의 으뜸으로서 모든 진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포함한 도덕의 원천이다. 체성에 있어서는 일체의 분별 시비와 선악이 완전히 텅 비어서 언어로서는 가히 말할 수도 없고 형상으로서 가치 그려낼 수도 없는 자리이다. 천지와 만물이 생겨나기 이전이며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소식이다. 묵묵히 반조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전하고 받은 존재 아닌 존재이지만 어리석은 중생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일원이라 이름 짓고 둥그렇게 그려서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과 생활의 이념으로 삼은 것이다.

이를 아는 사람은 허공에 둥그렇게 떠있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또는 길을 인도하는 푯말로 여기고 파안미소 할 것이다. 또한 이 한 물건이 있다고 하자니 가히 볼 수도 없으며, 없다고 하자니 눈앞에 역력하여 일상동작에 완연하다. 또는 없는 것으로 볼 때는 우주만유 산하대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있는 것으로 볼 때는 우주만유 산하대지 사사물물까지 없는 공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며 이상도 아니요, 현실도 아니며 도 아니요, 도 아닌 일체의 한계를 떠난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소소영령한 광명이 삼세에 여여하고 시방에 두루 하여, 마음과 물건으로 이상과 현실로 유와 무로 은현자재 하므로 말과 말이 없으나 천만가지 덕을 갊았고 유무를 벗어나 일체를 포섭하였다는 것이다. 요약하여 말한다면, 언어도단의 입정처란 진리의 로서 우주만유가 나누어지기 이전이요, 성품의 체로서 한 생각도 일어나기 이전이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이란 것은 진리의 으로서 천지만물의 현실세계요, 성품의 용으로서 한 생각이 이미 일어난 분별세계로 진공묘유의 不二門인 바 진리의 전체요, 성품의 전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면 가 되고 하면 이 되는 것이니, 정하고 동하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체와 용이 본래 둘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확실히 깨치고 힘써 닦아서 일상생활에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단어해석

천지= 형상 없는 하늘과 형상 있는 땅, 우주, 세상

부모= 나를 낳아 길러 가르쳐주신 아버지와 어머니.

동포= 천지 안에 살고 있는 일체 만물.

법률= 천지만물 본래의 주장되는 근원.

해의

우주 만물의 본원은 원래 하나인 것이다. 그 자체는 적적하고 형상이 없어 아무런 낱이 없는 것이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 및 일체현상이 본래 하나의 진리에 근원하였으므로 이를 나눌 수도 차별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일원은 사은의 모체가 되고 사은은 일원의 분화신으로 一卽多 思想 卽現實의 관계이다. 천지는 곧 일원의 진리요 그 실재이며, 부모와 동포는 일원의 한 포태 안에서 한 기운을 이어받아 자라난 한 형체이며, 법률은 일원의 진리 즉 하늘의 도를 본받아서 인간이 행할 도리를 밝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만유가 생성하는 데 있어서 한 이치가 운행하고 있는 한 기운을 이어 받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은 그 근원이 같다는 의미이며, 하나의 하늘을 우러러보고 같은 땅을 밟고 삼라만상이 더불어 있는 것은 그 실례이다. 또는 우리가 살아갈 때에 한 공기를 호흡하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은 그 증거이다.

비유해 말하자면, 나무의 줄기와 잎과 가지와 꽃과 열매가 각각 다르나 뿌리에 연결되어 살아가는 하나의 나무인 것과 같으며, 또한 넓은 바다의 천만 파도가 물에 근원하여 움직이는 하나의 바닷물일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인과보응의 신앙문으로 일원의 진리를 사은으로 분류한 것은 사은이 바로 우주만유 생성의 근원이요 죄복을 내려 줄 권능이 있음을 알아서 그에 귀의하여 영원한 세상에 안심입명을 얻자는 것이다. 또는 사은이 일원의 진리에 연원되어 있는 대윤리 도덕임을 알아서 보은감사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또는 사은의 윤기를 따라 실질적인 복의 터전을 발견하여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하여 진리와 사실이 둘이 아니요,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을 모시고 일마다 불공을 올리는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원만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 『諸佛祖師 凡夫衆生의 성품으로

단어해석

제불= 부처님과 부처님이 서로 연원을 하고 세상을 이어받은 모든 주세불.

조사= 부처님의 법통을 잇고 그 법을 전하는 성자.

범부= 보통 인간. 펑범한 사람.

중생= 천지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령.

성품= 누구나 다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본래의 마음.

