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 수행품(修行品) 59장
대종경(大宗經)
제3 수행품(修行品) 59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우리의 성품(性稟)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저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 하여 우리의 마음 바탕을 심전(心田)이라 하고 묵은 밭을 잘 개척하여 좋은 밭을 만들 듯이 우리의 마음 바탕을 잘 단련하여 혜복을 갖추어 얻자는 뜻에서 심전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나니라. 그러므로, 심전을 잘 계발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면 매고 또 매어 잡초는 없애고 농작물만 골라 가꾸어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는 것 같이, 선악간에 마음 발하는 것을 잘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악심이 나면 제거하고 또 제거해서 악심은 없애고 양심만 양성하므로 혜복이 항상 넉넉할 것이요, 심전 계발을 잘못 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못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도 내버려 두고 농작물이 나도 그대로 두어서 밭을 다 묵히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는 것 같이, 악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고 선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여 자행 자지하는지라 당하는 것이 고뿐이요, 혜복의 길은 더욱 멀어지나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천만 죄복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 심전 계발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이 일을 어찌 등한히 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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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分別]
(1) 추량하고 사유하는 것 또는 구분하고 분석하는 것.
(2) 불교에서 모든 사물과 존재의 본성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에 매달려 판단하고 사유ㆍ추론하는 의식 작용을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용어. 원불교에서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을 사량(思量)하여 식별하는 것 또는 세상살이의 경험을 쌓아서 천만사물에 적당한 판단을 내리는 것 그리고 정의ㆍ불의ㆍ진실ㆍ거짓을 확실하게 판단하는 것 등을 의미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는 분별 없는 자리와 분별 있는 자리 두 가지를 아울러서 모든 분별이 항상 정을 여의지 아니하여 육근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 영지의 자성에 부합되는 삼학 병진을 목표로 공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분별성[分別性]
(1) 나누고 구별하는 마음 작용. 사리간에 사량계교하고 분별 시비하는 마음의 성질. 원불교에서는 정신을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고 하고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는 마음에 분별성을 없이하라고 한다.
(2) 세상의 경험을 쌓아 사물을 대하여 정당한 판단을 할 줄 아는 마음.(원불교대사전)
주착심[住着心]
어느 한 곳에 치우쳐 집착하는 마음. 또는 한 곳에 집착하고 고집하여 다른 것을 용납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주착심’은 두렷하고 고요한 마음에 이르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하겠다. 《정전》 ‘정신수양의 요지’에서는 정신을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라고 규정하며, 이러한 분별성과 주착심을 없이 하며 밖으로 산란한 경계에 끌리지 않음을 수양이라 말하고 있다.
정신수양의 목적을 “자기에게 있는 권리와 기능과 무력을 다하여 욕심만 채우려 하다가 결국은 가패신망도 하며, 번민망상과 분심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신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 그런 고로 천지만엽으로 벌여가는 이 욕심을 제거하고 온전한 정신을 얻어 자주력을 양성하기 위해 수양을 하자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분별성과 주착심의 원인을 ‘욕심’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산종사는 주착을 ‘상(相)이 있는 마음’으로 말하는 데 ‘조견’을 ‘어느 상에도 주착함이 없이 원만 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직관함’으로 보고(《정산종사법어》 경의편43), “상(相)에 주착한 공덕은 오히려 죄해의 근원이 되기 쉽다”(《정산종사법어》 무본편34)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심전[心田]
밭에서 온갖 식물이 나고 자라듯이 인간의 마음에서 선악 미추 등 모든 분별이 일어남을 비유한 표현이다. 심전이란 용어의 어원은 불교경전에서 명확하게 찾기 힘들지만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에 불교수행을 밭 가는 것에 비유한 내용이 보인다. 본래 분별과 주착이 없는 성품(性稟)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하여 마음바탕을 심전이라 부른다. 소태산대종사는 “예로부터 도가에서는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이라 하나니 이 심전의 공부는 모든 부처와 성인이 다 같이 천직으로 삼으신 것이요 이 세상을 선도하는 데에도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니라”(《대종경》 수행품60)라고 했다.(원불교대사전)
심전계발[心田啓發]
[개요]
심전이란 밭에서 온갖 식물이 나듯이 인간의 마음에서 능히 선악의 싹이 난다하여 이를 비유한 표현이다. 본래 분별과 주착이 없는 성품(性稟)에서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하여 마음 바탕을 심전이라 부른다. 마음바탕에서 모든 사유ㆍ감정ㆍ고락 등 여러 가지 마음이 나오는 것이 마치 땅에서 풀이나 나무 등을 내는 것 같으므로 비유해서 심지(心地)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심전을 계발한다는 것은 마음밭을 잘 가꾸어 좋은 결실을 거둔다는 것, 곧 마음밭을 가꾸어 지혜(慧)와 복(福)을 얻는 것을 뜻한다. 계발은 마치 묵은 밭을 잘 개척하여 농작물은 가꾸고 잡초는 제거하여 마침내 수확을 거두듯 선악간 마음 발하는 것을 조사하여 악심이 나면 제거하고 참된 본성을 양성하여 다함이 없는 혜복을 얻음을 가리킨 말이다.