해의

일체중생의 성품은 원래 평등한 것이며 그 자체는 고요하고 청정하여 한 티끌도 없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이나 조사들이나 범부 중생의 마음이 다 같아서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질과 요소를 갊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없고, 어둠도 밝음도 없으며, 혼미함과 깨침도 없어서 일체생력이 다 같이 여여한 부처로 여래의 지혜와 공덕을 갖추었으나 무시이래의 無明習氣로 인하여 모든 차별을 이루었다. 따라서 깨치면 부처요, 어두워지면 중생이라 닦고 닦지 않는 구별이 있을 따름이요, 근본 성품에 있어서는 부처라 더하고 중생이라 덜하며 성인이라 넉넉하고 범부라 모자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2>

진리는 옛과 지금에 변함없고 십방을 두루 해도 다함이 없다.

장성진 webmaster@wonnews.co.kr

다시 말하면, 과거의 모든 부처와 성자들의 깨친 바가 같고 설한 바가 같으며 행한 바가 같고 전하는 바가 같다고 하는 것은 본원인 성품이 같다는 의미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5백 생을 닦았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닦으면 부처가 된다는 실례이다. 또는 우리가 삼학공부를 하여갈 때 삼대력이 익어가는 것은 그 증거이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참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림자 달은 일천강에 비치는 것과 같은 것이며, 금은 원래 광명을 갖고 있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 묻혀 있으나 그 빛깔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는 진공묘유의 수행문으로서 일원은 곧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우리의 마음임을 알아서 수행에 정진하자는 것이다. 또는 일체중생의 마음도 본래 같은 것임을 알아서 교화에 자신과 용기를 갖자는 것이다. 또는 傳心印임을 알아서 심법을 전수하기 위하여 서원을 세우며 불법과 생활이 둘이 아니요, 때와 곳이 따로 없는 無時禪 無處禪의 원만한 수행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能以成有常하고 能以成無常하여

단어해석

能以成有常= 능히 떳떳함이 있는 것을 이룬다. 즉 불생불멸의 진리.

能以成無常= 능히 떳떳함이 없는 것을 이룬다. 즉 인과보응의 이치 또는 대자연의 변화무상한 현실세계.

해의

일원의 진리 그 자체는 유상과 무상이 없으나, 한 기운이 하면 능히 유상을 이루고 하면 능히 무상을 이루는 것이니, 이는 진리의 양면으로 우주 대자연을 한편으로는 불변의 세계, 또 한편으로는 변화의 세계로 관찰한 것이다.

진리는 하나로서 불변의 진리 가운데에 변화의 진리가 내포되었고, 변화의 진리 가운데에 불변의 진리가 내포되었다.

떳떳함이 있는 것으로 보면 안으로 일원의 진리 자체가 고요히 형상이 없어 시작과 끝, 옛과 이제가 없으며, 밖으로는 일원의 실제인 우주와 인생으로 비롯하여 삼라만상이 변화는 될지언정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없다.

떳떳함이 없는 것으로 보면 안으로 일원의 진리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이 묘하여 모든 조화를 나타내며, 밖으로는 일원의 실재인 우주와 인생으로 비롯하여 삼라만상이 변화무궁하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이 세상은 변, 불변의 진리로서 불생불멸의 도에 바탕 하여 인과보응의 이치가 조금도 틀림없이 영원히 존속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유상과 무상이 진리의 동정이요, 마음의 동정임을 알아서 육근동작을 함 때에 이 절도에 맞도록 할 것이며, 또는 진리의 동정을 따라 유무가 순환함을 알아서 유무에 끌리지 말고 유무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것이다.

즉 첫째는 현실세계의 재색명리가 다 무상함을 알아서 애착, 탐착을 뗄 것이요, 둘째는 현실세계의 재색명리가 다 세간락임을 알아서 도로써 구하고 중도에 맞게 활용할 것이요, 셋째는 재색명리를 흰 구름이 떠다니는 것같이 알고 해탈의 심경을 기를 것이다.

有常으로 보면 常住不滅如如自然하여 무량세계를 전개하였고

단어해석

常住不滅=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서 변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

如如自然=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대자연 그대로 존속해 있는 것.

무량세계를 전개= 우주 대자연을 개별적으로 나누어 본 현실세계, 즉 이 현실세계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세계로 나누어 전개되었다.

해의

일원의 본체성이 고요하고 청정하므로 진리와 현실이 대자연의 한 세계를 이루어 그대로 있는 것이다.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시작과 끝, 옛과 이제가 없이 헤아릴 수 없이 묘한 조화를 나타내며, 시간과 공간을 통하여 여여자연하며 형상 없는 하늘과 형상 있는 땅이 언제 생겼는가, 언제 없어지는가, 무시광겁을 통하여 여여자연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순환하고 일월이 계속 밝으며 밤낮이 변천하는 가운데 만물이 변화를 하지만 나무 한 그루, 풀잎 한 개 없어지지 않고 영원한 세상을 통하여 여여자연하며 인간의 형상 없는 정신과 형상 있는 육체가 생, , , 사를 따라 무궁한 세월을 통하여 여여자연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에는 형상이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를 막론하고 없어지는 것이 없이 자연 그대로 있는 가운데 진공묘유의 조화가 한량없는 세계를 전개하였으므로 진리는 옛과 이제를 통하여 변함이 없고 시방을 두루 해도 다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우주의 상주불멸의 진리가 삼라만상의 무정세계와 육도의 유정세계를 건설하였음을 알 것이며, 또는 인간의 상주불멸의 심정이 육도세계를 출입하는 업을 지었음을 알 것이며, 또는 수도인은 상주불멸의 심성을 계발하여 선도의 세계, 해탈의 세계를 건설하였음을 알 것이다.

無常으로 보면 宇宙成住壞空

단어해석

宇宙= 천지사방과 고왕금래. 세계 또는 천지간. 만물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成住壞空= 우주가 변화하는 과정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 은 우주가 형성되는 때, 는 그대로 굳어지는 때, 는 파괴되는 때, 은 없어지는 때. 그러나 우주는 성, , , 공이 무한이 되풀이 되므로 대자연은 항상 그대로 여여하게 되는 것이다.

해의

일원의 진리 자체가 헤아릴 수 없이 묘하여 천만가지 조화를 나타내므로 우주만물의 온갖 변태가 있게 된다.

우주가 성, , , 공이 되는 것은 대종사의 법문과 같이 음양이 상승함을 따라 무위이화로 , , , 삼륜이 굴러서 되는 것이지만 우주가 일시적으로 성, , , 공의 순서를 밟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어두워지는 곳도 있고, 그대로 굳어지는 것도 있고, 무너지는 것도 있고, 없어지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지구에 있어지는 바닷물이 물러가고 육지가 불어남은 성이요, 바닷물과 육지가 그대로 있음은 주요, 바닷물이 올라와 육지가 줄어듦은 괴요, 바닷물이 들어와서 육지가 없어짐은 공이다. 이와 같이 지구전체가 일시적으로 성, , , 공의 순서를 밟는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의 지역을 따라서 분야가 서로 다르므로 지구의 형태가 변화는 될지언정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는 성 가운데에도 성, , , 공이 있고 주 가운데에도 성, 주 괴, 공이 있으며 괴 가운데에도 성, , , 공이 있고 공 가운데에도 성, , , 공이 있으니 우주가 전체적으로 성, , , 공이 되는 것을 一大刦이라 한다.

이와 같이 우주가 성, , , 공으로 변화할 때 진급, 강급이 있게 된다.

대체적으로 성, 주를 진급이라 하고 괴, 공을 강급이라 하나 진급기에도 부분적으로 진급, 강급이 있게 되고 강급기에도 부분적으로 진급, 강급이 있게 되나니 진급기에는 선후천이 교체되고, 지구 형태가 생성변화 되고, 문화가 발달되고, 인구가 늘고, 사람의 수명이 길며, 인간의 지혜가 밝아지고, 인간의 마음이 선해지며, 일체생령이 악도에서 선도로 올라온다. 강급기에는 이와 반대의 형태를 이루는 것이니

우주만 성, , , 공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도 그러하고 만물도 그러하며 지푸라기 한 개, 먼지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순서를 밟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금강경에 凡所有相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하였음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3>

六途輪廻(육도윤회) 따라 進降級(진강급 )되고

愛惡慾(애오욕)六途昇降(육도승강)의 원인

定業(정업)은 불면 天業(천업)은 돌파할 수 있어

심중도 없앨 때 자유 얻고

장성진 webmaster@wonnews.co.kr

만물의 생···(生老病死)

단어해석

만물= 천지 안에 살고 있는 삼라만상.

생로병사= 인간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생은 태어나는 것, 노는 몸이 늙어 쇠퇴해 가는 것, 병은 몸에 고장이 생겨 병드는 것, 사는 죽어 가는 것.

해의

천지에 사시가 순환함을 따라 만물이 생성한다. 봄이면 만물이 소생하고, 여름이면 만물이 성장하고, 가을이면 만물이 결실하고, 겨울이면 만물이 말라 죽게 되는 것과 같이 일체 유정물은 생로병사를 하고 일체 무정물은 생장성쇠 하는 것이 대자연의 떳떳한 길이며 하나의 이치로서 유는 무의 근본이요, 무는 유의 근본이며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며 오는 것은 가는 것의 근본이요, 가는 것은 오는 것의 근본으로서 순환 무궁한 것이요,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생과 사가 둘이 아님을 알아서 평소 생사 거래에 태연한 심경을 기를 것이며 나아가서는 생과 사가 없는 성품자리를 깨치고 닦아서 생사를 초월하되 첫째, 생에 대한 애착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청산하고 성불제중의 서원일념을 갖는 것이요, 둘째는 정신과 육신을 분리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요, 셋째는 육도의 업문 출입을 자유로 하는 것이다.