[역사]
심전이란 용어의 어원은 불교경전에서 명확하게 찾기 힘들지만 《잡아함경(雜阿含經)》 제4권에 불교수행을 밭 가는 것에 비유한 내용이 보인다. 심전계발과 유사한 표현에 심전개발(心田開發)이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에서 대두된 표현이다. 1931년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 민중의식을 계몽하여 일제의 통치에 협력하도록 순화시키자는 취지하에 일종의 정신적 계몽운동으로서 심전개발운동을 벌였다. 1936년 발표한 정책에는 국체관념(國體觀念)의 명징(明徵), 경신숭조(敬神崇祖)의 사상 및 신앙심의 고취, 보은ㆍ감사ㆍ자립정신의 함양 등 세 가지 방향으로 집약된다. 심전개발의 근본취지는 정치적 동기에 있었으나, 그 방향 가운데에는 보은ㆍ감사ㆍ자립정신의 함양 등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총독부는 심전개발의 주체로 종교, 특히 전통불교의 역할에 기대하고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주문했다. 불교계에서는 이에 대체로 동의했으나 실제적 활동에 있어서는 총독부정책과는 별도로 불교보급과 대중화운동의 일환으로 심전개발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불교는 불교개혁운동이 말해주듯 매우 심각한 정체상태에 있었으므로 변화의 계기가 필요했다. 이에 당시 불교계는 정치적 의도와 별개로 하여 심전개발을 불교대중화운동의 중요한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총독부는 심전개발운동에서 불교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이는 신도(神道)를 고려한 데서 연유한다. 이후 불교계는 자체적으로 심전개발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원불교의 심전계발]
원불교에서는 불교 고유의 수행적 전통과 관련하여 ‘심전계발’이란 전통을 일제의 움직임보다 10여년 전부터 세우고 있다. 이에 심전계발을 정신수양ㆍ사리연구ㆍ작업취사의 삼학공부와 관련시켜 풀이함으로써 그 의미를 보다 심화시켰다. 《대종경》에서는 마음공부에 관해 병을 고치는 의학, 난을 평정하는 병법 등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심전계발은 밭을 가는 농부에 비유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런 비유는 불교적 전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소태산대종사가 이를 활용한 것이다. 소태산은 심전계발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우리의 성품(性稟)에서 선악 간 마음 발하는 것이 마치 저 밭에서 여러 가지 농작물과 잡초가 나오는 것 같다하여 우리의 마음 바탕을 심전(心田)이라하고 묵은 밭을 잘 개척하여 좋은 밭을 만들 듯이 우리의 마음 바탕을 잘 단련하여 혜복을 갖추어 얻자는 뜻에서 심전 계발(啓發)이라는 말이 있게 되었나니라. 그러므로 심전을 계발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면 매고 또 매어 잡초는 없애고 농작물만 골라 가꾸어 가을에 많은 수확을 얻는 것같이, 선악 간에 마음 발하는 것을 잘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악심이 나면 제거하고 또 제거해서 악심은 없애고 양심만 양성하므로 혜복이 항상 넉넉할 것이요, 심전 계발을 잘못 하는 사람은 저 농사 잘못 짓는 사람이 밭에 잡초가 나도 내버려 두고 농작물이 나도 그대로 두어서 밭은 다 묵히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는 것같이, 악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고 선한 마음이 나도 그대로 행하여 자행자지(自行自止)하는지라 당하는 것이 고(苦)뿐이요, 혜복의 길은 더욱 멀어지나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천만 죄복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이 심전 계발을 잘하고 못하는 데에 있나니, 이 일을 어찌 등한히 하리요”(《대종경》 수행품59).