사생(四生)의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六途)로 변화를 시켜

단어해석

四生= 일체 생령들이 태어나는 것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 胎生, 卵生, 濕生 , 化生.

심신작용= 마음과 몸이 경계를 당하여 선악을 취사하는 행동.

六道= 일체 생령들이 죽는 것을 6가지로 분류한 것. 즉 천도, 인도, 수라아귀, 축생, 지옥.

변화= 다른 물건으로 바뀌는 것.

해의

음양 상승의 도를 따라서 인과보응이 있게 되고, 인과보응의 이치에 의하여 일체 생령이 선악 간 업력을 따라 육도를 윤회하는 것이다. 사생을 다시 설명하면, 태생이란 태를 통하여 낳은 생령들이요, 난생이란 알을 통하여 낳은 생령들이요, 습생이란 습한 기운을 통하여 낳은 생령들이요, 화생이란 변화를 통하여 낳은 생령들이다.

육도를 다시 설명하면 천도, 인도, 수라를 선도라 하고, 아귀, 축생, 지옥을 악도라 한다. 또 현실육도, 생활육도, 심중육도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실육도란 일체 생령들이 선악 간에 지은 바를 따라 내생에 과보 받는 현실계를 육도로 분류한 것이다. 즉 천도는 육신은 받지 않고 영식만 사는 세계로서 괴로움은 없고 즐거움만 있다. 인도는 육신을 받아가지고 사는 인간세계로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상반한다. 수라는 육신은 받지 못하고 영식만 사는 잡귀의 세계로서 정처 없이 떠다니는 생활이다.

아귀는 육신은 받지 못하고 영식만 사는 악귀의 세계로서 굶주리고 목마른 괴로움이 심하다. 축생은 소나 말이다 양이나 돼지 등 가축이 사는 세계로서 구속과 고통이 심하다. 지옥은 땅 밑이나 물속의 뱀이나 곤충, 고기 등이 사는 세계로서 오물과 천시 속에서 살게 된다. 생활육도란 인간에 한해서만 있다. 즉 사 상의 직업을 통해서 생활면에 일어나는 현실계를 육도로 분류한 것이다.

즉 천도는 대중을 교화하고 지도하는 종교가, 철학가, 문학가, 교육가 등 어떠한 직업을 막론하고 진리에 근원하여 도로써 생활하여 또는 청렴담백을 즐기는 老士의 생활이다. 인도는 사 상의 생존경쟁 속에서 시비이해로서 살아가는 생활이다.

수라는 일정한 거처가 없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사는 주색낭유의 생활이다. 축생은 금전에 매매되어 일시 또는 인생을 노예로 사는 극심하고 욕구불만의 생활이다.

지옥은 심신에 자유를 얻지 못하고 구속과 압박과 고통 속에서 살며 또는 부정당한 일로 감옥생활을 하는 것이다. 심중육도는 일생생활을 통해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세계를 육도로 분류한 것이다.

즉 천도는 청정한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인도는 참되고 착한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수라는 복잡하고 산란한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아귀는 삼독과 오욕과 자리해타의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축생은 사리에 미혹하고 예의와 염치를 모르는 우치한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지옥은 화내는 마음과 시기, 질투의 마음이 일어난 때이다. 이처럼 심중육도가 우리의 생활면에 나타나고, 생활면에 나타난 육도가 그 과보로서 내생의 현실육도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 생령이 육도 윤회할 때에 진급, 강급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진급기에도 부분적으로 진급, 강급이 있게 되고 강급기에도 부분적으로 진급, 강급이 있게 된다.

진급, 강급이 우주의 진급, 강급과 같이 됨으로 진급기에는 문화가 발달되고 인구가 늘고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며 사람의 지혜가 밝아지고 인간의 마음이 착해져서 일체의 생령이 악도에서 선도로 올라오는 것이요, 강급기에는 이와 반대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먼저 삼세의 인과를 굳게 믿을 것이요, 또는 일체가 다 마음이 들어서 짓는 것임을 자각하여 육도 승강의 원인이 되는 삼대 업망을 부셔야 하는 것이다.

대산종법사의 법문과 같이 첫째는 애정으로 맺어진 인연력이요, 둘째는 원망과 미움으로 얽혀진 인연력이요, 셋째는 삼독으로 물든 욕심력이다.

이 세 가지 근본이 무명임을 알아서 도력으로 물리치되, 복이 다하면 떨어지고 업이 다하면 환원하며 정업은 면치 못하나 천업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이니 결국은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성을 깨치고 닦아서 심중육도를 없애고 마음의 자유를 얻어서 육도 고해를 해탈해야 할 것이다.

정업 (定業)

(1)자기가 지어놓은 인()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과보를 불러오게 될 업. 이 경우에는 부처님도 정업을 면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과보를 받는 시기에 있어서는 현세에 지어서 현세에 받게되는 순현업(順現業), 현세에 지어서 내세에 받게되는 순생업(順生業), 현세에 지어서 다음 생 이후에 받게되는 순후업(順後業) 등의 세가지 구별이 있다. (2)결정된 업보. 과거에 지은 업을 현세에 당연히 받게 되는 과보. (3)일정한 직업이나 업무.

천업 (天業)

우주 대자연이 천지 조화로 자동적으로 운행하는 것. 우주의 성주괴공, 만물과 인생의 생로병사, 또는 춘하추동 사시의 순환이나 주야의 변화 등을 천업이라고 한다. 정업(定業)은 부처님도 면할 수 없으나,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 천업은 돌파할 수 있다고 한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4>

六途輪廻할 때 進級 降級 나누어지고

삼대력 얻고 육도자유 영원한 진급

장성진 <중앙훈련원 교감> webmaster@wonnews.co.kr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단어해석

진급= 지옥에서 차츰 천도로 올라가면서 복을 받는 것.

강급= 천도에서 차츰 지옥으로 내려가면서 죄를 받는 것.

해의

일체생령이 육도로 윤회할 때에 진급과 강급을 하게 된다.

정산종사의 법문과 같이 진리의 힘으로 되는 진급과 강급은 우주의 진급과 강급을 따라서 일체생령이 다 같이 진급 강급을 하게 된다.

진급기에는 아무리 어리석은 중생이라도 복을 지어서 선도에 오르고 강급기에는 아무리 복이 많은 중생이라도 죄를 지어서 악도로 떨어진다.

이는 마치 밤이 되면 잠이 오고 낮이 되면 활동하는 것과 같이 진급기에는 문화의 발달함을 따라서 민심이 자연 착해지고 복 짓는 기회를 얻게 되며, 강급기에는 문화의 쇠퇴함을 따라서 인심이 자연 박해지고 복 짓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수행의 힘으로 되는 진급과 강급은 우주의 진급 강급에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큰 원을 세워서 수행에 정진하여 마음을 닦고 복을 지어 진급을 거듭하고 자기 스스로 자포자기 하여 악한 마음으로 죄를 지어 강급을 거듭하는 것이다.

진급기에 수도하는 것은 순풍에 돛을 달고 바로 흘러가는 것과 같고, 강급기에 수도하는 것은 역풍에 돛을 달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다시 자세히 말한다면 일시의 진급과 강급이 일생의 진급과 강급이 되고, 일생의 진급과 강급이 내생의 진급과 강급이 되고, 영생의 진급과 강급이 된다.

일시의 진급과 강급은 한때 착한 마음과 행동으로 인도를 실천함은 진급이요, 한때 악한 마음과 악한 행동으로 인도를 탈선함은 강급이다. 이와 같은 진급과 강급이 일생으로 옮겨 간다.

일생의 진급과 강급은 한때 한때의 착한 마음과 착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기질에 변화가 오고 인격이 향상되며 복락이 오는 것이 진급이다.

한때 한때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기질이 타락되고 인격이 저하되어 죄고가 오는 것은 강급이다.

이러한 진급과 강급은 또 다시 내생으로 옮겨간다. 내생의 진급과 강급은 일생을 통하여 착한 마음과 착한 행동으로써 사회에 유익을 준 과보로 인도에 몸을 받으면 훌륭한 인격에 상생의 인연으로 좋은 가정에 태어나고 모든 사업에 성공하여 풍족한 생활을 하게 되며 또는 천도에 태어나 복을 받는 것은 진급이다.

일생을 통하여 악한 마음과 악한 행동으로 사회에 해독을 미친 과보로 인도에 태어날지라도 나쁜 인격에 상극의 인연으로 불행한 가정에 태어나서 모든 사업에 실패하여 빈곤한 생활을 하거나 삼악도에 떨어져 죄를 받는 것은 강급이다.

이와 같은 내생의 진급과 강급은 또 다시 영생으로 옮겨간다.

영생의 진급과 강급은 큰 서원을 세우고 수행에 정진하여 삼대력을 갖추어 불과를 얻고 육도를 자유로 함은 영원한 진급이다.

자기스스로 자기를 무시하고 타락하며 자생자지하여 천만가지 죄고를 짓는 것은 새로운 원을 세우고 발심이 날 때까지 영원한 강급이 되어서 그 해독이 보다 더 큰 것이다.