한편 소태산은 도량에서 제초작업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나태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면에서 마음공부와 제초작업이 서로 통하는 바가 많다고 언급하면서 “제초하는 것으로 마음공부를 하게 하고 마음공부하는 것으로 제초를 하게 하여 도량과 심전을 다 같이 깨끗하게 하라”(《대종경》 실시품15)고 했다. “예로부터 도가에서는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이라 하나니 이 심전의 공부는 모든 부처와 성인이 다 같이 천직으로 삼으신 것이요 이 세상을 선도하는 데에도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 회상에서는 심전계발의 전문과목으로 수양ㆍ연구ㆍ취사의 세 가지 강령으로 정하고 그를 실습하기 위해 일상수행의 모든 방법을 제시했나니 수양은 심전농사를 잘하기 위해 밭을 깨끗하게 다스리는 과목이요 연구는 여러 가지 농사짓는 방식을 알리고 농작물과 풀을 구분하는 과목이요 취사는 아는 그대로 실행하여 폐농을 하지 않고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하는 공부이니라”(《대종경》 수행품60). 이 내용에서는 심전계발을 불교의 전통적 수행뿐만 아니라 여러 종교의 수행을 포괄할 수 있는 넓은 의미로 활용하고 있다.
모든 부처와 성인이 모두 마음공부를 가르친 만큼 이런 맥락에서 심전계발을 통종교적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정산종사도 보통사람들이 국한 있는 사사로운 밭에 이욕의 종자를 심는데 주력하는 반면 불보살들은 형상 없는 마음밭 농사에 세세생생 공을 들여서 영원한 세상에 무루(無漏)의 복과 무량한 혜를 얻는다고 말한 바 있다(《정산종사법어》 무본편54). 여기서의 심전은 복전(福田)과 같이 주로 바람직한 덕목이 나오는 근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원불교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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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밭 잘 가는 공부인]
<영산선학대학교/장원경 교무>
인터넷에 검색어 '마음'을 쳐보면 많은 내용이 떠오른다. 또 '마음'이란 이름을 붙인 상업성 광고 까지 많이 등장할 정도이다. 일간지에 딸려온 지방의 조그마한 불교대학 1년 과정 학생 모집 광고란에도 교수진 강의 내용으로 마음치유 이야기가 자랑스럽게 실려있다.
'마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런 '마음'을 일찍이 밭농사에 비유하여 '마음공부'하는 법을 일러주신 대종사님 말씀이 수행품 59장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 바탕을 심전(心田)이라 하고 우리의 마음 바탕을 잘 단련하여 혜복을 갖추어 얻는 것을 심전 계발(啓發)이라 하셨다.
심전 계발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가?
부지런한 일반 농부가 밭에 잡초가 나면 매고 또 매어 농작물만 골라 가꾸듯이 부지런한 심전 농부(공부인)는 마음에 악심이 나면 제거하고 또 제거해서 양심만 양성한다. 부지런한 일반 농부가 수확을 많이 얻듯 부지런한 심전 농부는 지혜와 복의 열매를 많이 거둔다. 거기에 큰 권리까지 얻는다.
권도편 49장에 보면 마음공부를 잘하고 보면 무형한 심력이 생겨나서 무한한 우주의 큰기운을 능히 이끌어 응용할 수 있게 되나니 이것을 일러서 삼계의 큰 권리라 하셨다. 마음공부 상대가 나의 밖에 있을 때나 안에 있을 때나 원래 마음을 빨리 챙기면 챙길 수록 혜복과 권리는 커진다.
심전 농사를 짓는 사람은 먼저 심전을 발견하여야만 공부의 출발 기점을 이룬 것이다. 본래에 분별과 주착이 없는 깨끗한 우리 성품을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아니한 잘 계발된 깨끗한 밭에 비유하였다.
혼자 있을 때 망상이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때면 얼른 방석을 놓고 단정히 앉아 1분이라도 선을 하고 단전에 마음을 집주해 본다. 곧 원래 마음이 챙겨지면서 망상을 향해 가던 마음이 지혜로 유턴을 할 것이다.
선풍기가 돌면서 제 역할을 할 때는 날개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단전주를 하고 있으면 무념이 되고 무념에서 실상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선풍기 날개라야 바람을 얻지 않는가!
망상 때문에 괴롭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망상을 동반 할 수밖에 없으니 망상이 있는 것, 감사한 일이다. 다만 망상이 온 것을 아는 공부를 잘 하면 된다. 그리고 순간순간 온전한 생각만을 심으면 잡념은 순간순간 제거된다.
이제 세계는 물질 개발이상으로 도덕적인 심전 계발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모아지고 있다. 심전 계발의 중요성과 방법이 인류의 희망 사항으로 크게 떠오를 것이다.
★★★★★-THE END-