이상에서 밝힌 일시, 일생, 내생, 영생의 진급과 강급이 한 마음 작용 여하에 달려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경계 따라 일어나는 선악의 분별을 잘 조정해서 악은 끊고 선은 힘써 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작은 선에 얽매이면 큰 선을 행했다 할지라도 이는 有漏福이라 승강을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결국은 선과 악이 없는 至善의 자리를 개치고 닦아서 삼대력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러하면 정산종사의 법문과 같이 먼저 진급하는 법을 알아서 첫째는 국한 없는 큰 원을 세우고 꾸준히 향상할 것이요, 둘째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확립하여 불퇴전할 것이요, 셋째는 선지식을 가까이하여 닮아갈 것이요, 넷째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잘 인도하여 진화시킬 것이요, 다섯째는 공부와 사업에 계속 정성을 다할 것이요, 여섯째는 수용품을 절약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할 것이다.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5>

심신작용 따라 恩生於害 害生於恩 나눠지고

삼학공부로 대각, 중정, 해탈, 자성을 깨쳐 를 자유

심신을 수호하는 공부 = 염불 좌선 기도 주문

사리를 아는 공부 =

장성진 webmaster@wonnews.co.kr

혹은 은생어해(恩生於害)로 혹은 해생어은(害生於恩)으로 이와 같이 무량 세계를 전개하였나니,

단어해석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에서 은혜가 나오는 것. 해가 변하여 은혜가 되는 것.(감사생활)

해생어은(害生於恩)= 은혜에서 해가 나오는 것. 은혜가 변하여 해가 되는 것.(원망생활)

해의

우주대자연은 상생상극이 반복무상한 가운데 영원히 생성발전 하는 것이다. 상생상극으로 변화하는 인과의 차별세계는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을 막론하고 은과 해로 나타난다. 은혜는 우리에게 좋은 일이 미치는 것이요, 해독은 우리에게 나쁜 일이 미치는 것을 말한다.

자연환경의 변화는 양이 변하여 음이 되고, 음이 변하여 양이 되며 봄, 여름이 변하여 가을, 겨울이 되고 가을, 겨울이 변하여 봄, 여름이 되는 것이다.

이는 상생상극이 반복하는 진리의 순환이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생활환경의 변화는 부가 변하여 가난이 되고 가난이 변하여 부가 되며 귀가 변하여 천이 되고 천이 변하여 귀가 되는 것으로 이른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인과의 순환이라 각자의 짓는 바를 따라 은혜와 해독을 자유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환경이나 생활환경에서 오는 은과 해의 반복이 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에서 오는 것으로 진리 자체가 그러한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러한 것이다. 또는 무슨 일이나 지극하면 변하는 천리를 밝힘과 동시에 심신작용 여하를 따라 은생어해 해생어은으로도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말해, 자연 부귀를 수용할 때에 분수를 알아서 도로써 생활하며 선을 쌓고 덕을 베푼 공덕으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대를 받고 미래에 계속 복락을 누림은 은생어은이라 은이 다시 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부귀를 수용할 때에 분수를 모르고 욕심만을 채우려는 잔인박덕한 대가로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고 미래에 죄고를 불러들임은 해생어은이라 은이 변하여 해가 된 것이다.

빈천고를 받을 때에 인과를 믿고 안심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선을 쌓은 공덕으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착한 사람이라 존경을 받으며 미래에 부귀를 누림은 은생어해라 해가 변하여 은이 된 것이다.

빈천고를 받을 때에 인과를 믿지 않고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며 대중을 해하여서라도 자기 혼자만 잘 살려고 악을 쌓은 대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악한 사람이라 멸시를 받으며 미래에 계속 빈천고를 받게 됨은 해생어해라 해가 다시 해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대자연의 공도에 순응하고 수행의 힘으로 부당한 해와 은혜는 배격하고 정당한 해와 은혜를 수용할 것이다. 또는 해에서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에서 더욱 은혜를 발견하며 나아가서는 은과 해가 함께 텅 빈 자리를 깨치고 닦아서 은과 해를 마음대로 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주와 인생을 비롯하여 일체생령을 이 변화하는 가운데 세상은 한량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우리 어리석은 중생은 이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를 하며, 또는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를 하며, 또는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여

단어해석

법신불 일원상= 우주대자연이 법으로 조직되었으므로 이를 인격화하여 법신불이라 하였다. 그 진리를 형상으로 표현해보면 하나의 둥그러운 모습이 된다.

체 받아서= 그대로 본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 마음과 몸을 한 편에 치우침이 없이 원만하게 잘 지키고 보호하는 데 노력하는 공부.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 온갖 일의 시비이해와 모든 이치의 대소유무를 걸림 없이 다 아는 데 노력하는 공부.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 마음과 몸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도록 원만하게 잘 부려 쓰는 데 노력하는 공부.

지성= 게으름을 피우거나 쉼이 없는 지극한 정성.

해의

우리는 성불제중의 큰 서원 아래 법신불 일원상 즉 요란함도 어리석음도 그름도 없는 자성자리를 관조하면서 세 가지 방면으로 공부해 가자는 것이다.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는 공부는 대산종법사 법문과 같이 정신수양으로 욕심에 도둑맞은 마음을 찾으며 번뇌에 불타는 심화를 끄며 흩어진 정신을 모아 자주력을 얻자는 것이다.

염불, 좌선, 기도, 주문 등의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마음에 수양력을 얻어서 첫째는 마음이 안정되고 육근동작에 순서를 얻게 되고, 둘째는 마음에 여유와 부동력과 정진력이 생기고, 셋째는 자성의 지혜와 광명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극치에 이르러서는 생사자유와 극락수용과 만사 성공의 힘을 얻어 해탈 도인이 되는 것이다.

사리를 원만하게 아는 공부는 대산종법사 법문과 같이 사리연구로 모든 학문을 배워 알며 진리를 갈고 궁구하여 깨치며 밝혀 놓은 지혜를 계속 어둡지 않게 하자는 것이다.

경전, 강연, 회화, 성리, 의두, 정기일기 등의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마음에 연구력을 얻어서 첫째는 모든 상식과 지견이 넓어지고, 둘째는 천만 경계를 당해서 합리와 불합리며 공과 사며 정과 사를 빨리 분석하고 밝게 판단하게 되고, 셋째는 대중교화에 지도역량이 커지는 것이다. 극치에 이르면 사리통달과 중생제도와 만사성공의 힘을 얻어서 대각도인이 되는 것이다.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는 대산종법사 법문과 같이 작업취사로 모든 악업을 끊고 온갖 선을 행하며 없는 복을 새로 지으며 지은 복을 계속 있게 하자는 것이다.

주의, 조행, 상시일기, 계문, 솔성요론, 시중보은 등의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마음에 취사력을 얻어서 첫째는 모든 언행이 법도에 맞게 되고, 둘째는 삼세업장이 소멸되고 상생의 복문이 열리며, 셋째는 종교 신앙과 수행공덕이 드러나는 것이다. 극치에 달하면 만행구족과 만복원만과 만사성공의 힘을 얻어서 자비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삼학공부로서 대각, 중정, 해탈의 대도력을 갖추는 데 오늘도 내일도 금년도 내년도 금생도 내생도 끊임없이 정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장성진 <중앙훈련원 교감>

은생어은 해생어해 (恩生於恩 害生於害)

은생어은은 은혜가 충만한 순경(順境)에서도 스스로 겸양하고 도()로써 생활하며, 선업을 쌓고 공덕을 베풀기에 더욱 노력하여 한없는 복락을 장만하는 생활. 해생어해는 해독이 많은 역경에서 인과의 이치를 믿지않고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만 잘 살려고 악업을 쌓아서 더욱 악도에 타락하는 생활, 은생어은은 육도윤회에 있어서 갈수록 진급하고, 해생어해는 갈수록 악도로 타락한다.

은생어해 해생어은 (恩生於害 害生於恩)

어떠한 역경·난경에서도 인과의 진리를 믿고 선업을 쌓아 복락을 장만하는 것이 은생어해, 이와 반대로 순경에 도취하거나 탐닉하여 악업을 짓고 죄과를 불러오는 것이 해생어은이다. 은생어해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은혜를 발견하여 진급하게 되고, 해생어은의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해독과 원망을 발견하여 강급하게 된다. 은생어해는 감사생활을 하게 되고, 해생어은은 원망생활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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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강좌 / 일원상 서원문 <>

은혜는 사은에서 받는 복락, 해독은 사은에서 받는 죄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면 일원의 위력 얻고, 일원의 위력 얻으면 일원의 체성에 계합

장성진 원불교신문 webmaster@wonnews.co.kr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體性)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함.

단어해석

은혜= 사은으로부터 복락을 받는 것.

해독= 사은으로부터 죄고를 받는 것.

일원의 위력= 일원상 진리의 거룩하고 위대한 힘. 진공묘유의 조화. 일심의 조화.

일원의 체성=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없는 성품. 분별과 명상이 텅 빈 본심.

서원= 일원의 진리와 합일하려는 간절하고도 지극한 소망.

해의

공부하는 사람이 큰 서원을 세우고 수도에 발심하여 삼학공부를 하면 마음이 착해지고 거짓 마음이 참되고 삿된 마음이 발라져서 육근동작이 다 선으로 화하면 죄고는 멀어지고 복락이 가까이 올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일생에 계속되고 내생으로 옮긴 다면 필연적으로 악도에서 선도로 선도에서 더욱 선도로 진급이 되며 천지, 부모, 동포, 법률로부터 큰 복락이올 것이다.

이와 반대로 착한 마음이 악해지고 참 마음이 거짓되고 바른 마음이 삿되어서 육근 동작이 악으로 화하면 복락은 멀어지고 죄고가 가까이 올 것이다.

이런 생활이 일생에 계속되고 내생으로 옮긴다면 필연적으로 선도에서 악도로 악도에서 더욱 악도로 강급이 되며 천지, 부모, 동포, 법률로부터 큰 재액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세상을 통해서 진급에서 진급이 되고 은혜에서 은혜를 입으려면 일원의 체성에 합하고 일원의 위력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일원의 위력을 얻는 것은 신앙으로 타력이다.

법신불전에 심고와 기도를 올려 진리의 감응을 얻자는 것이며 또는 일원은 사은이요 사은은 삼라만상이니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심념으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위하여 보은 감사 일념으로 사심 없이 일을 한다면 부지 중 진리의 위력을 힘입어서 만사가 성공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자력과 타력을 병진하는 공부라 사은으로부터 위력을 얻는 것은 타력이요, 삼학으로 불공을 드리는 것은 자력이라 안으로 진리불공으로써 감응을 얻고 밖으로 사실불공으로써 복락을 장만하여 불국세계에서 극락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의 위력이요, 일원의 위력이라 내가 곧 일원이 되고 일원이 곧 내가 되어서 일원과 내가 둘이 아닌 생활공덕이 시방세계에 찬란히 빛날 것이다.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은 수행으로 자력이다. 본래의 자성을 계발하여 대각중정 해탈의대도력을 갖추어서 일원의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정일여의 공부라 일이 없을 때는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 또는 경계가 없을 때에는 생과 사가 텅 비고 낙을 다 잊어버린 자성 본체에 합하였다가 경계를 당하여서는 생과 사를 초월하고 고와 낙을 마음대로 하는 자주정신을 확립해서 시방법계를 유유자재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의 동정이요, 일원의 동정이라 내가 곧 일원이 되고 일원이 곧 내가 되어서 일원과 내가 둘이 아닌 진리의 광명이 무시광겁에 은현자재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이 이와 같이 큰 도력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수가 있다.

無邪則得威力 息妄則合體性이는 염불일성에 잡념이 가라앉고 선정삼미에 정력이 쌓이고 일심기도에 위력을 입고 주송 일념에 사마가 물러가는 것이다. 또는 응용할 때에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고 그 일 그 일에 일심과 지혜의 실행력으로 모든 일에 성공을 가져오며 육근동작이 참되고 바르고 선하며 인류사회에 도움을 주는 것이 모두 일원의 체성에 합하고 일원의 위력을 얻는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은 수행으로 자력이요, 일원의 위력을 입는 것은 신앙으로 타력인 것 같으나 본래 둘이 아닌 하나로서 일원의 안과 밖이며 마음의 안과 밖이라 일원의 체성에 합하면 일원의 위력을 입게 되고 일원의 위력을 입으면 일원의 체성에 합하여 진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니 공부하는 사람은 큰 서원으로 분발 정진하여 만능 만덕한 부처의 인격을 이루어 자비 훈풍을 온 세계에 두루 불려야 할 것이다.

맺는말

대자연의 세계는 유정 중생의 원력으로 이루어졌고 공동의 업인으로 활용발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에는 굳은 서원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성이 있는 것이다.

대종사께서 전무후무한 대회상을 창립하시고 시방세계 불국토 일체중생 공성불을 다짐하신 일원상 서원문이 그 얼마나 크신 서원이며 거룩하신 서운이랴. 우리도 다함께 대종사의 뒤를 따라 이 서원을 이루기로 결심하였으니 초심만생 일념만년으로 일관하자. 옛글에도 眞心合天體 正氣通九天이라하였으니 반드시 법신불의 가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서원을 이루는 데에는 한때의 신성과 한때의 인내로써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이 서원문이 문장에 그치지 않고 뼈와 살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다음의 글귀로써 마음을 더욱 묶어 보고자 한다.

수행인의 염원

三難突破 三歸依(삼난돌파 삼귀의)

道若不成 死不遷(도약불성 사불천)

七顚八起 九番死(칠전팔기 구번사)

法輪常轉 永不休(법윤상전 영불휴)

보살의 염원

三世諸佛 心相運(삼세제불 심상운)

一圓同志 氣正通(일원동지 기정통)

十方世界 佛國土(시방세계 불국토)

一切衆生 共成佛(일체중생 공성불)

여래의 염원

涵養一圓氣(함양일원기)

永轉大法論(영전대법론)

慈悲度衆生(자비도중생)

六道任去來(육도임거래)

<중앙훈련원 교감>

원불교신문(http://www.wonnews.co.kr/)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